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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만든 홍차 - 그 맛과 향과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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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일요일 저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하는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이 있었습니다. 야생차로 이름 높은 하동의 매암다원으로 가서 전통차 체험을 하고 섬진강을 걸었습니다.

 

이날 매암다원 차 체험 프로그램은 모두 여섯이었는데 하나 같이 수준 높고 잘 준비돼 있었습니다. 아마 굳이 돈으로 치자면 5만원 어치는 넘고도 남음이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 날 아이들 체험을 거드느라, 그리고 아이들 물놀이 장소 지키느라 홍차 만들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이들을 도우면서, 어떻게 만드는지는 익힐 수 있었습니다.

 

 

먼저 찻잎을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치 뭉칩니다. 이 때 찻잎은 하루 정도 그늘에서 시들린(시들게 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두 손으로 힘을 주어 꾹꾹 누릅니다. 스무 차례 정도 되풀이한 다음 다시 펼쳐 안팎을 뒤섞습니다.

 

그래야 골고루 눌러질 수 있으니까요. 대략 20분쯤을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찻잎에서 진물이 하얗게 나와 질퍽거릴 정도가 되고 둥글게 공 모양으로 뭉친 찻잎이 저절로는 펼쳐지지 않을 만큼이 되면 대소쿠리 바닥에 펴서 문질렀다가 뭉쳤다가를 여러 차례 거푸 합니다.

 

그러고는 펼쳐서 햇볕에 말립니다. 볕은 쨍쨍할수록 좋습니다. 한 이틀 정도 바짝 말리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한 열흘 가량 그늘에서 말립니다. 바삭바삭해지도록 말리면 이제 끝입니다.

 

 

이 날 아이들은 이렇게 만든 홍차를 한 서너 시간 말린 녀석을 집으로 갖고 돌아갔습니다. 저는 버스 안에서 “이틀 더”를 여러 차례 외쳤습니다. 홍차는 발효차입니다. 제대로 발효되지 않으면 제 맛이 날 리가 없습니다. 여기 ‘이틀 더’는 발효에 필요한 시간의 최소한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그 날 매암다원에서는 홍차를 만들지 못하고 찻잎만 조금 따 왔습니다. 딴 찻잎이 처음에는 적지 않았지만, 적게 딴 아이들한테 조금씩 나눠주고 나니 그야말로 한 움큼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문득 생각이 나서 배운 그대로 홍차를 만들어봤습니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쪼물락쪼물락 만든 다음 출근할 때 창밖에 내다놓았습니다.

 

오른쪽 말린 홍차, 왼쪽 끓여 마셔서 잎이 원래대로 펴진 홍차.

비가 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흐린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이틀이 아닌 사나흘을 바깥에 내뒀다가 다시 방안으로 옮겨 열흘 정도 말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홍차를 끓였더니 이런 맛이 향이 색이 납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혓바닥을 톡 쏘는 느낌이 있습니다. 향기는 조금 자극적이면서 달콤합니다. 맛은 부드럽습니다. 색깔은 은은합니다. 찻잎 어디에 이런 향과 맛과 색이 숨어 있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찻잎을 잡았을 때, 그 녀석은 비릿한 풀냄새만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차레 주물리는 과정을 겪더니 이렇게 바뀌어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몸소 찻잎을 따서 자기 손으로 주물러 차를 만드는 일이 즐거운 까닭이 여기 있나 봅니다. 저는 이 홍차가 없어질 때까지, 아니 없어지고 나서도 이런 맛과 향과 색이 신기할 것 같습니다.

 

제 손으로 이런 맛과 향과 색을 내었다는 즐거움이 더없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준 매암다원과 거기 강동오 관장(매암다원에는 매암차문화박물관-물론 거창한 그런 따위는 전혀 아니고-이 있는데 그 또한 그럴 듯합니다.)이 정말 고맙습니다.

 

여기 다원에서는 찻값 2000원만 내면 잘 지은 건물에서 또는 참 좋은 감나무 그늘에서 하루종일 질리도록 마음껏 차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강동오 관장을 비롯한 여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이해 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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