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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지지율이 문재인보다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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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MBC경남 라디오 광장에서 김상헌 기자랑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경남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직후여서 그에 따른 내용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기 방송에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후보 단일화 이후 무소속 권영길 후보가 얼마나 많이 득표할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말씀입니다.

경남 도지사 보궐선거는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집니다. 그래서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은 사람이 도지사 보선에서 권영길을 얼마나 찍을 개연성이 높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 개연성이 얼마나 실현될까가 궁금한 것입니다.

라디오 광장에서 주고받은 얘기들의 행간(行間)에서 이런 궁금증이 읽으시는 이들 눈에 제대로 읽히겠는지 어떨는지 한 번 더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그 때 나눈 말들을 여기에 한 번 옮겨놓아 보겠습니다.

참고 삼아 말씀드리면, 12일 현재 문재인 지지율은 43% 수준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 현재 권영길 지지율은 29~23% 정도였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이병하 후보가 8~4% 지지를 받았는데, 이 둘을 합하면 37~27%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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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이후인 16일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권영길 무소속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경남도지사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

김상헌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남도지사 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가 결국 성사가 됐군요. 지난 13일 오전 첫날 부재자 투표가 진행되던 와중에 이병하 통합진보당 후보가 전격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김훤주 : 그렇네요. 사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이병하 후보가 사퇴하거나 해서 야권 도지사 후보가 단일화될 가능성이 그다지 높게 나오지 않았거든요. 보도를 보니까 이병하 후보가 개인 차원에서 사퇴를 결심한 것처럼 나오더군요.

김상헌 :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병하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죠? “현장을 돌며 유권자 만나보니 야권에서 싸우는 모습 도저히 못 보겠다, 다 싫다, 투표하러 안 갈 거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현장에서 이런 반응을 겪으면서 사퇴를 결심한 모양입니다.

김훤주 : 지난 12일 오후 열렸던 KNN의 텔레비전 토론회를 마치고 나서 이 후보가 경남 지역 시·군 위원장들에게 사퇴하겠으니 양해해 달라는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또 통합진보당 중앙당에도 미리 알렸고요. 이에 따라 중앙당은 사퇴 기자회견에 앞서 13일 오전 8시 회의를 열어 이 후보 사퇴 건을 처리했습니다.

12일 열린 KNN 주관 토론회.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그런데 여태까지 통합진보당 경남도당과 이병하 후보는 후보 단일화에 대해 소극적이었잖아요? 후보 사퇴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씀입니다. ‘단일화보다는 정책 연대가 더욱 중요하다’거나, ‘공당으로서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거나 하는 발언을 해 왔고, 시민사회단체에서 마련한 야권 후보 단일화 테이블에도 나가지 않았고요.

김훤주 : 그 때문에 이병하 후보가 야권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왔었지요. 11월 말 민주통합당 공민배 후보와 무소속 권영길 후보 사이의 이른바 ‘부분 단일화’ 이후에도 원론 차원에서나 단일화 필요성을 말해 왔지 자세는 마찬가지 소극적이었습니다. 후보 단일화에 적극 나서는 권영길 후보를 향해 단일화는 권 후보쪽 희망사항일 따름이라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고요.

김상헌 : 그렇지만 권영길 후보와 이병하 후보가 실무진 차원에서는 만남을 계속 이어온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단일화 필요성과 당위성에 공감대가 나름 형성됐을 테고, 또 권영길 후보에게 단일화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 통합진보당 당원에 대한 사과도 이뤄졌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막판에 말을 바꾼 권영길 후보

김훤주 : 이병하 후보의 이런 사과 요구에 권영길 후보는 바로 반응을 했습니다. 7일 있었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진보진영 분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미안하다”고, 조건부 사과를 했습니다. 이어 이튿 날 오후에는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당원들에게 드리는 글’ 성명을 통해 한 번 더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고는 양쪽이 단일화 협상에 들어갔지요.

김상헌 : 단일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단일화 방법을 두고 양쪽이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이죠. 지지율에서 앞서는 권영길 후보는 일반 시민 대상 여론 조사를 내세웠고 상대적으로 뒤지는 이병하 후보쪽은 노동계 등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대의원 조사를 주장했지요.

김훤주 : 이 대목에서는 권영길 후보를 비판하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하자는 권영길 후보 요구는, 통합진보당 이병하 후보쪽에서 보자면 그냥 일방적으로 양보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거든요. 이기는 단일화를 위해서는 여론 조사를 통한 단일화가 맞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이건 상대방한테 지나치게 불공평한 것이거든요. 게다가 권영길 후보는 앞서 이병하 후보쪽에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그 방식과 조건은 통합진보당 이병하 후보쪽에 모두 맞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놓고 자기 말을 뒤집었으니 좋게 보일 까닭이 없는 거죠.

김상헌 : 어쨌든 이제 야권 도지사 후보가 단일화됐습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쪽에서는 좀 거친 반응을 내놓았어요. 이게 대변인 논평인데, “무소속 탈로 얼굴 가리고 단일화 부채까지 들었으니 가면의 굿판에 340만 도민이 보일 리 있겠느냐”, “경남에서 어처구니없는 무소속 가면놀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했어요.

김훤주 :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 쪽에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말하자면 단일화가 자기들한테 크든 작든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않는 분위깁니다. 최근 치러진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가 권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거든요. 느긋하게 선거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도청 인선 관련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실정입니다. 야권 단일화 바람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영향력도 적다고 보는 겁니다.

이병하 후보 사퇴의 파괴력은 얼마나

김상헌 : 실제로도 그럴까요? 오늘 있었던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권영길 후보 지지 선언 기자회견에는 권영길 후보뿐 아니라 이병하 전 후보도 동참했거든요. 지난달 25일 후보 사퇴 선언을 하고도 13일 동안 아무런 지지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이른바 안개 행보를 했던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와는 달리 이병하 전 후보는 곧바로 권 후보를 위한 지지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병하 전 후보가 안철수 전 후보처럼 지지도도 높지 않고 파괴력도 적기는 하지만요.

14일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이병하-권영길.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 경남은 다른 지역과 달리 노동계가 센 만큼 이병하 권영길 두 후보의 단일화가 노동계 내부에서는 나름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밖에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게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볼 여지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있었던 민주노총 경남본부 기자회견도 소속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고요. 덕분에 노동 현장의 혼란은 많이 가라앉게 되겠지요.

김상헌 : 권영길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여론조사가 최근 두 개가 있습니다. 서울신문이 경남 유권자 700명에게 11일 한 여론조사에서는 홍 후보가 46.5%, 권 후보가 29.1% 지지를 받아 홍 후보가 17.4% 앞섰습니다. 야권 단일화 이전에 했기 때문에 이병하 후보 지지율도 나왔는데 8%였고요,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은 16.4%였습니다.
 
또 경남신문이 10일부터 11일까지 유권자 1000명에게 한 조사에서는 45.0%를 기록한 홍 후보는 22.9% 지지를 받은 권 후보를 22.1% 앞섰습니다. 이 후보 지지율은 3.8%, 부동층은 28.3%였고요. 사정이 이러니 홍 후보쪽에서는 안정적이라고 볼 만도 하겠습니다.


김훤주 : 물론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밑바닥 민심의 흐름이 홍 후보에게 그다지 이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홍 후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인 1996년 총선에서 불법을 저질러 당선무효가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유권자도 있고요(새누리당 지지자였습니다), 당내 경선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경남에서 경남을 위해 일한 적이 전혀 없어 ‘낙하산’에 가깝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도시보다 농어촌으로 갈수록 더 큰 것 같습니다.


김상헌 : 그러면 홍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는 이기고 실제 투표에서는 질 수도 있다는 얘긴가요? 실제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강원도지사 선거에 나섰던 야권의 이광재 후보가 그랬지 않습니까?

당시 이광재 후보는 조선일보-YTN 공동 여론 조사에서 27.7%밖에 지지를 얻지 못해 48.2%를 얻은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에게 20% 이상 뒤졌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53.4% 득표로 상대를 눌렀거든요. 지난해 치러진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도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야권 최문순 후보가 앵커맨으로 이름높았던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같은 식으로 이겼고요.

야권 도지사 후보가 불리한 까닭들

김훤주 : 잘라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까닭은 이렇습니다. 먼저 단일화 과정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서로 티격태격했을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마무리되지 못하고 2단계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게다가 양보를 받은 쪽인 권영길 후보 진영에서 말을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좀 사람들한테 질리도록 만든 측면이 있었지요.

경남도민일보 사진. 옆엣사람은 김정권 선수인 것같기도.


또 새누리당이 느긋한 편이기는 해도 여태까지만 보자면 선거운동을 무난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도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인 가운데 하나가 교만한 선거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달곤 도지사 후보는 선거운동을 건성으로 했습니다. 선거 따위 하나마나 당선이라는 식으로, “나 서울 국립 명문 대학 나온 똑똑한 사람이야” 등등으로 유권자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고 뻐기는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지금 홍 후보 선거운동이 그런 지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달곤 후보가 그렇게 뻣뻣하게 선거운동을 했는데도 투표 결과는 46.5%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손님 실수나 반사이익을 챙기기도 어렵습니다.


김상헌 : 게다가 바꿔보자는 바람이 불기도 어려운 것 같지요? 김두관 도지사가 사퇴하는 바람에 치러지는 선거라서 야권에서 보자면 분위기가 좀 썰렁한 감이 있겠지요. 2010년 선거 때는 ‘한 번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여야 구분없이 컸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2010년 도지사 선거 때는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김두관 후보 선거운동을 한 한나라당 당원이 수십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수 성향 사회단체들이 김두관 지지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시장·군수 후보나 시·도의원 후보들도 많은 경우 김두관을 지지했습니다. 이런 바람이 이번에는 없는 거죠. 더욱이 이번에 보궐선거를 하는 원인 제공자가 야권이라는 점도 좋지 않습니다.

젊은 층 투표 참여 많아져도 이롭지만은 않아


김훤주 : 그래서요, 젊은 층 투표 참여 등으로 투표율이 오르는 것만 남아 있는 셈인데, 지금 살얼음 상태에서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기 때문에 투표율이 2010년 지방선거 때의 61.9%보다는 당연히 높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높아진 투표율이 권영길 후보한테 이롭게만 작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젊은 층은 야권 성향이라 해도 관심이 권영길-이병하가 아니라 안철수-문재인에게 가 있거든요.

또 사람들에게는 묘한 보상 심리가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야권을 찍고 도지사도 야권을 찍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특히 부동층에서는 동시 선거를 할 경우 표를 나누는 성향이 있답니다. 대통령은 야권을 찍었으니 도지사는 여권을 찍자는 식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아무래도 여권에는 좋고 야권에는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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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투표, 대부분 40대 이하 젊은 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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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에 캐나다에 들어가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토론토에서 온 국제전화였습니다. 이 친구 목소리가 들떠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저한테 “누가 될 거 같냐?”고 물었습니다. 그래 저는 조금은 신중하게, 실제로 잘 모르겠기도 해서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랬습니다.

이 친구는 저랑 동갑으로 1963년생입니다. “여기는 끝났다고!”라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재외국민 투표가 5일부터 10일까지 치러졌으니까 거기 투표는 끝났겠지요. 그래서 저는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그래 동포들 투표 끝난 줄은 알고 있어.”

산 넘고 물 건너는 어려움 속 재외국민 투표율 71%

그랬더니 “그게 아니라고” 하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투표가 끝났다는 말이 아니고, <'게임'이 끝났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재외국민 투표율이 71%를 넘었는데, 이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알아? 해외동포 투표율이 이런 정도면 대한민국에 있는 유권자들은 90%, 아니 95%는 넘어야 해!”

뉴시스 사진.


“거기는 투표소가 촘촘하게 있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아. 한 나라를 통틀어 영사관에 하나 있고 대사관에 하나 있고 이런 식이란 말이야.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가야 하고 자가용 자동차로 밤새워 운전해 가야 하거든. 그런데도 70%를 넘었으니 엄청나지.”

“게다가 투표 기간이 여기 대학들 시험 기간이랑 겹쳐져 있었거든. 그런데도 학생들이 그렇게 열을 내어 투표하러 갔으니 대단하지. 다시 말하지만 이런 조건에서도 70%씩이나 투표를 했으니 집 앞 투표소에만 가면 되는 한국 유권자들은 그야말로 손쉽게 할 수 있잖아.”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보도를 보니 등록한 유권자 22만2389명 가운데 15만8235명이 투표해 71.2% 투표율이 나왔더군요. 4월 11일 치러진 총선 당시 재외국민 투표율 45.7%보다 많이 높았습니다. 게다가 등록 유권자도 총선 당시 12만3571명보다 10만 가까이 늘었고요.

교포사회 50대 이상은 대부분 투표권 없는 시민권자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가만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지, 산 넘고 바다 건너 투표를 하러 간 셈이구나. 무언가 맺힌 바가 있어서 저렇게 기를 쓰고 투표를 한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궁금해졌습니다. 제 친구도 그렇게 투표를 했는지가 말씀입니다.

“나 투표 안 했어. 아니 못했지. 내 또래나 그 이상 되는 50대나 60대는 거의 투표권이 없어. 여기 와서 산지가 오래 돼서 대부분이 시민권자거든. 우리나라는 이중 국적을 인정하지 않잖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니까 투표권이 없는 거지.”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제 친구는 캐나다에 건너간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 나라 땅에서 살 수 있는 권리인 영주권(국적은 대한민국)만을 얻었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 그 나라 국민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시민권까지 보장받게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보도 내용을 검색해 봤더니 이렇게 나왔습니다. “등록 유권자 가운데 (대한민국) 주민등록이 없는 영주권자는 4만3201명(19.4%)이었다. 해외주재원·유학생·여행객 등 국외 부재자는 17만9188명으로 80.6%에 이른다.”

친구 말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에 나가 사는 사람 가운데 20대 30대 40대 젊은 층은 대부분 투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50대 60대 70대 젊지 않은 층은 대부분 투표를 하지 않거나 못했습니다. 적어도 캐나다 또는 토론토는 확실히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친구는 말을 이었습니다. “야, 여기도 한국 못지 않게 골때리거든. ‘꼴통’들 설쳐대는 꼴이 그래. 함부로 누가 되면 좋겠다는 말도 못해. 교민사회도 거기 하고 구성이 꼭 같아. 나이가 많을수록 더 ‘꼰대’스러운데, 그런 사람들이 주로 투표를 못한 셈이야.”

이런 교포사회 소식이 한국 젊은이들한테 보람이 될까?

이런 얘기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는 젊은이들한테 즐겁고 보람찬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다른 나라 나가 사는 젊은이들도 자기네 정치 지향에 따라 저리도 적극적으로 투표를 했다는 얘기가 대한민국 젊은이들한테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저는 이리 말씀을 드려놓습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 지역서도 19일 투표하자는 움직임이 갈수록 세어지고 있네요.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도 모든 구성원이 투표 독려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장도 편집국장도 나섰습니다. 그리고 저도 나서서 투표하자는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구주모 사장.

김주완 국장.


김훤줍니당~~ 닥치고 투표 샷이라고들 하시네요^^


지역 사회에 퍼지는 희망의 씨앗, 들


창원에 있는 어떤 회사는 사장이 나서서 종업원들한테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팀별로 투표 인증샷을 모아 오면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준다고 합니다. 노동자들 투표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 자본가가 많은 현실에서 무척 돋보이는 민주주의 사장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문자를 뿌리는 이도 있군요. 간판업 하는 ‘김의곤’씨입니다. “[무상제공]투표독려 현수막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아파트 베란다나 집 앞 거리용으로 게시하실 분은 적정 싸이즈와 매수 문자 주시면 제작해 드립니다. 수령 방법은 전화로 의논!^^[앵버리스트Kim]드림”. 필요하시거든 연락 한 번 해 보시지요. 전화번호는 이렇습니다. 010-3858-6007.

그리고 어쨌거나 19일에는 꼭 좀 투표를 합시다. 역대 대통령 선거일 가운데 이번이 가장 춥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래도 투표 한 번 하려면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재외국민들과 달리 우리는 바로 옆 5분만 걸으면 되는 데에 투표소가 있잖아요. 그리고, 말로는 아무리 떠들어 봐야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투표하고 오면 한 시간 무료 PC방.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헌법의풍경잃어버린헌법을위한변론
카테고리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김두식 (교양인,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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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없는 욕심쟁이, 연출가 이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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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씨는 극단 새벽에서 상임 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극단 새벽은 지금 부산 중구 대청동 부산근대역사관 뒤쪽에 있습니다. 극장은 없고 사무실만 있습니다. 4월 30일까지 6년 동안 이어진 광복동 시절에는 사무실과 극장이 모두 있었답니다.

광복동 일대는 80년대만 해도 부산 대표 상권이었습니다. 그 뒤로 공동화 현상을 보이다가 2000년대 들어 옛 도심 살리기가 진행됐고 2010년을 전후해 확 되살아났습니다.

상권의 부활이 모두에게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건물 주인들이 먼저 임대료를 올렸습니다. 극단 새벽 건물주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 인상폭이 극단 새벽의 지불능력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극단 새벽은 이렇게 해서 광복동 시절을 접었습니다. 이들은 이를 새로운 기회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역 다른 역량과 연대해 문화 공간을 아예 새롭게 하나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복동 시절을 마감하는 공연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에서 이성민 연출가.


연극과 음악을 겸하는 극단 새벽

광복동 고별 공연 작품은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였습니다. 30대 이상 세대의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는 어린 세대의 표상입지요. 지금 어린 세대는 새로운 조건에서 어렵게 살아갑니다. 태어나서 10대까지는 입시 학습 노동에 시달리고 20대에 들어서면 비정규직 장시간 노동에 시달립니다.

어린 세대를 위해 30대 이상 세대가 마련한 무대가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철영콘)였습니다. 홈스쿨링을 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10대 영희와, 입사 시험에서 꼬박꼬박 떨어지며 찌들려 사는 20대 철수를 내세워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30대 이상 관객들은 이를 보면서 어린 세대에게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책임을 느낍니다. 철영콘은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철영콘에서 단원들은 손수 악기를 연주하고 몸소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바탕에 음악 활동을 하던 둘이 더해져 인디(독립) 밴드 액트(ACT)가 꾸려졌습니다.

인디밴드액트 공연 모습.


이들은 대안문화공간을 마련하는 전령(傳令)이랍니다.


지금과는 다른 대안문화를 만들자는 제안

9월 10일 대청동 극단 새벽 사무실에서 이성민 연출가를 만났습니다. 그이는 창단부터 지금까지 극단 새벽과 함께해 왔다고 합니다.

7월 25일 부산 어디에서 열린 민들레의 꿈 응원 주점, 그 들머리.


"부산에서는 당장 대안문화공간인 '민들레의 꿈' 건립이 목표가 되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전국화하는 데 관심이 더 있어요. 이를 위해 인디 밴드 ACT의 전국 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창원에서도 11월에 할까 합니다.(결국 올해 하지는 못했고, 내년으로 미뤄졌습니다.) 

순회 공연을 통해 대안문화공간의 필요성과 대안문화운동의 취지를 널리 알리는 한편 해당 지역에서 이런 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나 마련하려는 모임 또는 움직임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요."


이성민 연출가와 극단 새벽이 벌이는 대안문화운동은 좀 많이 낯섭니다. 극단이 하는 문화운동이라면 연극이나 열심히 제대로 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데 말씀입니다.

제가 이성민 연출가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운동의 영역이 요즘 되게 다양해졌지만 문화운동은 오히려 예술운동으로 축소됐습니다. 부산은 노조에서도 문화부, 문화부장이 사라졌어요. 있어도 노조 집회 프로그램 짜는 정도밖에 아니었고…….

문화가 뭡니까? 살아가는 모든 것이 문화잖아요. 문화란 교육·언론·예술 등이 종합된 삶의 양태입니다. 문화운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답고 행복한 삶일까?'

일은 생존과 핵복을 위한 것인데 이러려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일하고 여유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사회적인 활동을 하거나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워낙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고, 자기 여유가 없는 삶이 일반적이지요.

맞벌이나 주말 부부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데, 집은 한 채 마련해야 되겠고, 어느 정도 자산도 축적돼 있어야 할 것 같고 하니까 그러지만,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는 어지간히 높은 임금 수준이 아니면 그러기 어렵지요.

사람들 삶과 문화를 바꾸는 문화운동을

문화운동은 삶의 방법을 변화시키는 운동입니다. 세상에 일반화돼 있는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운동입니다.

이런 대안 공동체와 자치 공간들이 전국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삽니다. 노동 개념도 다르게 접근합니다.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식으로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죽자고 일하는 것과 다르답니다."


그이는 대안문화공간이 할 일로 대안 교육·독립언론·인디 예술을 든다. 대안사회 연구 모임도 만들고 의료 품앗이 등도 함께합니다. 하지만 주력은 교육·언론·예술이랍니다.

"비정규직이 갈수록 일반화되는 악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잔업·특근을 더 하려 합니다. 그렇게 벌어 쓰는 가계 지출을 보면 교육비가 가장 큽니다. 아이 대학까지 보내려면 엄청납니다.

세상 사는 데 필요한 것들, 사람과 관계 맺고 자기 가치관을 세우고 이웃들과 관계 속에서 자기가 존재한다는 인식들이 교육 속에 안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좋은 대학 가서 엘리트 직업군에 속해야 한다'만 남았지요.


교육/언론/예술을 함께 바꿔야

언론은, 소식이 제대로 전달되고 올바르게 소통돼야 합니다. 그런데한국 언론은 90% 이상이 자본과 권력의 나팔수입니다. 갖은 예능, 오락, 드라마는 현실을 망각하도록 만듭니다. 실제 삶과는 다른 내용을 보여주고 일상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대리 만족을 주는 데 더해 자의식을 잊게 만듭니다.

텔레비전 삼성 광고는 엉터리라고 말하는 이성민 연출가.


텔레비전 광고는 거짓말 투성이입니다. 삼성이 인간과 생명과 자연을 말하는데, 실제 경영에서는 매우 반환경적이고, 최대한 덜 인간적이고, 몰생태적이잖아요?


예술은 엔터테인먼트사에 장악돼 대중의 욕망을 포기하는 상품으로 변질됐습니다. 문화센터는 대기업이 제대로 활용하지요. 백화점 문화센터를 자본이 추구하는 문화가 뭔지 보입니다.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정치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을 대표해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 정치인데, 일반의 의식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 할 때는 포기하거나 강제해야 합니다. 강제하면 독재가 되고 포기하면 무기력해집니다."

대중 참여로 곳곳에 대안문화공간 마련해야

극단 새벽은 <대안문화연대 '민들레의 꿈'>이라는 법인도 8월 11일 만들었습니다. 첫 사업은 대안문화센터 '민들레의 꿈' 건립입니다. 여기에는 16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극단 새벽은 가난합니다. 어떻게 거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기금 조성은 대중적으로 하려 합니다. '대중적으로 기금을 모은다'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실제 모금 액수보다 더 중요합니다. 사실 16억원 모으기는 쉽습니다. 1억 원씩 16명만 모이면 해결됩니다. 거기에 더해 은행 융자도 좀 받고 하면 되지요.

대신 다달이 1만원 내는 (후원)회원 1000명 모집은 기본 목표입니다. '천원의 기적'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변주해 대중적 참여를 촉진하겠습니다. 한 번 천원, 일주일에 천원, 한 달에 천원 하는 식으로요.


극단 새벽과 인디 밴드 액트 공연 수익금은 전액 기금으로 들어갑니다. 10~11월 전국 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주제를 달리 정해 이를테면 강정 마을이나 쌍용자동차 문제를 갖고 공연을 합니다.

경남에서 하면 밀양 송전철탑 문제가 되겠지요. '민들레의 꿈'이 갖는 정체성이 그들이니까……. 어쨌든 모델케이스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보고 '아 저게 되네'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요. 하하."


전국 순회 공연은 힘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하는 까닭이 단순히 모금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생각을 알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집단과 연대를 하는 바탕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지역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뤄지도록


"전국화하려고 생각은 합니다. 조직 헤게모니는 아니고요. 지금 헤게모니는 자본주의 시장주의 문화에 있습니다. 노동과 소비와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주의 문화가 이른바 소비를 부추기니까, 소비 안 하면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특정 상품 특정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깁니다. 광고의 기만에 넘어가는 것이지요.

소비를 위해 죽어라 일하고 또 이를 정상으로 생각하고,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는 일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게 한다는 취지이지요. 이미 하고 있는 데도 있습니다. 지역마다 대중이 스스로 뭘 만들어나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는 '어떤 사람의 흐름'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바로 이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대안문화를 체득하고 사는 극단 새벽 단원들

얘기를 듣다보니 극단 새벽 단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궁금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세상의 삶을 바꾸자는 사람이 정작 자기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극단 새벽 단원들 가운데 일부.


"만들 때 창단 10년까지는 내가 책임을 지겠는데 그 뒤로는 극단이 공동 자산이 돼서 운영되고 같이 살아가는 작업 공간이 돼야 한다고 약속했어요. 약속대로 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삽니다. 다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에 있기 때문에도 그래요.

비정규직이 일반화돼 있는 시대를 사는 비정규직들이 임금을 올리는 투쟁은 투쟁대로 하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같게 살아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살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서울에서는 7~8명이 모여 같이 자취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1명보다 7명이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지요. 자치공동체라 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닥친 어려운 현실에서 나온 것인데요, 의식적으로 그런 삶의 방식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거 안 사 써도 내가 사는 데 크게 상관 없다'는 자각이 있으면 됩니다.


극단 새벽에 연립주책이 세 채 있어요. 하나는 결혼한 단원이 살고 다른 한 채는 나머지 단원들이 공동 생활을 합니다. 한 채는 다른 사람이 살 때부터 세 들어 있는데 계약 끝나면 공동 생활 공간으로 편입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그이가 살아온 이력도 말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이는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뜸을 조금 들이더니 말을 이어 줬습니다.

고교 졸업하고 바로 예일대학 유학


"1955년 태어났는데 7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뇌염을 크게 앓아 3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지요. 병동에 40명 남짓 있었는데 그 가운데 둘만 살아났다더군요.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갔어요. 특수 케이스였어요. 예일대학에 스카웃 형식으로 오픈 코스라고 연극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밀도 있는 연수를 마치고 3학년 편입을 하는데 죄 지은 것 같더라고요. 때려치웠습니다.

박정희 독재가 계속되고 학생들이 잡혀가는데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아니다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조금 우스개인데 영어를 더 깊이 공부하는 것도 싫었고요.

진보적인 학자들이 연극학교 코스를 개설해 아시아 지역 젊은이들을 참여시켰어요. 모두 열넷이었는데 일본 인도 베트남 청년도 있었습니다. 노암 촘스키도 강의 들어오고 했습니다. 문화인류학이나 이런 부분 강의를 하셨지요.

전태일이라는 사람의 죽음과 맞물린,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틈틈이 중학교 과정 야학을 나갔습니다. 열아홉 살도 안 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와서 일하는 여공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부유한 가정도 아니었고 밑바닥 삶에 대한 동병상련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노동자와 민주주의로 향하게 만들었어요.

귀국하자마자 군대 특별 징집되고

79년 5월 귀국했는데 6월에 영장을 받았어요. '6·25 특별 징집 대상'이라고……. 정권이 문제 될 인물들을 골라 집어넣은 거지. 6월 25일 입대했어요. 82년 4월 1일 제대할 때까지, 부마항쟁, 박정희 피살, 전두환 집권, 80년 광주가 이어졌어요.

대구 50사단에 있을 때 삼청교육대가 시작됐습니다. 정상으로 안 보였습니다. 50사단에서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는데, '사랑과 평화'의 구성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것들이 저한테 쌓여 왔습니다.


이런 연극을 하고 세상과 싸우고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그러다 보니 풍물패 만들 때 관계했던 김주익·박창수 같은 가까운 사람(후배)이 세상을 떠났습니다.(모두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박창수는 감옥에서 의문사했으며 김주익은 투쟁 도중 자살습니다) 저와 한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연극 위해 취업했다가 해고/수배


제대하고 서울 있을 때 구로공단 전기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어요. 무슨 현장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고 연극을 하려니까 먹고 살아야 해서 들어갔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비인간적이어서 노조를 만들었는데, 뒷조사를 하더니 위장 취업했다면서 해고를 했어요.

자꾸 싸우고 현장 동료 만나고 하니까 수배 떨어져서 부산에 잠깐 왔어요. 84년 2월이었지요. 집에 와 있는데 갑갑해 죽겠는 거라. 상호가 '가스등'이던 카페에서 '목요 만남의 날'을 기획해 진행했어요. 마당극 동아리 학생들을 주로 만났는데, '전통예술연구회' 이런 것을 만들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다 후배들이 극단을 하나 만들자 했고 한두 달 사이에 극단 새벽이 창단됐어요. 창단하도록 도와주고 서울 갈 거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것 같아요."

그이는 무척 욕심이 없는 사람 같이 보였습니다. 자기 앞으로는 무엇이든 하나도 쌓으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떤 명예에 대해서조차 그런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 욕심 많음이 무엇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 싶은데요, 어쨌든 그 욕심 많음은 그 욕심 없음으로부터 뒷받침이 되고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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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말 자랑스러운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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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연하장을 보내 왔군요. 아마도 대통령 자격으로 보내는 마지막 연하장이겠죠.

참, 아직 설이 남아 있으니 명절 선물 보낼 때 카드가 하나 남았군요.

제 주위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더군요. 하지만, 대통령이 마지막 연하장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기록해두는 것도 하나의 역사일 겁니다.

성찰과 반성보다는 주로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이 많군요. 지도자라면 다들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싶겠죠. 하지만, 이런 자랑을 국민들이 인정해주느냐 마느냐는 각자의 몫일 겁니다.

 
자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을 보내며 어떤 신년인사를 보냈는지 한 번 봅시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정말 자랑스러운 한 해"였답니다.

"이 자랑스러운 일들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자축하고 싶고, 또 한편 진심으로 감사"하답니다.

동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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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재인에게 실망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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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실망을 하지 않는 방법은 뜻밖에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두고 실망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이명박 지금 대통령한테 전혀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2008년 5월 이른바 ‘촛불 사태’가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이에게 조금은 기대를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람이고 귀가 있고 머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 저리도 아우성치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서 듣고 생각하겠거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이는 다른 사람들 말과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예 생각이 달랐고 알아들을 귀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때는 이명박 선수와 이명박 정부를 두고 이런저런 비판을 조금 했지만, 그래 봐야 입만 아프다 싶어서 점점 하지 않게 됐습니다.

1. 이명박 대통령한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

이명박 선수. 뉴시스 사진.


그이 반응은 대체로 엉뚱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촛불 말고도 보기를 하나 들자면,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된다고 대꾸하는 식이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렇게 눈높이를 낮춰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집단으로서 청년 전체의 실업 문제를 그런 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저는 이런 견해를 두고 제 생각을 밝히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MB 일당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http://2kim.idomin.com/1261)”가 제목입니다.

그 글을 쓴 때가 2009년 11월 29일인데요, 그 뒤로는 정말 이명박 선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어져서 비판할 생각이 아예 들지가 않았습니다.(칭찬은 더욱 그랬고요.) 비판이든 비난이든 조금이라도 기대가 있어야 할 수 하는데 그것이 하나도 없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2009년 12월부터 여태껏 쓴 글 가운데 이명박 선수를 대상으로 삼은 바가 있는지 한 번 검색해 봤더니 딱 하나뿐이더군요. “가시박과 이명박 대통령 닮은 점 네 가지(http://2kim.idomin.com/1728)”가 그것입니다. 그 뒤로는 ‘이명박’을 진짜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2. 재벌·부자 증세 없이 복지를 하겠다는 박근혜 후보

저는 이번 대선에 새누리당 당적으로 나선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선수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 이익은 생각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긴다든지 하는 보기는 매우 많습니다.

박근혜 선수. 뉴시스 사진.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그대로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비롯한 과거 역사 관련 인식도 그렇고 정수장학회 관련도 그렇고 영남대학교 재단 관련도 그렇습니다. MBC·KBS 등등 숱한 언론 장악 관련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저런 복지 관련 공약에 대해서도 저는 같은 생각을 합니다. 복지의 기본 정신인 보편을 무시한 선별적 복지인 점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신문·방송·통신에서는 이를 두고 무어라 하든, 제가 보기에는 그런 공약을 뒷받침하는 비용을 어디에서 대느냐가 아주 믿지 못하겠습니다.

복지 관련 재원(5년 동안 135조원)을 ‘지하경제를 활성화’해서 대겠다는 말은 실수라 치더라도, 이미 있는 전체 예산 가운데 낭비성이거나 불요불급한 부분을 아껴서 대고(60%=81조=한 해 16조2000억원), 나머지는 세원(稅源) 확충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한 해에 16조원을 웃도는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말도 쉽게 믿기지 않지만(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낭비성 또는 불요불급한 예산이 지금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세원 확충 부분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박근혜 선수는 부자들, 재벌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1대99인 세상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1%에 해당하는 부자들 재벌들에게서 세금을 걷지 않으면 어디에서 그만큼 더 걷겠다는 얘기인지요?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99%에 해당하는 영세자영업자나 이른바 ‘유리 지갑’이라는 봉급생활자들을 쥐어짜겠다는 것인지요?

그래서 저는 박근혜 선수에 대해 전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그이가 내세운 이런저런 공약을 그이가 지키리라는 생각은 아예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절망(絶望)이 되겠습니다. 절망은 희망이 없어짐입니다. 이러니 자연히 기대가 자라날 수 없고 따라서 그이가 잘못해도 실망할 건덕지가 있지 않은 셈입니다.

3. 그러면 문재인 후보는 어떨까?

문재인 선수. 뉴시스 사진.


하지만 민주통합당 당적인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문재인 선수를 두고 여러 차례 비판하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올해 10월 2일 썼던 “문재인 보면 천성산 지율스님이 생각난다(http://2kim.idomin.com/2267)”가 최근 것이군요.

하지만 그래도 문재인 선수는 말귀가 열려 있고 다른 사람 생각도 할 줄 안다는 점에서 박근혜 선수와 다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 있으면서 길거리에 나앉아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관통 저지’를 위해 목숨 걸고 단식하던 지율 스님을 찾아가 만난 데서도 그런 사정이 조금은 짐작된다고 저는 봅니다.(물론 지율 스님은 저랑 생각이 조금 또는 많이 또는 완전히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문재인 선수에 대해서는 적으나마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는 문재인 선수에 대해 실망할 준비도 돼 있습니다. 어쩌면 문재인 선수가 자기 공약을 지키고 실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싶으면서도 다르게는 지키고 실현하지 못할 개연성이 더 크겠다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는 문재인 선수가 재벌·부자 증세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 대목에 나름 기대를 합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그이 스스로가 (노무현 정부를 허랑 구덩이에 빠지도록 만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그리고 성장지상주의를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과 조건 또한 그런 공약 실현에 엄청난 방해가 되리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한 사람은 절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실망입니다. 절망이든 실망이든 그것이 제게 주어졌을 때 받아들이면 그만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 또한 사람인지라 절망인 세상이 더 나은지 아니면 실망인 세상이 더 나은지를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는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쨌든 투표는 꼭 합시다. 지금 국면에서는 말로써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 말 없이 투표소에 가서 꾸욱 찍어 주는 것이 으뜸 방책입니다. 저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투표를 할 요량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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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본 순천만, 겨울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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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경남도민일보와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가 주관하고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이 후원하는 2012년 생태·역사기행 여덟 번째 걸음은 경남을 벗어나 전남의 순천만으로 향했습니다. 순천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갈대밭이 있습니다.

순천만 갈대는 멀리 높은 데서 보면 둥글둥글 몽글몽글하답니다. 갯가를 따라 갈대들이 그런 동글몽글한 모양으로 줄이어 있습니다. 순천만은 또 탐방객을 위해 잘 가꿔져 있는 갈대밭이기도 합니다. 갖은 시설이 들어서 있고 걸리는 시간대에 따라 탐방할 수 있는 길도 여럿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침 9시 조금 넘어 경남도민일보 앞을 출발한 일행은 버스를 타고 달린 끝에 오전 11시 30분 정도에 순천만에 가 닿았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행은 먼저 가까운 밥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습니다.


순천만에 오면 순천만에서 나는 것들로 만든 짱뚱어탕이나 서대회덮밥을 먹어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터이기에 그 둘을 절반씩 주문했답니다. 짱뚱어탕은 다른 생선국과 달리 생선가시 같은 건더기가 없었습니다. 짱뚱어를 잘게 간 다음 들깨를 넣어 만든다고 했습니다.

건더기가 없는 걸쭉한 국물이라 낯설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들 고소함을 느끼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서대는 여수나 순천 지역에서 많이 나는데 가자미 종류라고 합니다. 입 안을 칼칼하게 만드는 서대회덮밥이었다고요.

다음은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입장료(어른 개인은 2000원)를 내고 들어가면 자연생태관 천문대 등이 늘어서 있고 지역 농·특산물을 전시해 놓고 파는 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데는 나올 때 둘러봐도 되고 마땅찮으면 들르지 않아도 된답니다.

순천만에 들렀으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 맞춰 갈대밭 누리기를 가장 먼저 해야 맞겠지요. 안내판에는 1시간 코스, 2시간 코스, 3시간 코스 따위가 적혀 있는데 이날 기행은 오후 4시 안팎 돌아가는 시각까지 3시간 넘게 여유가 있으니 마음 편하게 한껏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순천만은 사실 언제 찾아도 좋다고 합니다. 봄에는 연둣빛으로 솟아나는 새로움이 이미 져버려 서걱대는 갈색 사이로 보여서 좋고요, 여름에는 그 온통 푸른 갈대의 출렁임이 좋고요, 가을에는 다시 조금씩 푸른빛을 벗어가는 한편으로 꽃을 날리는 품이 그럴 듯하고요, 겨울에는 차가운 날씨 가운데 더이상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벗어버린 갈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는 풍경이 좋다는 얘기랍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가운데 여름철 풍경이 좀 빠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덜 좋다'고만 하지 '나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조금은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일행은 흩어져 깜냥껏 순천만을 즐깁니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이 꼭 들르는 데는 순천만자연생태공원 들머리에서 나무 데크를 따라 건너편으로 야트막한 산을 타고 올라가야 만나는 용산 전망대입니다. 여기 가면 순천만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바람도 시원합니다. 가는 길에 조금은 땀을 흘리지만 여기 바람이 날려줍니다.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조용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이런저런 소리를 냅니다. 저기 내려다 보이는 풍경 속에 들어 있을 갖은 생물들 또한 나름 소리를 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동을 하리라 싶습니다.

데크를 따라 갈대밭 사이를 걸을 때는 그냥 갈대만 보고 사진만 찍을 일은 아니랍니다. 바닥을 눈여겨보면 온통 뻘칠을 한 짱뚱어들이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콩게 뻘떡게 칠게 같이 갖가지 크기와 모양을 한 게들과 그이들 거품 내뿜으며 살아가는 모습과 게 구멍도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귀까지 기울이면 바닷물이 들거나 나면서 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답니다. 이 때는 밀물이었는데, 물이 썰며 빠질 때만 소리가 나는 줄 알았으나 물이 밀며 들 때 내는 소리도 그럴 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갈대열차.


순천만에는 이밖에 열차도 있고 배도 있습니다. 어른 기준으로 4000원을 내면 탈 수 있는 생태체험선은 35분 남짓 순천만 일대를 돌아보고요, 마찬가지 어른 기준으로 1000원을 내면 탈 수 있는 갈대열차는 가까운 데 있는 순천문학관까지 30분 걸려 오간답니다. 그러니 이를 누리고 싶으면 이런 정도 돈을 여벌로 더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순천문학관까지 걸어가는 길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열차가 다니는 길로는 걸을 수 없도록 돼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 걷는 길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순천문학관도 좋았습니다. 여기에서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과 '오세암'의 어린이문학가 정채봉을 만나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었었습니다.

순천문학관 정채봉관.


순천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연을 만들었던 그이들이 여기 있었습니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안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수 없도록 해 놓았지만 바깥에서는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였습니다.

사람들 바글거리는 공원에서는 안전 문제 때문에 안 되겠지만 바로 바깥 주차장 끄트머리에는 돈을 내고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림처럼 자전거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청춘 남녀 한 쌍이 그렇게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습니다.

생태·역사기행 일행이 깜냥껏 즐기거나 말거나 했다는 점은 나중에 판명이 났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길어 지겨웠다는 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곳곳을 둘러본 사람도 있었던 반면,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온 김에 함께 걸음한 일행이랑 정자에 올라 맥주 캔을 따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나무 아래 그늘 긴의자나 정자에서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노라는 이도 당연히 있었고요. 어쨌든 이렇게 한나절 좋게 보낸 다음 오후 4시 즈음이 돼서, 다들 조금씩 무늬가 다른 나른함을 안고서 창원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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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화개가 전통차 1번지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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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도 프로그램 계속

하동군의 후원으로 경남도민일보가 주관하는 하동 전통차 아카데미 일곱 번째 마지막 강의가 10월 16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전통차 1번지 하동’을 주제로 이종국 하동녹차연구소 소장 겸 하동군 경제통상과 과장이 강의했습니다. 2013년 하동 전통차 관련 프로그램은 새롭게 마련할 예정이랍니다.

이 소장은 하동의 역사와 화개·악양면의 지리 등을 바탕으로 하동이 전통차 1번지인 까닭을 풀어냈습니다. 바다 건너 제주나 같은 경남의 사천이 새롭게 차산업에 나서고, 전남 보성이 예쁘게 잘 가꿔진 차밭을 내세우지만 차는 ‘역시 하동’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 다 잘 돼야 한다면서 상생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줬습니다.
 


문헌 기록을 통해 보는 전통차 1번지

<삼국사기>를 따르면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갖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차와 관련된 최초 기록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차를 마셨다고 하면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적힌 지리산이 어째서 하동이냐고요? 이 소장은 하동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주장은 사단법인 한국차인회(茶人會)가 먼저 했답니다. 진주 촉석루에서 1981년 5월 25일 그 날을 ‘차의 날’로 삼는 선포식을 하고, 하동 화개면 쌍계사 일주문 앞에 ‘신라견당사 김대렴공 차시배추원비’를 세웠습니다. 근거는 지리산 일대서 화개 기후가 차 재배에 가장 알맞다는 사실입니다.
 

강의하는 이종국 소장.


전남 구례가 차 시배지라고 말하는 비가 있습니다. 구례 화엄사가 하동 쌍계사보다 60년 앞서 지어졌음이 근거입니다. 당시 화개 골짜기는 호랑이가 나왔는데 어떻게 사람이 살았겠느냐 합니다. 화개는 가야 문화권이었습니다. 화개 골짜기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일곱 아들이 수도하던 데는 원래 이름이 운상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일곱 아들이 득도한 뒤 칠불암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땅이름에도 남아 있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화개 침전마을은 김수로왕 옷고름을 왕비가 기웠다 해서 붙었다고 합니다. 대비마을은 왕비(허황옥)가 잠잔 곳이라 하고 왕성마을은 왕(김수로)이 머물렀다고 붙은 이름이라 합니다.
 

화개 차밭.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는 문집 <동국이상국집>에서 “화계에서 차 따던 일 말하자면(因論花溪菜茶時)/ 관의 다그침 장정이나 노인 어린아이 구분 없었네(官督家丁無老稚)/ 험한 산중에서 간신히 손으로 거둬(장嶺千里현手收)/ 서울까지 만리길을 어깨로 져 나르네(玉京萬里痒肩致)/ 이는 바로 억조창생의 피고름과 살점이니(此是蒼生暠與肉)” 했습니다.

이어 “일천 가지 망가뜨려 한 모금 차 마련하니(破却千枝供一철)/ 이 이치 생각함에 참으로 어이없네(細思此理眞害耳)/ 그대 다른 날 간원에 가면(知君異日到諫垣)/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하게(記我詩中微有旨)/ 산과 들판 불살라 차세 금하면(焚山燎野禁稅茶)/ 남녘 백성 편히 쉼이 여기서 시작되리(唱作南民息肩始)”라 덧붙였습니다.

이규보는 당대에 화개(=화계)가 대표적인 차 산지로 알려져 있었고 그로 말미암은 백성들의 고생이 심했기에 산과 들판을 불사르자고 이 시를 받을 사람(진주부 부기를 보던 관리인 손득지)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차는 벼슬아치에게는 상납의 대상이었고 토호들에게는 축재의 수단이었습니다. 화개에는 차를 공납하는 다소(茶所)가 있었습니다.

간빙기에도 화개 차나무는 살아남아


조선 시대 중반 1600년대에 지구 전체에 간빙기가 왔습니다. 굉장히 춥다 보니까 자생하던 다른 지역에서는 차들이 말라죽어버렸습니다.

화개 골짜기를 일러 호중별유천지(壺中別有天地)라 했습니다. 호리병 한가운데라는 뜻입니다. 찬 기운은 지리산이 막고 섬진강에서 따신 바람이 들어와 따뜻한 기운이 머뭅니다. 그래서 하동 일대에서는 차나무가 살아남았습니다.


지금도 이런 영향은 있습니다. 화개에서는 4월 5일부터 보통 차가 나옵니다. 같은 하동이지만 진교는 열흘 이상 늦고요, 전남 보성은 13일 이상 늦습니다. 차 재배에 가장 알맞은 땅인 것입니다. 지리산에서 유일하게 정남으로 만들어진 곳이며, 악양도 있기는 하지만 남쪽이 터져 있습니다.
 

악양에 있는 차밭.


우리 차와 다도를 되살려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 18편 가운데 8편을 화개 차에 바쳤습니다. 정조의 부마 홍현주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40~50리에 걸쳐 자라는데 우리나라에 이보다 넓은 차밭은 없다. <다경>에 이르기를 차는 바위 틈에서 자란 것이 으뜸인데 화개동 차밭은 모두 골짜기와 바위 틈이다”.

화개는 지질도 차나무 생장에 좋아


하동은 안개와 습기가 많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차나무에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풍화토여서 자갈이 많아 물이 잘 빠집니다. 뿌리가 2~3m까지 내려가기에 저절로 자라도 영양분을 제대로 빨아들입니다. 겨울을 이기는 힘도 세고 새순도 힘차게 뻗어냅니다.
 

화개천 둘레에 있는 차밭.


가장 오래 됐다고 공인된 차나무도 하동 화개에 있습니다. 화개면 운수리 산 74번에 있는 차나무로 1000살이 넘었습니다. 2006년 5월 열린 제11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에서 이 나무 찻잎 100g짜리 한 통 분량만 따 만든 천년차가 경매에서 13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하동에서는 주로 씨앗으로 번식시킵니다. 사천이나 제주 같은 다른 지역은 주로 꺾꽂이로 번식시킵니다. 영양 번식을 하면 씨앗으로 할 때와는 달리 성질이 똑같습니다. 다양성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또 꺾꽂이를 하면 나무뿌리가 깊이 못 들어갑니다. 게다가 비료가 주어지면 뿌리가 비료를 따라 가는 바람에 깊이 땅 속으로 박히지 않습니다.

하동 차나무는 300평에 260kg을 생산합니다. 보성은 1.2t, 사천이나 제주는 2t입니다. 많이 생산하려면 많이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공 비료입니다.

게다가 하동은 씨앗으로 번식시키기 때문에 나무마다 성질이 다릅니다. 그래서 손으로 낱낱이 딸 수밖에 없고 꺾꽂이로 번식시킨 사천이나 제주는 성질이 같아서 기계로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 차산업도 잘 돼야
 

악양 들판. 부부송이 보입니다.


하동은 ‘덖음’ 기술을 활용해 고급 차 생산을 지향합니다. 우전 세작 중작 대작 같은 고급 차가 전체 생산액의 9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G20정상회의, 핵안보 정상회의 모두 하동차를 선택했습니다. 국제행사가 닥치면 주최 쪽에서 차 시음을 하동에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전체 전통차 산업이라는 측면에서는 하동만이 으뜸은 아닙니다. 차‘산업’은 보성이나 제주를 못 따라갑니다. 하동은 차‘문화’만 앞서 있습니다. 전남 보성도 잘 되고 사천이나 제주처럼 새로 나선 지역의 차산업도 저마다 특성을 살려 다 잘 돼야 합니다. 하동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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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협동조합으로 갱상도를 풍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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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도 인문학 강의가 있는지요?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인문학 강의인지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내린 답은 이렇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짜임새가 떨어지고 상업주의로 흐르거나 경남이라는 '지역'에 관심과 초점을 두지는 않은 듯하네요.

'지금' '여기'서 이뤄지는 삶이나 현실과 무관한 강의는 많고요, 반면 지역의 사람·자연·문화·역사를 중심에 두는 강의는 드물지 않은가요? 서울이나 광주·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도 들을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랍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서울' '주류' 인문학의 수입품이거나 판박이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뉴시스 사진.


지역 사람들이 살며 부대끼는 현장이 바로 지역 인문학의 자리라고 저는 보는데요, 거기서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꽃과 잎을 피우며 열매를 만들어 내는 그런 인문학 강의는 드뭅니다. 어쩌면 이런 문제의식조차 변변하게 없는 실정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다 싶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지역 사람의 지역 사람으로서 자존과 긍지는 사라지고요, 스스로를 정치·경제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서울'보다 처지는 존재라는 열등감을 떨치지 못한답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출발하는 인문학과 문화예술은 지역의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게다가 지역 사람의 바람과 즐거움과 고난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지역 사람을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대접하는 인문학을 지역 밀착형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 지역에 '지역 밀착형 인문학이 바로 이것'이라 할만한 정답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드리는 이런 문제제기가 공허하게만 들릴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 인문학 강의 운영 주체도 아직은 뚜렷하게 형성돼 있지 않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래서 생각해 본 방안이 인문학 강의와 협동조합의 결합입니다. 강의하는 주체도 이 안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도 여기서 세워내는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이 이를 가능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합니다. 권리도 똑같고 의무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조합원은 누구나 주인으로서 강의나 운영 같은 활동에 두루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문학 강의를 통해 배우고 누리고 즐기고 가르치려고 하는 바와도 닮았습니다. 상황·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줏대 있게 제대로 사는 데 이바지한다는 점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깜냥껏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점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인문학 강의와 운영에 필요한 사람과 돈을 만드는 과정을 인문학 협동조합을 조직하는 과정과 일치시키는 것이랍니다. 이를테면, 협동조합 준비 모임에 운영위원으로 활동할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협동조합의 얼개를 짜고 계획을 먼저 세웁니다. 더불어 협동조합이 감당하고자 하는 강의 내용과 일정도 함께 짭니다.
 
보기를 들자면, 한 주 한 차례씩 2013년에 40강좌 정도를 준비합니다. 이런 강의의 주제·소재와 내용에 흐르는 밑바탕은 마땅히 '지역 밀착'이 됩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낄 만한 주제·소재·내용도 다뤄 대중성도 함께 확보해야 하겠지요.(이렇게 인문학을 우리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해보자고 엄두를 낼 수 있는 바탕은 경남도민일보라고 저는 봅니다. 강의 공간과 실무 인력 정도는 모자라나마 경남도민일보에서 댈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한 사진이 없어서 그냥 가져 왔습니다. 뉴시스 사진.


목표는 2012년 12월 31일까지 조합원 2000명 확보입니다. 의무는 가입비 1만 원과 연회비 1만 원 합계 2만 원 출연입니다.(가입비는 만약 탈퇴하려 한다면 그 때 돌려받게 됩니다.) 권리는 협동조합의 강좌를 모두 공짜로 추가 비용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이 첫째입니다.

이에 더해 경남도민일보의 생태·역사기행 같은 행사 참가비 할인도 있습니다. 당연히 10%든 20%든 깎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본인이 강사가 돼서 강의를 하고 싶으면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심의를 거친 다음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조합원 2000명과 조합비 4000만 원(가입비 2000만 원+연회비 2000만 원)이 모이면 지역 밀착형 인문학 강의를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토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냥 실현할 수 없는 꿈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시거든 연락 주시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맞춰 함께 거사를 도모해 보게 말씀입니다. 제 손전화는 010-2926-3543이고요, 전자우편 주소는
pole08@hanmail.net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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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으로 올해 9월 4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고맙게도 놀랍게도 열다섯 분이 같이하겠다고 바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 한 차례 모임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전체로 볼 때 저희 준비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조금 미루게 됐습니다. 당장 쳐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실무를 진행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김해시에서 진행한 인문학 강의에 나선 인제대 이영식 교수.


계획도 조금 바꿨습니다. 올해 안으로 조합원 2000명을 확보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서둘러 가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2013년 2월 안으로 일단 300명 확보로 고쳤습니다. 물론, 2000명 조합원 확보는 미룰 수 없는 과제여서, 2013년이 가기 전에 반드시 달성하려고는 합니다.

아울러 인문학 강의는 내년 3월부터 진행해 12월까지는 적어도 40강좌는 채워야 하지 않겠나 여깁니다. 연락을 주시면 인문학 협동조합 가입 원서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이번에 만들려는 인문학 협동조합이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했는데, 이름에 대한 의견도 왕성하게 내어 주시면 아주아주 고맙고 좋겠습니다.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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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가 아닌 나눔으로 지역 공동체 회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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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미정(42) 씨는 본인을 일러 타고난 나눔형이라 했습니다. 무엇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받아내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며 그 속에서 나누는 그런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20대였던 1990년대는그이에게도 요구와 투쟁을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부산에서 보낸 대학 시절이 그랬던 모양이지요. 그러다 20대 중반에 창원으로 넘어오게 됐고, 거기서 설 씨는 새로운 운동 형태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줄곧 한 우물을 파게 됐답니다.

독립 영화 공동 제작자로도 활동
어떻게 하다 보니 영화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설미정(42)씨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는 독립영화 <에프 투 원(F-2-1)>입니다. <에프 투 원>의 공동 제작자로는 설씨 말고도 이철승 경남이주민복지센터 소장과 문광조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사장이 더 있답니다.

10월 13일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꽃들에게 희망을’ 사무실에서 만나 요즘 일상이 어떤지 물었더니 설씨는 <에프 투 원> 제작하느라 바쁘다고 했던 것입니다. ‘F-2-1’은 결혼 이주 여성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이전에 주어지는 비자를 뜻한답니다.


“란 응완 씨라고, 베트남 여배우가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배우를 현지 오디션을 통해 주연 여배우로 선발했습니다. 싱가포르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한 2010년 작품 <떠도는 삶>에도 출연을 했는데요. 영화는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어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초청 작품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에서 오디션을 진행할 때 이 배우가 전혀 꾸미지 않은 채 오토바이 타고 헬멧 쓰고 왔다고 합니다. 실제 생활하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 셈이지요. 실제 영화에서도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 농촌 노총각이 돈을 내고,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매매혼 개념인데요, 단체로 베트남에 나가서 결혼을 위해 그 나라 여성들을 만나는 장면이 있고 여기서 남편 될 사람을 뒷자리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그 쪽 시내를 한 바퀴 돈다든지 하지요. 또 결혼해 한국서 같이 살게 된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지는데 그것도 오토바이랑 관련돼 있습니다.

내년 5월에 시사회를 할 것 같은데, 일단 계획은 1월 중순까지 촬영을 마치고 3월 안에 마무리합니다. 독립 영화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저예산 상업영화로 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서는 몰라도 베트남에서는 상업 영화관 상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여배우가 인지도가 있거든요.

아직 섭외가 끝나지 않아 죄다 말할 수는 없지만 명계남 선생님도 출연합니다. 개런티 없이 차비만 챙겨드리는 정도로요. 의뭉스러운 영감님으로 나와요. 남자 주인공인 경찰한테 사건을 풀만한 실마리를 조금씩 보여주는……. 홍지민 씨도 나오고 <웰 컴 투 동막골>에 촌장님으로 나온 분도 계세요. 정상적인 개런티는 못 드리고요, 나중에 흥행이 이뤄지는 데에 따라서 나눠갖는 이른바 ‘러닝 개런티’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김성태 촬영 감독이 함께합니다.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김 감독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영화제에서는 빛을 내겠지만 상업영화로서는 매력이 없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결혼 이주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영화

영화 <에프 투 원>의 주제는 ‘결혼 이주 여성의 자아 또는 정체성 찾기’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여기로 시집 와 살면서 겪는 고달픔과 서걱거림,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잘 사는 나라에서 왔다면 지금 이런 대접을 받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문(自問)하면서도 여기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부모를 책임지려고 하는 모습이나 의문에 싸인 남편의 사인을 찾아내려 하는 장면이 그렇다고 합니다.

“제작자로서 제 역할이요? 경남을 기반으로 한 독립영화 <조용한 감독>을 만든 김재한 감독이 연출·감독을 맡고 있는데요, 돈이랑 물품 장만이 제 임무지요. 전체적으로 2억 원 정도 예상하는데 지방의원이랑 시민단체들과 함께 노력해 경남은행에서 1억원 지원을 받는 등 1억2500만원 가량 마련했습니다. 현물로도 지원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동서식품에서 커피, 서울우유에서 치즈나 요구르트를 비롯한 간식거리, 창원 현대로템에서는 방한복 등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꽃들에게 희망을’

설씨는 영화 제작이 본업은 아니랍니다. 본업은 ‘꽃들에게 희망을’이지요. 설씨가 ‘희망지기’를 맡고 있는 ‘꽃들……’은 △독거노인 쌀 지원 △저소득 가정 밑반찬 지원 △저소득 가정 자녀 학습 지도 지원 △팔룡시장 어르신 무료 급식 지원 △동네 경로잔치 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1999년 12월 만들어져 올해로 13년째입니다. 여태 활동을 어떻게 벌여 왔는지 아는 이들은 설미정씨가 없으면 ‘꽃들’도 ‘사실상’ 있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본령인 ‘꽃들’은 요즘 좀 어떠냐고 제가 물었습지요.


“추석 앞두고 태풍 왔을 때 쌀 지원을 받으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분위기가 우울했던 것 말고는 별로 다른 게 없어요. 저소득 가정 밑반찬은 화요일 배달하는데 차량 봉사는 한 주에 3명씩 한 달에 12명이 돌아가면서 나서서 해 주시고요. 쌀은 한 달에 1200kg 정도 나갑니다. ‘사랑의 쌀독’인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여기 오셔서 가져가십니다.

동우기계에서 한 달에 150만원씩 쌀값을 지원해 주시고 사파초교에서 한 달에 200~300kg 보태주는데 그래도 모자라 받은 후원금으로 쌀을 더 삽니다. 쌀을 가져가시는 어르신이 100분이 넘는데 더 많아질 것 같아요. 정부 지원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가족 가운데 근로 능력 또는 경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든지 말든지 실제 부양을 받든지 말든지 수급권자에서 빼버리거든요.

자손들이 잘 안 풀리거나 중간에 사업이 망해서 자녀들로부터는 한 차례도 도움을 받지 못한, 그러면서도 정부 사회안전망에는 걸리지 않는, 그런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어요.


후원은 단체, 기업, 개인을 가리지 않고 받습니다. 300명은 훨씬 넘을 거예요. 이걸 제대로 조직·관리하기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려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담 실무인력 두기이고 다른 하나는 반찬가게 만들기입니다.

실무인력을 두려면 인건비 마련이 필요한데, 법인 이사들이 일부 부담하고 후원금에서 일부 부담하면 될 것 같아요. 자원봉사 회원 관리나 쌀·밑반찬 지원을 전담하는 인력이 생기면 저는 바깥에 나가 후원자 발굴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찬가게는요, 실제 반찬을 팔지는 않아요. 장날 무료급식·경로잔치·김치 1만 포기 담그기 지원을 나가는 팔룡시장을 비롯해 전통시장 서너 곳을 컨소시엄으로 묶어서, ‘상품성은 없으나 먹을 수는 있는’ 어물이나 채소 등을 지원받아 반찬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 반찬 나눔 가게’라고, 이름까지 지었어요. 장소는 가까이 경남장애청소년문화교육진흥센터(원장 김인식) 교육장을 쓰기로 얘기가 돼 있고요.

지금은 동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께 쌀만 드리는데, 여기에 3찬을 더해보자는 포부입니다. 쌀과 밑반찬과 간식거리를 통합하고 확장하자는 얘기입니다. 법인은 내년 5월부터는 본격 업무 수행이 되도록 할 작정입니다.”

보통은 이런 활동을 하면 사람들이랑 부대끼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기대가 같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기가 십상이라고들 하는데, 설씨한테는 어떤 어려움이나 고달픔이 있을까요?

“해 드릴 수 있는 지원은 5인데 지원 받으시는 분이 요구하는 눈높이는 8 정도 되는 경우지요. 쌀의 질을 일정하게 맞춰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름이면 여러 군데서 모아오는 쌀의 품질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드릴 수 있는 양도 들쭉날쭉하지요. 그러다 보니 받는 분 처지에서는 섭섭하고 속이 상하고 하시나 봐요.

정부나 자치단체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품질이 떨어지는 쌀이지만 그 또한 지원 받은 것이라 어쩔 수 없다, 다 맞출 수가 없다, 이렇게 미리 말씀드리지만 항의나 푸념을 듣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미를 주세요, 찹쌀을 좀 섞어 주세요, 많이 주세요, 햅쌀로 주세요, 쌀 말고 다른 것 주세요, 선물로 줄 다른 것 없나요? 등등 요구 또는 주문이 많은데 여기 다 맞춰드리지 못하니까요. 물론 드릴 선물이 있다든지 하면 드립니다.

경남발전연구원 이은진 원장은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빠지지 않고, 본인이 받기는 했으나 돌려주기는 어려운 선물들을 차곡차곡 챙겼다가 갖다 주십니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석영철·여영국 경남도의원, 김석규·노창섭 창원시의원도 그렇게 하십니다.”


나눔을 통해 달라지는 사람들 모습

이렇게 보면 ‘꽃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곳이라기보다는 선의(善意)가 모이는 공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착한 뜻을 나누고 붙이는 사람이 바로 설미정씨고요.

“그렇지요. 지역사회 안에 우리 공간이 자리잡고 있어요. 함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사랑의 쌀독’도 2006년 사파초등학교와 결연하면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쌀을 모아주지 않았으면 도중에 접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으로 하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어떤 경우는 부모님이 모은 쌀을 갖고 ‘꽃들’ 사무실로 찾아오시기도 해요. 아이가 내는 시기를 놓쳐 내지 못했는데 많이 속상해한다면서요.”

‘꽃들’이 하고 있는 일은 나눔운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구·쟁취운동을 주로 하는 이들에게 나눔운동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책무를 대신하는, 별것 아닐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늦추는 구실까지 한다고 비치기도 한답니다.

“요구도 함께합니다. 근본 문제에 대한 지적과 비판도 해요. 이 일을 하다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제대로 선정되지 못하는 사례를 많이 알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활동을 하면서 사람이 바뀌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꾸욱~ 참고 보내요~~~’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그런 것 다 참고 돈을 보낸다는 얘기입니다. 생활 속에서 갈등은 하지만, 내 것이지만 혼자 쓰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이기적인 사람이나 성향이 계산적인 사람도 바뀌어 나갑니다.


팔룡시장 어르신 무료급식에서 4년째 한 번도 빠짐없이 설거지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그 분 친구들을 감동시킵니다. ‘시간이 되면 같이 가 줄게’ 하지요. 이렇게 강남 가는 친구 같이 따라가는 식으로 하다가 나중에 보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덤을 나누다가 나중에는 자기것까지 나누게 되면서 얻는 충만함이지요. 무엇을 두 손으로 움켜쥐기보다는 푸는 게, 풀어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술 마시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사람

설미정씨는 부산에서 살다가 1996년 창원으로 왔습니다. 아버지 직장이 창원으로 옮겨오면서 뒤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창원은 부산과는 완전 다른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부산서 대학을 마치고 부산민주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창원에도 오자마자 마산·창원민주청년회에 가입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제가 원래 요구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나눔형이었지 싶어요. 대학 생활 5년에 그런 아쉬움이 있고요. 하고 싶었던 것이 공동체 부분이었어요. 친구들이 현장 노동자로 가든 학교에 남든 시민운동을 하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알콩달콩 같이 지내고 싶은 삶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아버지 집이 사파동에 있었고 그 때 사파동 출신으로 정동화 창원시의원이 활동하시고 있었어요. 정동화 의원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운동 형태도 청년회 활동을 벗어나지 못했겠지요. 지역 주민 속에서 주민과 함께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거다!’ 하게 됐습니다. 부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거든요.

또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제가 사는 사파동성아파트 안에 마을 도서관을 만든 것도 제게 쏟아진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거기서 동네 소식지를 만들고 이런저런 모임을 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갔지요. 이런 게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미정씨는 직업이 과외 선생님입니다. 교육청에 등록돼 있고 세금도 꼬박꼬박 낸답니다. 수학을 주로 가르치지만 수학만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사람됨을 더 크게 본다는 말씀입니다. 학부모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사회 활동으로 수업을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 아시라고, 그렇다고 보충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면서 술 마시기를 즐깁니다. 그이 취미라지만 취미가 아닌 특기라 해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술자리는 그이에게 사람이 사람과 통하는 공간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저랑 술을 마신 지도 참 오래 됐네요.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리 됐습니다요. ㅎㅎㅎ

“술 마시기를 무척 즐기지요. 술자리는 제게 공사 구분이 없는 자리예요.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하지요. 한 때 공사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분류가 없어졌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꽃들’ 후원자도 많이 만들고 또 후원자들과 마시는 자리도 많아요.

물론 좋은 사람들과도 많이 마시고요. 구분이 없습니다. 좋아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해서 ‘한 잔 하고 싶다’ 해서 만납니다. 최근 그렇게 만나 술을 같이 마신 이가 김갑수 민주통합당 창원의창 위원장이었습니다. 하하.” 김갑수는 좋겠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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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정리해 본 인터뷰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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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서 했는데 써 먹지는 못했습니다. 김명수님의 책 <인터뷰 잘 만드는 남자>를 보면서 간추렸습니다. 드문드문 제 생각과 방법도 들어 있기는 합니다. 김명수님의 책은 쓸만했습니다.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크게 무거운 책도 아니었습니다.

1. 인터뷰를 왜 하는가?


1.
인터뷰가 중요한 까닭은 누가 뭐래도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이 아닌 자연물을 인터뷰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터뷰는 여기서 말하는 인터뷰의 개념에서 벗어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움직여나갈지 알기 위해서도 인터뷰를 하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움직여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전자를 위해서는 현실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고 있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후자를 위해서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생각하기에 바람직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서도 인터뷰를 합니다. 결국 세상 사는 사람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좀더 잘 알 수 있는 것이 인터뷰입니다.(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생활 자체가 인터뷰가 아닌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박영주 6월항쟁정신계승 경남사업회 공동 대표와 김훤주.


2.
이런 인터뷰들은 인터뷰하는 대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주제 설정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정하지만, 인터뷰에서 나오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자면 인터뷰를 하는 상대방한테 들어 있는 것을 잘 찾아내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정 사안이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하는 인터뷰는 그 사안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내용을 인터뷰에서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궁금하게 만드는 글은 맞지 않습니다.

인터뷰는 인터뷰하는 상대를 띄워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만나 인터뷰한 사람에 대해서는 좋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객관적이고 합당한 까닭과 근거가 있다면 그런 데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인터뷰하는 상대를 통해 읽는 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에도 인터뷰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고 또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에도 요령이 있습니다. 질문을 잘못 하면 아무 사전 준비 없이 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고 예의가 없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성민 극단 새벽 연출가와 김훤주.


인터뷰하는 사람의 주장·의견을 보여주기 위해 인터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청문회식이나 취조, 또는 연설하듯이 인터뷰하면 안 됩니다. 자기 생각 강요밖에 안 됩니다. 이런 인터뷰는 절대 금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경우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블로거도 기자도 사람인지라 자기 생각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기 주장이나 의견에 맞도록 질문을 몰아가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1.
인터뷰의 핵심은 사전 조사와 준비입니다. 인터뷰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하는 인터뷰는 이미 실패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고서 어떻게 좋은 날카로운 상황과 잘 어울리는 질문을 할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고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인터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미 나와 있는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아직 나오지 않은 정보를 찾아내어 보완한다는 자세로 하면 좋다고 합니다.


2.
인터뷰의 핵심은 귀 기울여 듣기입니다. 상대방 얘기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상대방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해야 자기가 알맞게 말과 질문을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식으로 마음대로 해석을 하면 안 됩니다.

3.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인터뷰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분명하고 확실하게 정체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 정체성을 찾아내는 데에서, 굳이 단점을 들먹여 상대를 깎아내리기보다는 교훈적이고 숨은 장점을 찾아내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끌고 간다면 더욱 좋겠습니다.(뒤쪽 잘 뽑은 제목에서 그런 정체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터뷰가 중요한 또다른 까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터뷰를 통해 말하는 방법과 의사를 소통하는 방법을 더욱 잘 배우고 잘 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 같은 일상 생활에서 무척 필요한 대목입니다.

3. 바로 시작해 볼 수 있는 인터뷰

1.
시작이 반입니다. 인터뷰를 당장 시작해 봅시다. 상대방은 자기 주변에 널려 있는 가까운 사람으로 잡으면 됩니다. 어쨌거나 ‘인터뷰’를 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미리 알려야 합니다. ‘인터뷰’는 그에 관한 글쓰기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무슨 인터뷰냐고 거부 반응이 있기 십상이지만 처음 그런 장벽을 넘으면 다음은 쉽게 풀린다고 합니다. 묻고 답하기 방식보다는 그냥 일상에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하는 편이 낫습니다.

10월 21일 창원호텔에서 있었던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블로거 간담회.


2.
이름나고 잘난 사람만이 인터뷰 상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평범한 보통사람이 오히려 더 인터뷰 상대입니다. 물론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단서가 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금 평범함’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름나고 잘난 사람들 인터뷰에서는 감동을 받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3.
언제나 나오는 말이지만 인터뷰에서도 실수를 겁내거나 하지 않으려 하면 안 됩니다. 실수를 통해 사람은 좀더 배우고 좀더 완벽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완벽은 없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뭐든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실수를 통해 실수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터뷰 요령

<인터뷰 잘 만드는 사람>에서.
글쓴이 : <경향닷컴> 편집국장을 지낸 김명수(1956년 출생) 기자. 현재 인터넷 인터뷰 전문 신문 <피플코리아(www.peoplekorea.co.kr)> 운영

1. 처음에는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주고 덕담으로 인터뷰 분위기를 끌어올려라.

2. 겸손한 자세로 자기 소개를 먼저 하고 인터뷰를 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밝혀라.

3. 인터뷰 주제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는 인터뷰하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4. 밝은 표정으로 상대와 눈을 맞추면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질문하라.

5. 가벼운 질문을 먼저 던지고, 상대방이 주저하는 내용은 나중에 적절한 타이밍을 맞춰 우회적으로 물어라.

6. 인터뷰하는 상대가 꺼려하는 내용은 일단 피하고 넘어가라.

7. 인터뷰하는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려라.

8. 인터뷰하는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신경을 써라.

9. 인터뷰하는 상대가 스스로 말하도록 분위기를 유도하고 흐름을 끌고 가라.

10. 최대한 집중하여 경청하라. 자기 말을 열심히 들어주면 인터뷰하는 상대 스스로 다 털어놓는다.

11. 사소한 말도 그냥 흘려듣지 말고 인터뷰하는 상대의 표정과 태도를 주의깊게 관찰하라.

12. 녹음기에만 의존하지 말고 메모를 함께 하라.

13. 단어 표기가 복잡한 이름이나 발음을 잘 못 들었으면 몇 번이라도 물어 그 자리에서 확인하라.

14. 마지막으로 기사에서 추가하고 싶은 내용은 없는지 물어보고 민감한 내용은 재차 확인하라.

언젠가는 꼭 한 번 인터뷰해 보고 싶은 모산재 할매. 합천 모산재 아래에서 포장마차를 하신다.


인터뷰에 어울리는 글쓰기

1.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도록 독자에게 유익한 내용으로 흥미 있게 풀어나가라.

2. 문장의 흐름 전개가 빨라야 한다. 문장 길이를 가급적 줄여 단문으로 끊어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문장이 길고 난해한 기사 쓰기는 독자가 외면한다. 글 호흡에 변화를 줘라.

3. 객관적이고 명쾌하게 써라. 구어체를 많이 써라. 같은 단어를 피하고 변화를 줘라. 산뜻한 용어를 써라.

4. 좋은 기사는 독자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좋은 문장의 기본 요건은 읽는 사람이 쉽게 문장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글의 맛이 보태지고 멋도 있으면 좋다.

5. 최고의 인터뷰 기사는 가장 쉽고 간결한 문체로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해서 가장 쉬운 문체로 풀어써야 한다.

6. 현장감을 살리면서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하지만 지나친 미사여구도 사족이다.

7. 단순히 전달에 그치지 말고 창의적으로 써야 한다.

8. 오탈자나 내용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 오탈자나 오류가 있는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 인터뷰하는 상대에 대한 모독이다.

9. 내용이 꼬이거나 중복되지 않도록 논리적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원칙으로 기사를 풀어나간다.

10. 이미 알려진 내용은 더이상 기사가 아니다. 광부가 숨어 있는 금을 캐내듯 새로운 내용을 찾아내라.

11. 기사는 출처가 분명해야 한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실명으로 출처를 밝혀야 신뢰성이 있다. 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글쓰기 방법론

1. 수정하고 또 수정하라.

2. 진액만 남을 때까지 압축하라. 처음에는 내용에 신경쓰지 않고 모든 분량을 나열한다.

3. 내용에 집중하라. 철자와 받침은 나중에 어차피 수정 단계를 거치면서 모두 잡아내야 한다.

4. 제목을 먼저 생각하라. 처음부터 방향과 주제와 제목을 정해놓고 쓴 글은 연결이 부드럽고 내용이 깔끔하게 이어진다.

5. 말을 하듯이 글을 써라. 그래야 실감이 난다.

6. 중요한 순서대로 계속을 살을 붙여나가라. 그래놓고 분량이 넘치면 뒤에서부터 쳐내면 된다.

7. 오·탈자 교정은 나중에 한다.

8. 악플에 매달리지 마라. 관심을 끄는 글이라면 어차피 악플은 달리게 마련이다.

김훤주
인터뷰잘만드는사람1000명의속마음을훔친설득과소통의달인
카테고리자기계발 > 화술/협상
지은이김명수 (중앙생활사,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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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해 소망이 신문에 실린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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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는 그동안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1월 1일자 신년호 지면 중 적어도 1개 면은 여러분의 '새해 소망'으로 꾸며보고 싶습니다. 이른바 '독자 참여 지면'입니다.

그런데, 아직 날짜가 좀 남아서인지 여러분의 참여가 저조하네요. 슬슬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계획된 지면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30일까지입니다. 상품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새해 소망은 뭔가요? '담배 끊기'도 좋고 '솔로 탈출'도 좋습니다.  새 대통령이나 경남도지사, 정치권에 바라는 내용도 좋습니다. 자녀와 함께 꿈꾸는 우리사회의 희망도 좋습니다.


종이에 여러분의 다양한 소망을 써서 들고 찍은 사진을
경남도민일보 페이스북 페이지(http://www.facebook.com/idomin) 또는
독자모임(http://www.facebook.com/groups/dominreader/)에 올려주시거나
공식트위터(http://twitter.com/gndomin)에 멘션 주시면 됩니다.

혼자여도 좋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좋습니다. 

30일 오후 4시까지 올려주시면 됩니다. 신년호 신문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멋진 소망과 사진을 보내주신 여섯 분을 뽑아 사람 중심 월간지 <피플파워> 1년 구독권(5만 원)과 상품권(5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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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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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쓴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 대문짝 만하게 나오면 볼썽 사납겠죠? 그래서 그냥 귀퉁이에 책이 나왔다는 소식만 간단하게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서평 담당하는 후배기자가 신문지면용이 아닌 인터넷용으로 책 소개 글을 SNS에 올렸네요. 우리끼리의 깔대기이긴 하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전국의 풀뿌리 언론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지역언론 종사자들께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동우 기자의 양해를 얻어 이 블로그에 옮겨놓습니다.


아뿔싸. 이젠 ‘살아가기’도 아니고 ‘살아남기’다

5년 전 지역언론의 교범인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를 펴냈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현 편집국장)은 이번엔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살아가기>에서 “나는 경남도민일보가 하는 데까지 해본 후, 도저히 희망이 없으면 장렬한 전사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을 만큼 강한 생존 의지를 피력한 그였으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거나 더욱 악화된 모양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나눌 수 있는 파이는 그대로인데 인터넷매체 등 언론은 우훅죽순 생겨나고 이명박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또 하나의 거대언론인 조선․중앙․동아․매경 ‘종합편성채널’까지 탄생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지역신문발전기금 고갈 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지역언론 홀대는 새 정부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새 책 <살아남기>에는 ‘의외로’ 이런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희망이 가득하다. 김주완 자신은 여전히 “턱없이 모자란다”고 했으나 <살아남기>는 ‘지역언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보여주는 희망과 도전의 보고서라 할 만하다.

김주완을 비롯한 경남도민일보 구성원들은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을 수 있는 떡을 기다리지 않았다. 공공저널리즘과 수익사업의 접목, 지역 스토리텔링 사업, 사회적 기업 창립, 독자밀착광고, 인터넷뉴스 부분적 유료화, 지역신문 킬러콘텐츠 등 수많은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또 끊임없이 실천했다.

1999년 창간 후 매해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경남도민일보가 2011년 첫 3억 원 흑자를 기록하고 부채 청산, 임금 인상 등을 이루어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2년 연속 대상과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 제목이 암시하는 바, 여기에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사업, 지역인물 스토리텔링, 블로거 지역공동체 구축 등이 큰 힘이 되었다. 김주완은 성과의 99.9%를 “대표이사(구주모 사장)의 지도력과 전 구성원이 합심한 결과”로 돌렸으나,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서울의 번듯한 언론들에 비해 뭔가 낙후되고 뒤떨어져 있는 것 같은 지역언론 현실에서 이런 ‘창조적인’ 고민과 시도를 해낼 수 있었던 중심엔 김주완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언론으로서 정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성과라는 사실이다.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언론으로서 자존과 균형감을 갈수록 잃어가는 시대, ‘눈 딱감고’ 돈 몇 푼을 위해 타협의 길을 택할 수 있음에도 김주완과 경남도민일보는 그러지 않았다. 5년 전, 아니 기자가 된 이후부터 김주완의 신조는 신문은 진보와 보수 그 어디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하며 공정한 잣대로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 쪽도 ‘진보답지 않은’ 행태를 보이면 가차 없었다. 심지어 경남도민일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010년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비리 의혹으로 난타당했을 때 김주완은 신문 1면에 “권력 감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라며 장문의 반성문을 실었다. “지역언론의 감시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사전에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통렬히 자아비판했다.

김주완의 5년 후(?) 또 다른 책이 기다려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김주완은 <살아남기>에서 성공 사례뿐 아니라 앞으로 계획도 살짝 풀어놓았다. 지역인물 스토리텔링 확대, 지역관광 스토리텔링, 경남 인문지리지 ‘경남의 재발견’ 기획, 축하광고 시장 개척, 지역 포털사이트 구축 등등 그의 고민은 끝이 없다. 

그때 책 제목은 무엇이 될까? 지역언론 기자로 살아남은 비결? 아니다. 나는 감히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 기자로 살아가기’를 추천하고자 한다. 김주완과 경남도민일보 구성원들은 그걸 해낼 충분한 의지와 능력이 있다.

글 고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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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는 결정적이고 지리멸렬은 0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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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에서는 이틀 전에 있었던 선거 결과를 두고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경남 지역 투표 결과 분석이었던 셈인데요, 참 밋밋했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안정적이었고 이쪽의 패배는 결정적이었으며 이쪽 진보진영의 지리멸렬은 소실점을 향해 0으로 수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별다르게 말할만한 내용이 너무나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는 놓으려고 이리 올리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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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MBC경남 기자) : 12월 19일 선거가 끝났습니다. 새누리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경남에서는 모두 다섯 개 선거가 있었는데요, 무소속이 당선된 한 군데를 빼고는 모두 새누리당이 이겼습니다. 대통령과 도지사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요, 도의원과 시·군의원 선거도 모두 그랬습니다.

1. 지나치게 안정적인 그들의 승리

박근혜와 이명박. 뉴시스 사진.


김훤주(경남도민일보 기자) : 예, 이미 다 아시는대로, 제18대 대통령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제35대 경남도지사에는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가 당선이 됐습니다. 진주1선거구 경남도의원 보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양해영 후보 67.7%대 32.3%로 통합진보당 이경규 후보를 눌렀고요, 산청군 나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신동복 후보가 과반 득표로 나머지 두 명의 무소속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군의원을 뽑는 하동 라 선거구에서는 여권 성향 무소속 후보 두 명이 맞대결을 벌인 결과 55% 지지로 김봉학 후보가 당선증을 받았습니다.

김상헌 : 물론 대선에서 득표율은 야권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습니다만, 당락을 놓고 보면 경남은 새누리당 색채가 한층 짙어졌습니다. 5년 전 정동영 후보의 12.4%는 10년 전 노무현 후보 당선 당시 득표율 27.1%를 훌쩍 넘어 36.3%를 보였거든요.

광역·기초 의원 선거 결과도 그렇지요? 경남도의회는 새누리당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다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돼 전체 의원 정수 59명 가운데 39명이라는 우세를 그대로 이어가게 됐고요, 무소속 의원의 사망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진 산청군은 이번에 의원 9명 전원이 새누리당 소속으로 바뀌었습니다.

김훤주 : 그렇습니다. 또 하동군의회는 무소속 후보 당선으로 새누리당 의석이 하나 줄어들어 새누리당 6명, 통합진보당 1명, 무소속 3명이 됐습니다만, 새누리당의 의회 지배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김상헌 :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김해시의회는 성격이 많이 달라졌지요? 내외동 사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전영기 후보가 45.0% 득표로 44.5%를 득표한 민주통합당 박민정 후보를 242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습니다. 통합진보당 김미경 후보는 10.4% 지지를 받았고요.

정동영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문재인, 전 후보. 왼쪽 뒤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는 이석행 선수가 보입니다. 뉴시스 사진.


김훤주 : 1등과 2등 사이 0.5% 차이가 김해시의회 성격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동안 경남 기초의회 가운데 유일하게 한 때나마 새누리당이 약세였는데 이번 선거로 역전됐습니다. 2010년 7월 출범 당시는 새누리당 10명에 민주통합당 9명, 통합진보당과 국민참여당 각각 1명으로 전체 21명 가운데 11명이 야권 성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로 새누리당이 11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이런저런 사유로 민주당 2명과 (민주노동당과 통합해 통합진보당으로 바뀌면서 사라진) 국민참여당 1명이 무소속으로 남게 돼 새누리당이 주도권을 갖게 됐습니다.


2. 지지율로 봐도 안정적인 그들의 승리

김상헌 :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이 주로 이득을 챙긴 셈이네요. 이와 함께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 지지율에 비춰 두드러진 차이점을 보이는 곳이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김훤주 : 박근혜 후보의 경우 경남 평균 지지율이 63.1%인데요. 경남 평균 이하 득표율이 나온 데가 창원을 뺀 17개 지역 가운데 김해 52.2% 양산 58.9% 거제 55.5% 등 세 군데뿐입니다. 인구 100만인 창원시의 경우는 마산합포·회원구와 진해구는 전국 평균보다 높았지만 의창구와 성산구는 각각 54.9%와 60.7%로 경남 평균보다 낮았습니다.


김상헌 : 그런데, 경남 평균보다 적게 나온 김해 양산 거제, 그리고 창원 의창구와 성산구 득표율도 박근혜 후보의 전국 평균인 51.6%보다는 높게 나왔어요.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이 지난날 민주당 계열 대선 후보의 득표율보다 많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경남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세가 여전히 강함을 일러주는 지표라 하겠습니다.


김훤주 : 홍준표 도지사의 득표율을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홍 후보는 경남 18개 지역 모두에서 과반 득표를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나눠보면 권영길 후보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재선을 이룩했던 창원 성산구에서는 46.8대 53.2로 권 후보한테 뒤졌습니다. 노동자 밀집지역으로 권 의원의 전통적인 강세가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대통령 선거와 사실상 짝을 이뤄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는 같은 당 박근혜 후보 지지율에 0.2% 미치지 못한 반면, 권영길 후보는 같이 짝을 이룬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율을 0.8%정도 넘어섰거든요.

김상헌 : 권 후보는 투표율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75%면 자신의 당선이 유력하고 77%를 넘으면 개표 결과를 볼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이번 투표율이 77%였어요. 그런데도 권 후보가 떨어졌습니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봐야 좋을까요?


김훤주 : 권영길 후보도 저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투표율이 높아지면 야권이 유리하다는 착시 현상을 벗어나지 못했었겠지요.

어쨌든 같은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김두관 도지사의 사퇴로 말미암아 도지사 보궐선거를 하게 됐다는 점, 출마가 늦어졌고 통합진보당 이병하 후보하고 후보단일화도 미끄럽지 못했다는 점 등 불리한 상황에서도 문재인 후보보다 득표율이 높으니까 선전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될 것 같습니다.

12월 20일 취임하고 도청 뜨락에서 기념식수를 하는 홍준표 도지사와 그 아내. 뉴시스 사진,


3. 선전하지 못한 권영길 진영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선거구는 말할 것도 없고 홍준표 후보한테 유일하게 이긴 창원 성산구 개표 결과를 들여다봐도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찜찜한 구석이 눈에 띕니다.


김상헌 : 그렇군요. 또 득표율은 문 후보보다 권 후보가 높지만 득표 숫자는 문재인 후보가 72만4896표를 얻어 권영길 후보의 70만2689표보다 2만표 가량 더 많습니다. 그런데 창원 성산구 개표 결과 분석은 무엇인가요? 혹시 역대 선거에서 나타난 투표 성향을 따져 보면 잘 싸운 결과라고 하기 어렵다?


김훤주 : 예, 그렇습니다. 먼저 1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보겠습니다. 권영길 후보가 처음 출마해 낙선했던 선거지요. 이주영 한나라당 후보가 44.1% 득표로 당선됐고 권 후보는 38.7% 지지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차정인 후보가 13.3%를 득표했습니다. 차정인과 권영길을 합하면 52.1%가 나옵니다.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를 37.8%대 49.8%로 눌렀습니다. 열린우리당 박무용 후보 득표 12.4%를 더하면 무려 62.2%나 됩니다. 18대에서는 한나라당 강기윤 후보가 44.7%로 바짝 따라붙었지만 권 후보는 48.2% 득표로 이겼는데요, 통합민주당 구명회 후보 득표 5.0%까지 계산하면 53.2%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번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성산구 지지율 53.2%는 말하자면 본전치기밖에 안 됩니다.

4. 지역 연고 효과 누린 홍준표, 그러지 못한 권영길


김상헌 : 그러면 홍준표 후보 득표율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한 번 짚어보죠.

김훤주 : 대체로 같은 당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높은 지역에서 홍 후보도 높은 득표를 보였는데요, 평균 득표율 이상 지역인 경우 대체로 홍준표 후보가 박근혜보다 조금 처집니다. 창원 진해의 경우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64.4%인 반면 홍준표 후보 지지율은 62.5%입니다. 물론 통영·밀양 같은 경우 뚜렷한 까닭이 보이지 않는데도 홍준표 득표율이 박근혜 지지율보다 높기는 합니다만.

그밖에 다른 지역을 보면 창원시의 마산 합포와 회원이 박근혜 지지율보다 3%정도 높고 진주는 1.3% 높습니다. 이는 홍준표 후보의 도청 이전 관련 공약 덕분으로 보입니다. 도청 제2청사를 진주에 새로 짓고 도청을 지금 자리에서 마산으로 옮기겠다고 했었지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창녕이 박근혜 지지율 74.1%보다 홍준표 득표율이 5%나 높게 나왔고요, 합천도 박근혜 지지율 76.8%보다 1% 더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지역 연고 탓으로 보이는데요, 창녕은 홍 후보가 태어난 고향이고 합천은 홍 후보가 국민학교를 다닌 지역입니다.


반면 권영길 후보는 이런 지역 연고 효과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권 후보도 나름대로 그런 효과를 봤습니다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권 후보는 고향이 산청군 단성면인데요, 그래서 산청에서만큼은 홍준표 후보랑 어금버금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66.7%대 33.3%로 더블스코어로 밀렸습니다.


권영길 후보가 마찬가지 후보 나섰던 15·16·17대 대선에서는, 산청 사람들이, 권 후보 전국 평균이나 경남 평균 득표율을 넘어서는 득표율을 안겨줬거든요. 이를테면 2007년 대선에서 권 후보는 전국 평균 3.0%, 경남 평균 5.4%였는데 산청에서는 그보다 높은 7.2%가 나왔습니다.

5. 홍준표도 권영길도 매력 없기는 마찬가지


김상헌 : 이밖에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지요? 무효투표수입니다. 대통령 선거 무효투표는 경남 1만5740표를 비롯해 전국을 통틀어도 11만9974표밖에 안 되는데, 경남도지사 보선에서 그에 맞먹는 10만5177표나 나왔습니다. 상당히 많은 숫잔데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별다른 의미는 없겠지만 말씀입니다.

김훤주 : 대선과 마찬가지로 단순 실수한 경우를 빼면,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지지하지만 홍준표 도지사 후보는 지지하지 않는 새누리당 성향 유권자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홍준표 후보는 반대하면서도 그렇다고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는 야권 성향 유권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성향 유권자 가운데 일부가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까닭은 홍준표 후보가 지역에서 지역을 위해 일한 적이 없는 사실상 낙하산이라고 보기 때문일 듯하고요, 야권 성향이면서도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까닭은 삐걱댔던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이 영향을 꽤 미쳤을 것 같습니다.


김상헌 : 어쨌거나 이 두 가지 성향 무효표는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표심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이 무효표까지 합산해서 득표율을 다시 계산하면 당선된 홍 후보 지지가 다소 낮아지겠네요. 이 또한 별 의미는 없겠습니다만.


김훤주 : 그렇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 투표자 숫자는 200만8683명인 반면, 도지사 선거 투표자 숫자는 199만9770명이거든요. 도지사 선거 투표자가 1만 명 가량 적은 셈입니다. 말하자면 투표장까지 가서 대통령 선거는 투표를 해 놓고도, 도지사 선거는 투표하지 않은 사람이 그만큼 된다는 얘기입니다.

홍준표도 권영길도 그만큼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숫자까지 더해서 홍준표 후보 득표율을 다시 계산하면 62.9%가 아니라 59.3%로 3.6% 낮아집니다.

투표독려운동이 선거운동이었던 현실. 오른쪽에 강기갑 선수가 보입니다. 뉴시스 사진.


김상헌 : 크게 정리하면 박근혜-홍준표 지지는 안정적이고, 문재인 후보는 나름 선전했지만 권영길 후보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 반면에 단순 득표율로 나타나지 않은 홍준표 지지 유보 또는 반대 성향 표심이 무효표에 꽤 숨어 있었다,가 되겠군요. 지방의원 선거의 경우는 지역마다 새누리당 장악력이 강해지거나 그대로 유지됐고요.

6. 0을 향해 수렴된 진보진영의 지리멸렬

김훤주 :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함께 짚어봐야 할 대목은 진보진영입니다. 대선에서 진보진영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후도 등록 직전 사퇴했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3차 텔레비전 토론 직전 사퇴했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으나 당선 시키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완주한 후보도 있습니다. 무소속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가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의미있는 득표에 실패했습니다. 경남에서 각각 0.05%와 0.25% 득표에 그쳤습니다. 심지어 김소연 후보는 경남 지역의 경우 별로 의미 없는 출마를 한 박종선 후보에게도 뒤져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갈가리 찢어진 데다가 어느 쪽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그 무능함과 무기력함을 한껏 보여줬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대선 결과를 분석하는 이런저런 보도에서 진보진영은 얘깃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상헌 기자는 저의 이런 지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진보진영의 현재 모습이 안타깝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우리 정치도 보수뿐만 아니라 (좌익에 해당하는) 진보진영이 나름대로 잘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앞으로 잘될지 기대해 봐야겠다는 투로 얘기하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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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해 넘기는 밀양 송전철탑과 해고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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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금요일 저녁 MBC경남의 라디오광장은 제가 출연하는 2012년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 해결을 보지 못하고 내년 2013년 내년으로 넘어가는 현안들을 한 번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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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당연히 그 중에는 여지껏 해결이 되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가는 것들이 있을 텐데요, 우리 경남 지역에서 올해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어떤 현안들이 그렇게 해를 넘기게 됐는지 한 번 알아보지요.


1. 경남에도 해고자 문제가 남아 있다

김훤주 : 예, 먼저 해고자 문제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건·복지 등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없는 사람 처지에서는 고용이 유지되느냐 여부가 아주 중요한 현실인데요. 일터에서 쫓겨나 추운 겨울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 문제가 우리 경남 지역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김상헌 : 그렇군요.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19일 대선을 통해 당선인으로 확정된 이후 지난 며칠 동안 가까운 부산이나 울산에서 해고자들의 자살이 잇따랐는데요, 경남에서도 그렇게 해고된 채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었군요.

2009년 쌍요차 평택공장 옥쇄파업 진압하는 경찰들.


김훤주 : 이번에 목숨을 끊은 부산의 한진중공업이나 울산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지난 4년 동안 22명이 자살 등으로 세상을 떠난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가 대표적입니다만, 창원공단의 대림자동차와 쌍용자동차 창원공장 등 경남에도 해고자가 발생해 있는 상태입니다.


대림은 현재 해고자 12명이 복직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이고 있고요, 쌍용차의 경우는 2009년 정리해고와 징계해고 합해 24명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올해 들어 창원 센트랄에서도 해고자가 3명이 나왔는데요, 이밖에 비정규직 경우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많다고 합니다.


김상헌 : 그런 분들의 자살은 아무래도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요? 해고로 말미암아 사회로부터 단절됐다는, 그리고 앞으로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김훤주 : 그렇습니다. 대림이나 센트랄은 법정에서 소송을 통해 복직 여부를 다투고 있고, 쌍용은 이른바 대타협을 했는데도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새 정부 5년 동안도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이런 자살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9월 25일 마산합포구 새누리당 이주영 국호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이갑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창원지회장. 경남도민일보 사진.


우리 경남에서도, 올해는 아니지만, 2009년부터 지난해 2011년까지 한 해에 한 명 정도씩, 모두 3명이 해고 또는 희망퇴직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2009년 7월과 2011년 2월에는 쌍용차 창원공장 출신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고요, 2010년 10월에는 대림 출신 노동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김상헌 : 해고라는 게 단지 일터, 밥줄뿐만 아니라-밥줄도 매우 중요하기는 합니다만- 해고된 사람을 외톨이로 만들어 인간 관계와 사회 활동 전반을 파괴한다고 하더니 실제로 그런가 봅니다.


김훤주 :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한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 10년 20년이 흐르면서 인간관계가 대체로 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인데 해고돼 일터에서 떨려나게 되면 그런 인간관계도 모두 파괴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난 2011년 연말에 불거진 롯데백화점 비정규직 집단 해고 사태의 경우는 150일 가량 천막농성을 벌이고 지역 시민사회의 지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 5월 복직 쪽으로 가닥을 잡는 성과를 내었습니다. 남아 있던 10명 해고자 가운데 노조 간부 2명은 퇴직하고 나머지 8명은 순차적으로 복직시킨다는 내용이었어요.


2. 주민 분신 자살까지 불러온 밀양 송전탑 문제도

김상헌 : 미운털이 박혔는지 간부 2명이 복직에서 제외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나마 복직이 돼서 다행이네요. 이밖에 내년으로 해를 넘기는 사안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김훤주 : 밀양 송전철탑 건설 문제가 있습니다.


김상헌 : 이 또한 한두 해 묵은 문제가아니지요. 한전은 76만5000볼트가 지나가는 초고압 송전철탑을 밀양 다섯 개 면 지역에 건설하려 하고 지역 주민들은 전자파 피해와 재산권 문제 등을 들어 결사적으로 쓰고 막고 있지요.


김훤주 : 밀양 송전철탑 문제도, (해고자 자살과 마찬가지로) 한전의 일방적인 처리로 주민 한 분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이 올 1월에 일어나 지역사회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지역 주민이 피해를 옴팡 뒤집어쓰는데도 그에 대한 보전이나 다른 대책 없이 법에 그렇게 돼 있다는 이유로 철탑 세울 땅을 내놓으라 윽박지르기만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을 했습니다.


김상헌 : 그래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한전에서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리기는 했었어요? 국회의원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고요. 끝장 토론회라고 했나요? 역시 성과는 없었지요.

12월 4일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토론회.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 정부쪽 주문이 있었던 모양인지 대선을 앞두고 한전 사장이 밀양을 찾아 그간 진행된 내용을 두고 사과하는 등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달라진 부분은 결국 없는 모양입니다. 12월 4일 국회의사당에서 토론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송전선로 지중화 등 주민들의 거듭되는 요구를 한전은 비용과 건설 기간 문제를 들어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민들 요구와 주장이 분별없는 의혹 제기로 터무니없다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김상헌 : 한전은 이 분야에 노하우가 대단한 것 같아요. 전국 각지에서 같은 문제가 수없이 발생했는데도 여태까지 실패한 데가 전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김훤주 : 주민들로서는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지경입니다. 밀양 해당 주민들은 송전탑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으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목하고 지지를 선언했거든요. 그런데 알다시피 떨어졌습니다.

문재인 지지 선언한 밀양 해당 지역 주민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 왔습니다. 지역 언론에서 이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는데도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밀양 주민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이고 한전도 태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 대책 없이 한전이 다시 공사를 밀어붙일 경우 지난해 이치우 어르신 분신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3. 창원시 새 청사 입지 선정도 해 넘기고


김상헌 : 해고자 문제, 밀양 송전철탑 문제, 다들 우울한 얘기뿐이군요. 좀 밝은 소식은 없나요?


김훤주 : 아, 미안합니다. 제가 그런 사례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창원시청 청사 입지 선정 문제를 한 번 살펴볼까요?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울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김상헌 : 창원시청 청사 입지 선정 문제는 좀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 같아요. 창원시 집행부는 의회에서 결정해야 한다 하고 창원시의회 의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지요. 게다가 최근에는 마산쪽 의원들과 집행부가 기싸움을 벌이는 기색도 보이는 것 같던데요.


김훤주 : 2010년 통합을 앞둔 시점에 나온 이른바 통준위 합의 내용대로 마산 지역과 진해 지역을 새 청사 입지 1순위로 명시한 조례를 제출하라고 마산쪽 의원들이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해쪽 의원들 동의를 얻어 의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고 보는 거겠지요.

그런데 새 청사 입지 문제만 놓고 보자면 박완수 창원시장이 매우 옹색해지고 말았습니다.


김상헌 : 왜죠?


김훤주 :  홍준표 신임 도지사가 도청을 마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고 당선이 됐어요. 박완수 창원시장이 새 청사 입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한 방 맞은 셈이죠.

그동안 줄기차게 통준위 합의대로 마산 지역에 새 청사가 들어서야 한다고 요구해 온 마산 사람들로서는 도청이든 창원시청이든 어느 하나만 들어와도 되는, 말하자면 양 손에 모두 떡을 든 셈이 됐어요.


김상헌 : 본인으로서는 억울한 구석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동안 박완수 시장이 새 청사 입지 문제를 제 때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면서 지금 청사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창원 사람들에게는 그게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마산이나 진해 사람들에게는 배신이나 다름 없는 일이지요. 그러면서 두고두고 논란과 갈등을 부추기게 됐고요.


김훤주 : 내년에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리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으로 결정난다 해도 박완수 시장으로서는 이런저런 조건에 등을 떼밀리는 모양새를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4. 수몰 위기 내몰린 함양 용유담 문제도

용유담.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이밖에 함양 지리산 골짜기 관광지로 이름높은 용유담에 대한 명승 지정도 해를 넘기게 됐어요? 지난해 그러니까 2011년 12월 8일 문화재청이 지정을 예고했는데 법대로라면 올해 안에 가부간에 결정을 내야 하는데 지난 6월에 이어 이번 12월에도 다시 심의를 보류하는 바람에 명승 지정 예고 자체가 효력을 잃게 됐다고 합니다만.


김훤주 : 그래서 용유담을 다시 명승으로 지정하려면 다시 지정 예고 절차를 거쳐야 하게 생겼습니다.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여기에다 지리산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를 명승으로 지정해 버리면 그대로 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대를 수몰시키는 지리산댐 건설은 불가능해지는데, 이번에 다시 문화재청이 발을 빼게 되면서 국토해양부에다 시간을 벌어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토건족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보기라고 하겠습니다.)

5. KAI 민영화 여부와 한철터 진해화학터 오염 정화도 내년으로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사천에 있는 KAI 민영화와 마산 지역 월영동 한국철강터 토양오염 정화 문제도 해를 넘기게 됐지요? KAI 민영화의 경우 대선 이틀 앞서 열린 본입찰에서 그동안 KAI 인수 의사를 강력하게 밝혀 왔던 대한항공이 불참하는 바람에 유찰이 됐다고 들었어요.

김훤주 : KAI, 그러니까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사천과 진주를 비롯한 서부 경남 지역 핵심 이슈가 돼 있는데요, 여태 지역 여론은 민영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부실기업인 대한항공에는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말씀하신대로 유찰이 됐고,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새 정부 출범 전에는 입찰이든 수의계약이든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 당선인이 이 문제에 대한 태도를 선거 기간 중에는 물론이고 당선된 이후에도 밝히고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여전히 안개속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상헌 : 주택건설업체인 부영이 사들인 마산의 한국철강터 오염 문제 해결도 해를 넘기게 됐네요. 같은 부영이 사들인 진해 지역 진해화학 터 오염 정화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처랑터 전경.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해화학터.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 한철터 문제는 2006년 불거졌습니다. 2003년 1600억원을 들여 사들인 한철 마산공장 24만제곱미터 가운데 60% 정도가 중금속 등으로 오염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부영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기만 했고요, 그 뒤 옛 마산시로부터 한철과 부영 모두 정화조치 명령을 받았지만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다든지 하면서 여지껏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해화학터 정화도 마찬가지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김상헌 : 참 여러 답답한 문제들이 쉽게 풀리지 않고 해를 넘기는군요. 대충 훑어보니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관련된 사안들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거나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아니면 공익을 개인 이익보다 우선시한다면 어렵지 않게 풀릴 것 같은데, 어쨌든 갑갑한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지게 생겼습니다.

(뒤쪽 두 단락은 시간이 모자라서 방송에서는 다하지 못했습니다.)


김훤주

변방의사색시골교사이계삼의교실과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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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이계삼 (꾸리에,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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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수염 도포를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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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기갑 전 국회의원을 다시 보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권영길 무소속 경남도지사 후보 선거운동과 관련해 강기갑 선수가 모습을 보였습니다. 투표 독려 기자회견에, 우리한테 익숙한 그 수염에 한복 차림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진보고 보수고 뭐고에 앞서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내실이 그리 단단하지도 않은 박근혜 새누리당 선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한 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굳게 박혀 있습니다. 이게 대선 결과에 나름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도 아니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1. 수염과 도포를 두고 한 강기갑의 약속

그런데 강기갑 선수는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어쩌면 지킬 생각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진보 몰락의 또다른 원인을 짐작해 봅니다.

그이는 지난 총선에서  앞으로는 수염도 기르지 않고 도포도 벗겠노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한 표라도 붙잡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선거 끝나고 나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염을 다시 기르고 도포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도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많이 했고 그 때문에 여러 사람 힘들게 한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그 영향이 미쳤을 뿐이지만, 강기갑 선수는 이를테면 국민적인 인물이(었)고 또 진보정치진영의 상징이 되기까지 했기 때문에 같은 수준ㅇ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계 은퇴를 하고 정치 쪽으로 걸음을 아예 하지 않는다 해도, 약속은 약속으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제 생각의 한 자락을 풀어놓아 보려고 합니다. 별 것은 아니고요,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김상헌 기자가 진행하는 MBC경남의 라디오광장에 출연해 제가 김상헌 기자랑 주고받았던 몇 마디 말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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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사진. 장영달 민주통합당 경남도당 위원장이 뒷줄에 멀찌감치 서 있네요.


김훤주 : 이번에 경남이 낳은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인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10일 대표직을 그만두고 당적까지 버렸는데요, 이를 계기 삼아 정치인의 약속에 대해 한 번 얘기해 보고 그 무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상헌 : 그렇군요. 강기갑 대표는 우리 경남의 사천 출신으로 정치에 나서기 전에는 농민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지요.

2. 우리나라 농민운동의 대표선수 강기갑

김훤주 : 예, 다음 포털에서 강기갑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나오는데요, 여기 보면 농민운동 경력이 가장 먼저 뜹니다. “1971년 사천농고를 졸업하고, 76년 가톨릭농민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농민운동을 시작하였다. 1982년 사천 출신 가톨릭 신부의 영향으로 수도자의 길에 들어섰다가 1987년 고향으로 돌아와 한국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조직적인 농민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9년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120여 쌍을 결혼시켰고, 대책위원회 간사인 박영옥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런 식으로요.

김상헌 : 강기갑 대표는 농민운동을 할 때 거침없이 발언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2001년 10월 31일에는 창원을 찾아 경남도청에서 벌인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도민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경호원들에게 끌려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도연맹 의장이어서 농민 대표로 초청받은 자리에서 강기갑 대표가 점심을 먹고 나서 “농사꾼으로서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며 일어섰다가 끌려나갔지요. 강 대표는 당시 “정권재창출에 집착하는 대신 소신 있게 정책을 펴나가고 대북 쌀 지원 조기 실시 등 농민들의 뜻을 직언하려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뉴시스 사진.


3. 정치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강기갑

김훤주 : 맞습니다. 그러던 강 대표가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으로 있던 2004년에 전농이 정치세력화 결정을 하자 그 방침에 따라 지금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에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치러진 총선에서 농민 대표로 민주노동당 여섯 번째 비례대표 후보로 지명돼 당선됐습니다.

김상헌 : 그런 과정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활동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부각이 됐고, 2008년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자기 고향인 사천 선거구에서 현역 의원이자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이방호 후보를 누르고 당선돼 다시 한 번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지요.

김훤주 : 그 때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던 지금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강 대표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강 대표의 사천 지역구 선거 결과는 경남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여겨졌었지요.

이런 성과에 힘입어 같은 해 5월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를 맡았고, 7월에는 당대표가 되기까지 했는데, 그 때도 지금 진보신당 계열로 있는 사람들이 탈당해 통합진보당이 어려운 조건에 있었는데, 1년만에 강 대표는 정당 지지율을 10%대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김상헌 : 강 대표는 ‘강달프’라는 애칭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요? 강달프는 하얀 도포를 입고 수염을 기르는 모습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것인데요, 대체로 그이를 아끼고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썼던 별명이지요.

김훤주 : 그렇다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강 대표의 애칭 강달프는 그이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정치인임을 보여주는 물증이기도 한데요, 이런 별명을 얻게 한 강 대표의 독특한 모습은 다음 포털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어요.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농민 출신인 강기갑은 항상 긴 수염에 두루마기를 입고 고무신을 신는 독특한 용모로 눈길을 끌었다.” 물론 여기서 고무신을 늘 신었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릅니다. 같은 흰색이기는 하지만 고무신이 아닌 가죽신을 신을 때도 많았거든요.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고무신으로 버티기가 어려우니까요.

4. 총선 직전 특별기자회견에서 나온 강기갑의 약속

김상헌 : 지금 들어보니까, 강기갑 대표가 지난 19대 총선에서 수염을 깎고 한복을 벗은 것과 관련해서 얘기가 이어질 것 같은데, 그런가요?

김훤주 : 예, 맞습니다. 4월 11일 투표일을 겨우 6일 앞둔 5일에 강 대표는 사천시청을 찾아 일반 기자회견이 아닌 특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김상헌 : 그 자리에서 강 대표는 턱수염과 콧수염을 말끔하게 밀어버린 모습과 하얀 도포 대신 점퍼를 입은 모습을 보여줬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김훤주 : 그러면서 강기갑 후보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는 “유권자를 향한 결의의 표현으로 십 수 년을 함께한 수염을 깎았다.”면서, “강 후보가 수염을 깎은 것은 사천·남해·하동 시민 군민과 서민·농어민·노동자·중소상공인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하기까지 했어요.

김상헌 : 강 대표는 수염에 얽힌 사연도 있지요. 1989년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장을 하던 시절 농촌 총각들이 결혼을 할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입니다.

김훤주 : 강 대표의 수염 사랑은 각별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이는 사람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는 털은 다 까닭이 있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도 그렇지만 턱수염이나 콧수염은 보온을 해 주는 효과와 더불어 코에 들어가는 먼지를 걸러주는 기능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자연스럽게 나는 털을 일부러 깎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김상헌 : 그런 수염을 깎았으니, 게다가 도포까지 벗어던졌으니 그 때 언론들이 크게 관심을 보인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겠어요?

5. 수염 도포 같은 지엽말단으로 민심을 얻겠다고?

김훤주 : 맞습니다. 게다가 강 대표는 그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도포와 수염은 구태의연하다는 뉘앙스를 풍기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수염도 깎고 두루마기도 벗어 버리고 깨끗한 모습으로 새로운 정치를 해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에 보답하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강하고 투지 넘치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예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제가 더 말씀을 드릴 게 없겠는데, 강 대표는 '앞으로' '절대' 수염을 기르지 않겠고, 한복도 굳이 고집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해버렸습니다. 거기에다 수염을 깎으라는 유권자들 주문이 많다고 하면서, “이명박 정권 심판하고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는 더 큰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런 각오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수염을 깎고 한복을 벗었다.”고 덧붙였지요.

김상헌 : 그런데 지금 수염을 여전히 기르잖아요? 한복 두루마기도 마찬가지로 입고요.

김훤주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이제 와서 결과를 놓고 보자면, 눈앞에 닥친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인 강기갑 대표가, 지키지도 않을 거짓말을 그야말로 식은 죽 먹듯이 입에 침조차 바르지 않고 해댔다는 것입니다. 때가 많이 묻은 새누리당이나 통합민주당 소속도 아닌데 말입니다.

김상헌 :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강 대표의 수염 깎는 문제는 사소한 것 아닌가요? 지나치게요.

김훤주 : 그렇지요. 사소한 것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더 우습고 무서워요. 특별 기자회견 자체가 수염을 깎으면 지역 유권자들 표심이 자기에게로 올 것이라고 여겼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실제로 유권자들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잖아요? 이른바 진보개혁민주진영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새누리당이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국면인데도 표를 얻지 못했잖아요? 이게 우스운 것이지요.

김상헌 : 근본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겨우 어찌해 볼 수 있는 세력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김훤주 :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요. 게다가 유권자들을 그런 눈가림으로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6. 그나마 약속을 지키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저는요, 지난 10일 강 대표가 사퇴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고 큰절을 했다는데, 그 눈물과 큰절의 진정성을 믿기가 어려워요. 어차피 이벤트나 쑈가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요. 4월 5일 수염 깎은 특별기자회견을 할 때도 강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큰절을 했거든요.

뉴시스 사진.


김상헌 : 그나저나 이런 일이 왜 벌어진다고 생각하세요?

김훤주 : 유권자들이 기억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유권자들이 잘 기억을 해 놨다가 투표를 할 때 ‘아 강기갑이라는 후보가, 강기갑이 소속돼 있는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이 이런 거짓말을 했지’, 하면서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의 헛된 소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그리고 얼마 안가 새로 창당할 또다른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김상헌 : 안철수 현상이 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지요. 정치는 정당을 배제하면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어떤 정당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안철수라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높은데, 이는 진보든 보수든 아니면 수구적이든 모든 기성 정당들이 유권자들에게 더할 데 없는 실망을 되풀이해서 안겨준 탓이라는 얘기지요.


(무서운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진보진영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구나, 진보진영조차도 처음부터 사람을 속이려 들고 거짓말을 하는구나, 이렇게 여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강기갑 선수는, 수염을 깎지 않고 도포를 벗지 않을 바에는, 권영길 선수 투표 독려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으면 진짜 좋았겠다는 생각을 저는 그래서 한 번 더 하게 됐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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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신문의 흔한 신년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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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에는 사내 '조직'이 많다.

우선 회사라는 조직 안에 '이사회'가 있고, '노동조합'이 있다. 그리고 '우리사주조합'도 있다. 이상 3개는 법률에 근거한 조직이다.

이 외에도 한국기자협회 소속단체인 '기자회'가 있고, 경영관리국 사원들의 모임인 '경사모'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면평가위원회', '독자모임'이라는 조직도 있다. '독자모임'은 지난해 10월의 마지막 밤에 '독자한마당'이라는 행사를 마산 삼각지공원에서 열기도 했다.

신년에는 노동조합과 기자회, 경사모가 공동으로 신년회 행사를 마련했다. 물론 회사도 비용을 댄다. 신년회 행사 기획을 그들 조직에 맡겼더니 이런 포스터가 나왔다.


흠....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은가?

참고로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의 이름은 구주모(具住謨) 씨다. 한자로 써놓으면 종종 패왕막 씨로 읽히기도 한다. ㅎㅎㅎ . 어쨌든 할렐루야 나이트에 가면 입구에서 '주모'를 찾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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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뻐해주세요' 지면을 신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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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의 2013년 모토는 '독자와 함께하기'입니다. 더 많은 독자들과 더 자주 만나겠습니다.

매일 지면에 독자들의 사진과 글이 실리도록 하겠습니다. '투표 인증샷' 같은 공익이벤트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겠습니다.

신년호의 이 지면도 그래서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매일 여러분의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본인 또는 가족, 지인의 생일, 결혼, 출생 등 축하할만한 어떤 일이라도 좋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다면 그 또한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겠죠.

-입학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한 일, 직장에서 승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기념일을 맞은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주는 축하메시지도 좋습니다.

-노동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격려와 응원 메시지도 환영합니다.

물론 축하와 격려, 응원을 받을 분의 사진도 첨부해주십시오.

1월 1일자 경남도민일보 1면에 실린 사진.


경남도민일보에서 매일 훈훈한 얼굴과 기분좋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축하 격려 응원 메시지, 사진 보내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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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sori@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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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20% 낮추는 국민석유회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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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기자가 진행하는 MBC경남의 라디오광장에 금요일마다 저녁 6시 조금 넘어 출연하고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요, 2012년 10월 26일에는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국민석유 주식회사를 갖고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저도 1만원짜리 주식 50주(=50만원)를사겠노라‘약정’했는데요, 재벌에게 장악되지 않은 석유정제회사를 국민주 형식으로 차려 기름값을 낮추자는 움직임입니다. 며칠 전 약정금액이 1000억 원을 넘어섰다는 문자가 들어왔던데 이를 기회 삼아 블로그에도 한 번 정리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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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 : 오늘은 시민들의 국민석유 주식회사 설립 움직임을 갖고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경남에서는 어제 25일 설립 준비위원회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왼쪽에 여영국 경남도의원이 보입니다.


김상헌 : 국민석유 주식회사라면 국민들이 주주가 돼서 석유를 가공 정제하는 회사를 차린다는 말인가요?


김훤주 : 25일 경남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치러진 국민석유회사 경남 준비위원회 출범식에서는 정동화 경남청년희망센터 이사장과 강기묘 전 농협 창원본부장, 박종훈 경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대표, 여영국 경남도의원 등 6명을 대표로 뽑고 사업 계획을 결정했습니다.


김상헌 : 국민석유 주식회사 경남 준비위원회, 사업계획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김훤주 : 경남에서 올해 안에 주주 1만 명을 모집하고, 이를 위해 수요일마다 거리 선전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민들 상대로 1인 1주 이상 갖기 약정 운동을 벌이고요.

김상헌 : 이런 국민 주주 형식 석유회사를 차리자는 움직임은 아무래도 지금 기름값이 매우 높기 때문일 것 같아 보이는데요.

1.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기름값


김훤주 : 그렇지요. 국민석유회사는 국민 주주 형식으로 석유 가공 정제 회사를 만들어 거품을 빼면 적어도 기름값을 20%는 낮출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출장이 잦아서 한 달에 70만원 안팎을 기름값으로 지출하고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한 달에 15만원 1년에 180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김상헌 : 그렇군요. 한 달 기름값이 30만원 정도라고 한다면 이렇게 국민석유 주식회사를 만듦으로써 1년에 70만원 넘게 절약을 할 수 있네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기름값 인하 요인이 생기는가요?

이태복 상임대표.


김훤주 :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석유회사 설립 전국 준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데요, 이 분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기름값 탄생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태껏 있어온 문제점만 없애도 20% 정도 인하는 당장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김상헌 : 우리나라 석유산업은 제가 알기로는 1962년 대한석유공사 설립으로 시작됐는데, 이게 1980년 선경그룹, 지금 SK가 인수를 했습니다만, 그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군요.


김훤주 :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우리 기술력이 많이 딸렸고 자본도 규모가 작아 미국계 메이저 석유회사에 빌붙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억울하더라도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한테 이롭도록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구조랄까 시스템이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상헌 : 우리나라 석유산업 출발 당시 잘못이 무엇이라고들 하던가요?


김훤주 : 어제 출범식에서 이태복 상임 대표를 만났어요. 물어봤더니 하나는 원유 수입선이 중동으로 단일화돼 있는 점과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의 기술을 그대로 쓰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일러주더군요.


김상헌 : 외국계 메이저 석유회사 기술을 그대로 수입해 쓰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대충 알아듣겠는데요, 중동 쪽 나라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건 왜 문제가 되는가요?


2. 기술 개발 않고 가격 인상으로 이윤 챙기는 지금 석유회사들

김훤주 : 중동 쪽 나라 원유는 외국 메이저 석유회사가 직접 진출해 생산하잖아요? 우리나라에 기술을 돈을 받고 제공한 그 회사들이 자기네가 생산하는 원유만 받도록 재갈을 물린 셈이지요. 그래서 그 쪽 중동 원유 수입 가격이 다른 지역 원유보다 비싸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기술-생산 설비 문제까지 짚어본다면, 당시는 우리 기술력이 모자랐으니까 그대로 가져와 쓰고 그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기술이 나름 발달한 지금조차도 그대로 기술을 갖다 쓰고 그 사용료를 지불한다는 얘기입니다. 새로 그런 기술을 개발할 생각은 않고 말입니다.

김상헌 : 하지만 그런 기술 개발을 한다 해도 특허가 걸려 있다든지 해서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법률 장치가 돼 있을 개연성도 높잖아요?

김훤주 : 이태복 상임대표도 그렇게 얘기해요. 지금도 우리나라 기술력이 3~4년 정도 처진다, 그래서 특허를 돈 주고 사 써야 하는 부분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얼마나 세월이 흘렀느냐, 50년이 넘지 않았느냐, 당시는 특허가 걸려 있었지만 지금은 범용-누구나 개발해 쓸 수 있다는 뜻- 기술이 돼 버린 것도 상당히 많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을 합니다.


김상헌 : 우리나라에서 외국계를 비롯해 정유회사 넷이 강력하게 독점이 형성돼 있으니 기술 개발보다는 가격 인상을 통해 손쉽게 이윤 확보를 하려 한다는 말이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석유산업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가요?


김훤주 : 우리나라 1년 국민총생산이 1240조원쯤이 되고 우리나라 4대 석유회사 한 해 매출액이 160조, 해외 생산까지 치면 200조 원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17%를 이 4개 회사가 차지한다는 얘기입니다. 4개 석유회사가 외국 석유회사에 지불하는 기술 사용료도 1년에 4조원이라 했습니다. 해마다 수천억 원씩 배당금도 따로 주고 있습니다.


김상헌 : 국민총생산의 17%라면 어마어마한데요? 이밖에 다른 문제에 대한 지적은 없었나요?


3. 아시아 프리미엄까지 물어가며 들여오는 중동산 원유

김훤주 : 우리나라 석유회사 기계 설비들이 중동산 원유에만 맞도록 맞춰져 있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를 갖다 쓸 수가 없는 거죠. 중동산 원유보다 싼 원유가 있어도 들여오지 못하고, 공해유발물질인 유황이 중동산 원유보다 적게 들어 있는 원유가 있어도 들여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김상헌 : 그러니까, 공해가 더 심해지든 말든, 값이 더 비싸든 말든 중동산 원유만 사다가 가공하게 돼 있다?


김훤주 : 그렇습니다. 게다가 중동산 원유에는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었답니다. 아무 까닭도 없이 배럴당 1달러를 더 물리는 건데요, 최근 국민석유회사 설립 움직임이 일면서 이에 대한 지적이 나오게 되자 슬그머니 없어졌다고 합니다.


김상헌 : 국민석유회사 설립 움직임으로 문제가 되자 없앤 모양이군요. 불합리한 요소를 없애면 지금보다 20% 낮은 기름값을 실현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래도 너무 높이 잡은 목표치 아닌가 모르겠어요.


김훤주 : 어쨌든 지금도 시장에는 중동산보다 10% 싼 원유가 많답니다. 현물 물량은 20%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원유도 있고요. 4조원이나 되는 기술 사용료 지출을 줄이는 한편 원유 수송비도 낮추겠다는 계획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시베리아산 원유인데요, 여기 지금 하루 30만 배럴이 모인답니다. 3년 뒤는 160만 배럴까지 된다고 합니다.

국민석유회사가 처음에는 10만 배럴 정도 원유를 수입할 계획이니까 충분히 근거리 수송으로 수송비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렇게 독점이 깨어지면 기존 석유회사도 원가 절감 노력을 할 수밖에 없고요.


김상헌 : 국민석유회사 설립 움직임은 어느 정도나 진척돼 있는지요?


김훤주 : 11월 말까지 주식 약정액 1000억 원을 목표로 삼았는데 10월 24일 현재 617억 원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 열흘 정도 남은 셈인데요, 5월에 본격 시작했다는데 이런 속도라면 충분히 목표를 이룩할 수 있다고 이태복 대표는 장담을 하더군요.

4. 갈수록 탄력 받는 국민석유 주식회사 설립 운동


김상헌 : 1000억 원 약정을 이룩해도 회사 설립은 안 된 거잖아요? 석유회사라면 거대 장치산업인데 자본금 규모가 엄청나게 커야 할 거고요.


김훤주 : 거품 빼고 음성적 로비에 필요한 비자금 따위 조성 않고 새로 개발된 간편한 정제기술 등을 도입하면, 그리고 그 위에 시민 참여가 활발해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태복 대표는 얘기합니다.


주식전문가들이 그러는데 약정을 한 사람 가운데 한 주 내지 10주 참여가 50%를 넘으면 청약 단계에서는 탄력성이 10배 정도 된답니다. 지금 약정은 10주 했지만 나중에 청약은 그 10배인 100주 한다는 것입니다, 평균 잡아서. 지금 1000억 원이 약정인데, 그러면 1조 원이 되거든요, 국민석유회사 약정을 한 사람들은 70% 가량이 10주 이하라고 합니다.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상헌 : 그렇군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목표하는 설립 시기는 언제인지요?


김훤주 : 11월 중 정부 고위 당국자를 만나 설립을 허가하는 쪽으로 방향이 나오면 그 때부터 주식 청약 등 절차를 밟아 내년 2월까지 설립을 마치겠다고 합니다. 3년 정도 걸려 설비를 갖춘 다음 처음에는 하루 10만 배럴 생산하고 곧바로 30만 배럴로 늘려 나간다고 합니다.

김상헌 : 그렇게 되기만 하면 시민들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는데요. 기름값 가계 지출이 그렇게 집집마다 60만원이나 100만원씩 줄면 그만큼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나 서민들 중심으로 내수시장이 활성화되는 근거가 될 수 있겠고 말씀입니다. 그러면 알아볼 수 있는 창구는 마련돼 있나요?

5. 참여하고 약정하는 방법도 아주 쉬워

김훤주 : 예, 있습니다. 인터넷 아무 포털사이트에서나 ‘국민석유’ 넉 자를 치면 관련 홈페이지가 바로 나옵니다. 지금 현금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오프라인에서 약정을 받으면 다른 여러 사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서만 약정을 받고 있는데요, 그 또한 아주 절차가 간단합니다. 그냥 들어가 시키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김훤주
도산안창호평전
카테고리시/에세이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이태복 (흰두루,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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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 아닌 간담회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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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간을 빌미로 대놓고 돈봉투를 챙기는 '출판기념회'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두 권의 책을 냈지만, 그런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책을 한 권 출간했습니다.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라는 책입니다. 5년 전 썼던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라는 책의 후속편인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저자와 대화'를 하자네요.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랍니다. 저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1)돈봉투와 화환은 절대 받지 않는다. (2)책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 딱 책값만 받는다. 물론 사지 않아도 된다.

1월 11일(금) 오후 6시 30분 마산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창동 가배소극장입니다.
 
책이 독자에게 다가서기 위한 지역언론의 노력을 다룬 만큼, 이번 간담회도 독자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듣는 기회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담회 제목도 '독자에게 지역언론의 길을 묻다'입니다.


문학평론가이면서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인 전성욱 씨와 우리 신문사 이승환 기자가 함께 진행합니다. 아마도 전성욱 선생은 주로 책 안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이승환 기자는 신문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묻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참석하신 분들께 지역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보고 싶은지, 지역신문이 어떤 역할을 해주길 원하는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책에 나온 내용처럼 우리가 시도해온 일들이 독자의 입장에선 어떻게 보이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맥주도 한 잔하면서….

※ 혹 진행 방식에 대한 좋은 생각이 있으면 일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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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서 볏짚 먹는 소와 수레 끄는 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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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 가운데는 공장에서 만든 사료를 먹지 않고 자라는 소는 매우 드뭅니다. 한꺼번에 무리지어 놓고 기르지 않는 소도 마찬가지 매우 드뭅니다. 모두 소고기 전단계로만 보지 일하는 일꾼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볏짚이나 콩깍지 같은 여물을 먹고 옛날 외양간이나 마굿간에서 자라는 소가 그래서 저는 아마 사라지지 않았겠나 여기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경남 거창에서 봤습니다. 2012년 10월 3일입니다. 이 녀석은 아주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바닥이 질퍽거리지도 않았고 먹이도 아주 깨끗한 볏짚이었습니다. 여물통도 아주 깨끗하고 멋졌습니다.


마을길을 스윽 지나가는데,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소가 안으로 보였습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갔더니 마루에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라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고 했더나 그러라 하셨습니다. 일소냐고 여쭸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

소한테 다가갔더니 소가 놀랐는지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아래 사진처럼 밖으로 뛰쳐 나오려 했습니다. 할머니가 소를 향해 무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다잡는 내용이지 싶었습니다.
소한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곧바로 돌아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보니까 거기 대나무에 옥수수가 걸려 있었습니다. 내년에 씨앗으로 쓸 요량으로 집주인이 말리고 있었겠지요.

비좁은 사육장에서 성장촉진제 맞아가면서 아무 맛도 없는 사료나 씹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다른 소들이 보면 매우 부러워하게 생겼습니다.

저는 또 일소를 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경북 영천 보현산 자락에서 만났습니다. 2012년 10월 4일이었습니다. 물론, 원래 뜻 그대로 일소는 아니었습니다. 쟁기나 가래를 끌면서 논일 밭일 하는 그런 소는 아니었습니다.

소를 부리는 할아버지한테 여쭸습니다. 할아버지 소가 논일 밭일도 할 줄 아느냐고요. 할아버지는 요즘 그런 소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껏 해야 이렇게 멍에는 지지만 뒤에다가는 수레 정도 매달고 짐이나 옮길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하기야, 이제는 소한테 일을 시킬 줄 아는 사람 자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죄다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갑자기 2009년에 봤던 영화 ‘워낭소리’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해 온 늙은 일소를 대신하려고 새로 사 온 송아지를 일소로 훈련하는 모습 말입니다. 제 기억에는, 할아버지는 송아지를 일소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소를 부릴 줄 아는 사람도 사라졌고, 부림을 받으며 일할 줄 아는 소도 사라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대로 된 일소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니야까’라도 끌고 밭으로 나와 짐이나마 싣고 가는 소를 만난 것이 작은 누림은 절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시골에 가도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이 이미 되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소(김진선사진집)
카테고리예술/대중문화 >사진/영상
지은이김진선 (사진과예술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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