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후라이밍
Viewing all 1163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강유원 박사의 서평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
0
0
제가 존경하는 인문학자이며 철학자인 강유원 박사께서 연말에 책을 읽은 후 짧은 서평을 보내오셨다. "편리하게, 필요한 곳에 활용하라"는 코멘트도 덧붙였다.

음.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이 블로그에 올려두기로 했다.

강 박사의 서평 중 "우리는 이념에 따라 살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사는 곳’에 따라 산다. 따라서 나의 삶은 사는 곳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은 나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강유원 철학박사


김주완,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산지니, 2012.

저자는 2012년 12월 현재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다. 그는 2010년 7월부터 그 일을 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2007년에 펴낸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커뮤니케이션북스)의 후속편에 해당한다.

저자의 책 소개를 읽어보자: “이 책은 또한 5년 전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자문자답형 결과보고서이기도 하다. 그 책에서는 주로 지역신문의 잘못된 실태와 관행을 드러내고 고쳐야 할 과제를 제기했다면, 이 책은 그런 문제를 고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과 새로운 실험의 성과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물론 최종 결과는 아니고, 일종의 중간보고서에 불과하다.”

저자가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사의 전 구성원과 함께 했던 일들은 다음과 같으며, 이것이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룬다: “공공저널리즘과 수익사업을 접목”시키기, “지역신문만이 할 수 있는, 지역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킬러콘텐츠… 지역인물 스토리텔링”, “‘블로거 지역공동체 구축’에 관한 내용”.

우리는 이념에 따라 살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사는 곳’에 따라 산다. 따라서 나의 삶은 사는 곳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이 SNS시대인지는 그것에 비하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회관계망’은 언제나 있어왔고 그것의 특징은 매체가 아닌 ‘곳’에 따라 규정되어왔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은 바로 그 사는 곳에 밀착해있다.(이 책이 지역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만 한다) 지역신문이 삶에서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신문사 편집국의 실험에 한정된 것”이라 하고 있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읽어보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과 제시하는 대안은 한국의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전범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2013년을 위한 책’이다. /강유원

원문 블로그 주소 : http://frostpathway.wordpress.com/2013/01/01/sns시대-지역신문-기자로-살아남기/

강유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고전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는 지식주의자이지만, 시대와 역사를 모르면 모든 공부가 공허할 뿐이라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인문철학자'로서 철학, 역사, 문학, 정치,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유기적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강의와 글쓰기, 번역을 통해 공동 지식과 공통 교양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책과 세계』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주제: 강유원 서평집』 등을 썼으며, 『인문학 스터디』(공역) 『경제학-철학 수고』 『역사와 역사가들』(공역)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 『헤겔 근대 철학사 강의』(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 10점
김주완 지음/산지니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구포시장에는 2500원짜리 칼국수가 있다

$
0
0
2012년은 참으로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문화재청 공모 사업인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경상권>을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밀양에서 부산까지 낙동강 물길 따라 흘러가는 루트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이 바로 구포시장이었습니다. 원래는 낙동강 한가운데 을숙도 에코센터였으나 거기를 먼저 들르고 거꾸로 거슬러 구포시장에서 마무리하는 여행으로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구포시장에는 먹을거리가 푸짐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린 배를 채우고 타는 목까지 함께 달래려고 족발집에 들어가 족발과 소주를 주문해 먹고 마셨습니다. 배가 알맞게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저리 어슬렁대며 장 구경을 했겠지요.

자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한 분 있더군요. 자기 노래를 담은 CD를 파는 중이었습니다. 그 분 신나게 부르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또 그 분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함께 벌이는 수작을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리는데 이런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대감 손칼국수 2500냥>. 정말 싸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 가격에 제대로 된 칼국수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들어갔더니 먼저 '모든 자리는 합석'이라는 안내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박리다매로 바탕을 삼는 집이었습니다. 돈을 먼저 내고 칼국수를 주문했습니다. 아주 빠르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칼국수만 한 그릇 딱 갖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일손을 최대한 덜 써서 인건비를 줄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반찬은 손님이 손수 덜어 먹도록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찬 담은 통과 반찬 옮겨 담을 그릇이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반찬도 김치 하나뿐이었습니다.

김치를 덜어서 칼국수 옆에 놓으니까 기본 상이 차려졌습니다. 중국산인 배추김치는 맛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500원 내고 먹으면서 김치까지 맛이 좋으리라고는 여기지 않았으니까 실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칼국수를 베어 물면서 둘레를 돌아봤습니다. 아주 잘 차려 입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온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저처럼 처음 온 모양인지, 돈을 먼저 낸다든지, 김치를 손수 덜어 먹는다든지 다른 밥집과는 다른 시스템에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칼국수집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장구경을 나온 터에 좋은 음식 편한 자리를 기대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장에 나온 사람들 신산한 표정이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자리여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여유롭게 먹기보다는 서둘러 먹고 바삐 일어섰습니다.

구포시장은 역사도 오래 됐고(400년이라더군요) 매우 크기까지 해서 영남 3대 시장으로 꼽힌답니다. 여기 가시면 손칼국수가 한 그릇에 2500원 하는 강대감 집이 있습니다.  여윳돈이 그리 많지 않아 장 보러 왔다가 얼른 허기만 가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지 싶습니다.

김훤주
길위에서부산을보다길위에서부산의과거·현재·미래를만나다
카테고리여행/기행 >기행(나라별)
지은이임회숙 (산지니, 2012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국회의원의 외유와 특권 사이 상관 관계

$
0
0
1. 국회의원은 공짜가 많다

4일 어제는 MBC경남의 라디오광장에서 ‘국회의원 외유와 특권’에 대해 김상헌 기자랑 얘기를 나눴습니다. 제 일터인 경남도민일보에서 조금 떨어진 MBC경남 방송국에 가서 생방송으로 진행하는데, 가자마자 김상헌 기자가 물었습니다. “철도·선박·항공기는 (국회의원들이) 공짜로 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제가 방송 원고에다 그게 다 공짜라고 적었거든요. 저도 최근 매체에 보도된 바를 바탕으로 그렇게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니 제가 잘못했나 싶었답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국회법 31조에 ‘의원은 국유의 철도·선박과 항공기에 무료로 승용할 수 있다’고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도청이 2005년 한국철도공사로 전환하면서(국영에서 공영으로 바뀌면서) ‘국유인 철도·선박과 항공기’가 사라졌고 이에 따라 ‘무료 승용’은 아니고 ‘별도 교통비 지원’으로 바뀌었다고 나왔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무료 이용’은 아니고 ‘교통비 지원’이었습니다. ‘사실상’ 무료 이용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인 우리 경남 김해갑의 민홍철 민주당 국회의원.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나저나 이렇게 해서 방송을 했는데, 하는 도중에 또 국회의원들이 ‘쪽지’ 청탁으로 자기네 민원성 토목 예산은 늘린 반면 줄어드는 예산 또한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장면에서 제가 준비하지 못한 대목을 짚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관련 예산 808억원도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김상헌 기자는 이렇게 상황을 꿰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면에 어영부영이었고요.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얘기를 주고받았답니다.

-------------------------

2. 예결특위는 외유를 왜 서둘렀을까?

김상헌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 계수조정소위원회 위원들의 외유, 해외 시찰이 문제가 되고 있죠? 342조원에 이르는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인 1일과 2일 장윤석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과 새누리당 김학용·김재경·김성태·권성동 의원, 민주통합당 최재성·민홍철·안규백·홍영표 의원 등 여야 계수조정소위 위원 등 9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1일과 2일 해외시찰을 떠났어요. 예산안 통과가 되자마자 나갔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참 다급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다급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1월 15일까지 해외출장 관련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반납하게 돼 있었던 것입니다. 9박10일 10박11일 이런 일정이었으니 하루라도, 한 시라도 출국을 서둘러야 했던 것입니다.)

고드름 너머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뉴시스 사진.


김훤주 : 1일 출국한 팀은 오전 6시 예산안이 통과된지 아홉 시간만인 오후 3시에 공항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국회는 예산 심사를 어떤 시스템으로 하는지 연구한다는 명목인데요, 한 팀은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나갔습니다. 멕시코·코스타리카·파나마 등을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다른 한 팀은 아프리카 시찰에 나서서 케냐·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을 둘러보고,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돌아옵니다.

김상헌 : 이번에 국회의원들이 들르는 나라들을 보면 모두 따뜻한 나라들인데요. 하필이면 온 나라를 꽁꽁 얼어붙도록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 그런 나라들을 골라잡았는지 모르겠어요.

김훤주 : 이처럼 행선지가 보여주는 바랑 내세운 명목이 어울리지 않아서 비난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할 일은 제대로 못했으면서도 놀러 가는 일만 챙겼다는 얘깁니다. 놀 때 놀더라도 예결특위 위원이면 예산안 심사는 제대로 했어야 하고 계수 조정 소위 위원이면 명목이나 용처가 합당한지 따져 금액을 조절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놀 때 놀더라도 일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김상헌 : 그러게 말씀입니다. 예결특위도 계수조정소위도 회의조차 하지 않고 예산을 4조원이나 늘렸다고 하죠?

김훤주 : 호텔 밀실에 모여 기록도 남기지 않고 예산안을 확정했답니다. 새누리당 장윤석 위원장,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간사인 김학용·최재성 의원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과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1주일 동안 '계수조정'을 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경남의 진주 을 지역구의 새누리당 김재경의원과 김해 갑 민주통합당 민홍철 의원을 비롯해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은 제각각 500억원 이상 4500건에 이르는 '쪽지예산'을 받아줬습니다.

우리 경남의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인 새누리당 김재경 국회의원.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런데도 회의 한 번 열지 않았고 그래서 어떤 과정을 거쳐 무엇 때문에 예산을 늘렸는지 기록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주먹구구로 예산을 늘린 셈인데요, 반면 예산을 줄이는 심사에서는 회의도 모두 여섯 차례나 열고 속기록도 남긴 것과는 크게 대조적입니다.

4. 여야 구분 없이 쪽지 청탁에 놀아난 나랏돈


김상헌 : 쪽지예산이 문제군요. 4500건이나 된다고요. 평균 내면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니까 1인당 15건 정도 청탁 쪽지를 내밀었다는 얘기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입니까?

김훤주 : 증액된 예산을 원래 예산과 견줘보면 좀 알 수 있는데요, 새누리당부터 볼까요. 이한구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은 예산이 37배가량 늘었습니다. 원래는 5억 원뿐이었지만 182억 원이 많아진 187억 원으로 편성됐습니다.

황우여 대표의 지역구 인천 연수구도 애초 예산이 5억원이지만 세 가지 사업이 더해지고 원래 예산까지 늘어나면서 55억원으로 50억원이 늘었습니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건립 증액분 615억원은 여기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계산했습니다.

서병수 사무총장의 지역구 해운대구 예산도 68억원에서 133억원으로 두 배 많아졌고요, 예결위원장인 장윤석 의원 지역구인 경북 영주는 54억원이 증액됐습니다. 예결위 간사인 김학용 의원 지역구인 경기 안성시는 당초 2억 원에서 51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예결위 간사인 최재성 의원과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예산은 모두 115억5000만 원 가량 늘었고, 실세로 꼽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는 20억 원이 많아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몫도 있습니다. 18대까지 지역구로 삼았던 대구 달성은 국립대구과학관 운영비가 47억 원에서 59억 원으로 늘었고 유세에서 약속한 '춘천·속초 고속화철도 조기 착공' 50억원과 ‘제주 공항 인프라 확충' 5억원도 추가됐습니다.

김상헌 : 늘어난 예산이 있으면 줄어든 예산도 있을 텐데, 어떤가요?

김훤주 : 토목 예산 민원성 예산은 늘었지만 자기를 대변해 줄 세력이나 조직이 없는 이들을 위한 예산은 줄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의료비 보조 예산이 2824억원 줄었습니다. 춥고 배고픈 데 더해 돈이 없으면 병원도 갈 수 없게 된 셈입니다.

5. 일반 국민도 나랏돈으로 해외여행 시켜주면 모르지만

김상헌 :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자기 돈도 아닌 나랏돈을 들여 외유를 가고 있습니다. 지금 외국에 나가 있는 의원들이 예결특위 9명뿐만이 아니라 하죠? 보건복지위 오제세 유재중 양승조 의원 등 3명은 인도 싱가포르, 농림수산식품위 최규성 김재원 김영록 3명은 타이 미얀마, 국토해양위 박상은 박수은 2명은 동티모르, 정무위 김영환 민병두 송광호 박민식 이종걸 송호창 김영주 7명은 유럽 등으로요.

김훤주 : 이번에 국민들 비판이 드높아진 또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요, 이처럼 외유 성격이 짙은 해외 출장인데도 관련 경비가 전액 국가 예산으로 집행된다는 점입니다. 제대로 일도 못하면서 특권은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반성이나 자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 사무처는 이번 예결특위 외유에 대해 해마다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관행적으로 해 온 일이라면서 별 일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였거든요.

왼쪽부터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 김학용 새누리당쪽 예결특위 간사, 최재성 민주당쪽 예결특위 간사. 뉴시스 사진.



김상헌 : 그런 관행도 문제지만 그런 관행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더 문제를 키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난날 행적을 보면 그런 특권의식이 두드러져요. 지난해 4·11총선 직후 풍경만 봐도 충분합니다.

임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5월에, 국방위 정무위 예결특위 외교통상통일위 농림수산식품위 의원들이 줄줄이 나갔고, 나간 의원들은 죄다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았거나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들이었죠.

김훤주 : 위로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런 위로를 나랏돈으로 한다는 건 어째 좀 그렇네요.

6. 자기 봉급 인상율을 스스로 결정하는 국회의원의 특권


김상헌 : 옛말에도 있어요. 백성들은 가난한 데 대해 분노하기 보다는(不患貧) 고르지 못해서 더 분노한다(患不均)는 것이죠. 일반 국민들도 국고 지원을 해서 나라에서 해외 여행을 보내준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손도 댈 수 없는 데에서 자기네들만 특권을 누리니까 비판이 쏟아지기 마련인데, 이런 이치를 잘 모르는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밖에 어떤어떤 특권들이 있을까요? 잘 알려지기로는 국회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이랑 국회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이 생각납니다만.

김훤주 : 그 두 가지는 헌법에 규정된 특권인데요, 그것 말고도 국회의원 특권이 숱하게 많습니다. 200가지도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월급에 해당하는 세비를 가장 먼저 꼽고 싶습니다. 의정 활동에 드는 돈은 전액 지원이 되는데도 별도로 받는 세비가 2013년의 경우 1억3796만원이나 됩니다. 4인 가족 도시 근로자 한 달 평균 소득이 2011년 417만9368원(연봉 5015만2416원)인데 이보다 세 배 가량 많아요.

게다가 국회의원들은 자기 월급을 자기가 결정하거든요. 이런 경우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지난해 11월에 자기네 월급을 자기 손으로 20% 올렸습니다. 올해 공무원 월급 평균 인상율 2.8%에 비교해도 터무니없고, 법정최저임금 시간당 4580원에서 4860원으로 280원 오른 6.1%와 견줘도 엄청납니다.

7. 진정성 전혀 없는 그이들의 특권 포기 선언


김상헌 : 그 때도 엄청나게 국민 비판이 쏟아졌지요. 때문인지 민주통합당은 세비 30%를 자진 삭감하겠다는 안을 내놓았고, 새누리당은 그보다 앞서 특권 포기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훤주 : 그렇지만 진정성은 없었다고 해야겠죠, 결과를 보면요. 민주통합당 30% 삭감안은 아직 국회 운영위에 계류돼 있을 뿐이고요, 새누리당 선언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체포 동의안은 부결됐고요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예산 국회가 공전된 부분의 무노동에 대해서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넘어갔으며 의원연금 제도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김상헌 : 맞아요. 의원 연금이라는 게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인 헌정회 회원 가운데 65살 넘은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한 달에 120만원씩 꼬박꼬박 챙겨주는 것인데, 이번 예산안에 전혀 다치지 않고 고스란히 반영됐다지요. 128억원이요.

김훤주 : 명목이 헌정회 지원금인데요, 기득권 특권 지키기에는 여야 구분이 없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노후연금을 120만원 받으려면 다달이 30만원씩 30년을 넣어야 한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을 하루만 해도, 나중에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도, 다른 재산이 많아도, 다른 연금을 받는 것이 있어도, 아무 탈 없이 65살만 되면 평생 동안 받을 수 있고요, 그래서인지 이에 대해서는 여도 야도 문제제기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8. 국회의원회관 자체가 특권 덩어리


김상헌 : 국회의원들이 그밖에도 무슨무슨 특권을 누리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철도·선박·비행기를 사실상 공짜로 타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겠지요?

뉴시스 사진.



김훤주 : 제가 보기에는 국회의원회관 자체가 특권 덩어리입니다. 주차장도 의원 전용이 따로 있고 출입문도 엘리베이터도 의원 전용이 따로 있고요 심지어 국회도서관조차도 의원 전용 열람실이 따로 있습니다. 게다가 국회에 있는 이발관·미장원·헬스장·목욕탕, 의료시설은 공짜입니다. 의원실도 외국은 보통 10평 안팎인데 우리나라는 45평이나 됩니다. 물론 사용료는 내지 않습니다.

김상헌 : 뿐만 아닙니다. 공항 귀빈실·VIP주차장 출입, 입국·출국할 때 공항 수속 보안검색 약식 처리, 골프장 가서 골프 칠 때는 회원권 소지자 차원 우대……. 그리고 상임위원장에게는 한 달에 1000만원씩 한 해 1억2000만원에 이르는 판공비가 추가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도의원이나 시·군의원은 안되는데 사무실 운영 경비와 우편요금도 지원을 받고요.

김훤주 : 저도 한 번 꼽아보겠습니다. 세비 말고도 수당이나 지원금 명목으로 따로 받는 돈이 한 해 평균 9915만원, 후원회·출판기념회 후원금 연평균 7000만원, 보좌관 7명과 인턴 2명 인건비 3억9846만원, 자동차 기름값 연간 1320만원, 차량 유지비 420만원도 주어집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는 돈입니다.

김상헌 : 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입법권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도입한 것들이라지요? 우리 유권자가 당신네 일 잘 하니까 그런 정도는 누려도 된다 이렇게 챙겨준 게 아니고요. 이렇게 해서 국회의원 자체가 특권층이 되고 만 것 같은데, 이런 특권층이 보통 일반 사람들 사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지 생각이 들 정도네요.

김훤주 : 그렇죠. 이런 특권층은 일반 서민들 심정을 잘 모릅니다. 보통 사람들을 위해 일할 줄도 모르고요. 다만 득표를 해야 당선이 되니까 표를 따라 다닐 뿐이죠. 그러니까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가 잘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아 갑갑한 노릇입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최혜선, 마흔에 세상 나와 비행 청소년 상담

$
0
0

최혜선(56) 이야기샘상담연구소 소장은 나이 마흔에 세상으로 나온 여자랍니다. 그 때까지 최혜선 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두 딸을 낳아 길렀습니다.

가정에서 맞닥뜨린 해결 과제도 없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다른 이들의 문제까지 함께 풀어보려고 애써왔고 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꺾이지 않고 나름대로 새로운 방안을 찾아 좀 더 나은 쪽으로 실타래를 풀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로 비행 청소년을 상대하는 최혜선 상담사

“요즘 뭐 하세요?” 11일 저녁 창원 성산구 사파동 사회교육센터에서 만난 최혜선 소장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습니다. 상담 활동을 하는 줄은 알고 있지만 요즘 들어 하고 있는 상세 내용은 몰랐기 때문이랍니다.
 


“법무부에서 대안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 오는 청소년들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어요. 대안교육센터는 의령에 있던 소년원이 바뀐 거예요.”

의령 소년원이라…… 기억을 더듬으니 2004년인가 의령군 용덕면 소상리 용덕정보통신고 건설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분신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법무부에서 창원 소년원 산하로 교육기관을 지으면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던 것입니다. 그 뒤 용덕관광정보고등학교로 문을 열었다가 2007년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법무부 대안교육센터는 2007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어떤 아이들이 오느냐 하면 이렇습니다. ①법원이나 검찰에서 맡긴 비행 청소년 ②교육조건부로 법원에서 기소유예 판결을 받은 청소년, ③학교생활 부적응 학생. 대안교육을 중심으로 삼아 그이들의 비행을 예방하는 기구가 대안교육센터인 셈입니다.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창원지방검찰청 근처 대한빌딩에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 오는 청소년들에게 상담과 교육을 하는 전문강사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가을 '이야기샘상담연구소'(블로그
http://blog.daum.net/chs1445)도 열었네요. 소장이에요. 상담을 하다보니 상담 받는 사람 비밀이 보장되는 공간이 필요해서요. 상담 대상은 어른 아이 가리지 않는데 아무래도 청소년이 많아요. 물론 혼자만 상담하지 않고 가족 이를테면 부모도 함께 하지요. 그래야 제대로 할 수 있고 효과도 크거든요.”

나이 마흔에 세상에 나온 까닭은


최혜선 소장은 나이 마흔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 여성운동 같은 사회운동에 몸을 담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청소년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고 있으니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가정주부로 살았어요. 1997년인가 마흔 줄에 접어들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창원여성의전화와 부설 창원 성폭력상담소에서 공부도 하고 상담도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을 하면서 세상에 나왔지요.

특별한 계기는 아니겠지만 주부로 살면서 우리 사회에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랑 맞닥뜨린 적이 있었어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되는 불이익이 많더라고요. 게다가 여성으로서 권리를 찾으려니 절차랄까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웠어요. 그래 생각이 들었죠. ‘나처럼 배운 여자도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데 사정이 더 어려운 여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어요.”


그런데 최 소장이 지금 하는 일은 여성 분야가 아닙니다. 처음 시작을 여성 분야에서 했고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처음 몸담은 분야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은 줄 알고 있는데…….


“90년대 후반만 해도 여성의 처지가 아주 어려웠어요. 여성운동이 활성화됐고, 몇 해 지나니까 나름대로 여성의 지위가 상승이 돼서 저 같은 사람은 없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2002년 12월에 법무부 창원 보호관찰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교육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그러니 와서 교육 좀 무료로 해달라’고요.”


그러면서 최 소장은 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요즘은 ‘여성 시대’잖아요?” 했습니다. 어라? 운동을 하는 여성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인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말한 배경이 이해가 됐습니다. 보호관찰소에서 경험한 바가 남달랐던 것입니다.


보호관찰소에 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모두 범법자인데 갖가지랍니다. 가정폭력도 있고 성폭력도 있고 성매매도 있고 마약(류)사범도 있습니다. 물론 청소년 범죄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 가운데 최 소장은 2004년 6월 전원 자원봉사자로 이뤄진 ‘보호 가해자 상담센터’를 꾸리고 센터장을 맡았습니다.

여성운동 출신이면서도 ‘남자가 진짜 불쌍하다’는 사람

“처음에 가정폭력 가해자 교육을 맡았습니다. 가해자들을 만나면서 남자들이 진짜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사람들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자기 이야기를 절대 남들에게 않는 거죠. 스스로를 억누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어요. 나름 참고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굉장히 안 됐더라고요.

여자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푸는데, 남자도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참다 보니 폭발하고, 폭발하면 아내를 구타하고, 아내를 구타하니 이렇게 나와 처벌을 받게 되고…….”


그래도 맞는 여자가 손해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긴 하다면서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시기였어요. 상담기관 같은 데서 남편 폭력 대응 방법을 잘 알려줬지요. 그래서 여자들은 나름 굉장히 지혜가 생겼는데도 남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폭력만 하고 변하려고 할 줄을 몰라요. 그래서 붙잡혀 와 추한 모습을 보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남자를 이용하는 여자도 없지는 않아요.”

2004년 당시 최 소장은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구멍 뚫린 가슴을 어쩌지 못해 채팅을 하였고 그녀를 딱 한 번 자신의 차 안에서 팬티를 벗긴 것뿐인데…. 현장을 아내가 사람을 사서 잡을 줄이야. 그녀의 남편에게 알리지 않는 대가로 집의 명의를 아내에게 넘겼는데 왜 이렇게 매일 사람을 못살게 들볶느냐는 것이다.”

이는 남자 얘기입니다. 여기 맞서는 여자 얘기는 이렇습니다. “결혼 생활 20년에 남은 이 배신감 그 지긋지긋한 고생들, 나에게는 돈을 안 쓰고 쓸데없는 여자에게 아까운 돈을 쓰다니…….”

최 소장은 창원 보호관찰소에서 활동하며 청소년도 맡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년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의식이 하나도 없어서 오토바이 훔친 아이한테 주인이 불쌍하지 않느냐? 물으면 ‘내가 마음에 들어 가져가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고 합니다. 최 소장은 이런 아이들이 있는 이상 ‘대한민국은 곧 멸망한다’고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성매수를 한 어른들은 그래도 변화가 있는데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처음에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거기 재미를 붙여 계속 만났는데 지나고 보면 원점으로 돌아가 있어요. 너무 잘하고, 제 말도 아주 잘 듣고 해서 나가서 올바른 아이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몇 번의 만남 그런 것으로 변화가 안 된 거지요. 자기 집안이 변하지 않으니 다시 비행을 저질러서 와요.”

최 소장은 여기서 처음 한계에 부닥쳤답니다. 도저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태 배운 공부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창원대학교 일반 대학원 교육학과 상담 심리 전공이었습니다. 창원보호관찰소 일은 2006년 5월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일을 시작한 데가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자비사에 있는 마야청소년쉼터. 2006년 11월에 ‘취직’을 했습니다. ‘남자 청소년’이 대상이고 ‘단기’가 아닌 ‘중장기’ 생활보호시설이었습니다. 최 소장은 여기서 아이들과 숙식을 같이했고 3교대로 24시간 일을 했습니다.
 

“같이 살면서 좀더 많이 돕고 생활지도도 많이 하면 바로 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취직했고, 다시 애들과 상담을 시작했어요. 쉼터에 오는 애들은 상담하기조차 힘든 경우가 많아요. 어쨌든 정부에서 받는 그 돈으로 최고 음식과 최고 옷으로 최선을 다하면 변할 것이다, 하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달라 하고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러면서 불평불만은 그렇게 많더라고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어요. 1년이 지났는데도 성공 사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 이상했지요.”

말하자면, 대학원에서 공부한 바가 큰 도움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최 소장에게 닥친 두 번째 한계였습니다. 최 소장은 정신분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가족 상담도 공부했습니다. 경남가족상담연구소(소장 김도애)에서 ‘프로이트’를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됐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 양육을 못 받으면 매우 문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섯 살 되기 전에 부모 양육과 사랑을 못 받은 애들은 문제가 있다, 그 뒤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힘들다, 였습니다. 무력증이 심해요. 맨날 잠만 자고 의욕도 없는 까닭이 여기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최하 세 살까지는 엄마아빠가 키운 애를 받자’고 했습니다.

논란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니 2008년 들어 애들이 조금씩 변했고 쉼터 전체 분위기도 아주 좋아졌습니다. 다섯 살 이후 이혼 등으로 가정이 해체된 아이들은 별 문제가 아니었어요. 애들 목표 의식도 생겼고요, 좀더 끌고 가면 정상적인 사회인이 돼서 나라에 이바지하는 국민이 될 수 있겠다 싶은 보람도 느꼈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 부모 양육을 못 받아 문제가 매우 많아져버린 아이들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까 (마야청소년쉼터 같은 데가 아니라) 국가가 특별히 치료기관을 만들어 보살펴야 맞다고 생각하고요.”


“희망과 목표를 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스펀지나 블랙홀 같았어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안 될 거예요’ 했는데 나중에는 성적을 올리려고 밤 한 시 두 시까지 공부하기도 했어요. 같이 안 자면서 가르쳐 줬지요. 일곱 가운데 둘이 대학을 갔습니다. 대학 갈 수 있는 애가 더 있었는데 부모가 기다리고 지켜주지 않으니까, 돌아갈 데가 없으니까 목표가 생겼다가도 금방 까부라지더군요.”


“마야 쉼터에서는 아이들한테서 우울함이 없어지고 명랑한 얼굴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대안교육센터에서는 수강하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좋아요. 또 아이들이 저를 믿고 의지하니 좋아요. 가만 생각해 보니까, 경찰·검찰에 가서 대변해주거나 자기 야단하는 사람한테 맞서거나 알바 가서 월급 적게 받았을 때는 가서 따졌는데, 부모들도 하지 않았던 일인데 그렇게 자기 지켜주고 앞으로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보통 이런 쉼터에서는 사람이 3년을 못 버틴다고 합니다. 최 소장은 2010년 10월까지 4년 동안 일했습니다. 지금도 쉼터에서 함께 지낸 일곱 친구와는 지금도 연락이 되고 만남도 한답니다. 특별하게 에너지가 많아서일까요? 최 소장은 ‘주님의 사명’이라 했습니다. 그이는 크리스천입니다.

지난날 어려움은 지금 활동의 피와 살

청소년 상담사인 그이의 지금 직책은 이야기샘상담연구소 소장과 창원대안교육센터 전문강사. 또 있습니다. 박사과정 대학원생. 올해 경남대학교 일반대학원 교육학과 교육심리 전공에 진학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그이는 상대방에게 내놓기만 하고 베풀기만 했을까? 잘 사는 편이 아닐 텐데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먹고사는 문제요? 딸 둘이 있는데 결혼 등 자립해 크게 돈 들 일이 없고요, 상담하면서 다 돈을 받아요. 사실 상담은 공짜로 하면 효과가 떨어져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무료로 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창원여성의전화에서도 많이 배웠지만, 마야 쉼터, 창원보호관찰소서는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고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날것 그대로 보고 듣고 알게 됐어요. 지금 하는 일에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여태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절대로 걸림돌이 아니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줬습니다. 이리저리 부르는 데가 많아 바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힘든 일이 아니고 행복하니까 이쪽으로 계속 몰입을 합니다.”


“지난 날이요? 계속 달려왔다고만 생각했는데 막히면 그것을 극복하는 식으로 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좌절이 엄청 많았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한 단계 상승을 위한 준비 또는 시련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생각을 많이 하고, 다른 좋은 방법이 없나 찾아보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제 학교 부적응 비행 청소년 분야 상담이 제 궤도에 올랐다고 느껴져요. 최선을 다해 진정성 있게 도와서 정신과 약까지 먹었던 애가 멀쩡해지면 부모도 깜짝 놀라기 마련이거든요.”


김훤주

동화로열어가는상담이야기수용과공감의지혜
카테고리인문 > 심리학
지은이박성희 (이너북스, 2007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전라도말을 보니 신화학이 생각났다

$
0
0

1. 30년만에 다시 떠올린 기호학과 신화학

1980년대 초중반 대학 다니던 시절 기호학(記號學)이랑 신화학(神話學)을 참 재미나게 공부했던 한 때가 있습니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생각나는대로 말씀해보면 이렇습니다.

기호학은 기호의 형성과 유통에 대한 이런저런 논리들을 다룹니다. 기호는 원래부터 아무 뜻이 없는 것일 수 있는데 그것이 한 사회에서 일정한 관계 안에서 만들어져 쓰이는 과정에서 어떤 뜻을 담아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쓰는 말이나 글도 이와 같은 기호 가운데 하나인데, 그런 기호는 죄다 그 자체로서만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기호가 통용되는 사회 또는 집단을 벗어나면 그 기호는 이미 기호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기호에서 중요한 것은 변별성(辨別性)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 이것은 저것과 다르다, 이런 차이가 없고 그런 차이에 따라 구별이 되지 않는다면 절대 기호가 될 수 없습니다. 말(語)과 말(馬), 배(腹)와 배(舟)가 나는 소리에서 차이가 없으면 그 뜻하는 바도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이치입니다.


2. ‘현대의 신화’는 어떤 노릇을 할까?

신화학도 무척 재미가 있었습니다. 신화의 생성·유통과 소멸 따위를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저는 현대 사회의 신화가 더욱 그랬습니다. 신화의 특징은 우연성(偶然性)입니다. 물론 신화의 내면 또는 배경에는 나름대로 필연(必然)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철두철미 우연입니다.

신화는 인간이 아닌 신(神)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도 그러하겠는데요, 우리나라 갖은 건국신화를 봐도 이 일과 저 일 사이에는 무슨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필연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인과 관계도 없으며 대부분 ‘원래부터 그러한’ 사실 또는 존재로만 제시될 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신화는 그 자체로써만 설명이 될 따름입니다. 하늘에서 알이 내려왔다는 가야의 건국신화도 ‘원래부터 그러할’ 따름이지 무슨 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일러주지 않습니다. “왜?”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 “신(神)이니까”뿐입니다.

이는 인간의 영역으로 한 걸음 다가온 전설, 그보다 더 인간화된 설화, 나아가 인간사를 다루는 이야기나 소설(小說)이랑 견주면 이런 특징이 좀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또 춘향전 같은 고대 소설은 신화적 요소가 강해 ‘원래부터 그러한’ 것이 많은 반면, 근대를 거쳐 현대로 올수록 소설은 필연이 지배하는 영역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신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건희가 부자인 까닭, 삼성이 돈을 잘 버는 까닭, 이런 따위가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질문 또는 의문의 대상으로 삼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묻는다 해도 그 대답은 언제나 대체로 “이건희니까” 그리고 “삼성이니까”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따져보면 이건희가 부자이고 삼성이 돈을 잘 버는 까닭은 인과관계를 벗어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에 노조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삼성이 엄청난 비자금으로 검찰이나 정치인이나 장·차관이나 고위 공무원을 주물러 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런 ‘현대의 신화’는 그 구실이 이런 생생한-그러나 지배집단으로서는 인정하기 싫은-인과 관계를 가리는 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머리를 돌리지 못하게 하는 그런 구실이 주어져 있는 셈입니다.

3. 창평장에서 실감한 기호학의 실제

전남 담양 창평장에서, 약으로 쓰이는 것들에 붙여 놓은 이 이름표들을 보면서, 20년도 훨씬 더 옛날에 배운 기호학과 신화학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야셍’은 ‘야생(野生)’입니다. ‘은헹’은 ‘은행(銀杏)’입니다. 압권 가운데 압권인 ‘야셍옸나무’는 ‘야생 옻나무’가 되겠습니다.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야셍누름나무’는 ‘야생 느릅나무’고 ‘유금피’는 느릅나무 뿌리 껍질을 뜻하는 ‘유근피(楡根皮)’입니다. ‘누뭄나무’는 제가 소견이 좁아 잘 모르겠는데요, 아마도 ‘느릅나무’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국산헉게나무’는 ‘국산 헛개나무’일 테고요, ‘염두륨’은 ‘염두릅’이 아닐까 싶습니다. ‘업나무’는 ‘엄나무’가 확실해 보이고요, ‘오갈피나무’는 ‘오가피나무’라고도 한답니다. ‘젠피’는 무엇일까요? ‘제피’일 것 같은데요, ‘초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줄 압니다. 이어지는 ‘땅까지’는 ‘땅버들’이겠지요.

저는 여기서 ‘야셍’, ‘은헹’, ‘옸나무’, ‘누름나무’, ‘유금피’, ‘누뭄나무’, ‘헉게나무’, ‘염두륨’, ‘업나무’, ‘오갈피나무’, ‘젠피’, ‘땅까지’ 이 모든 것이 그에 걸맞은 대상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제 노릇을 확실하게 하고 있음을 봤습니다.

‘야생’이라 하지 않아도, ‘은행’이라 하지 않아도, ‘옻나무’라 하지 않아도, 이것들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나타내지 않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셍’이라 함으로써, ‘은헹’ 또는 ‘옸나무’라 함으로써, 그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더욱 생생하고 씩씩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아주 세게 울려왔습니다.

처음부터 옳고 그름이 있지는 않(았)으며, 어쨌든 이것과 저것이 같지 않고 다름을 나타내면 된다는 기호(학)의 기본을 충족하는 그런 기호를 현장에서 실감나게 체득했습니다. 밋밋하게 넘어가지는 ‘생’·‘행’·‘헛개’ 따위가 아니라, 혓바닥에 더해 아래턱까지 확실하게 돌리지 않으면 발음하기 어려운 ‘셍’·‘헹’·‘헉게’ 따위여서 더욱 뚜렷하게 뜻이 새겨져 왔습니다.

4. ‘현대의 신화’에 젖어 있었기에 터져나온 웃음 

아울러 신화의 본질도 곰곰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표기를 보고 웃음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그렇게 터져나온 웃음에 담긴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 표현들의 생생함 덕분에 웃었음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것이 ‘사투리’여서 웃어졌던 측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투리는 우스갯거리입니다. 사투리는 천박하기도 하고 무식함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투리는 표준말 앞에서 미안해 하고 스스로를 숨기려 합니다. 그런 사투리를 저렇게 마음껏 싸질러 놓았으니 틀림없이 부끄러운 줄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사투리는 없습니다. 당연히 표준말도 없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표준어라고 하는데 가만 따져보면 더없이 황당무계합니다. 도대체 교양이 무엇일까요? 김치조차 제대로 담글 줄 모르는 사람 보고 교양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 나부랭이 하나 더 안다고 교양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는 분명 관점의 차이일 따름이고요, ‘교양 있는 사람’이 표준말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 자체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서울말만 표준어가 돼야 하는지 또한 정당한지 여부를 따져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투리도 없고 표준말도 없으며 다만 지역말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말이 있고 경기도말이 있고 충청도말이 있고 강원도말이 있고 경상도말이 있고 전라도말이 있을 뿐이지 그 사이에 높낮이는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신화는 이런 따져봄을 못하게 만듭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말은 사투리’라고 규정한 다음 ‘사투리는 교양 없는 것들이 쓰는 천박하고 무식한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가 바로 지역말에 대한 ‘현대의 신화’입니다. 그런 신화가 제게도 체현돼 있었습니다.




‘야셍’·‘은헹’·‘헉게나무’·‘젠피’·‘업나무’·‘옸나무’ 따위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싱싱함이 즐겁고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게서 느닷없이 터져나온 웃음 가운데 한두 줄기는 앞에 말씀드린 ‘현대의 신화’에 스스로가 ‘뼛속까지’ 젖어 있었기에 나온 산물이라는 반성을 ‘뼈저리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평장은 아주 좋았습니다. 5일·10일에 서는 이 장은 유과를 비롯한 한과와 엿이 명물이었습니다. 맛도 썩 괜찮았고요, 이에 들러붙는 끈적거림도 없었습니다. 싸게 나오는 죽물(竹物)도 좋았고, ‘할마시’들 들고 나와 파는 콩·팥·녹두나 두부·떡국도 좋았습니다. 국밥도 맛이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값도 비싸지 않고 싼 편이었습니다.)

김훤주
남도5일장
카테고리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김옥경 (민속원, 2010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여러분의 축하 응원 격려 칭찬글을 보내주세요

$
0
0
경남도민일보의 2013년 모토는 '독자와 함께하기'입니다. 더 많은 독자들과 더 자주 만나겠습니다.

매일 지면에 독자들의 사진과 글이 실리도록 하겠습니다. '투표 인증샷' 같은 공익이벤트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겠습니다.

'함께 축하해주세요'
'함께 기뻐해주세요'
'함께 응원해주세요'
'함께 격려해주세요'
'함께 칭찬해주세요'
라는 지면은 그래서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매일 여러분의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본인 또는 가족, 지인의 생일, 결혼, 출생 등 축하할만한 어떤 일이라도 좋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다면 그 또한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겠죠.

-입학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한 일, 직장에서 승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기념일을 맞은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주는 축하메시지도 좋습니다.

-지인이 사회에 귀감이 될만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면 널리 알려주세요.

-노동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격려와 응원 메시지도 환영합니다.

물론 축하와 격려, 응원을 받을 분의 사진도 첨부해주십시오.

경남도민일보에서 매일 훈훈한 얼굴과 기분좋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축하 격려 응원 메시지, 사진 보내실 곳

이메일 sori@idomin.com
페이스북 페이지 http://www.facebook.com/idomi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에 대한 신학림 정운현 추천사

$
0
0
우리나라 모든 신문은 위기다. 한두가지 측면이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위기다. 빈곤의 악순환 구조도 두드러진다.

신문이 위기에 빠지면 가장 큰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독자와 국민이다. 서울과 지역 할 것 없이 모든 신문과 신문사가 위기에 빠진 지 오래다 보니, 권력과 강자에 대한 감시견(watch-dog) 역할과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나 의무는 사라지거나 퇴색했다.

대신, 오로지 신문과 신문사의 생존 자체가 지상목표가 되어 버렸다.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멸종 위기 동물’(사람을 동물에 비유해서 죄송하지만)로 불릴만한 지역신문 편집국장이 지역신문에 복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는 책을 냈다.

해법이 아니라 생존과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수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공사례 보고서다. 지역신문 종사들만 읽을 책이 아니다.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신학림(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신학림

정운현



김주완 국장은 내가 특별히 아끼는 언론계 후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국장과의 인연은 90년대 말 민간인학살 등 과거사 관련 취재를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 그 폭이 깊어지고 두터워졌다.


취재 및 경영여건이 열악한 지방지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반듯한 언론인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남달랐다.

평기자 시절이나 편집국장이 된 이후에나 그는 늘 현장에 있었고, 또 늘 선두에 서서 고정관념과 기성체제에 대해 도전했다. 스스로 ‘지역신문을 위한 십계명’ 만들어 공공저널리즘을 추구했고, ‘사원윤리강령’과 ‘기자실천요강’을 제정해 기자의 품격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관행처럼 받아오던 설·추석 선물은 전부 불우이웃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편집국장 스스로 종아리를 걷고 ‘반성문’을 쓰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신문은 좋아졌고 이는 곧 경영개선으로 이어져 편집국장 취임 2년반만에 만성적자 꼬리표를 뗐다. 드문 성공사례는 주변의 부러움을 샀고, 그는 전국을 다니며 ‘개혁 전도사’가 되었다.

“가수가 가창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신문 역시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품고 그는 오늘도 부끄럽지 않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으로 하루를 보낸다.

정운현(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여론조사로 통합 창원시청 위치를 정한다고?

$
0
0

1. 여론조사로 국보 제1호가 숭례문인지 아닌지를 정할 수 있을까

며칠 전 발표된 창원시 청사 관련 여론 조사 결과가 많은 이들이 했던 예상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통합 창원시 새 청사를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임시 청사로 쓰고 있는 옛 창원시 청사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요.


주권자인 시민을 갖고 저희들끼리 완전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2010년 당시 통준위 합의를 끌어냈던 이들 또한 예전 약속(=합의)을 뒤집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같기도 합니다. 장동화 창원시의원이 대표격입니다.

시일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지난 11일 금요일 MBC경남 라디오광장에서 통합 창원시 청사 위치 선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창원시의 발표를 두고 얘기한 내용을 올립니다. 창원시 청사가 어디에 들어설지 정하는 권한은 창원시의회에 있지만, 의회가 제 구실을 못하니까 박완수 창원시장이 끼어드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는 노릇인데요. 왜냐하면 2010년 통합 당시 약속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봄소풍을 어디로 갈는지는 여론조사로 정할 수 있고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보 제1호가 숭례문인지 아닌지는 그런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행위를 창원시가 하고 있습니다. MBC경남의 김상헌 기자와 더불어 이에 대해 한 번 따져봤습니다. 여론조사라는 빛깔만 그럴 듯한 허울로 무엇을 가리려 하는지가 빤히 보입니다.

------------------------------

김상헌 : 창원시가 새로 지을 시청사 위치 선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신축 야구장도 어디에 들어설지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

김훤주 :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상대로 옛 마산 지역과 진해 쪽 여론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김상헌 : 어떤 내용인가요?

2. 통준위 합의를 거스르는 여론조사 내용

김훤주 : 2010년 통합 창원시 출범 당시 있었던 통준위 합의를 깨고 있다는 것입니다. 합의를 따르면 새 청사 입지 1순위는 마산과 진해인데 이를 지키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입니다. 마산살리기 범시민연합은 11일 오전 이런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으며 희망진해사람들도 비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의원들도 출신 지역에 따라 반응이 엇갈린다고 합니다. 창원 출신은 비교적 조용하고, 진해쪽은 조금 미지근한 느낌이 있고 마산 출신 시의원들이 대체로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발표 뒤 반대 기자회견에 나선 마산 지역 의원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창원 출신은 조용한 편이고, 마산 출신은 반발이 크다, 그렇다면 여론조사 내용이 창원에 유리하고 마산에 불리한 모양이겠네요?

김훤주 : 그렇습니다. 마산 창원 진해 제각각 2000명씩 모두 6000명에게 묻겠다는 건데요. 먼저 그 묻는 내용이 옳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김상헌 : △청사를 새로 지을지 아닌지 △새로 짓는다면 어느 지역에 지어야 하는지 △언제 지어야 하는지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등을 묻는다지요?

김훤주 : 통합준비위원회, 통준위 얘기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통준위 합의를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통준위 합의를 따른다면, 1순위를 마산과 진해로 꼽았기 때문에, △청사를 새로 지을지 말지는 물을 필요도 없고 △어느 지역에 지어야 하는지를 물을 때도 옛 마산과 진해 지역을 특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김상헌 : 지금 예상되는 설문 문항은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특별하게 새로운 결과가 나오기 보다는 새 청사를 지을 필요 없이 지금 임시 청사로 쓰고 있는 옛 창원시 청사를 리모델링하자는 의견 또는 새로 짓더라도 창원에 짓자는 의견이 많으리라고 예상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3. 신축 야구장이 창원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김훤주 : 게다가 야구장 위치를 여론조사를 앞두고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여론 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요.(실제로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김상헌 : 야구단인 NC다이노스도 새 야구장 위치로 창원을 선호하고 있고 창원시가 시행한 용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죠?

김훤주 : 그래서 장담하는데요, 창원이 야구장 입지 예정지로 지목될 개연성은 전혀 없습니다. 마산이 우세하고요 진해 또한 개연성은 있습니다. 만약 창원에 야구장이 들어선다고 창원시 박완수 시장 집행부가 발표한다면, 통준위 합의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읽히겠지만 여태 행보로 볼 때 그렇게 할 리는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더군요.

21일 있었던 창원시의 뻔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 장면.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창원에 야구장이 들어서면서 동시에 창원시 새 청사까지 창원에 짓거나 지금 청사를 리모델링하기는 아무래도 명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겠네요. 그러면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마산 지역에다 야구장을 내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군요.

김훤주 : 그렇습니다. 진해는, 대다수 주민들까지 직접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통합이 되면서 예산 배정 등에서 인센티브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아주 큰 반발은 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산이 문제인데, 그래서 야구장을 마산 사람한테 주는 떡 하나 더 정도로 충분히 써 먹을 수 있겠지요.

4. 마산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오히려 창원보다 느긋할 수 있다


김상헌 : 그런데 마산 지역은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 모두 구분 없이 죄다 새 청사 마산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잖아요.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악착 같이 새 청사를 가져오려고 나서지 않을까요?

김훤주 :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 출신 의원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오히려 그렇게 목을 매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김상헌 : 어째서죠?

김훤주 : 물론 새 청사를 마산으로 갖고 올 수 있으면 그이들로서는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지금 국면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세가 마산이 압도적이거든요.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성향이 좀더 증폭돼 나타났고요.

김상헌 : 갖고 오면 좋지만 갖고 오지 않더라도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김훤주 : 맞습니다. 새누리당 공천이 문제지 실제 선거에서 낙선할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기색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창원 쪽이 더 심각합니다. 창원은 진보진영의 기세가 드높아 새누리당으로서는 조금만 잘못 하면 언제라도 의석을 놓칠 수 있는 지역이거든요.

김상헌 : 그렇군요. 또 지난 총선을 보면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된 성산구 강기윤 의원도 의창구 박성호 의원도 창원시청 사수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니까요. 창원 쪽 사람들 관점에서 보자면, 만약 새 청사를 마산으로 보냈을 경우, 공약을 못 지킨 데 따른 추궁을 마산보다 훨씬 더 심하게 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5. 사기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장동화 창원시의원

2010년 통합준비위 위원장 당시 장동화 의원 모습.


김훤주 : 그러니까 선거 공학으로만 보면 마산 쪽 현역들이 부담이 덜하다는 얘기인데요. 하지만 대신에 시민들 사이의 갈등은 심해지고 상실감 또한 더욱 커질 공산이 높습니다. 정치가 자기네들 이해관계에 따라 나뉘어서 자기네들이 만들어낸 합의조차 스스로 깨고 그로 말미암아 시민들은 아픔이 커지고 의원들은 시민들 희망을 보듬지 못하는 결과가 눈에 빤히 보입니다.

김상헌 : 합의를 스스로 깬다…… 통준위 결정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김훤주 : 그렇습니다. 특히 통준위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옛 창원시 의회의 장동화 의원은, 지금도 창원시 의원입니다만, 통준위 합의를 두고 그건 별 의미가 없다, 통합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따름이다, 하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시거든요. 정치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기본이 돼 있는 분이라면 이렇게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기에 가까운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봅니다.

김상헌 : 아주 세게 말씀하시는데요……. 여론조사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다음 주에 본격 착수해 조사기관을 정하고 구체적인 문항도 마련한 다음 여론 조사를 실행한다는 계획이지요? 아울러 창원시 의회가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데 여기서 새 청사 위치 문제를 논의할 테고요, 여론조사 결과는 이번 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의회에 제출되고요.

서민 애환 체험을 한다는 박완수 창원시장. 그런데 새 청사 입지 현안을 풀려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박완수 시장.



김훤주 : 여론조사 실행에 앞서 창원시 집행부는 야구장 위치부터 먼저 발표하겠지요. 다음 주 월요일 14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실제 발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창원시 의회도 청사 입지 문제를 논의하는데, 여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것이 창원시 주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6. 이제 다른 대안도 함께 찾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상헌 : 그렇겠죠. 창원으로 결정되면 마산과 진해가 반발할 것이고 마산이나 진해로 결정되면 지금 임시 청사가 있는 창원이 반발할 테지요. 그러면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김훤주 : 새 청사 위치를 두고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 집행부도 시의회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피로감이 쌓여 온 것은 사실이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청사 문제가 상징성이라든지 실리라든지 측면에서 나름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평범한 서민들로서는 시청이 어디에 있든 자기가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는 그런 측면도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어쩌면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김상헌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죠?

김훤주 : 서민 생활과 밀착돼 있는 모든 업무를 시청 본청에 권한을 두지 말고 다섯 개 구청으로 모두 넘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원도 본청은 대폭 줄이고 구청쪽으로 많이 보내는 것입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오는 3월로 예정된 조직 개편을 통해 업무를 구청에다 넘기는 방향으로 가기는 하는데 인원까지 그에 걸맞게 조정하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일은 늘어나는데 사람은 그대로여서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역효과를 어쩌면 낳을 수도 있습니다.

7. 창원시 청사가 옛 창원 지역에 있어도 나쁘지 않다


김상헌 : 지금 얘기는 창원시 청사는 지금 있는 그대로 두고 가자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은데요.

창원시 임시 청사로 쓰고 있는 옛 창원시 청사.


김훤주 : 통준위를 통해 약속=합의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그것을 지킬 생각도 없는 장동화 창원시 의원 같은 지역 정치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생각대로라면 다시는 시장이나 의원으로 뽑지 말아야겠죠.

어쨌거나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지금 옛 창원의 계획도시는 원주민들의 크나큰 희생 위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거든요. 지금 공단이나 계획시설 지구, 관공서 따위는 거의 대부분이 토지를 강제수용하다시피 해서 만들어졌어요. 정확하게 1대1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희생을 인정한다면 청사가 그대로 있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김상헌 : 하하, 개인적인 생각이신 거죠? 어쨌든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본청은 기획 조정 업무만 남기고 나머지 실행 집행 업무는 구청으로 모두 넘기는 업무와 인원 조정만으로 가능할까요?

김훤주 : 저도 그런 부분이 갑갑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마산과 진해 지역 사람들의 허해져 있는 심정을 달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시의회가 이런저런 방안을 만들어내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유통시키면서 중지를 모아나가야 하는데, 지금껏 나타난 모습은 오로지 새 청사 입지 선정에만 매몰돼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지역 정치권이 새로 물꼬를 튼다면, 어쩌면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봅니다. 통합된 세 지역 가운데 어느 하나도 소외되는 지역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결과도 그런 노력에 걸맞게 도출해 내는 등으로 창원시 집행부와 시의회가 앞장서야 하겠지요.

김상헌 : 피로감이 더는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 상실감을 달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시의회부터 앞장서서 논의를 만들어 내고 생각의 물꼬를 터 나가야 한다 이런 정도군요.

김훤주 : 예,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홍준표 행패 보면 김두관이 생각난다

$
0
0

1. 홍준표 '도지사'는 김두관이 만들었다

지난 주 18일 금요일에도 어김없이 MBC경남 라디오광장에 출연해 김상헌 기자랑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주고받은 내용은 홍준표 신임 경남도지사의 인사였습니다.


모조리 자기 옆사람들로 자리를 채우는 안하무인이었습니다. 자기를 뽑아준 주권자인 경남도민들은 별로 생각지 않고 선거 운동에 따른 논공행상 또는 보답이 전부였습니다.

홍준표 본인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경남에 사는 유권자가 볼 때는 행패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내내 저는 김두관 전임 도지사가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경남서 한 출판기념회 당시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왜냐하면, 그이가 중도 사퇴를 하지 않았다면 홍준표를 도지사로 뽑는 재선거가 없었을 테니까요. 재선거가 없었다면 저렇게 지금 새누리당의 홍준표 선수가 개판 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됐겠지요.

김두관의 사퇴는 그이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만의 힘으로 도지사가 됐다면 사퇴도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겠지만, 당시 무소속이었던 그이는 민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들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습니다.

그런데도 김두관은 자기를 밀어줬던 세력들이 대부분 반대하고 말리는데도 도지사를 사퇴하고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갔습니다. 이는 ‘도지사직을 끝까지 수행하겠다’는 약속을 어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이의 행보는 도지사 재선에도 당연히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자기자신의 출세를 위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밀어줄 유권자는 없었습니다. 김두관 탓에 야권 후보는 좀더 그렇게 비쳤습니다.

홍준표 현 지사가 지금 부리는 행패의 뿌리는 김두관 전 지사에게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두관 탓에 앞으로 적어도 경남에서 야권 도지사가 20년 안에는 나오기 어렵게 됐다’는 말이 당시 떠돌았는데, 이를 홍준표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니 저리도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지요.

-----------------------------------

2. 경남발전연구원 원장도 홍준표 핵심 측근


김상헌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홍준표 신임 도지사 인사를 두고 말들이 무성하던데, 여기서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해 보죠. 홍 지사는 김정권 전 국회의원을 경남발전연구원 원장으로 내정을 했죠?

김훤주 : 그런데 경남발전연구원은 경남도의 정책 연구 전문기관인데, 원장 내정자는 정책 전문가가 아니라 경남도의원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직업 정치인이라는 면에서 가장 먼저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정권 내정자는 홍준표 지사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를 할 때 무리를 하면서까지 사무총장을 시켰던 측근이라는 점에서 전문성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자기 사람 챙기기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됩니다.

김상헌 : 정책연구 전문기관이라면 당연히 도지사 개인의 생각이나 뜻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되고, 도지사의 정치철학이라든지 정책비전을 갈고 닦아 도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원장이 정치색이 강한데다 도지사 최측근이라면 연구 활동이 객관성이나 현실성을 잃기 쉽다는 얘기죠.

김훤주 : 그렇습니다. 정무부지사나 특보 같은 정무직 인사라면 몰라도,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자리는 상대적 객관성을 인정받고 독립성이 있어야 마땅한데 김정권 내정자는 그렇지 않거든요. 최종 학력이 김해 인제대학교 경영대학원으로 석사 출신이지만 제대로 된 연구 논문이 없을 뿐 아니라 여태까지 펴낸 책 다섯 권도 모두 '정치 에세이'입니다. 경남발전연구원 인사 규정에 '원장 자격은 행정과 연구 능력을 모두 겸비한 사람'으로 돼 있습니다.

3. 물 건너 간 '인사 청문회' 약속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홍준표 지사가 경남발전연구원을 비롯한 출자·출연기관 수장들에 대해 도의회 차원에서 인사 청문회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러면 김 내정자를 두고도 그런 절차가 진행이 되나요? 국회에서 하는 것처럼?

김훤주 :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국회 청문회는 공개가 원칙인데 도의회에서 하는 것은 비공개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도의회 인사 청문회의 법적 근거가 없어 자칫 잘못하면 정앙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이유를 댔습니다. 또 과거 이력이나 재산 내역까지 다루지는 못하고 도의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기획행정위에서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될 공산이 큽니다.

김상헌 : 그러면 원래 도입 취지인 선거 공신을 위한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 방지와 전문성·도덕성 검증이 이뤄지지 않을 텐데요. 전국 처음이다 보니 도민들 기대도 나름 크고 또 의미는 있겠지만 용두사미가 되고 말지도 모르겠군요.

김훤주 : 저도 그렇게 봅니다. 경남도의회는 오늘 운영위원회에서 이런 인사 검증 회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고 다음 주에 간담회를 할 것 같은데요, 이름도 '인사 청문회'가 아닌 '경남도 출자·출연기관장 임명 전 의견 청취' 정도로 정리되고 김 내정자 자기 소개와 해당 도의원들의 자유 질의로 이어질 예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검증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임명 자체가 무산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재는 게편이거든요.

4. 줄줄이 이어지는 제 사람 챙기기 낙하산

김상헌 : 경남발전연구원 원장 말고 다른 기관장이라든지 자리 인사도 줄줄이 있는 줄 아는데요. 구체적인 내용을 좀 일러주시지요.

김훤주 : 프로축구 경남FC 사장에는 안종복 남북체육교류협회장이 내정됐다는데요 안 회장은 홍 지사와 같은 대학 출신으로 친분이 두텁다고 합니다. 선거캠프에서 핵심이었던 오태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보좌관은 정책단장, 정장수 김정권 국회의원 보좌관은 공보특보, 박재기 동영산업 대표는 중소기업특별 보좌관에 임명했습니다.

국회나 중앙부처랑 업무 협조 등을 임무로 하는 서울본부장에는 홍 지사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보좌관으로 일했던 나경범씨가 임명됐고 남해대학 총장에는 홍 지사 보좌관 출신(엄창현, 선거 당시 정책보좌관)이 추천됐다고 합니다. 선거 논공행상 또는 줄줄이 측근 챙기기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상헌 : 마찬가지 이번 선거를 도왔던 한나라당 출신으로 진주의 최구식 전 국회의원은 산청세계의약엑스포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했죠? 지난 7일 취임식이 있었어요. 최구식 의원이라면 한나라당을 탈당해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진주갑 선거구에 출마까지 했다가 낙선했는데,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일어났던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말썽을 빚었었죠?

김훤주 : 바로 그 때 홍준표 지금 도지사가 한나라당 대표로 있다가 12월 물러났는데, 물러날 때 크게 영향을 끼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이었거든요. 그래서 최구식 전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공이 있기도 하지만, 홍 지사 본인까지 포함해 명예회복을 노렸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인사는 "토호들과 거리를 두겠다"고 한 홍 지사 본인의 발언과도 어긋날 개연성이 적지 않습니다.

김상헌 : 홍 지사가 지난 선거에서 당선된 지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많은 일이 일어났군요. 그런데 경남발전연구원 원장처럼 도지사가 임명권을 행사하는 기관장이 우리 경남에 얼마나 되는가요?

5. 이렇게 심을 수 있는 산하기관이 무려 23곳

경남도민일보 자료. 산청엑스포 결성 이전이어서 여기는 빠져 있습니다.


김훤주 : 경남도가 일부 또는 전액 자본금을 댄 법정 출자·출연기관은 15곳입니다. 그리고 경남도가 지원금을 주는 데는 기타기관으로 분류하는데 여기도 8곳이 됩니다. 모두 스물세 곳인데, 여기에서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서른 명입니다.

김상헌 : 적지 않은 숫자군요. 어떤어떤 데가 있어요? 경남발전연구원 말고? 거창대학이랑 남해대학은 도립이니까 당연히 포함될 테고, 경남개발공사, 경남무역, 경남문화재단, 경남람사르환경재단 등도 경남도가 소유권이 있을 것 같고…….

김훤주 : 창원시랑 공동 투자한 창원경륜공단도 있고요, 경남 글자가 들어가는 데로 경남신용보증재단, 경남테크노파크, 경남로봇산업진흥재단, 경남청소년종합지원본부, 경남FC, 경남체육회, 경남장애인체육회, 경남교통문화연수원, 경남생활체육협의회, 경남자원봉사센터,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는 가온소프트, 산청의약엑스포,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마산의료원과 진주의료원 정도네요.

6. 정무부지사는 얼마 안 가 출마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경남발전연구원 원장 인사에 사람들 눈길이 쏠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홍 지사가 이번에 첫 삽을 이렇게 뜨니까 나머지 이런 산하기관 인사도 정치 코드로 흐를 것이 뻔하고 그러면 홍 지사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줄 세우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서울에서 한 출판기념회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그러면 함안·의령·합천 선거구 출신인 조진래 전 국회의원을 정무부지사로 앉힌 데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는지 모르겠네요? 선거캠프 상황실장을 지냈고 홍 지사 고등학교 동문 후보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훤주 : 사실 말 그대로 정무직이라면 누가 해도 비슷할 것으로 저는 봅니다. 정무직은 도지사 대리인 정도로 봐야 합당하니까, 홍 지사랑 잘 통하기만 하면 되겠지요. 그렇다 해도 함안·의령·합천 선거구 현역인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만약 이 때문에 재선거가 치러진다면 신임 조진래 정무부지사가 열 일 제쳐 놓고 여기 출마할 인물이라는 점은 문제로 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상헌 : 그렇게 해서 느닷없이 중도 사퇴하고 선거에 나갈 경우 업무 연속성이 훼손된다는 얘기군요. 게다가 이번에 홍 지사는 도의회와 언론 관련 협력·조정이라는 정무부지사 본연의 업무에다가 예전에는 행정부지사 영역이던 경제 관련 업무를 정무부지사 몫으로 떼어냈잖아요?

김훤주 : 그래서 업무 연속성 훼손 가능성이 더 크게 거론된다고 저는 봅니다. 지난 3일 조직 개편에서 홍 지사는 기업지원단·재정점검단·투자유치단·고용정책단 네 개 공무원 조직을 정무부지사가 관할하도록 바꿨어요. 우리나라 열여섯 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이런 경우는 유례가 없습니다. 정무부지사가 노동·농업·복지·여성 등 개별 업무에 관심을 두고 집중해서 살펴보는 일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7. 정무부지사 업무 영역 유례 없는 확장도


김상헌 : 왜 그랬을까요? 서울에서 새로 온 행정부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영역을 축소하려고 그랬나요?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지 않나요?

김훤주 :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행정부지사를 홍준표 지사가 원하는 사람으로 데려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요. 여태까지 행정부지사는 행정안전부에서 보냈지만 이번에는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재정·예산 전문가를 임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큰 소리를 친 적이 두어 차례 있는데요, 이번에 임명돼 온 윤한홍 행정부지사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 서울시 기획·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청와대로 따라 들어가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 행정자치비서관을 지낸 사람이거든요.



김상헌 : 도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홍 지사와 행정부지사 사이가 좋지 않다는 불화설이 나오는 까닭이 거기 있었군요.

김훤주 : 예, 행정부지사가 충분히 하고도 남을 일을 조직개편에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정무부지사에게 맡기는 바람에 나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8. 김해연 도의원 관련 사건은 매우 거시기하다


김상헌 : 그나저나 이번 주 최대 이슈는 아무래도 김해연 경남도의원 사퇴인 것 같습니다. 지난 17일 목요일 김 의원은 거제시청 브리핑룸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했지요. 진보신당연대회의 소속인데, 정당도 떠나기로 했어요.

김훤주 : 참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촉망받고 유능한 도의원이었는데, 공고를 나와서 대우조선에 입사해 노동조합운동을 하다가 거제시의원을 거쳐 도의원이 되고 나서 활동을 더 잘해서 동료의원들 사이에서 으뜸으로 여러 차례 꼽혔는데, 한 순간 잘못으로 한꺼번에 모두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김상헌 :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더니, 지난 연말 창원 중앙동 유사성매매 업소에 갔다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적발돼 성매매 알선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그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군요.

김훤주 : 제가 우연하게 기자회견 하루 전날 거제에 갔었는데요, 거기서 만난 거제 사람들은 거의 이른바 멘붕 상태였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하는 식이었고, 함정을 파놓고 김 의원이 빠지도록 만든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의원으로서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걸음한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책임을 져야 하고 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우세했습니다. 아깝고 안타깝지만 잘못은 잘못이고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김상헌 : 사퇴 기자 회견에서 김 의원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한 심정도 살짝 비쳤죠?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 한 순간의 판단착오 같은 표현이 잘못을 인정한 대목이라면,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 같은 부분은 김 의원의 다른 심정이 좀 묻어 있는 것 같아요.

김훤주 : 그렇다 해도, 김 의원이 이른바 유사 성매매 업소에 들어간 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목적이 있었거나 실수로 들어갔다고 해도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 의원이 진보신당 소속이 아니고 새누리당 소속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씀입니다.

김상헌 : 김해연 도의원은 거가대교를 비롯한 민자 사업과 관련해 대기업들의 부실과 비리를 파헤치면서 경남은 물론 전국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끌었어요. 그래서 김 의원을 두고 ‘김민자’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었는데요. 이제는 다시 그런 활동을 보기가 어렵게 됐군요.

김훤주 : 치밀한 현장조사와 자료 조사를 통해 대우건설을 비롯한 시공회사들이 9000억원 넘는 부당 이득을 챙겼고, 거가대교 통행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근거를 제시해 감사원 감사에서도 나름 인정이 되기까지 했지요.

김상헌 : 그나저나, 김해연 의원 사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지 한 번 물어볼까요?

김훤주 : 저는 김해연 도의원이 했던 얘기 속에 해답이 있는 것 같아요. 자료 조사를 왜 그토록 꼼꼼하게 하느냐고 어떤 기자가 물은 적이 있는데 답이 이랬습니다.

"살기 위해서 합니다. 제가 문제제기를 하는 대상은 대우, 현대, 롯데 등 재벌입니다. 주도면밀하고 재력이 있으며 여론의 뒷받침도 받을 수 있는 곳이죠. 하지만 저는 혼잡니다. 백 가지를 잘하다가도 한 가지 잘못하면 내려앉습니다. 한 번 실수하면 꼬투리 잡아서 죽이려 들지 않겠어요?"

저도 이처럼 강한 상대와 맞설수록 더욱 자기자신한테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요량이면 맞서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든지요.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칭찬 축하 응원 격려해주세요에 대한 반응

$
0
0
경남도민일보에 '함께 ~해주세요'라는 독자 참여 지면이 생긴지 한 달이 됐습니다. 그간 다양한 독자님들이 다채로운 축하 칭찬 응원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요.

지난 한 달간 1면에 이 코너가 생긴 후 수많은 독자님들이 칭찬과 지지 입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제 꿈은 이 코너에 대한 독자의 참여가 쇄도하여, 아예 1개 면을 이런 독자님들의 글로 채우는 겁니다. 이거야말로 독자밀착, 지역밀착이며 진정한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진 독자님들의 참여가 부진합니다. 처음보다는 자발적인 참여가 점점 늘고 있지만, 어떤 날은 아예 원고가 없어서 주변의 아는 독자님에 직접 부탁을 하여 원고를 얻어낸 적도 있습니다.

개설 한 달동안은 이 코너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1면에 싣기로 계획했고, 두 달째부터는 적당한 지면을 따로 정할 생각이었습니다. 1면이 아닌 2면이나, 여론면인 10~11면, 또는 자잘한 소식들이 실리는 12~13면 정도로 이동하게 되겠지요.


오늘 편집국회에서 이를 논의했습니다. 1면에서 이 코너가 사라지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신문을 받아들고 1면에서 이 코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훈훈해지고 기분이 좋다'는 독자의 반응을 전하며, 당분간 1면에 유지하면서 지면 이동에 대한 예고와 함께 독자 의견도 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1면에 고정적으로 싣는 건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우리 1면은 왼쪽에 인덱스가 있어 지면이 좁은데, 이 코너까지 고정되어 있으니 지면의 융통성이 지나치게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님들의 의견을 묻습니다.어떻게 할까요? 1면이 아닌 다른 지면으로 옮겨도 변함없이 이 코너를 사랑해주실런지요? 지면 이동을 한다면 몇 면이 좋을까요?


다음은 그동안 이 코너에 대해 촌평해주신 분들의 의견을 모아봤습니다.

<새 코너에 대한 칭찬과 찬성 의견>

이민희
: 내가 잘아는 예린이 이야기여서 더 반가웠습니다.그것도 1면에 떡...

박태인 : 지난 주 제주도에 갈일이 있었습니다. 제주일보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주 도민은 별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를 현지 주민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신문은 독자와의 벽을 허물어야합니다. 같이 소통하고 같이 숨쉬고 같이 기뻐해야합니다. 단순히 소식 전달을 넘어 독자도 직접 기사를 써야합니다. AOL이 시도했던 패치처럼 말이죠. 선생님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권혁상 : 신문이 우리들의 삶을 바꾸지 못할 바에는....개인의 삶에 작은 즐거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하는 지역신문의 눈높이 조절을 응원합니다.....잘보구 배워가겠슴다^^

허윤기 : 대전MBC FM 모닝쇼에서 <동네방네 스타일> 코너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데 문자가 쇄도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멋집니다!! 응원합니다!!!

박철준 : 새해에 저질러 놓은(?) 코너의 첫번째 참여자(?)가 되었네요.
너무 가볍운 얘기라 짐짓 무안하기도 합니다만 우리 가족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추억이며, 아이에겐 또다른 자부심으로 자리잡겠지요..
페친들께서도 소소한 이야기꺼리 많이 올려주시면 제 낯간지러움이 조금은 상쇄될 것 같습니다. ^^

홍미애 : 잘 저질렀어요. 응원합니다!

김주완 : 지역언론을 고민함 : 늘 고맙습니다.

최경진 : 신문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독자들은 소리 없이 하나 둘씩 떠납니다. 지금의 이러한 시도는 결코 무거운 게 아닙니다. 지역신문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공동체(어린이집,어르신들 경로당,지역의 학교,재래시장터 등)에서 나오는 좋은 소식들을 찾아 공감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벤트,캠페인 등)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지역신문들이 비교적 건강하게 운영되는 해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시도들입니다.

단시일에 큰 효과를 기대하지 마시고 꾸준히 장기적으로 시도해보신 후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2년까지 해보시고 그 효과를 분석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시도가 돈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수익부터 먼저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될 것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성공적인 2013년을 희망합니다.


강성국 : 와우 화이팅입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최경진 : 한 가지만 더, 저 위의 댓글 대전MBC의 <동네방네 스타일> 코너처럼 지역의 방송 프로그램들을 적극 관찰해보시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이종매체 간의 상생이란 바로 그런 곳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방송과 꼭 반드시 협약서 같은 걸 만들어야하는 건 아니겠지요. 방송 프로그램들이 아이템들을 만들기 위해 지역신문들을 적극 참조하듯이 신문도 아침 프로그램들에서 적극 아이디어들을 고안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아이템이라고 판단된다면 모방이 아니라 응용차원에서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칼라스 : 참신한 신문 만들기, 독자 가까이로 파고 들기 위해 고민하시는 김국장님에 존경을 표합니다. 다양한 시도와 아이디어가 전 다 좋아보입니다만.

김종신 : 저도 곧 보낼예정입니다. 저는 지역일간지가 가야할 좋은 기획이라 상각합니다.

원주사랑 : 역시^^대단하십니다. 주간지에서도 하기 힘든 지면을 광역지에서 시도하시니...끝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계시는 김 국장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김주완 : 지역언론을 고민함 : 오 대표님 감사합니다. 저희가 성공하면 원주에서도 시도해보세요. ㅎㅎ

원주사랑 : 김국장임이 새롭게 시도하는 것들 지면으로 보고 싶어서...오늘 경남도민일부 구독신청했습니다.

황규민 : 굳이 피터 드러크의 혁신을 언급않더라도, 변화발전을 시도하는 것은 게으름과 정체보다는 좋은 덕목일것입니다. 독자로서 보기 좋습니다.

박태인 : 지난 주 제주도에 갈일이 있었습니다. 제주일보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주 도민은 별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를 현지 주민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신문은 독자와의 벽을 허물어야합니다. 같이 소통하고 같이 숨쉬고 같이 기뻐해야합니다. 단순히 소식 전달을 넘어 독자도 직접 기사를 써야합니다. AOL이 시도했던 패치처럼 말이죠. 선생님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장철원 : 신문에 소개된 주인공은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께 뻔하고 신문사는 소개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더 각인될꺼 뻔하고 이거 대박입니다.

 
박종선 : 경남엔 의식있는 신문과 독자가 계시니 부럽습니다.

하태영 : 감사합니다. (1월 1일자에 실린 축하해주세요) 한자급수 자격증 취득 기사 훈훈했습니다. 도민일보로 많은 위로 받습니다.

유준기 : 좋네요...지역민들의 신문에 대한 애착이 늘어날듯 합니다.

심재훈 : 응원합니다. 좀더 가까워진 경남도민일보를 느낄 수 있네요~

김주완 : 네 고맙습니다. 참여도 해주시고요.

강무성 : 정겹고 좋은데요.

최진순 : 경남에 살고 있지 않아 애석할 따름입니다.

김주완 : 강무성 활용해주세요. ^^

김주완 : 최진순 덕분입니다.

박자연 : 독자와 직접 소통하려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보입니다

김주완 : 박자연 감사합니다. 아직은 시도에 불과합니다.

정성한 :ㅎㅎㅎ 좋으네요....

윤창빈 : 역시 지역밀착 훈훈하고

김주완 : 정성한 윤창빈 고맙습니다. 널리 알려주세요. 다양한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서종우 : 이 이건 보통일이 아닌데요!!!!

김주완 : 그럼 큰일이란 말씀? 음...

Byung-il Jeong : 멋지네요. '나이스 샷!'이라고 칭찬해 드리고 싶은 1인입니다.

박승원 : 좋았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해 아이들과 함께 새해희망 적기도 해봤습니다..ㅎㅎ 날로 변화해가는 모습, 보기에 좋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김주완 : Byung-il Jeong 감사합니다. 독자 참여가 넘쳐나야 할텐데... 아직은 저조하네요.

김길후 : 힘!!!!!!

정영숙 :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오늘도 은혜와 다운이 축하글 재밋게 읽었습니다.

Soon-ok Sung : 아버지의 따뜻함이 전해집니다. 우리 동네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과 마음을 담은 기사네요. 김미영의원이 그러데요, 자기 꿈이 동네에서 일어 나는 작은 이야기들을 싣는 신문을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고. 도민일보를 살짝 엿보면 그런 향기가 느껴집니다. 중앙 일간지처럼 획일화된 기사가 아닌 우리 경남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 우리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주된 것이 되는,그런 신문. 특히 이 기사 꼭지는 애정이 갑니다.


<반대의견>

조현경 : 글쎄요. 얼마나 포용력을 가질지. 몇몇 출판물에서 시도해 보았지만 소수만 반응하고 나머지는 전혀 수용할 수도 없는 내용땜에 곤욕을 치루기도 했어요. 신문이 동문회나 동호회 또는 극히 퍼스낼리티한 부분을 기사화시킨다면 회보지나 회지로 인식될 수도 있지 않나 걱정됩니다. 다수의 공감을 사는 문제나 숨겨진 이야기 또는 향토사 알림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요? 함안 어디인가의 마을 앞 비석의 사연이 참 치를 떨게 하는 내용과 공동체의 움직임이 더 많은 공감을 사리라 봅니다. 시각의 하향으로 걱정되는 화보입니다. 창원도민일보가 아니라 경남도민일보라면서요.

김주완 : 음...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도 걱정하는 게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현재의 자유로운 광고가 사회단체의 행사 알림 용도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이 또한 다양한 시민들의 흐뭇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정된 독자들의 전용 놀이터가 될까 걱정입니다.
사실 독자 참여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일단 시도와 노력은 해보려 합니다.
언급하신 숨겨진 이야기나 향토사, 공동체 움직임 등은 이 지면과 관계없이 해야 할 일이고, 꾸준히 해온 일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 새해부터 ‘함께 기뻐해주세요’가 나오는데 며칠 지켜봤다. 그런데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도민일보을 아끼는 독자다. 도민일보가 지역밀착에 강하고 또 노력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 기뻐해주세요’는 아닌 것 같다. 이것이 지역 밀착이냐. 아니다. 예전에 나왔던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 이런 것이 지역밀착이다. 이런 껍데기만 가지고 지역밀착이라 스스로 믿고 또 독자에게 강요하지 말라.
지면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것, 편집권은 도민일보 편집국에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격히 생각하면 유료 독자가 위임한 것이다. 중요한 지면에 소중한 정보와 소식, 감동을 받고 싶어 신문을 읽는다. 일정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서... 그러니 이를 채워줘야 할 의무가 신문사에 있다. 물론 맘에 안 들면 안보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도민일보에 애정이 많다. 1면의 중요한 지면을 낭비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새해에 밝은 이웃의 소식을 싣고 싶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내용 없이 형식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새해부터 크레임 걸어서 미안하다. 애정이 많아서 그렇다. 새해에는 더 좋은 신문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직원 여러분의 건승을 바란다.

여러분의 칭찬 응원 격려 축하글을 보내주세요.
 

경남도민일보의 2013년 모토는 '독자와 함께하기'입니다. 더 많은 독자들과 더 자주 만나겠습니다.

매일 지면에 독자들의 사진과 글이 실리도록 하겠습니다. '투표 인증샷' 같은 공익이벤트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겠습니다.
 

'함께 축하해주세요'

'함께 기뻐해주세요' 

'함께 응원해주세요'

'함께 격려해주세요'

'함께 칭찬해주세요'라는 지면은 그래서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매일 여러분의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본인 또는 가족, 지인의 생일, 결혼, 출생 등 축하할만한 어떤 일이라도 좋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다면 그 또한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겠죠.

-입학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한 일, 직장에서 승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기념일을 맞은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주는 축하메시지도 좋습니다.

-지인이 사회에 귀감이 될만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면 널리 알려주세요.

-노동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격려와 응원 메시지도 환영합니다.
 

물론 축하와 격려, 응원을 받을 분의 사진도 첨부해주십시오.

경남도민일보에서 매일 훈훈한 얼굴과 기분좋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축하 격려 응원 메시지, 사진 보내실 곳

이메일 sori@idomin.com

트위터 http://twitter.com/gndomin

페이스북 페이지 http://www.facebook.com/idomin

페이스북 독자모임 http://www.facebook.com/groups/dominread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졸업식이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뀐 까닭은?

$
0
0

1. 어느새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뀌어 있는 졸업식

오늘 아침 집을 나와 거리를 지나가는데 이런 펼침막을 봤습니다. ‘제46회 졸업장 수여식’. 참 이상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그렇게 ‘졸업장 수여식’이라고 써온 지가 꽤 오래됐더군요.


2008년에 찍은 사진에도 졸업장 수여식이라 적혀 있었고요, 그보다 앞선 2003년에 이 ‘졸업장 수여식’을 두고 쓴 글도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오히려 무심해서 오래 전에 바뀌었는데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졸업식이던 것이 언제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뀌었을까요?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 졸업식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그 뒤에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뀌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다섯 해 전 김주완 선배가 아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


다만 대학 졸업식을 두고 수여식이라는 낱말이 쓰였는데요, 학위 수여식으로 (학사·석사·박사) ‘학위’와 짝을 이뤄 쓰였습니다.

2. 어떤 심리가 이렇게 바뀌도록 영향을 미쳤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의 학위 수여식이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에 영향을 끼쳐 이름을 바뀌도록 만들었다고요.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이렇게 바뀐 배경에 깔려 있는 사람들 심리는 무엇일까요? 제 짐작으로는, 이를테면 좀 속물적인 품위를 지향하는 그런 습성이랄까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은 초·중·고등학교보다 수준이 높고 뭔가 있어 보이는 교육기관으로 여기면서, 거기서 쓰는 수여식이라는 표현도 덩달아 수준 높고 뭔가 있어 보이고 근엄하고 품위있는 것으로 여긴 결과이지 싶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가 저마다 나름대로 역할이 있고 또 다른 학교랑 견줘 높고낮음을 가릴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학이 학위 수여식이라 한다 해도 저렇게 졸업장 수여식으로 베껴쓰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3. 당선증 교부식도 우스운 노릇이고

학위 수여식이든 졸업장 수여식이든 이렇게 바뀐 데는 사회적인 집단 심리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간접화’라고 할 만한 표현들이 많아졌습니다.

면허·자격을 땄다는 말을 직접적인 표현이라 한다면, 면허증·자격증을 땄다는 말은 간접적인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간접 표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슨무슨 양성 과정을 마쳤다(또는 수료했다)고 하기보다는 무슨무슨 양성 과정 수료증을 받았다고 더 많이 표현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자격증·면허증·수료증 등등 ‘증’의 존재 여부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사회 흐름도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삶에서 자기가 몸소 듣고 보고 겪은 것보다 한 다리 거쳐서 듣고 보고 겪은 것이 갈수록 많아지는 흐름도 저는 이런 간접화의 원인이라 봅니다.

뉴시스 사진.



저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등에 대한 당선증에도 이런 뒤집힘이 있다고 봅니다. 선거 결과 당선됐으면 그만이지 무슨 당선증을 주는 것도 그렇고, 당선증을 받아야 당선 효력이 발생한다는 얘기도 그렇습니다. 행정 절차상 필요하다면 그냥 공문 하나 보내면 끝날 텐데, 굳이 당선증을 교부한다면서 ‘당선증 교부식’을 합니다.

4. 졸업식의 주인은 졸업생, 졸업장 수여식의 주인은 선생님

이번에 제가 찍은 사진.


어쨌든, 거두절미하고, 졸업장 수여식은 알맞지 않고 틀린 표현입니다. 졸업식이 알맞고 맞는 표현입니다. 졸업식은 학생이 졸업하는 행사입니다. 졸업하지 않는 사람들은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축하하게 됩니다.

학생, 졸업생이 주체가 되는 행사입니다. 그래서 재학생 대표가 선배를 보내는 송사(送辭)을 읽고 졸업생 대표는 이에 대응해 답사(答辭)를 읽습니다. 그러면서 상장도 받고 졸업장도 받습니다. 그러고는 졸업의 노래를 함께 번갈아가며 부릅니다.

졸업장 수여식은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입니다. 수여(授與)한다는 말은 준다는 뜻입니다. 주는 사람은 학생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졸업장뿐만 아니라 다른 상장도 줍니다. 선생님이 중심에 놓이는 행사입니다.

졸업장 수여식의 주체는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입니다. 학생, 졸업생은 주인이 아닌 객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장 수여식은 틀렸습니다.(물론 제 생각일 뿐 다른 이들한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대학의 학위 수여식조차 졸업식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돈 안 되는 인문학 강의 꾸리는 창원시의원

$
0
0

인문학 강의가 부쩍 관심을 끌고 있습ㄴ다. 경남도 곳곳에서 인문학 강의가 열리립니다. 자치단체나 백화점, 대학교서도 하고 민간 차원에서도 합니다.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처음부터 스물네 차례로 장기 기획을 한 점과 자치단체를 비롯한 행정기관이나 백화점·기업 같은 자본의 도움 없이 민간의 힘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다른 인문학 강의와 구분됩니다.

이를 준비·진행·추진하는 사람 가운데 이옥선 창원시의원이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민주교수협의회가 중심에 있지만, 김남석 경남대 교수와 황창호 MBC경남 PD와 더불어 이 세 사람이 말하자면 추진기획단 노릇을 하고 있답니다. 

창동 한 술집에서 만나 인터뷰하는 이옥선 창원시의원.


선출직 지방의원은 보통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을 챙기기 바쁘고 이런 강의를 마련한다 해도 득표 또는 지역구 주민들의 평판과 관련해 판을 짜기 마련입니다. 진보 성향 의원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텐데 별로 그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적극 나서는 까닭이 설핏 궁금해졌습니다.

1. 올 4월 마무리되는 ‘행복한 인문학 교실’ 2년 장정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2011년 5월 25일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창원시 마산합포도서관 제1문화강좌실에서 김재현 경남대 철학과 교수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했습니다. 100명 남짓 들어가는 강의실은 차고 넘쳐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다달이 마지막 수요일 같은 장소에서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24회로 기획했으니 오는 4월 마지막 수요일인 24일 마무리가 된답니다.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2년 가까이 진행돼 오면서 여러 성과들이 있어요. 첫째는 경남대 민교협 교수님들이 바깥에 나와 시민들을 만난 것 자체고요, 교수 본인이 대학 강단을 벗어나 실험을 해 본 것입니다.

또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같은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게 된 것, 그리고 일반 시민을 확보한 것도 성과지요. 청소년 인문학 교실도 여섯 강좌씩 두 차례 진행했는데 이 또한 인문학을 익히고 찾는 사람들의 저변을 넓힌 것입니다.

특히 통합 창원시에서 옛 창원 지역은 마을도서관·작은도서관 사업이 활성화돼 있고 창원시의 지원 등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지만, 옛 마산 지역에서는 인문학 프로그램 가동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또 민간 주도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관의 협조를 받아낸 것도 좋고요, 창원시립인 마산합포도서관이 전적으로 돕고 장소를 빌려주잖아요.”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봤습니다. 여태 진행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딱딱한 이론 위주이고 지역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런 측면에서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등등…. 그랬더니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풀려나왔습니다.

“이론으로 치우치지 않고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를테면 도심 재생, 도시 역사 같은 것을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눈길을 확 끌도록 좀더 ‘섹시’하게 제목을 뽑고 내용을 채울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한(또는 안한) 측면도 있습니다. 저희 뒤에 창원 지역 여성 단체들 인문학 강의 제목을 보니 그런 ‘섹시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자극적이어야 하나, 원론적이고 학문적이고 할 수 있지 않나, 살면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목표를 가져갈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기초 학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출발하면서 처음부터 대중의 취향에 맞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얘기입니다.

물론 원론만으로는 되지 않겠지만, 철학과 역사 강의가 민간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도권 교육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가 철학·역사거든요. 그런 부분이 제대로 돼 있지 못하다 보니 인생관·가치관 같은 것을 바로 세우지 못하게 되고요.”

2. 선거랑 무관한데도 인문학을 하는 까닭은?

1964년 마산 출생인 이옥선 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 대표로 출마해 마산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2007년 17대 대선 뒤 당이 쪼개지면서 진보신당으로 당적이 바뀌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신당 간판으로 마산합포구 월영·문화·반월·중앙동 선거구에 나서 선출직 창원시의원이 됐습니다.

3명 뽑는 선거구에서 3등을 했습니다. 선출직은 거의 본능적으로 선거와 득표를 의식하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3등으로 당선됐다면 다음 선거에서 좀 더 나은 득표를 위해 더욱 매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장 활동에 나선 이옥선 창원시의원.


그런데 이 의원은 ‘행복한 인문학 교실’에 자기 역량의 많은 부분을 쏟아넣고 있습니다. 한 달에만 세 차례 안팎 행복한 인문학 교실 관련으로 모임을 할 정도랍니다. 시민운동 조직이라 해도 이 정도면 한 사안으로는 절대 적은 편이 아닙니다. 내년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득표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까요?

“선거나 득표랑은 관계도 없고 도움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하는 까닭이요? ‘진보’이기 때문에 그렇지 싶어요. 지역 현안을 바라보고 지역 활동들을 해 나오면서 우리 시민들한테 의식이나 철학이 많이 필요하다고 많이 느꼈어요. 공감대를 형성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마을도서관을 하나 만들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추진하는 제가 새누리당 아닌 진보신당이라 ‘말빨 있는 일부’ 주민들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월영동에서 있었던 일인데, 제대로 좌절 한 번 한 셈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독서와 토론을 통한 인식의 변화, 일방통행이 아닌 토론을 통한 여론 형성 등 새로운 문화 속에서 시민의식을 갖도록 돕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한 일인데 막히니 갑갑했습니다. 제가 행복한 인문학 교실 ‘추진’에 힘을 쏟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시작은 NGO 대학원 졸업생 모임에서

이태 가까이 진행되면서 나름 성과를 낸 ‘행복한 인문학 교실’을 시작한 동기는 그렇지만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사소하달 수도 있는 조그만 모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경남대학교 대학원 NGO 협동과정이 있었어요. 여기를 제가 2007년에 졸업하고 졸업생 모임이 지속됐어요.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인데, 이를 통해 황창호 PD랑 얘기하면서 구체화됐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이뤄져 있었고….

NGO 협동 과정에서 가르침을 주신 김남석 교수님을 찾아 만났는데 교수님도 기꺼이 동의했지요. 경남대 민교협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민교협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으셔서 민교협 교수님들을 추동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이 가운데서도 MBC경남의 황창호 PD와 인연이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이 의원은 황PD랑 ‘좋은 친구처럼 사귄다’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기혼 여성이고 황PD는 미혼 또는 비혼 남성입니다.

황창호 PD랑은 각별한 사인데요. 2004년인가 저를 어떻게 알았는지 라디오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약국을 운영할 때였는데, 약물에 관한 여러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시사 문제와 결합해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때부터 좋은 친구처럼 지내 왔습니다. NGO 대학원 소개도 황PD가 했어요. 같이 공부한 기간이 1년 정도? 늦게 입학한 제가 졸업은 먼저 했고요. NGO 대학원이 저랑 황PD, 김남석 교수 셋을 하나로 묶어 줬습니다.”

4.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스무 달 동안 다달이 진행됐습니다. 이 의원은 딱 두 차례 빠졌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집안에 초상이 나서, 다른 한 번은 빠질 수 없는 모임이 있어서였다고 했습니다. 마산에는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문학 강좌를 이태 동안 진행했다 해도 달라진 것이 당장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시민의식 형성이 조금이나마 이뤄졌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강단에만 서던 경남대 교수님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도 성과라고 봅니다. 시민들 참여에 여러 문제가 있고 그래서 더욱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할 필요는 있습니다. 무슨 주제로 할지 어떤 공간에서 할지, 아침 낮 또는 저녁 어느 때에 할지가 다 고민거리입니다. 역사 또는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지역 인물들의 구체적인 이름을 거명하면서 직접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할 때마다 40~100명 인원이 꾸준하게 강의를 들어왔습니다. 꾸준히 참여한 ‘일반’ 시민은 10명 정도? 그런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오히려 이런 강의를 잘 듣지 않습니다. 찾아다니면서 부탁을 했는데도요. 이런 부분 보완이 좀 필요하고요, 또 일반 시민들은 교육, 나아가 ‘영재 교육’ 이런 데 더 큰 관심을 보입니다. 현실입니다. 이런 일반 주민에 대해서는 좀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어요.

피드백은, 뒤풀이나 다음 강의에 오거나 할 때 했어요. 정기적으로는 잘 못했지요. 사람이 모자랐어요. 한 명이 책임을 지고 조직적으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데…. 확보된 명단이 한 400명 정도인데, 성의를 갖고 직접 전화를 한다든지 메일링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해서 제대로 소통을 하면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산이 고향인 이 의원은 1982년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약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물리학을 전공해 퀴리 부인과 아인슈타인 박사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 서로 협조하면서 연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조국애를 키우고 자기 뜻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네요.

1985년 학생운동과 관련해 제적을 당한 뒤 이른바 ‘현장’으로 갔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 1990년 그 현장을 마산·창원으로 옮겼습니다. 1993년 결혼을 하고 복학을 하면서 다시 지역을 떠나 96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다음 2000년 돌아왔습니다.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옥선 창원시의원.


2002년 월영동에서 월영약국을 개설했는데 2006년 시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폐업했습니다. 약국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기 십상이라 동네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들으면서 주민들이랑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시의원을 하는 도중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5. 생각을 정리하고 긴장을 놓지 않게 해 준 교실

이 의원 본인한테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시의원으로서 득표나 선거에 도움이 되는 바는 없었다는데 그렇다면 행여 방해는 되지 않았을까요?

“많이 배웠습니다.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참여한 교수님들, 그리고 준비하는 몇 분과는 관계가 돈독해졌습니다.
학문은 그 자체가 개방적이다 보니까(그래서 다른 생각과 관점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한 데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민교협 교수들은 학자로서 다들 나름대로는 진보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가 보다 싶어요. 평소에는 볼 때 보수적인 것 같았던 교수님이 진보적인 생각을 밝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반면 진보적인 것 같던 교수님들이 좀더 오히려 신중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런 과정에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복지라든지 정치 현안, 문학·여성주의 등등에서 많은 것을 제시하고 녹여냈습니다.

시의원으로서 방해가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기적으로 정해 놓고 책을 읽거나 귀동냥이라도 하면서 다른 분들 생각을 듣거나 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역 활동과 이어지는 실천적인 지침은 아니더라도 중심을 확인시켜 주거나 생각들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일들이죠.

긴장이랄까 끈이랄까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게 하는 힘 같아요.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층들을 오히려 좀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당적인 이해랑 시민적인 이해가 부딪힐 때 정당적 이해에 끌리기 쉬운데 그렇지 않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제시해 줍니다. 이를테면, 제가 소속돼 있는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지난 12월 19일 선거 방침이 대선은 무소속 김소연 후보, 도지사 보궐선거는 무소속 권영길 후보였는데, 저는 문재인 후보를 위해 마이크를 잡기도 했습니다.”

이 날 이옥선 의원은 소주를 한 병 넘게 마셨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얘기하고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했습니다. 인생 전환기를 맞아 새 삶을 준비해야지 않겠나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눈에 보이는 조그만 욕심에 매이지 않아 보기는 좋았지만 조금 지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게 만들었습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스물 넘게 공짜 커피 베푼 굴 구이 ‘선창카페’

$
0
0

1월 11일 금요일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마련한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즐기기’ 이벤트였습니다. 손전화 문자메시지 또는 경남도민일보 광고를 보시고 마흔 분 남짓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마산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진동까지 간 다음 광암 바닷가에서 생대구탕을 점심으로 먹은 다음 다구마을까지 걷는 길이었습니다. 원래는 바닷물이 일렁이는 갯가를 따라 걷도록 돼 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산길도 적지 않게 걸었습니다.

일부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두 시간 가량 걷는 가운데 변소를 만날 수 없었다는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끄트머리 다구 마을 어항 귀퉁이에 놓여 있는 ‘선창 카페’가 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 줬습니다.

선창카페 내부 모습.


선창 카페가 이름은 카페였지만 실제로는 굴이나 가리비 따위를 굽거나 쪄서 파는 곳이었습니다. 소주나 맥주 같은 술도 함께 팔겠지요. 사람들은 이런 줄 모르고 진짜 커피를 파는 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커피 파느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고요, 그보다는 볼일이 급해서 화장실을 물어 찾아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카페 주인은 자칭 ‘황 마담’이셨는데요, 들머리 함지박에 담긴 명함을 보니 황일규씨였습니다.

황 마담은 우리 일행더러 일단 들어오시라고 했습니다. 추운 바깥 날씨에 언 몸이라도 좀 녹이고 가라고 했습니다. 커피를 팔지는 않지만 봉지 커피 한 잔 정도는 그냥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행이 스무 사람이 넘는다고 했는데도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다 들어오시라 했습니다.

먼저 들어와 벽에 걸린 액자들을 둘러보는 일행.

좀 있다 일행들이 따라 들어와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이는 난로에 불을 지피고 나무를 넣어 공간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아울러 고구마를 난로 위에 얹고두고 마음대로 내키는대로 드시라고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1만원짜리 찌짐이라도 붙여달라 했더니 오늘은 팔지 않는다고 눙쳤습니다. 다음에 한 번 걸음해 주면 그만이지 일부러 사줄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세상에 장사하면서 이런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화장실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쓰도록 내어줬습니다. 화장실은 보기와는 달리 손이 많이 갑니다. 누군가 흙발로 들어왔다면 곧바로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장사를 위해 깨끗하게 치워야 합니다.

서둘러 커피를 타고 있는 황 마담의 손길.


봉지 커피, 얼마 하지야 않지만, 이렇게 마음 내어 스물이 넘는 사람들한테 물을 끓여 손수 타 주는 일도 쉬운 노릇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이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난로에 장작을 넣어 온기를 높이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남의 추위에 나름대로 그리 반응을 보이기가 어렵거든요.

느닷없이 들이닥친 일행들과 얘기를 나누는 황 마담. 오른편에 불길이 벌건 난로 위에는 고구마가 놓여 있습니다.

황 마담 덕분에 즐거워진 일행들이 이날 경험을 사진에다 담고 있습니다. 오른쪽 찍어주는 사람은 바로 저랍니다. 동행하신 이채록님 사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고구마를 그렇게 선뜻 내놓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나중에라도 손님으로 끌어보려는 장삿속이라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장사꾼이 그런 장삿속이라 해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작으나마 내어놓는 경우가 드문 것 같거든요.

어쨌거나, 저는 이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얼었던 몸도 곧바로 녹았습니다. 황 마담이 내어놓은 봉지 커피가 따뜻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이가 난로에 올려놓은 달콤한 군고구마가 따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이는 이렇게 폐를 끼치고 가는데 어떻게든 사례하고 싶다면서 제가 내어놓은 1만원짜리 종이돈도 끝까지 받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내민 제 손이 머쓱해졌습니다. 이런 장삿속을 가진 장사꾼이 우리 가까이에 더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도 걸려 있습니다.

화장실 들머리. 왼쪽 아래에는 저승 찬가가 적혀 있습니다.

흰 구름을 뒤에 있는 글자는 '비웃는다'였습니다. 실제 청산은 비웃기조차 않겠지요만.

원래 세상은 이렇겠지요. 때가 묻어 있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그냥 그러함.

이 액자를 보고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사랑채 기둥은 둥글고 별당은 네모난 까닭

$
0
0

1. 정신없이 보냈던 지난해 여름

제게는 2012년 여름이 ‘정신없음’이었습니다. 여름 들머리에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창립을 마무리 지어야 했고 이어서 이에 대한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을 경남도에 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창립과 더불어 공공적 활동을 담보하는 동시에 이듬해부터는 나름대로 수익을 내야 했기에 이리저리 검토하면서 이른바 ‘수익 창출 구조’를 실험하고 또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갖은 구상과 시험을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역사체험단이었습니다.

7월과 8월에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집해 8월 첫걸음을 내딛었는데요, 9월에 진행됐던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제가 경남도민일보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에만 올려놓고 저희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한산사 앞 전망대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다.


이제야 알아차리고 늦게나마 올립니다. 지난 여름 제 ‘정신없음’의 소산이라 여기시고 양해해 주시거나 마시거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한편으로는 기록 차원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홍보 차원에서 한 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2.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담겨 있는 최참판댁 건물들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역사체험단은 원칙이 몇 가지 있답니다. ①한 군데서 하나씩은 확실하게 익히기 ②즐겁게 놀기와 열심히 공부하기와 배운 만큼 기록하기의 조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9월 8일 역사체험단의 두 번째 나들이는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찾았습니다. 최참판댁~고소산성~쌍계사~운조루~매천사당. 최참판댁 가면서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처럼 깊이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체험단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토지>와 박경리를 거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토지>의 줄거리나마 읽어보게 한 다음 단답형 퀴즈를 냅니다. '박경리의 고향이 하동일까요? 아닐까요?'도 있고 '서희 남편 길상의 신분은 무엇일까요?'도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체험단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습니다. 거의 기대하지 않았는데요, 출제한 13문제를 모두 맞힌 친구도 있었을 정도입니다다. 현장에서도 과제를 냈습니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는 하인이던 귀녀 일당에게 불에 타 죽게 되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알아오세요.'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의논도 하고 훈장을 비롯해 최참판댁 여러 분들에게 물어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초가로 지붕을 이은 유일한 집이라며, '초당'까지 둘러보고 돌아옵니다.

"최참판댁에 여러 번 왔었는데요, 그렇지만 그 때는 건성으로 대충 봤지 이번처럼 제대로 살펴보지는 않았어요." 역사체험단을 하는 보람이 여기 있습니다.

건물을 활용해 옛날 사람들 생각도 알아봅니다. 최참판댁은 남자가 사는 사랑채는 기둥이 모두 둥글지만 여자가 머무는 안채와 별당채는 기둥이 모두 네모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옛날 사람들의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이라는 생각이 여기에 스며 있는데, 하늘은 높고(고귀하고) 땅은 낮다(비천하다)가 아니라, 음양오행에 따라 남자는 하늘에 견줬고 여자는 땅에 견줬기에 그렇게 했다는 얘기랍니다.

망원경으로는 섬진강 물빛이 좀더 뚜렷하게 보이겠지요.


이어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를 지키는 할매나무 밑에 모여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고소산성으로 갑니다. 날씨가 더워 산성에까지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들머리 한산사 바로 앞 전망대로 갔습니다. 오른편 서쪽에서 왼편 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그지없이 잘 보이는데, 불어오는 바람과 눈에 담기는 풍경이 거듭거듭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풍경이 예술이에요!", "마음이 절로 좋아져요!" 이것,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3. 새롭게 뜯어보는 쌍계사 부처님

쌍계사. 이곳 또한 아이들이 어버이랑 자주 와 본 데지만 역사체험단에게는 새롭게 보입니다. 버스 타고 가면서 통일신라 말기 빼어난 학자였던 최치원이 짓고 쓴 진감선사대공탑비와 불상 부위별 명칭을 배웁니다. 진감선사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처음 들여왔을 뿐 아니라 차나무도 가져와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웃할아버지 같은 서민풍 돌부처 앞에서.


어쨌거나 이 탑비가 이름난 까닭은 바로 지은이가 최치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당대에 일가를 이룬 최치원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라고들 하지요.

이어서 부처님 명칭. 머리는 꼬불꼬불해 '나발'이라 하며 손모양은 '수인', 이마에 있는 점은 '백호', 뒤에 있는 번쩍거리는 배경은 '두광', 입고 있는 옷은 '통견'이며 목에 있는 줄을 '삼도'라 하는 것 등을 익힙니다. 부처 앉은 자리(대좌) 위로 우러러 보는 연꽃은 앙련(仰蓮)이고 아래로 엎드린 연꽃은 복련(伏蓮)이라는 정도도 더했답니다.

함께 소리내어 읽고 적어봄으로써 자기 지식으로 삼을 수 있었는데, 이런 조그만 앎만으로 아이들은 크게 달라졌습니다.(물론 어른들도 잘 모르는 이런 지식 나부랭이를 아이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기억해 주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그뿐이지요.) 

대웅전에 들어가 앉아 있는 아이들.


대웅전 부처 앞에 앉았을 때, 떠들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보다 더 조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실제 불상을 보면서 배웠던 명칭을 실감나게 익혔습니다. 또 절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옆집 할아버지처럼 모습이 푸근한 마애불도 눈에 담았습니다.

4. 운조루에서 압권은 타인능해(他人能解)

경남 경계를 벗어나 전남 구례의 오미마을 운조루로 떠납니다.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름(雲)은 무심히 산골짝에 피어오르고/ 새(鳥)들은 날다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에서 따온 이 집 사랑채 당호(堂號)라 합니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1776년 무사 유이주가 세웠는데, 기개를 일러주듯 솟을대문 위쪽에는 호랑이 뼈가 걸려 있습니다.

굴뚝이 없는 집, 운조루.


운조루는 건물보다는 거기 스민 생각이 훨씬 그럴 듯하답니다. 굴뚝이 없습니다. 불을 땔 때 연기 때문에 고생을 했겠지만 양반집에서 밥해 먹는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들이 더 힘들어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리에 쌀뒤주를 갖다 놓고 거기 여닫는 마개에 적은 글씨도 남다르답니다. 他人能解(타인능해)가 그것인데,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주인이 손수 줄 수 있는데도 그리 하지 않은 까닭은, 얻어가는 이로 하여금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랍니다.

운조루 명물 쌀뒤주가 오른쪽에 보입니다. 아래 쌀 나오는 구멍에 뭐라 적혀 있나요?


운조루가 있는 오미 마을 너른 마당에는 그네와 널이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습니다. 앞을 다툴만 한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차례차례 줄지어 그네를 타고 굴렸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친구를 더 앞세우고 다독여 주는 모습도 보여 고마웠습니다.

5. 매천사-죽어서 인(仁)을 이루다(成)

매천 황현이 자결한 자리 매천사. 아편을 삼켰으나 단박에 죽지 못해 몹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들머리 새로 세운 대문에 붙어 있는 성인문. 대한민국 으뜸 명필 김충현의 글씨랍니다. 일제에 빌붙지 않는 집안에서 1921년 태어나 2006년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같은 구례에 있는 매천 황현의 사당.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자리가 여기라고 합니다만, 아이들은 그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망한 나라를 위해 또는 자기 지조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기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이의 유언도 함께 알아보고 자결에 앞서 쓴 절명시(絶命詩)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새와 짐승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린다/ 무궁화 이 세상이 망하고 말았구나/ 가을 등 아래 책 덮고 생각하니/ 세상에 글 아는 이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어쨌거나 전체로 보면 다들 재미있어 했습니다. 힘든 구석도 있지만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가는 바가 즐겁다고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선택과 집중이 잘 돼서인지, 신나게 놀 때와 진지하게 공부할 때도 저절로 구분이 됐습니다. 신나게 놀면서 아이들은 큽니다. 잘 놀아야 잘 삽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올해부터 사라지면 참 좋겠는 야권 단일화

$
0
0

1. 단일화로 날을 지낸 2012년

2012년은 단일화로 시작해 단일화로 끝났습니다.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 사이에 단일화가 진행됐고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두고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사이에 단일화가 진행됐습니다.


경남의 경우 4·11 총선에서는 16개 선거구 가운데 거제를 뺀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 단일화가 이뤄졌으나 새누리당에 맞선 선거 결과는 김해갑에서만 민주통합당 후보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거제만 그나마 무소속이 당선(나중에 새누리당 입당)됐고 나머지 모든 지역은 새누리당이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창원 성산구에서는 진보신당 후보가 끝까지 남아 득표 경쟁을 벌였고 거제에서는 진보신당 후보로 단일화가 막판에 이뤄졌습니다.

2012년 3월 20일 야권단일후보 인증서 전달식과 기자회견. 누가 누구를 인증한다는 얘긴지. 나중에 야권단일후보가 안 된 사람도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경남에서는 단일화를 둘러싸고 통합진보당이 패권을 행사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상대적으로 세력이 적기 때문이겠습니다. 단일화 자락을 깔았던 이른바 시민사회 진영은 누가 봐도 두드러지게 통합진보당을 편들었습니다.

단일화에 나서지 않은(또는 못한) 진보신당은 어디서나 찬밥 신세였습니다. 진보신당 후보가 강세였던 거제에서는 막판에 통합진보당 후보까지 사퇴했으나 단일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2등(새누리당)조차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단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묻지 마’ 단일화였고 ‘닥치고’ 단일화였습니다. 야권에서는 단일화만 하면 이길 것처럼 난리를 피웠으며 그 결과 정책이나 공약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정책이나 공약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재미도 없고 성과도 없는 야권 단일화

총선에 나타난 단일화 과정은 길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미 전국 대다수 유권자들이 잘 아시는 그대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단일화 또한 마찬가지 길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사퇴 회견 장면.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두관 도지사 중도 사퇴로 치러진 경남 도지사 보궐 선거 후보 단일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야권에서는 통합진보당 이병하 후보와 민주통합당 공민배 후보, 무소속 권영길 후보가 단일화에 나섰습니다.

공민배 민주통합당 후보는 내부 경선에서 다른 세 후보를 물리치고 선출됐지만 중앙당으로부터 공천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퇴했습니다. 중앙당이 이른바 대선 승리를 위해 권영길 후보에게 무조건 양보하라고 강요한 탓이었습니다.

권영길 무소속 후보와 이병하 통합진보당 후보 사이 단일화는 더없이 지리하고 재미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처음에는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 단일화에 나섰습니다. 권영길 후보는 단일화 방식과 기준을 놓고 앞서 했던 말을 뒤집었습니다. 지켜보는 과정에서 넌덜머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2012년 11월 26일 어거지로 민주통합당 경남도지사 후보에서 물러난 공민배 선수(오른쪽)와 권영길 무소속 경남도지사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2012년 12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는 이병하 통합진보당 경남도지사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또 단일화 과정에서는 꼭 시민사회운동단체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자기네들은 고고한 존재인 양 구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치를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지 어정쩡하게 선거판에 기웃거리면서 훈수나 해댔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3. 단일화에 매몰되면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


올해부터는 단일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재미없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단일화는 정치를 우스개로 만들고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남깁니다. 또 단일화 과정에서는 정책이나 공약이 실종되기 일쑤입니다.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선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 옆에는 김정권 전직 국회의원. 경남도민일보 사진.


단일화 여부에만 모든 것이 집중됐습니다. 결국은 편 가르기였습니다. 야권과 여권 이렇게 편을 잘 갈라서 상대방 여권 새누리당 후보를 고립시키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지는 식이었습니다.

단일화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자기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가 사퇴하면 선거판에 남은 통합진보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찍고 싶은 정당이나 후보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요 정당이나 후보가 아니면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4·11총선에서 경남에서는 진보신당이 그랬습니다. 단일화 대상으로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사퇴 압력에만 시달렸습니다.

대선과 경남도지사 보궐 선거에서는 그런 설움을 통합진보당이 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총선 때는 통합진보당이 경남에서 이른바 ‘수퍼 갑’이었으나 도지사 보선 때는 초라한 을의 신세를 톡톡히 겪어야 했습니다.

4. 없애는 방법은 간단한데도 없앨 수 없는 까닭


단일화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답니다. 선거법을 바꿔 결선투표제만 도입하면 됩니다. 여기에 대선거구제까지 채택이 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선에서 2012년 11월 25일 야권 단일 후보로 등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들 정당에서 중추를 차지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이 결선투표제나 대선거구제가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영남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호남 출신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이대로 결선 투표제 없는 소선거구제도 가장 좋습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들을 유권자들이 뽑지 않아야 하는데(특히 영남과 호남에서), 실제로 그럴 개연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 두 정당 말고도 그럴 듯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그런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제가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보면 진보정당들에게도 그 책임이 없지는 않습니다. 결선투표제와 대선거구제 도입을 공수표로 날리도록 만든 점과, 스스로 자라나지 못한 바람에 유권자들 선택폭을 넓혀 주지 못한 점이 그것입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마산해양신도시는 가포신항 준설토 처리장

$
0
0
2월 15일 금요일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에서는 MBC경남의 김상헌 기자와 함께 마산해양신도시 문제를 두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마산해양신도시는 제가 알기로는 그 자체 필요성보다는 준설토 처리 문제 때문에 제기됐습니다.

그에 대한 미주알고주알을 한 번 풀어놓아 봤습니다. 경기 부양을 위한답시고, 발전 패러다임을 다른 데서 찾을 줄은 모르고, 기왕 있어온 토목 건축 자본 투입으로 해결하려 한 데서 온 미래의 재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무학산 둘레길을 걸어보셨나요?

김상헌 : 마산만이 메워지고 있습니다. 돝섬 앞바다 마산해양신도시 건설 현장에는 흙둑이 4m 높이로 1차 호안축조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정률이 80%를 넘었고, 이르면 3월  말에 준설토를 쏟아붓기 시작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사진.


김훤주 : 그렇습니다. 지난해 7월 6일 매립 공사를 시작해 10월에 흙둑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호안 1차 축조가 끝나면 가포신항 정박지를 위해 준설하고 있는 흙을 여기 호안 안쪽에 쏟아붓는 것입니다. 전체 길이는 1.4㎞ 정도인데요, 면적은 대략 10만㎡, 3만 평으로 마산해양신도시 전체 면적 63만㎡ 19만 평의 15%에 이릅니다.

김상헌 : 호안축조공사는 1·2·3차로 나눠 진행된다지요. 계획대로라면 내달 완공되는 것은 1차, 2차는 10월, 마지막 3차는 내년 중반에 완공됩니다. 그러면 마산만 한가운데 3.2㎞짜리 둑이 생기는 셈인데 매립은 도심에서 가장 먼 데부터 한답니다.

김훤주 : 김상헌 기자는 혹시 무학산 둘레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세요?

김상헌 : 한 차례 걸어본 적이 있는데요, 그런데 둘레길 얘기는 왜 하시나요?

김훤주 : 저도 몇 차례 걸어봤는데요, 겨울에도 때를 잘 맞추면 볕이 발라서 따뜻하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둘레길을 따라 서원곡에서 만날재·밤밭고개가 있는 쪽으로 걸으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데요, 마창대교 너머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눈맛이 시원합니다.

제가 찍었습니다. 2011년 사진.


그러다가도 바로 앞으로 눈길을 잡아당기면 아이파크 아파트 같은 건축물 때문에 갑갑함을 느끼는데요, 만약 호안 안쪽을 준설토로 메우는 작업이 시작되면 진짜 가관일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요.

김상헌 : 그렇겠네요. 그렇게 매립하는 과정에서 바닷물이 뿌옇게 탁해지기도 하겠습니다.

김훤주 : 예, 안그래도 물생명시민연대를 비롯한 여러 환경단체들이 특히 눈여겨보는 대목이지요. 그렇게 바닷물이 더러워지면 마산어시장 횟집 장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거고요.

김상헌 : 그런 부분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훤주 :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태 보도된 내용을 죽 훑어봤는데 창원시가 그런 부분에 대해 보상을 하거나 예방을 하는 등 대책을 세웠다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 공사 현장 바다에 둘러쳐져 있는 오탁방지막뿐인 것 같아요.

2. IMF 때문에 시작한 마산해양신도시 건설

김상헌 : 마산해양신도시는 2016년 완공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산해양신도시는 어떻게 해서 시작이 됐는가요?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훤주 :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1997년 터진 IMF 사태 때문에 시작이 됐습니다. 만약 IMF로 우리나라 건설 경기가 망해먹을 정도로 가지 않았다면 마산해양신도시 건설은 없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김상헌 : 잘은 모르겠지만, 바닥을 치는 건설 경기를 살리려고 마산해양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다는 얘기로 들리네요.

김훤주 :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추진했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마산해양신도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토부가 추진했던 것은 가포신항이었습니다. 1970년대까지 마산 도심에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1970년대까지 남아 있던 가포 일대에 3만톤급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를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상헌 : 그래요? 그러면 가포신항과 마산해양신도시는 어떤 관계인가요?

김훤주 : 가포에 항구를 짓고 커다란 배가 드나들도록 하려면 바다가 충분히 깊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포 앞바다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 밑에 있는 모래나 자갈 바위 따위를 파낼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게 파낸 준설토를 쏟아부을 투기장이 바로 마산해양신도시인 것입니다.

김상헌 : 항구에 필요한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준설을 하고, 그렇게 퍼낸 준설토를 쌓아서 바다를 메우고 육지를 만든다는 얘기로군요.

김훤주 : MRG라고 아시죠?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 말씀입니다. 정부가 수익 예측 조사를 하고 나중에 완공된 뒤 그 예측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부분을 일정하게 나랏돈으로 보전해 주는 제돈데요, 1998년 IMF 직후 정부가 기업의 투자 확대 촉진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을 연기처럼 날려버리고 있는, 유료도로인 마창대교, 거가대교와 엄청나게 적자를 내고 있는 김해경전철 등등과 함께 가포신항도 그 때 시작이 됐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상헌 : 그런가요? 그러면 가포신항은 어떤 조건으로 누가 만들고 있어요?

김훤주 : 민자 3092억원과 국비 2828억원이 투입된다는데요, 사업자로 돼 있는 주식회사 마산아이포트는 현대산업개발이 25% 대주주고요, SK건설(16%) 고려개발(15%) 한일건설(15%) 경남도(10%) 창원시(10%), 송천건설(5%) 원아종합건설(4%) 등이 참여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입니다.

가포신항이 완공되면 통째로 국가에 기부채납한 다음, 50년 동안 무상 운영 권한을 갖게 됩니다. MRG는 없지만 상당한 이권이 주어지는 셈이고요, 모기업이 건설 과정에 참여해 갖고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은 기본이고요.

3. 수익성이 전혀 없는데도 지어지는 가포신항

김상헌 : 운영에 어려움은 없는가요? 진해신항도 있고 해서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김훤주 : 원래는 2011년 완공 계획이었습니만, 지난해 말로 한 차례 연기됐다가 이마저도 지켜지지 못하고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운영 예상은 첫 해인 2012년에 컨테이너 물동량이 15만5000TEU, 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한 대분을 뜻하는데요, 이렇게 나왔지만 실제 지난해 5% 정도밖에 안 되는 7892TEU였다고 합니다. 믿을 수밖에 없는 정부기관인 마산지방해양항만청 집곕니다. 그래서 가포신항 경제성은 시작 단계부터 문제라고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김상헌 : 그런데도 지어졌고 그 때문에 마산해양신도시도 덩달아 만들어지는군요.

김훤주 : 맞습니다. 그런데도 창원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산해양신도시 조성이 늦어지면 가포신항만 개장이 늦어지고, 그렇게 되면 협약에 따라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 해에 100억원이 된다면서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신항과 인공섬이 탄생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4. 마산 사람도 잘 모르는 마산해양신도시의 실제 모습

김상헌 : 저도 마산해양신도시를 잘 모르지만, 마산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마산해양신도시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인근 주민들은 앞으로 완공되는 2016년까지 꼼짝없이 이런 흙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텐데, 어째서죠?

김훤주 : 저희 경남도민일보 같은 보도매체의 책임도 없지 않겠지만,(김상헌 기자 : 저희 MBC경남도 마찬가지지요) 창원시가 실상을 똑바로 알리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바닷가에 바로 붙어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마산 앞바다에 무슨 공사가 벌어지고는 있지만 그것이 바다를 매립하는 것인 줄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제방을 높이는 재해방지사업이거나, 아니면 공원을 만드는 사업으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고요.

김상헌 : 그렇게 매립되는 면적은 얼마나 되는가요?

김훤주 : 육지 부분에 이어붙이지 않고 섬 모양으로 매립을 한다고 하는데요, 매립 면적은 가포신항에 항로를 내면서 퍼내는 준설토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처음에는 13m 깊이로 파낸다고 해서 해양신도시 면적이 112만 2000㎡, 34만 평이었습니다. 그런데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반대 여론 때문에 수심을 12.5m로 줄였습니다. 그랬더니 매립 면적이 63만㎡로 축소됐습니다. 수심 50㎝로 50만㎡가 줄어든 셈입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에 시민단체쪽에서는 12m까지 줄일 수 있다 하고 정부는 더이상 줄일 수는 없다고 합니다. 만약 50㎝를 더 줄이면 매립 면적은 20만㎡를 더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5. 활용 계획조차 뚜렷하지 않은 해양신도시

김상헌 :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공섬 마산해양신도시에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요? 창원시는?

김훤주 : 글쎄 그조차 뚜렷하지 않다고 합니다. 보통은 매립을 하기 전에 사용 계획을 세우는데 지금은 대체적인 계획, 아웃라인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비도 얼마인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5월 창원시 의회 의결에 이어 7월 6일 공사를 시작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는데요, 서항부두에서 중앙부두 앞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섬에 업무복합지구 17.1%, 연구개발·업무복합지구 13.8%, 숙박시설지구 3.5% 등 용도로 사용한다는 계획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적자가 발생하면 창원시는 얼마든지 상업지구로 변경해 분양할 수 있고, 그러면 원도심 상권(이미 공동화가 진행돼 있는)도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박완수 창원시장이 최근에는 여기에다가 CECO 같은 컨벤션센터를 짓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관계 공무원한테 지시한 적도 있습니다.

6. 갖은 환경재해까지 예상되는, 개발을 위한 개발

김상헌 : 지금까지 김 기자가 꼽은 문제점은 그러니까 경관이 나빠지는 것과 어시장을 비롯해 기존 도시 상권이 피폐해지는 것인데요, 이밖에도 어떤 문제가 예상되나요?

김훤주 : 그 인공섬에 9000가구 이상 규모 아파트를 전제로 해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됐는데요, 먼저 이런 아파트에 들어가 살 사람이 그만큼이나 많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그밖에도 문제는 많다고 합니다.

김상헌 : 지난해는 진해 신항 건설 현장에서 깔따구로 문제가 되기도 했잖아요?

둘 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해 웅동 신항 건설 현장에서 찌은 깔따구 사진. 마산해양신도시 현장에서도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김훤주 : 사람들이 그런 것 다 기억하고 있어요. 해양신도시 건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거죠. 지난 여름에 이미 매립 현장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태풍 매미 때와 같은 침수 피해도 예상되고요,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문제도 그대로라고 환경단체들은 꼽습니다. 바닷물 오염과 썩는 냄새 같은 악취, 깔따구 같은 해충 대규모 발생 등도 함께 꼽힙니다.

김상헌 : 결국은 가포신항 때문에 마산 사람들이 환경 재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네요.

김훤주 : 그렇습니다. 사업성도 경제성도 없는데 개발 그 자체를 위해 개발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게 된 개발이 다시 맹목적으로 다른 개발을 하도록 만드는 악순환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본보기가 마산해양신도시 사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김상헌 : 어쩌면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 창원시 청사 위치 선정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인 것 같네요…….

김훤주
토건국가를개혁하라개발주의를넘어생태복지국가로
카테고리정치/사회 >사회복지
지은이홍성태 (한울아카데미, 2011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역사체험단과 해딴에의 올해 여행 체험 일정

$
0
0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의 어린이·청소년 대상 역사체험단 활동이 마무리됐습니다. 2012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여섯 달 동안 모두 다섯 차례 운영했습니다. 일단 역사체험단 활동은 이렇게 접고요, 3월부터는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으로 새로 시작합니다.(어른 상대 프로그램도 많답니다) 앞서 지난 활동을 짤막하게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1. 아래부터 낮은 데부터 채우는 선비 정신이 담긴 관수觀水

◇8월 25일 거창 황산마을~수승대~동계 정온 선생 옛집~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거창박물관 = 창원과 진주에서 30명 남짓이 참여한 역사체험단의 첫 탐방지는 거창이었습니다.

당산나무가 우람한 황산 마을은 옛날 집과 돌담장이 그대로입니다. 거창 신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기와집은 원학고가(猿鶴古家)입니다. 들어갈 때는 돌담길, 나올 때는 벽화거리를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벽화거리를 더 좋아했습니다. 색깔이 알록달록 칠해져 있어 눈길을 끌어당기는 모양입니다.

당산나무 아래로 해서 황산마을로 들어갑니다.

원학고가 앞에서.

벽화거리에서.


수승대에서는 시내 옆 구연서원 들머리 정문 관수루에서 도시락을 먹은 다음 2층 누각에 올랐습니다. 3행시 짓기 등 글쓰기를 하면서 다들 바닥에 앉거나 누워 편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물놀이는 기본이지요. 여기 쓰인 관수(觀水)는 물처럼 낮은 데부터 스며들어 꽉 다 채워 나가는 선비의 자세를 담았다고 합니다.

구연서원 들머리 관수루에서.


가까운 데 있는 거창 대표 인물 동계 정온의 옛집에도 들러서 사랑채의 두 줄로 낸 겹처마와 높게 세운 툇마루를 눈에 담았습니다. 겹처마는 추위를 가리는 데 쓰이고요 높은 툇마루는 더위를 물리치는 데 쓰인답니다. 겨울에는 추위도 심하고 여름에는 더위도 기승을 부리는 경남 북부 내륙 거창의 조건에 적응한 결과랍니다.

2. 조금만 틈이 나도 물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

금원산 골짜기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위인 문바위 위쪽 벼랑에 있습니다. 오르는 길에 아이들은 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물의 관계는 참새와 방앗간 또는 술꾼과 술집 이런 관계와 같습니다.

고려 시대 바위에 새겼는데요, 산골에 불상을 새기며 그 때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을까요? 아니면 그런 기복(祈福) 생각 없이, 다만 부처가 되기 위한 수양으로 새겼을까요?

마지막 거창박물관. 산골인데도 들이 너른 거창답게 농경 유물이 많았습니다. 고려 호족의 것인 둔마리 고분에서 나온 벽화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다른 자랑은 김정호 선생이 만든 대동여지도 진본이다. 펼치면 가로 3m 세로 7m 정도나 됩니다.


아울러 앞에 가서 봤던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탁본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거기 현장에서는 빛이 부처 뒤쪽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실제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 박물관 탁본은 그런 빛과는 상관없이 부처님 모습을 그대로 되살려 놓고 있었습니다.

3.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익히자'주의


◇9월 8일 하동·구례 최참판댁~고소산성 들머리~쌍계사~구례 오미마을~매천사당 = 역사체험단은 ①한 군데서 하나씩은 확실하게 익히기 ②즐겁게 놀기와 열심히 공부하기와 배운 만큼 기록하기의 조화 둘이 원칙입니다. 말하자면 역사 공부에 지나치게 매이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세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함께 지낼수록, 요즘 문제는 아이들이 공부를 적게 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해서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해서, 제대로 놀 줄 몰라서 오히려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쨌던 이런 원칙을 따라서 하동 평사리가 무대인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와 절간 부처님의 차림새와 그를 일컫는 용어들을 이날 확실하게 익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토지〉 줄거리를 읽게 한 다음 퀴즈를 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집중력이 놀라웠습니다. 출제한 13문제 모두를 맞힌 친구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도 퀴즈는 이어졌습니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가 하인이던 귀녀 일당한테 불에 타 죽은 장소를 알아오세요.'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의논도 하고 거기 있는 어른들한테 묻기도 해서 답을 찾았습니다. 최참판댁에서 초가로 지붕을 이은 유일한 집인 '초당'이랍니다. 굳이 가서 몸소 목도(目睹)하고 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4. 섬진강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섬진강이 통째로 보이는 한산사 앞 고소산성 들머리 전망대에서.


마을 어귀에 있는 할매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는 섬진강 늘씬한 몸매가 통째로 보이는 고소산성 들머리에 올랐습니다.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죄다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풍경이 예술이에요!", "마음이 절로 좋아져요!"

쌍계사로 가는 버스에서는 부처 꼬불꼬불한 머리는 '나발', 손모양은 '수인', 이마에 있는 점은 '백호', 뒤에 번쩍거리는 배경은 '두광', 입은 '통견'이며 목에 난 줄을 '삼도'라 한다는 등을 익혔습니다. 부처님 앉아 있는 자리(대좌)에서 아래로 엎드린 연꽃은 복련(伏蓮), 위로 우러르는 연꽃은 앙련(仰蓮)인 줄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조그만 앎만으로도 아이들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태까지는 아무 느낌 없이 부처님을 눈에 담았는데, 이렇게 신체 부위별 이름을 알다 보니 부처님 둥실한 몸통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나 봅니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 앞에 모여 앉았을 때, 아이들 떠들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불상을 보면서 명칭을 실감나게 한 번 더 익혔습니다.

쌍계사 대웅전 부터님 앞에서.


5. 운조루에서 압권은 타인능해(他人能解)

이제 전남 구례 오미마을 운조루로 떠납니다. 무인 집안인 여기는 솟을대문 위쪽에다 호랑이 뼈를 걸어놓았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운조루에는 굴뚝이 없습니다. 양반집에서 밥한다고 연기를 잔뜩 피우면 가난한 이웃이 힘들어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물론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집안을 감돌아 몸소 불을 때는 사람은 좀 힘들었겠지요만.


여기 운조루에서 압권(壓卷)은 이런 데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리에 쌀뒤주를 갖다 놓고는 그 여닫는 마개에 적어넣은 他人能解(타인능해)가 그것입니다. '(주인 아닌) 다른 사람도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으로, 얻어가는 사람 자존심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랍니다.

운조루가 들어선 오미마을에는 이렇게 그네가 있어서 아이들이 즐거웠습니다.


6. 매천 황현 목숨 끊은 자리에 들어선 사당

같은 구례의 매천사. 조선을 걸고 목숨을 버린 선비 매천 황현. 1910년 경술국치 때 목숨을 끊은 자리가 여기입니다. 독약을 먹었는데도 목숨이 바로 떨어지지 않아 끝간데없이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독약을 마시면서도 몇 차례나 입술을 떼었다고 합니다. 역사와 현실이 마주치는, 그리고 명분과 실존이 마주치는 꼭지점에 서서, 힘들어하고 흔들려하는 매천 황현이었던 모양입니다.

매천사 경내 대월헌에서.


아이들은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저도 말로는 이리 씨부랑거리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조선 역사를 통째로 껴안은 엄청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인식 저 너머로 매천을 두고 볼 뿐이랍니다.


오늘 일정은 조금 힘든 구석도 있었지만 즐겁게 놀 수 있으니까 좋고 또 새롭게 알아가는 바가 있어서 즐겁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이 잘 돼서인지, 놀 때와 공부할 때가 아이들이 저절로 구분이 됐습니다.

7. 역사 인물이 많은 고장 함양

◇10월 20일 함양 학사루~느티나무~상림~정여창 고택~화림동 정자 = 함양서에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물줄기를 돌리고 둑을 쌓아 상림을 만든 신라 시대 최치원, 조선 사림의 시조 김종직과 일두 정여창 등 인물에 먼저 집중했습니다.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에서.


정자와 누각도 알아봤습니다. 함양에는 학사루 같은 누각도 있고 군자정·동호정·거연정 같은 정자도 많습니다. 정자는 사적인 공간이고, 누각은 공적인 공간입니다. 그리고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닦는 데라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각은 마루를 높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정자는 낮은 마루 양식이 많습니다.


학사루와 학사루 앞 느티나무를 거쳐 상림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상림숲에서 여기 있는 역사 인물이 모두 몇인지와 상림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찾는 과제를 풀었습니다.

8. 화림동 동호정과 그 앞 너럭바위


그러고는 화림동 정자가 많은 골짜기로 옮겨갔습니다. 옛날 선비가 되기나 한 듯이 곧바로 동호정에 올라가 둘러앉는다. 나무를 이어붙이지 않고 통나무 하나를 갖고 홈을 파서 가파르게 세워놓은 계단에 눈길을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화림동 동호정에 올랐습니다.


동호정에 오른 김에 옛날 선비들처럼 시라도 한 편 써 보게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잘 썼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런 따위는 상관이 없습니다. 호연(浩然)한 자연 풍광 앞에서 감각 세포가 한껏 벌어진 것은 누구나 다 똑같았습니다.


동호정 앞 너럭바위는 옛날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아이들 뛰어놀기에는 딱 좋습니다. 어른이 놀아도 좋은데요, 다만 바로 앞 물이 깊어서 그 푸른 빛이 조금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물에 들어가도 될 정도 날씨는 아니어서, 물장난은 조금만 하고 놀았습니다.

동호정 앞 너럭바위에서 뛰놀았습니다.


9. 왜 기와집만 한옥 취급받고 초가집은 아닐까?

일두 정여창 옛집에도 들렀습니다. 사랑채 앞뜰에는 전나무가 있고 왼편으로는 소나무들이 있는 이 집은 무척 씩씩합니다. 그 씩씩함이 언제나 인상 깊고 좋기는 하지만 어떤 때는 조금 지나치다 싶기도 합니다. 사랑채 정면 위쪽에 엄청나게 크게 쓰여 여기 오는 이들을 압도하는 ‘절의(節義)’ 따위 글자가 그런 느낌을 더해줍니다.

일두 정여창 옛집 사랑채에서 찍은 전나무와 소나무들.

일두 옛집 별채에서.

일두 옛집 사랑채에 적힌 어마어마하게 큰 글자.


어쨌거나 이런 점도 있습니다. 한옥에는 일두 정여창 옛집 같은 기와집은 물론이고 짚이나 억새로 지붕을 이는 초가집도 두루 포함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초가집은 한옥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됐을까요? 여기에는 무슨 사회·역사·문화적 심리가 있을까요?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애고’ 하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일까요? 어떻게 해서, 왜 우리 어른과 아이들 머리에 기와집은 좋고 초가집은 나쁘다는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게 됐을까요?

10. 옥천사 자방루에는 새가 몇 마리 있을까?


◇11월 17일 고성 옥천사~마암면 석마~송학동 고분군~상족암~공룡박물관 = 옥천사는 조선 말기 닥종이를 진상했습니다. 스님들은 공양만 마치고 나면 닥나무 껍질을 벗겨 끓인 뒤 찧은 것을 골짜기 물에 일렁거려야 했습니다. 종이를 뜨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매우 힘들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340명 안팎이던 여기 스님이 닥종이 진상이 폐지되기 직전인 1863년에는 10명 남짓만 남았다고 합니다. 닥종이 노역의 고됨을 일러주는 숫자입니다.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지식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콩나물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물이 콩나물시루를 그저 한 번 스쳐지나갈 따름이지만, 콩나물은 꼬물꼬물 잘도 자랍니다. 아이들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옥천사 진입로의 고즈넉함을 즐겼고 거기 맑고 환한 공간의 볕바름을 즐겼습니다. 절간에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1700년대 들어 간결하고도 튼튼하게 지어진 자방루에 올라서 이리 굴리고 저리 뛰며 놀았습니다. 덕분에 절간 사람한테 지청구를 듣기는 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자방루 비천상.

자방루에 그려진 새.


자방루는 1888년 고쳐 지을 때 그린 단청들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지금은 옛날만큼 단청을 잘할 재간이 없기에 색을 입히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비룡상·비천상 그리고 새와 구름 따위가 흐릿한 채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흐릿함 속에서도 새들과 천인 모습들을 잘도 찾아냈습니다. 건물 단청에 이렇게 많이 새들이 들어 있는 절간은 또 드물다고 하지요.

11. 농경 한가운데 남은 기마문화, 돌말 두 마리

고성군 마암면 석마 마을에는 석마가 있습니다. 석마는 농경 문화 한가운데 남겨진 기마 문화의 자취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세 마리였으나 2003년 가운데 있던 한 마리를 도둑맞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때 일본 사람들이 서성댔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했을 개연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정월대보름 새벽에 석마를 수호신으로 삼아 동제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봤더니지금은 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동제 전날 밤에 콩 한 말을 바쳤다가 이튿날 거둬들이는 형태는 매우 독특해 보입니다. 말이 좋아하는 콩을 준다는 점, 그것을 그대로 거둬들인다는 점이 남달라 보이는군요.

12. 송학동 고분군 독수리와 상족암 파도 밟기 놀이

송학동 고분군에서는 산책을 했습니다. 고분 사이로 걸어가니 마치 역사책 또는 옛날 가야시대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이 독수리가 떠 있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바로 옆 철성고등학교에 김덕성이라는 미술 선생님이 계시는데요, 14년 전부터 겨울철마다 학교 둘레 들판에서 독수리한테 먹이를 챙겨주십니다. 이래서 이토록 엄청나게 많은 독수리가 여기서 겨울을 나고는 시베리아 몽골로 봄에 돌아갑니다.

송학동 고분군을 산책했습니다.


공룡발자국이 유명한 상족암으로 옮겨갑니다. 공룡박물관에는 당연히 들렀지만 아이들은 감흥이 없습니다. 어떤 친구는 이랬습니다. “공룡박물관에는 여덟 번이나 왔어요.” 그런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진짜 상족암을 진짜 온몸으로 누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룡박물관 아래쪽 바닷가를 상족암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길이 끊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물때를 맞추지 않으면 건너가거 자기 손과 발과 눈으로 제대로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이 물때에 맞추느라고 일정을 늦춰 해질 무렵에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지나간 오랜 세월이 여기 바위에 새겨놓은 갖은 자취들을 눈에 담고 발과 손으로 누렸습니다. 움직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기에 파도가 매력적인가 봅니다. 친구들은 철썩철썩 드나드는 파도를 자기 발로 밟아보는 파도 밟기 놀이도 했습니다. 옥녀탕·선녀탕 같은 홈도 둘러보고요 굴처럼 생겨난 돌틈을 타고 들어가 공간의 어둑어둑함도  즐겼답니다.

상족암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파도 밟기 놀이.

굴처럼 생긴 바위 틈을 빠져나오는 아이들.


13. 들를 때마다 활기 가득한 삼덕항

◇1월 19일 통영 삼덕항~박경리기념관~세병관~문화동 돌벅수~강구항~중앙시장~동피랑 = 삼덕항을 먼저 찾았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어항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는 옛날부터 만선(滿船)과 무사귀환(無事歸還)을 비는 풍어제가 치러졌습니다. 그 자취가 어귀 돌벅수랍니다. 이 돌벅수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한테서 막걸리 등등을 받아먹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제 구실을 다하고 있는 셈입니다.

들를 때마다 활기찼던 삼덕항에서.


여기는 또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지이기도 합니다. 돌벅수 뒤쪽으로는 당포산성이 있는데요, 그 맞은편 산마루 장군봉에서 당시 전투 지휘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그 전투의 이름이 당포해전이라고 합니다.

삼덕항에서는 1604년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의 표착을 기념하는 ‘최초 서양인 도래비’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최초는 아닙니다. 1582년 제주도에 표착했던 한 외국인과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 따라 들어온 세스페데스 신부가 실은 더 앞서 왔던 도래인이라는 얘기가 곁들여질 수밖에 없지요.

14. 세병관 너른 마루에서 마음껏 뛰놀고

하동에서 최참판댁을 찾아가면서 익혔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고향이 바로 통영입니다. 아이들에게 박경리 선생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었더니 틀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런 따위는 나중에 필요할 경우 자라면서 조금씩 갖추면 그만입니다.

박경리기념관은 멀리 왼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기념관보다는 박경리 선생 무덤 자리가 더 좋습니다. 아이들도 기념관보다 무덤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와 무덤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들판과 산들을 좋아했습니다.

도시락을 먹고 세병관으로 떠났습니다. 세병(洗兵)은 무기를 씻는다는 뜻이랍니다. 임진왜란으로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당대 사람들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겠습니다. 1600년대 초반 지어진 세병관은 일제강점기에는 초등학교 교실로도 쓰였는데, 박경리나 윤이상 같은 예술가들이 여기서 수업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세병관 마루에 올라 굵다란 기둥을 잡고 돌거나 기둥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마루에 엎드리거나 누워 쏟아지는 햇살에 눈길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너른 공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뛰고 구르고 놀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넓은 데가 여기 세병관이거든요. 같이 견줄만한 테가 서울 경복궁 경회루와 전남 여수 진남관 정도뿐이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15. 돌벅수를 화려 장엄하게 단장하는 까닭은


세병관 들머리 잘 생긴 문화동 돌벅수는 자세히 보면 색칠한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칠이 모두 벗겨져 돌로 만든 보든 벅수와 장승들이 원래부터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었으리라 여기지만 실제 옛날 사람들은 화려 장엄하게 꾸몄답니다. 왜냐하면, 둘벅수 등등을 진짜 숭배했으니까요. 숭배 대상이 초라해서야 어디 스스로에게도 권위가 서지 않았을 테지요.


이어 새로 복원한 거북선이 둥둥 떠 있는 강구항으로 갑니다. 아이들은 거북선에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나옵니다. 배 안 공간이 좁아 갑갑한 모양입니다. 강구항 문화마당에서 아이들은 편을 나눠 준비해 간 공으로 농구대에 공 넣기 놀이를 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마지막은 동피랑. 고양이 발자국 찾기, 천사 날개 사진 찍기, 다 마친 다음 동피랑 마을 꼭대기로 찾아오기 등등 과제를 냈습니다. 서넛씩 팀을 이뤘습니다. 혼자라면 적지 않게 헤매기도 했을 텐데, 이날 모두 제대로 해내었습니다. 오후 4시 어름, 마을 구판장에서 이날 받은 상금을 헐어 군것질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됐습니다.

16. 두루 즐기고 고루 누리고 함께 배우자는 해딴에

해딴에는 이렇게 여행·체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마을 만들기·도랑 살리기 또는 갱상도 인문학 협동조합 결성을 통한 지역밀착형 인문학 강의 같은 공익 활동을 벌입니다. 지역의 관광·탐방 자원을 널리 알리는 블로거 팸투어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같은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제작 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특히 자치단체와 교육청 같은 공공기관의 많은 애용을 바랍니당)


저희 해딴에는 경남도민일보가 만들었는데요, 2012년 9월에는 경남도로부터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정식 지정이 됐습니다. '해딴에'는 '해가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말인데요, '지금 여기서, 미루지 말고, 두루 누리고 고루 즐기고 함께 배우자'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3년 올해에는 3월에 시작해서 내년 2014년 2월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여럿 만들어 저희 해딴에 카페(다음Daum 검색창에서 한글로 ‘해딴에’ 석 자를 치시면 바로 뜬답니다.)에 올려놓았습니다. 참가 신청이나 문의는 010-2926-3543 또는 pole08@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언제나 즐겁고 고맙게 받들겠습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시작도 전에 깨진 박근혜의 신뢰와 원칙

$
0
0
MBC경남의 라디오광장은 설날 연휴를 앞둔 2월 8일에도 진행됐습니다. 저는 이 날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김상헌 MBC경남 기자와 함께 설날 연휴에 사람들이 얘깃거리로 삼을 만한 정치권 뉴스들이 어떤 것들일까 짚어봤습니다.

8일 오전에는 박근혜 당선인이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등 내각 일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얘기도 들어가기는 했는데, 사실은 기초연금이나 3대중증질환 의료비 보장 같은 복지 분야를 가장 많이 다뤘습니다. 박 당선인이 공약했던 '세금 증가 없는 복지 확대'의 실제 모습이 여기 있거든요.

-------------------------------------------

김상헌 : 내일 설날 연휴가 시작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같은 식구 친척끼리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우게 될 텐데요, 이번 설에서는 무슨 얘기들이 오갈지 미리 한 번 가늠해 볼까요?


김훤주 : 가장 많이 오르내릴 얘깃거리는 날씨가 되겠지요. 까치설날도 우리 설날도 꽁꽁 얼어붙게 생겼습니다. 오늘도 거창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4도였습니다. 경남 최저지요. 이런 매서운 추위는 설 연휴 내내 이어진다고 합니다.

2월 8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풍경. 뉴시스 사진.


헌 : 안 그래도 고향 계시는 부모님들 평소 자식 걱정 많으실 텐데, 손자손녀 데리고 돌아오는 자식들 보고 이렇게 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고 처음 말을 건네게 되겠네요. 설연휴 끝날인 11일부터 조금씩 풀린다고 하죠?

줄줄이 MB에 등돌린 감사원, 권익위, 인권위

주 : 정치권에서는추위 타는 사람이따로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대통령과 미래 대통령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헌 : 그렇죠? 정치권 추위는 오래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설연휴 고향집 이야기에도 거리를 많이 제공하고요.

주 :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에 감사원이 총체적 부실이라며 ‘칼’을 댄 게 얼마 전입니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이미 제기했던 사안인데 그동안 꿈쩍도 않고 있었고 오히려 문제없다고 면죄부를 줬지요.


그런데 지난 6일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4대강 사업에서 열일곱 개 대형 건설사들이 담합했다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짬짜미 역시 많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이미 제기한 의혹입니다.


마지막으로 7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습니다.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했다며 이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인권위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묵인 아래 민간인을 불법사찰했다며 대통령에게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헌 : 대통령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무렵에야 나온 셈이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변신에 대해 “이럴 수가…” 또는 “힘이 빠지니…” 라며 권력무상을 얘기했지요. 면피성에다 그동안 돌봐준 권력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원칙과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박근혜 당선인

주 : 예, 이번 차례는 미래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입니다. 올해 상반기의 주역은 단연 박 당선인인데요. 박 당선인이 스스로 불러들인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원칙과 신뢰, 약속 이런 당선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다치게 됐거든요.

헌 : 박 당선인이 지난 16년 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쌓아온 소중한 자산인데, 야당 시절에는 앞장서 청문회 강화를 이끌었고 그 때는 아무 말 않다가 이번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청문회가 문제 있다, 신상 털기식은 안 된다고 말을 바꿔 일관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어요.

주 : 뿐만 아닙니다. 대선 과정에서 연금제도 개편을 통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을 2배 올려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0만원을 국민연금 가입여부나 소득 등에 따라 4개로 나눠 차등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말바꾸기를 한 거죠. 

암·심혈관질환·뇌질환·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총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수위는 6일 가장 큰 부담인 간병료,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같은 3대 비급여는 공약에 처음부터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공약집에는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하여 총진료비, 그러니까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해국가가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어요.

서로 어긋나는 내용을 공약한 자체가 문제

뉴시스 사진.


헌 : 진료비 부분은 후보 3차 TV토론회에서도 확인됐었죠?노후소득보장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인데, 이게 뒤집어지고 있는 거죠. 복지단체와 노인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찮죠?

주 : 그런데 원인을 따져보면 박 당선인이 ‘복지 확대’와 ‘세금 증가 없음’ 둘 다를 공약으로 내세운 데 있습니다. ‘세금 증가 없는 복지확대’는 근본에서 서로 부딪히죠.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이 모자라니 ‘세금 증가 없음’을 지키기 위해 ‘복지 확대’를 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재벌이나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은 ‘증세 없음’보다 ‘복지 확대’를 우선시합니다.

헌 : 그 때문인지 박 당선인 지지율이 예년과 많이 다르다고 하네요. 한국갤럽이 1월 28일부터 2월 1일까지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당선인이 “잘하고 있다”는 52%였어요. 선거 때 지지율 51.6%와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주 : 두 주 앞서 진행했던 조사 결과도 높지 않은 55%였는데, 그보다도 3%p가 낮아졌어요. 그런데 이런 적이 여태까지 없었다는 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을 앞두고 지지율이 80%를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했고요,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12월 26일 여론조사에 84.1%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거든요.


잘못된 인사와 불통으로 지지율 떨어지고

헌 : 처음에 거품이 많았다가 나중에 지지율이 폭락하는 것도 문제고, 어쨌든 지금 낮은 지지율이나마 그대로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그 원인이 뭐라고 합니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박 당선인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해서 그렇다는 얘기들도 있던데~~~

주 : 전체적으로 보면 맞고요, 여론조사에서 “인사 잘못,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이유로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요, 뒤이어 “국민소통 미흡, 너무 비공개, 투명하지 않다”가 많았습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연령대별 지지율 변화인데요, 30대 지지율이 46%로 지난 조사보다 7%p 올랐고, 40대 이상 모든 연령대와 20대에서는 모두 떨어졌습니다. 특히 박 당선인 지지 성향이 뚜렷한 50대와 60대 이상에서 각각 10%p와 7%p로 하락폭이 컸습니다.
(69%→59%, 69%→62%)

헌 : 인사 잘못이 지지율이 낮게 나온 데 영향을 미친 셈인데요, 사실상 박 당선인이 지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실제로 박 당선인이 지명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갖은 비리와 의혹이 제기된 끝에 버티기를 하고 있거나 자진 사퇴한 것이 타격이 됐겠군요.

왜 하필이면 설날 연휴 앞두고 총리 후보 발표했을까

박근혜와 정홍원. 뉴시스 사진


주 : 그래서인지 박근혜 당선인이 설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오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발표했습니다. 경남 하동 출신이죠?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에 지명된 정홍원 변호사 말씀입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실장에는 김장수 전 국방장관과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이 각각 내정됐어요.

헌 : 첫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도덕성 논란 끝에 낙마한 때가 지난달 29일인데, 꼭 열흘만이군요. 총리 청문회도 거쳐야 하고 17명 장관도 임명 제청해야 하고 장관들 청문회도 치러내야 내각이 모두 짜일 텐데, 박 당선인이 취임하는 25일까지 다 마무리될는지가 걱정입니다.

주 : 야당쪽에서는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으니 내각 구성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고 첫 총리 후보 낙마를 반면 교사 삼아 사전 검증을 철저하게 했다니 쉽게 통과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설날 얘깃거리에 초점을 맞춰보면 왜 하필이면 설 연휴 전날 총리 후보를 지명했을까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역대 최저를 기록한 당선인 지지율 때문에 서둘러 발표했겠다는 분석이 나왔고요, 다음으로는 아무도 인선못한 이런 상황이 설연휴까지 이어지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있었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헌 : 이미 제기돼 있는 인사 검증에 대한 비판이 설연휴까지 계속되면 곤란하겠지요. 특히 설 추석 같은 명절 연휴는 지역 민심이랑 수도권 민심이 한데 뒤섞이면서 새로운 폭발력을 보이기 십상이죠. 그렇게 되면 박 당선인으로서는 출발부터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두 총리 후보가 모두 법조 출신인 까닭

주 :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한편에서는 낙마한 김용준 총리 후보도 법조인이고 이번 정홍원 총리 후보도 법조인인 데 대해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 후보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법원 출신이고 부산·광주 지검장과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검찰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헌 : 그렇네요.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질 만하네요. 왜죠? 박 당선인과 어떤 점에서 코드가 맞는 거죠?


주 : 김용준 첫 후보는 이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정홍원 이번 후보 또한 지난해 총선 새누리당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지냈는데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성향이 아니라 당선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쓴 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거죠.

그에 더해 박 당선인은 '법질서 수호'라는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법률을 많이 다뤘고 거기에 잘 길들여진 법조인을 박 당선인이 선호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설날 연휴 앞두고 안철수 전 후보도 발언

뉴시스 사진.


헌 : 설연휴를 앞둔 시점에서 안철수 전 무소속 대통령 후보도 발언을 했어요. 내용은 간단하지만 이것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캠프 출신 인사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것일 뿐인데도 확 퍼졌어요.

주 : 발언을 하지 않다가 직접 소리를 내니 그렇죠.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 후보 귀국 시기를 두고도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월에 온다 3월에 온다 등등인데, 4월 초순은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4월 24일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거든요. 이 때 안 후보가 직접 출마하거나 아니면 다른 측근이 출마할 경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헌 : 물론 이보다 늦은 10월 재보선이나 아니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안철수 정치가 다시 가동되는 시점으로 예측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 : 모든 가능성이 동원되겠지요. 정치권 설연휴 얘깃거리 가운데 문재인 후보 대선 패배 책임론도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안의 이른바 친노와 비노, 그리고 사퇴한 안철수 후보 세력 등이 얽혀 있는데, 저마다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격론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헌 : 적어도 경남에서는 아닐 것 같은데요. 박근혜 당선인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왔잖아요.

2월 11일 귀갓길 모습. 박근혜 정부 시절이 서민들에게 이렇게 어둡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뉴시스 사진.


주 : 이밖에 국가정보원 여직원 관련 얘깃거리도 풍성합니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는데다, 여직원 말고 아이디를 빌려 사이버 공간에서 여론 조작을 한 다른 인물도 드러났고 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이달 25일 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죠. 그러면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게 됩니다.

이번에 본인이 상징으로 삼고 있는 원칙과 신뢰와 약속이 조금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쪼록 선서가 박 당선인 임기 내내 제대로 지켜지기를 많은 유권자들이 바라겠죠. 박 당선인도 이를 좀 새긴다면 좋겠습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박근혜, 나는 약속 깼지만 너는 신뢰 지켜라?

$
0
0

2012년 대선에서 복지 확대와 경제 민주화는 어느 누구 가릴 것 없는 원칙이었고 약속이었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 모두 그리 하겠노라고 밝혔더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말이 달라졌습니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시켜서 말을 바꿨습니다. 물론 ‘세금 증가 없음’은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대다수 서민에게 좋은 것은 깨졌고 극소수 재벌에게 좋은 것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신뢰는 반쪽으로 남았습니다. 우리 사회 대다수 구성원은 박근혜 당선 이후 그에 대해 아주 낮아진 지지율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뉴시스 사진.


사정이 이런데도 박 당선인은 향후 국정 추진 기반을 ‘정부에 대한 신뢰’라고 밝혔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런 신뢰를 강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일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들을 두고, 이튿날인 22일 금요일 MBC경남 라디오광장에서 같은 MBC경남의 김상헌 기자와 주고받은 얘기들입니다.

------------------------------

김상헌 : 박근혜 정부의 향후 5년 로드맵이 어제 21일 발표됐어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날 국정 비전과 국정 목표 그리고 국정 과제를 밝혔습니다. 가장 상위 개념인 국정 비전을 ‘국민 행복, 희망의 새시대’로 잡았더군요.

김훤주 : 국민 ‘행복’과 ‘희망’이라는 비전 아래 국정 목표를 다섯 개 선정했네요. 첫째 일자리 중심의 창조 경제, 둘째 맞춤형 고용복지, 셋째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넷째 안전과 통합의 사회, 다섯 번째가 마지막으로 행복한 통일 시대의 기반 구축입니다.

헌 : 다섯 개 국정 목표 아래에는 국정과제 140개가 있습니다. 이 국정 과제를 다시 추진 전략에 따라 나눴는데요. 추진 전략이 ‘창조 경제 생태계 조성’을 비롯해 모두 21개입니다. 인수위는 이렇게 발표하면서 이렇게 추진하는 기반이 신뢰라고 했습니다. 원칙과 약속을 상징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에 걸맞은 기치 같기는 합니다.

주 : 국민 행복을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국정을 맡는 박근혜 정부가 정말 잘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어제 인수위에서 발표한 국정 과제 관련 보도자료를 보니까요, 200자 원고지로 열여섯 장 분량인데, 여기에 ‘신뢰’라는 낱말이 모두 다섯 차례 나옵니다. 국정 비전으로 꼽은 ‘행복’과 ‘희망’은 각각 열두 번과 세 번 적혀 있고요.

뉴시스 사진.


헌 : 그러면 민주주의 민주 민주화 이런 낱말들은 어떻던가요?

주 : 딱 한 번 나옵니다. 그것도 국정목표나 국정과제를 꼽으면서 나온 말이 아니고 우리나라 지난 역사를 짚어보는 대목,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며 국가 경제규모는 선진국 수준으로 커지고 국격도 높아졌으나”, 하는 부분뿐이었습니다.

헌 :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최고 가치가 국정 비전인 국민 행복인 셈인데요. 행복을 우리 사회에서 실현하는 수단이랄까 방법을 꼽으면 복지가 되잖아요? 복지라는 낱말은 얼마나 나오나요?

주 : 세 번 나옵니다. 좀 적은 느낌이 듭니다.

헌 : 그러면 복지와 함께 행복을 위한 방편으로 꼽히는 고용은 사정이 어땠어요?

주 : 그렇죠. 요즘은 안정된 고용이 바로 복지라는 인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죠. 그것도 세 번 나왔습니다. 마찬가지 자주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열세 번으로 아주 많고 신뢰는 다섯 번으로 조금 많습니다. 반면 희망 고용 복지는 제각각 세 차례로 적은 편이며 민주는 딱 한 번으로 아주 적었습니다.

헌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대선에서 간판처럼 내세웠던 공약이 바로 복지랑 경제민주화였는데, 국정비전과 국정 과제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 그런 낱말이 많이 들어 있지 않다니 조금 뜻밖이네요.

뉴시스 사진.


주 : 박 당선인 후보 시절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경제민주화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 3대가 아니라 5대 국정 목표에도 끼이지 못했습니다. 반면 마찬가지로 간판 대선 공약이었던 복지는 ‘맞춤형 고용·복지’라는 두 번째 국정 목표로 꼽혔습니다. 이를 두고 박 당선인의 재벌 개혁을 비롯한 경제 민주화 의지가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헌 : 그러면 대선 당시 공약했던 경제 민주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세부 공약들은 이번에 어떻게 됐어요?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처럼 그것들도 사라지거나 약해졌는가요?

주 :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수위 관계자 말처럼, ‘모두 경제 파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5대 국정목표에서 제외됐을 뿐 관련 공약들이 모두 포함됐고, 그 실천 방향이나 이행 계획도 그대로라는 얘기입니다.

헌 : 그러면 총론은 사라지고 각론은 남았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내용을 조금 소개해 주시죠.

뉴시스 사진.


주 : 인수위는 공약집에 있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을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라는 국정 목표를 위한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질서 확립’이라는 추진 전략으로 묶어 내놓았습니다. 일부는 좀 진전됐고 일부는 후퇴했지만, 대체로는 공약들을 구체화하는 수준에서 정리됐다고 합니다.

대기업 횡포 규제 방안과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총수의 불법행위를 막는 방안 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부당 단가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 업체에 도입해 3배까지 물리기로 했습니다.

대리점 등에 일정 가격 이하로 팔지 못하게 하는 행위나 담합에 대해서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모든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외신청형 방식’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밖에 지금까지는 공정거래위원회만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을 고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중소기업청, 감사원, 조달청에도 고발요청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배구조 개선 부분에서는 공약대로 계열사간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됩니다. 그리고 신규가 아닌 기존 순환출자의 고리 강화를 위한 추가 출자도 ‘신규’인 것으로 간주해 금지됩니다. 강화된 부분입니다.

아울러 대기업 총수 일가 불법행위 제재도 강화됩니다. 공정거래법에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이익을 챙긴 일가에게 직접 과징금을 물려 부당이득을 거둬들입니다. 지금은 일가에게 이익을 안긴 기업에만 과징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총수의 횡령 등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고 사면권도 사면심사위에서 엄격하게 상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공약집에 있던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 강화’ 부분과 ‘사면권 제한’ 표현이 빠지거나 바뀐 것은 ‘후퇴’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취임식 전날 서울 보신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를 적고 있는 사람들. 뉴시스 사진.


헌 : 각론 차원에서는 강화된 부분도 있고 약화된 부분도 있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일괄해서 약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당선인의 경제 민주화 의지가 약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나요?

주 : 하위 개념 차원에서는 구체화돼 있다 해도 상위 목표에서 빠졌기 때문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주로 담당할 정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의 말인데요, “경제민주화처럼 이해관계자가 다양하고,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게 있는 사안이 국정목표에서 순위가 떨어지면 바로 추진동력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국정목표의 하위 개념인 추진전략으로 제시되면 개별 정책들이 향후 입법·실천 과정에서 얼마나 힘을 잃기 십상이라는 거죠.

헌 : 그렇군요. 그러면 복지 분야는 어떤가요? 복지가 고용과 함께 두 번째 국정 목표로 올라가 있다고 했잖아요?


주 : 이건 내용면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알려진대로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암, 희귀난치성 질환 같은 4대 중증질환 의료비 100% 국가 부담 공약은 직접 치료비만 포함되고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빠졌습니다.

65살 이상 모든 어르신께 다달이 20만원씩 기초연금을 드리겠다던 공약도 빈말이 됐습니다.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대상자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하위 70% 노인들로 한정했습니다. 전체 노인 600만 명의 절반인 300만명만 해당됩니다.

하위 70%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인 101만 명은 가입 기간에 따라 14만~20만원을 차등 지급받습니다. 상위 30%는 국민연금에 가입했으면 4만~10만원, 가입 안했으면 4만원 정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헌 : 하위 70%의 경우는 역차별 논란도 일어나겠습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인은 다른 노인과 마찬가지로 사정이 어렵고 형편이 쪼들리는데도 어찌어찌해서 보험료를 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 별달리 합당한 해명도 없이 기초연금을 적게 주겠다니까 말씀입니다.

주 : 그렇습니다. 사정이 딱한 어르신일수록 1만원 2만원이 크고 소중할 텐데, 이들을 모두 보듬지 못했습니다. 대선 과정에 경로당에서 가장 대접받았던 후보가 바로 박근혜 당선인인데, 우리나라 어르신들 당선인한테 제대로 한 번 속고 말았습니다.

뉴시스 사진.


헌 :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45%인데 이건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나라 평균인 13.5%의 세 배를 웃도는 수치랍니다. 우리 어르신들 열악한 조건을 보여주는 것인데…… 어쨌든 이렇게 새로 연금을 지급하게 되면 돈이 더 들 텐데요,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는가요?

주 : 인수위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해 국민행복연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초연금은 국비와 지방비로 감당하는 공적 부조 성격이고 국민연금은 개인이 적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서로 성격이 다른데도 하나로 묶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합이 되면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공공 재원이 부족해지면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쓸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헌 : 그렇게 돼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동시에 부실해지는 최악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겠군요.

주 : 맞습니다. 복지를 확대하면 그만큼 돈이 더 들 수밖에 없는데, 박 당선인은 세금 증가는 없다고 밝혔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세금을 더 거두지 않는다면 복지를 축소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남의 곳간을 헐어 돈을 빼낼 수밖에 없는 것이죠.

뉴시스 사진.


헌 : 박근혜 정부 출범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어쨌든 국정 과제 추진 기반을 신뢰에서 찾았잖아요? 인수위 발표를 따르면
국정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신뢰받는 정부가 되어야 하고 새 정부는 개방과 공유, 협력을 통해 국민과 소통해 국민적 신뢰를 얻어나가겠다고 밝혔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주 :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신뢰가 쉽사리 생길 수 있을까요? 당선될 때 공약을 정부가 출범도 전에 어기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박 당선인이 이번에 복지 분야에서 깨뜨린 4대 중증질환 의료비 100% 국가 부담이나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모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공약 파기로 받는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겠고 그러므로 이를 치유하고 달래려면 박근혜 정부가 좀더 많이 신경쓰고 더욱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 주기를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 바랄 것입니다.


헌 : 그렇겠지요. 새 정부가 공약을 깨면서까지 어려운 사람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 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나마라도 신뢰가 생길 테니까요.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쌍계사에서 만난 독재자 앞잡이 김성곤

$
0
0

1. 죽을 때까지 호사를 누린 김성곤

성곡 김성곤(省谷 金成坤), 제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져 있던 이 이름이, 하동 쌍계사에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기억에 그이는 독재자 박정희 앞잡이이며 동시에 돈줄입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갖은 호사를 죽을 때까지 누렸습니다. 팔자도 참 좋습니다.


물론, 그이에 대한 악감정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그이의 이름이 쌍계사 들머리 돌다리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래 전부터 있었을 텐데, 제가 무심해서 이번에야 봤던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김성곤(1913~1975). 호는 성곡이며,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금성방직· 동양통신·연합신문 사장, 쌍용양회·쌍용산업 회장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민의원에 당선돼 정치가로 활동했다.

1959년 국민대학교 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며, 1963년부터 제6~8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과 중앙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71년 10월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 가결을 둘러싼 이른바 ‘10·2항명’의 핵심으로 지목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민주공화당을 탈당하고 정계를 떠났다.

1965년 성곡언론문화재단·성곡학술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969년 국제언론인협회 이사로 선출됐으며 1973년부터 3년 동안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2. 항명했으나 경제계에서는 살아남아

박정희 시절에는 이른바 ‘항명’이라는 말이 두루 쓰였습니다. 박정희가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고 전제왕국의 군주였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에서 국회의원 등등을 하는 나부랭이들은 말을 듣거나(순명) 듣지 않거나(항명)였습니다. 다른 여지는 없었습니다.

1971년 10월 2일, 민주공화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야당을 편드는 바람에 오치성 내무부장관의 해임 건의안이 가결됐습니다. 이를 두고 10·2항명 파동이라 하지요. 독재자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항명의 객체고 이른바 공화당 4인방이 그 주체였습니다.

1971년 6월 독재자인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삼아 내각을 개편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69년 3선 개헌을 할 때는 김종필이 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그이를 뒤로 미뤄놓고 있었습니다.

3. 유신본당 김종필 못지 않은 해악을 끼친


대통령 연임 금지를 폐지하고 세 차례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이었는데요, 그 해 9월 14일 일요일 새벽 2시 야당이 농성하고 있던 국회 본회의장을 피해 제3별관에서 여당 쪽 의원 122명이 기명투표방식으로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10월 17일 국민투표에서 77.1% 참여에 65.1%의 찬성을 얻어 개헌이 성립됐습니다.

3선 개헌은 독재자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보장하는 유신헌법으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박정희는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다시 나섰습니다. 상대는 ‘박정희가 당선되면 더이상 대통령선거는 없다’고 예언했던 야당의 김대중 후보였습니다.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당선됐고, 이듬해인 72년 유신헌법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선거를 만듭니다.

3선개헌은 유신으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인데, 이 징검다리를 김성곤을 비롯한 이른바 4인방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성곤 등등은 유신본당을 자처하는 박정희 시절의 2인자 김종필만큼이나 우리 역사에 해악을 끼친 인물입니다.

왼쪽 다리에는 삼신산 외청교라 적혔고 오른편에 시주 성곡 김성곤이 있습니다.


3선 개헌은 독재자 박정희의 뜻을 따라 이후락 청와대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민주공화당 김성곤·백남억·길재호·김진만 등 4인체제가 주도했습니다. 물론 이들은 김종필 반대세력이었고 박정희는 3선 개헌을 위해 김종필과 그 날개들을 분질러 놓았습니다.

김성곤을 비롯한 4인방은 그 뒤 기세가 등등해졌습니다. 독재자 박정희는 당연히 이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71년 대선이 끝나자마자 김종필을 수반으로 내각을 짜고 오치성(육사 8기 출신, 5·16쿠데타 가담)에게 내무부장관을 맡겨 김성곤 일파를 견제했습니다.

실제로 오치성은 김성곤을 비롯한 4인방 계열로 분류되는 시장·군수와 경찰서장을 내쳤다는데, 때마침 야당이 실미도 사건과 광주 대단지 사태를 들어 오치성을 비롯한 몇몇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에 김성곤 등이 편승해 오치성을 날렸습니다. 그러자 독재자 박정희는 중앙중보부를 시켜 이들을 손보게 했습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실미도 사건은 1971년 8월 23일 인천 앞바다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684부대 북파공작원들이 부대원을 살해하고 뛰쳐나와 빼앗은 버스를 타고 중앙청을 향해 진격하다가 자폭한 사건입니다.

광주대단지 사태는 1971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지금 성남시) 일대에 서울 빈민촌 출신 10만 명 남짓을 집단으로 이주시켰으나 마실 물 등등 아무 대책 없음에 주민들이 폭발해 일어난 봉기 또는 폭동입니다.

4. 어쩌다 쌍계사에까지 이름을 새겼을까


그러나 박정희는 김성곤을 뿌리까지 뽑지는 않았습니다. 쌍용양회·쌍용산업 회장을 그대로 유지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상공회의소 회장까지 하도록 했습니다. 그에 걸맞은 대가가 박정희에게 돌아갔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누릴 만큼 누리고 부릴 만큼 부린 사람이 그러니까 김성곤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이 박정희 치하에서 한둘이었겠습니까만, 아무래도 이 사람 고향이 저희 종가가 있는 경북 고령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 얘기들이 20대 지나면서 나름대로 정리되다 보니 독재자 박정희의 앞잡이인 동시에 돈줄로 굳어졌습니다.

그 돈줄이, 여기 쌍계사까지 뻗었던 모양입니다. 김성곤은 무엇을 바랐을까요? 박정희에게서는 현세에서 누리고 부릴 수 있는 권력과 돈을 받았으니까, 부처님에게까지도 내세에서 누릴 그 무엇을 바랐을까요? 아무튼 앞으로는 여기 쌍계사 오면 이 돌다리를 넘을 때 ‘성곡 김성곤’ 그 이름에 눈길을 한 번 던지지 않을 수는 없겠습니다.

김훤주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Viewing all 1163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