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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는 기자들의 완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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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 회장 선거가 지난 12월 10일 끝났다. 세 명의 후보가 출마한 이번 선거는 유례없이 치열했다. 박종률 현 회장이 득표율 39.6%로 당선되긴 했지만, 손균근 후보(31%)와 서명수 후보(29.4%)가 얻은 표도 만만찮았다.


지금 나는 기자협회 회원이 아니다. 그러나 20년 넘게 회원이었고, 지금도 내 정체성은 편집국장 이전에 기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세 명의 후보는 기자들의 권익과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공약을 내세웠다. 세 명 모두 언론인공제회에 거액의 공적기금을 따오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그러나 예산과 사업을 공개하겠다는 후보는 딱 한 명이었고, 그는 낙선했다. '기자윤리'를 언급한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지난 2011년 회장 선거를 앞두고 쓴 글에서 기자협회의 세 가지 문제를 적시한 바 있다. 첫째 투명하지 못하고, 둘째 기자윤리 문제에 대한 자정(自淨) 능력이나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셋째 오히려 기자들의 특권(特權) 의식을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기자협회가 받는 돈, 쓰는 돈은 그 출처나 규모를 알 수 없다. 회원의 회비도 그렇지만,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이나 협찬을 받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이처럼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모임이나 단체를 본 적이 없다.


또한 협회 스스로 제정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이 있지만, 그걸 위반했다고 해서 단 한 번도 회원이나 회원사를 징계한 적이 없다. 심지어 기자들이 뇌물이나 성접대를 받아 사회적 파문이 일어도 그 흔한 논평이나 성명서 한 장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이비(似而非) 기자'일수록 기자협회를 일종의 라이선스나 완장처럼 여기고 가입하려 기를 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자협회가 단순한 이익단체나 이권단체가 아니라면, 자기 직업의 이익만 추구할 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부과된 사회적 역할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자 윤리 확립'은 기자협회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감히 기자협회 새 회장과 집행부에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최소한 회원에게만이라도 모든 수입과 지출을 세부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협찬, 지원, 금일봉 따위는 아예 받지 말아야 한다.


둘째, 취재원에게 금품을 받거나 특혜성 해외여행, 골프 접대, 출판물이나 광고 강매 등 윤리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제명을 포함한 단호한 징계를 해야 한다. 그런 위반 행위가 기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해당 신문사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경우, 회원사 자격을 아예 박탈하고 이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셋째, 이번에 후보들은 '해직기자 복직'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우선 내년 8월 열리는 창립 50주년 기념식 자리에 언론장악과 통제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 초청 좀 하지 마라. 그런 자들의 축사를 청하고, 함께 웃고 떠들며 술잔을 부딪치면서 '언론자유' 운운하는 모습은 역겹다.


이런 것부터 먼저 해놓고 나서 '언론인공제회법 제정'이니 '정부의 기금 출연'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자. 기자와 기자협회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선행되지 않은 그런 요구는 또 하나의 특혜이며 특권의식일 뿐이다. 나도 기자지만, 그땐 내가 먼저 나서서 그 특혜를 고발하고 반대할 것이다.


※경남도민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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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지역언론 왜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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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은 왜 필요한 걸까요? 지역 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러기 위해선 지역의 각종 현안이나 문제가 뭔지를 시민들이 알아야겠죠. 또한 그런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공론장(public sphere)이 있어야겠죠. 신문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그런데 이미 존재하는 공론장이 시민의 의제를 담아내지 못하거나 지배세력의 입장에 치우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겠죠.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특권과 특혜,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고, 우리가 낸 세금이 공정하게 사용되지 않으니 힘없는 사람들만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바로 그래서 좋은 지역신문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잘 몰라요. 아니, 알아도 좋은 신문을 잘 보지도 않고 키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러다보니 좋은 신문은 생존이 어렵죠. 오히려 지배세력에 빌붙어 연명하는 ‘사이비신문’들이 판을 치고 있죠.


이런 판국에 ‘제대로 된 진주의 공론장’ 역할을 하려고 만드는 게 <진주같이>잖아요. 이걸 제대로 만들고 키우는 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역할이고요.


/김주완(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이 글은 진주를 중심으로 한 생활정치 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창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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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선수가 마음대로 행패부리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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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MBC경남 <라디오 광장>의 ‘세상 읽기’ 방송을 했습니다. 12월 부분 개편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방송이었습니다. 이 날은 홍준표 도지사의 학교 무상 급식 예산 지원 축소 등을 다뤘습니다. ‘먹는 것 갖고는 장난치면 안 된다’고들 누구나 말하는데 말씀입니다. 쩝쩝, 입니다.

 

김훤주 기자 : 예, 오늘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언행과 행보를 두고 이런저런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지난해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셨으니 이제 1년이 다 돼 갑니다. 그동안 시끄러운 일들이 적지 않았고 그 중심에는 대부분 홍준표 도지사가 있었습니다.

 

진주의료원 국면에서 노조혐오증을 활용하고

 

서수진 아나운서 : 그렇지요? 상반기에 있었던 일 가운데는 진주의료원 폐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서민 의료 시설인 진주의료원을 재정난을 내세워 문을 닫게 하는 바람에 진주나 경남은 물론 전국 차원에서 쟁점이 됐었습니다.

 

주 :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진주의료원 이용 환자, 그 가족들이 크게 반대했는데요, 그러면서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니까 귀족 노조 강성 노조라 공격하면서 널리 퍼져 있는 노조혐오증을 활용해 국면을 타개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진 : 그런데 이번에는 무상급식 지원 규모를 줄여 말썽이 되고 있지요? 선거 당시에는 무상급식 확대를 공약했는데 말이죠.

 

공약한 무상급식 지원 줄이고도 공약 파기 아니라 하고

 

경남도의회에서 얘기하는 홍분표 선수.

 

주 : 홍 지사는 지난 20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에서 재정 사정이 어려워 무상급식 예산을 축소했다는 논리를 댔습니다. 아울러 무상급식 확대가 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언급했을 뿐이고 공약집에는 들어 있지 않다면서 이번 예산 삭감을 공약 파기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홍 지사 얘기대로라면 앞으로 유권자들은 텔레비전 토론회나 여러 가지 보도 자료들을 통해 나오는 도지사 후보들의 약속은 절대 믿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후보들은 자기가 약속한 말에 대해서, 공약집에 들어 있지 않으면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한 마디로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얘기입니다.

 

진 : 그밖에 다른 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기관 사이 합의가 아니라 개인들이 한 약속이라고 말이죠. 주 : 경남도교육청과 경남도청 사이에 한 약속을 김두관 전 도지사 개인과 고영진 교육감 개인이 한 것으로 축소해 얘기했습니다.

 

경남교육청과 경남도가 2010년에 함께 세운 학교 무상급식 지원 4개년 계획을 보면 도교육청이 급식운영비 전액과 식품비의 30%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경남도가 30%, 시·군이 40%를 분담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도와 시·군은 10%씩 낮추고 도교육청이 20%를 추가 부담하라면서 줄여버렸습니다.

 

진 : 도의회에 제출된 학교 무상급식 예산은 모두 329억 원이라고 합니다. 올해 403억 원보다 74억 원이 줄어들었고 이미 도교육청과 합의된 2014년 식품비 분담 금액보다는 164억이 깎였습니다. 게다가 열여덟 개 시·군이 40%씩 부담하기로 한 것이 30%로 줄면 무려 329억 원이 모자라게 되는 셈이라고 해요.

 

주 : 그런데 홍 지사가 선거 과정은 물론 당선 이후에도 줄곧 무상급식 확대를 얘기해왔는데요, 이번에 뒤집었습니다. 선관위 주관 토론회에서도 무상급식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고, 시민단체 공개 질의에서도 무상급식 확대는 전임 도지사와 교육청 사이에 합의된 사항이므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거 앞두고 한꺼번에 뒤집으면 된다?

 

진 : 그런데 이번에 왜 이렇게 말과 행동을 바꿨을까요? 내년 6월로 예정된 도지사 선거에도 별로 유리할 것 같지 않은 언행을 왜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요.

 

주 :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홍 지사는 당선된 뒤인 올 1월 7일 잠정 보류했던 무상급식 확대 계획을 올해 시 지역 초등학교까지 확대 추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 취임한 홍준표 지사가 선거과정에서 학교 무상급식 예산은 부족분을 추경에서 확보해 정상 추진한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이번 결정은 재정 여건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서도 복지예산은 감축하지 않는다는 도지사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까지 했습니다.

 

진 : 그러니까 그 때도 재정 여건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어려웠고, 그렇게 어렵다 해도 아이들 급식만큼은 무상으로 먹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에 대응하는 논리도 궁색하고요.

 

주 : 그래서 이런 예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선거에 때맞춰서 이번에 축소시킨 무상급식 관련 예산을 추가경정으로 확보해 공개함으로써 눈 앞에 닥친 선거에 활용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진 : 지금대로라면 경남도교육청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탓에 동지역 중학생 무상급식이 어려워질 것이고 그런 국면에서 홍준표 도지사의 경남도가 어려운 재정 상황에도 아이를 위해 무상급식 예산을 추경을 통해 확보하기로 했다고 전격 발표하면 경남도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겠네요.

 

주 : 실제로 지난해 11월 임채호 전 도지사 권한대행이 올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무상급식 삭감한 적이 있는데요, 그것을 홍 지사가 올 1월 복원하면서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발표는 1월에 나왔지만 추경 편성은 7월에 이뤄졌으니까, 예산 절감 효과도 나름 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무상급식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는 고영진 경남도교육감.

 

무상급식은 좌파정책이라 우기기도

 

진 : 그렇군요. 7월에 추경 예산이 편성된다면 1월부터 6월까지 절반은 무상급식 확대가 되지 않은 채로 지나가니까 말씀입니다. 홍 지사가 이밖에 시민사회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대목이 더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 : 예, 경남도의회 시정연설에서 무상급식 확대 방안을 일러 좌파정책이라고 언급한 모양입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레드콤플렉스에 기대는 모습이 너무나 뚜렷한데요. 이제는 그런 색깔론이 통하는 때가 아님을 홍 지사는 하루빨리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 무상급식은 2010년 이후 당연한 시대 흐름으로 자리잡았거든요.

 

진 : 이번 11월에 들어와 일어난 홍 지사 관련 사건이 또 있지요?

 

주 : 홍 지사는 경남발전연구원이나 경상남도개발공사 같은 경남도 유관 공공기관장 자리에 자기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많이 앉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현주 경남자원봉사센터장도 내쫓고

 

이번에는 예전부터 자진 사퇴 압력을 공공연하게 받아왔던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 김현주 센터장을 사실상 해고했습니다. 그 자리에 자기 편을 앉히겠다는 속셈이 들어 있겠지요.

 

진 : 들어보니까 센터장에게 센터장 지위 부존재 황인 통지 공문을 보냈다던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주 :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김현주 센터장이 센터장에 임명된 적이 없기 때문에 김현주 센터장한테 그런 센터장 자리가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됩니다. 2011년 8월 임명될 때 임기가 2012년 8월까지였는데 그것만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진 : 그러면 경남도의 주장 또는 논리가 맞는 것인가요? 이후 2012년 9월 시작되는 연임 임기는 제대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셈이 되는데 말이지요.

 

억울하다는 기자회견을 하다가 눈물을 감추는 김현주 센터장. 경남도민일보 사진.

 

주 : 경남도 또는 홍준표 지사 대신 경남자원봉사센터 이사회가 앞장서고 있는 형국인데요, 연임 절차 이행 과정에서 공개 모집, 채용심사위원회 선정, 이사장 임명 등 세 가지 요건을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진 : 만약 그런 절차상 하자가 사실이라면 여태까지 센터장 업무 수행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을 것 같은데요.

 

주 :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임명장을 이사장으로부터 받지 못한 것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2012년 이사회에서 연임이 결정됐고 임채호 당시 도지사 권한대행으로부터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다만 당시 이사장 자리가 비어 있어서 임명장을 받지 못했다고 김현주 센터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진 : 그렇다면 김현주 센터장이 임명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센터장 잘못이 아니고 따라서 센터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지금 김현주 센터장은 어떻게 돼 있습니까?

 

주 : 센터장의 권한을 지금은 사무국장이 대행하고 있고요, 김현주 센터장은 이런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법적 대응 비롯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기는,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찍어주는 유권자들이 있는데

 

2012년 보선에서 당선됐을 때.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 : 그런데 홍 지사는 도청 간부들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센터장을 아느냐고 하면서,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을 뺐다고 하죠?

 

주 : 그런데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면 도청 간부 공무원이 홍 지사 이름을 빌려서 엉뚱한 압력을 행사한 셈이 되는데,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가 당연한데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경남 도민을 바보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기는, 제가 생각할 때, 우리 경남 유권자들이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자기한테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찍어주는 표심이 여전히 상당할 테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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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낙동강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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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차례 일정으로 지난 8월 시작한 '언론과 함께하는 습지 생태·문화 기행'이 마지막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지막은 마지막다웠습니다. 11월 3일 있었던 마지막 습지 생태·문화 기행은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마지막인 낙동강 하구를 찾았답니다.

 

경남은행·농협경남본부·STX그룹은 자금 출연 등으로 람사르환경재단을 거들어 왔습니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대표이사 고재윤)과 경남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한 이번 습지 생태·문화 기행은 이에 보답하려고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해당 기업 직원 자녀들이 대상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습지를 체험할 수 있는 제공하는 한편으로 재단 홍보도 겸한답니다.

 

◇ 우리나라 으뜸 철새 도래지 낙동강 하구

 

일행을 태운 버스가 처음 닿은 데는 부산 명지철새탐조대였습니다.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철새를 살펴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해설과 안내를 맡은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인 박중록 선생님은 맨 먼저 고니를 소개했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새가 바로 고니입니다. '부산 갈매기'라는 노래 때문에 '부산' 하면 '갈매기'를 많이 떠올리는데, 갈매기는 부산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고니가 부산을 대표하는 까닭은 이랬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된 고니가 겨울에 한반도를 찾는 숫자가 5000마리 정도 되고 그 대부분이 부산에 있는 낙동강 하구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덩치가 커서 듬직하고 고개랑 목의 곡선이 우아해서 주는 느낌도 좋습니다.

 

그런 고니를 비롯해 여러 철새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데가 바로 명지철새탐조대입니다. 아이들은 박중록 선생님 안내를 따라 스코프와 망원경을 통해 저 멀리 강물 한가운데에 있는 철새들을 바라봤습니다.

 

맨눈으로 볼 때는 조그만 점이던 것들이 스코프를 통해 보니 비로소 자맥질·날갯짓도 하고 머리도 흔드는 생명체로 보였습니다.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눈길이 닿을 수 있는 데는 죄다 그런 철새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박중록 선생님은 맨눈으로 보고 스코프로 보고 하더니 "지금 보이는 철새가 2만 마리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물이 차올라 있는데 이럴 때 철새들 먹이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물이 빠지면 바닥이 굳어져 먹이를 잡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그 때는 새들이 날개를 접고 물에서 나와 쉰다고 말했습니다.

 

고니를 알아보게 된 아이들을 한 번 더 신기하게 만든 것은 고니 색깔이 여러가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얀 줄로만 알았는데, 검게 보이는 고니도 있고 잿빛 고니도 있어요." 한 번 짝을 지으면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낸다는 고니는 어릴 때는 재색이다가 털갈이를 하면서 어른이 될수록 흰색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박중록 선생님은 고니 다음으로 몸집이 커다란 새를 찾아보라고 일러줬습니다. 기러기입니다. '달 밝은 가을 밤에 기러기들이 찬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라는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이들이 이처럼 가깝게 본 적은 없는 새가 또 기러기일 것입니다.

 

이어서 지금 가장 많이 보이는 새는 청둥오리라고 했습니다. 청둥오리는 수컷이 빛나는 녹색으로 화려하고 암컷은 흐린 갈색으로 수수합니다. 수컷이 화려한 까닭은 암컷한테 잘 띄어야 짝짓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짝짓기를 마치고 나면 수컷도 수수하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철새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은 "야, 고니다!" "저건 기러기!" "청둥오리는 진짜 많네!" 하면서 신이 났습니다. 박중록 선생님은 물수리까지 소개해줬습니다. 강물 한가운데 장대에 올라앉아 먹이를 뜯는 새가 무엇인지 일러준 것입니다.

 

◇ 낙동강 하구가 한 눈에 보이는 아미산전망대

 

강원도 태백 황지를 가장 먼 발원지 삼아 남으로 흐르면서 대부분 물줄기를 쓸어담은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데를 일러 낙동강 하구라 합니다. 이런 데에는 민물과 짠물이 뒤섞이게 마련이고 따라서 민물에서 사는 생물과 짠물에서 사는 생물이 모두 있습니다.

 

아미산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낙동강 하구.

 

철새로서는 먹을거리가 여기보다 풍부한 데는 없는 셈이고 철새가 많이 몰려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낙동강 하구를 시원하게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데가 아미산전망대입니다.

 

명지철새탐조대가 있던 낙동강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는데, 여기 남해 바다와 마주치는 데서는 가운데 드러누운 모래톱과 섬들을 빼면 그야말로 광활하답니다. 여기서 박중록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대자연의 풍경 가운데 하나"라고 일러줍니다.

 

 

낙동강 하구는 강과 바다가 만나면서 힘있게 움직이는 곳이랍니다.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이름이 높고 한때는 쓰레기매립장으로 쓰였던 을숙도도 나이가 100살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강물과 함께 흘러온 흙이 가라앉아 바닥에 쌓이기도 하고 바닷물이 치오르면서 모래 따위를 뿜어놓기도 합니다.

 

강물을 떠나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흙들도 적지 않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셈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모래톱이나 섬이 생겨나기도 하고 조금씩 허물어져 없어지기도 합니다. 섬과 모래톱이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형국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달라지는 섬들이 여기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자리에 저렇게 있습니다.

 

이어서 다대포 몰운대 들머리 한 밥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도 먹고 정구지전도 챙겨먹은 아이들은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바위를 뒤지며 게를 잡기도 했고, 동네 어른들 양동이를 갖고 와서 그렇게 게를 잡는 모양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떠날 때는 애써 잡은 게를 고이 돌려보내주는 '착한' 모습도 보였답니다.

 

 

◇ 즐거운 놀이터가 돼 준 낙동강하구 에코센터 일대

 

쓰레기 매립장이던 을숙도는 복원 작업을 거쳐 '을숙도철새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낙동강하구 에코센터는 을숙도 일대 보전·관리와 생태 전시·교육·체험 학습 공간 제공을 목적으로 삼아 들어섰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공생을 낙동강 하구에 실현하자는 얘기랍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아이들한테는 뛰어놀기가 가장 신나는 일이지요. 박중록 선생님은 편을 나눠 달리기를 하게 했습니다. 에코센터 잔디밭에서였습니다. 대략 20m 앞에 있는 나무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오는 이어달리기였습니다. 이기거나 지거나 관계없이 뛰는 아이들도 즐거웠고 바라보는 아이들도 즐거웠습니다.

 

물론 에코센터에도 들러 이런저런 구경을 하고 해설사로부터 짧으나마 설명까지 들었습니다. 여러 모형들을 눈여겨봤으며 2층 탐조대에서는 을숙도 남쪽으로 이어지는 강물 풍경과 철새들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답니다.

 

마지막에는 탐방로를 따라 산책을 즐겼습니다. 양옆으로 억새랑 갈대가 우거진 길을 걸었습니다. 간지러운 강아지풀도 있고 따끔거리는 도깨비바늘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이 모두가 놀이 도구였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갈대 잎으로 바람개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박중록 선생님은 갈대 잎사귀로 바람개비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잘 배운 아이들은 강아지풀 막대에 갈대 바람개비를 꽂아 바람을 맞혔는데 제법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이렇게 기행을 하는 동안, 아이들 모두가 생태자연을 좀더 닮게 된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차례에서는 이번 다섯 차례 습지 생태·문화 기행에 참여하면서 느끼고 누렸던 바가 무엇인지를 함께 정리해 보는 참여 학생들 소감이 준비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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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탐방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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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시작한 '언론과 함께하는 습지 생태·문화 기행'의 다섯 번째이면서 마지막인 탐방은 낙동강 하구로 떠났습니다. 철새들의 낙원으로 옛날 그 아름다운 을숙도를 기억하는 이가 드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다듬고 가꿔 원형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아쉽지만, 가족나들이에 안성맞춤인 쉼터로 거듭난 곳이기도 하답니다.

 

"을숙도는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곳이라 그곳에 볼 것도 없는데 왜 가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곳이 많았다. 가족과 함께 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설명해주시는 선생님께서 을숙도의 '을'은 '새 을(乙)'이라고 하셨다. 을숙도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이라 많은 물고기들과 많은 새들이 살고 있었다."(석동초등학교 6학년 김예지)

 

 

식구들이랑 찾았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알게 되었다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보는 것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만큼 보이는 것입니다. 습지 탐방을 통해 한층 넓어진 아이들의 시야가 느껴집니다. 다른 나라를 많이 다녀본 친구의 낙동강 하구 탐방 소감도 색다르답니다.

 

"낙동강 하구에서 여러 가지 새와 물고기 오리 고니 등 많은 종류의 동물과 그 동물들의 특징과 사는 곳의 환경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갈대와 갈대잎을 아주 생생하게 보았다. 나는 이때까지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일본 등 많은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동물과 물고기 등을 봤는데 여기에 와서 가장 많은 새와 오리를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반송초등학교 3학년 조혜지)

 

 

"오늘 낙동강에 갔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새를 많이 본 날 같다. 2000마리! 허걱 새가 그렇게 많은 것도 신기하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낙동강 물은 정말 깨끗하였다."(호계초등학교 5학년 김민성)

 

"오늘 점심을 먹고 바닷가에서 바다생물들을 보았다. 군소(바다달팽이) 게 소라 고동 등을 만져 본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군소라는 바다 달팽이는 처음으로 본 것이다. 물렁물렁거렸다. 게는 집게발이 아주 큰 것도 있었고 집게발이 없는 게도 있었다.

 

오늘 와서 바다 생물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바닥에 죽어있는 게를 봤는데 정말 불쌍했다. 바다 생물들을 이제부터 가져가지 않아야겠다."(반송초등학교 4학년 이동욱)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 근처 바닷가에서 보낸 짧은 시간에도 보고 느낀 바가 많은 모양입니다.

 

머리에 강아지풀을 꽂았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낯설고 서먹해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가 있습지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로는 지겨워하고는 때로는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이번 탐방을 마지막으로 끝내면서 스스럼없이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람사르 탐방을 다니며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처음엔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낯설고 이 탐방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도 생기고 배우는 것도 많으니까 탐방을 꺼려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소중한 추억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 다음에도 이 탐방을 갈 수 있게 되면 동생도 같이 데리고 오고 싶다."(삼정자초등학교 6학년 강지오)

 

"오늘 코스를 다 갔다 온 후 버스에 탔는데 선생님께서 오늘이 마지막 여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친구들도 생기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인연이 돼서 다음에도 만났으면 좋겠어요."(중동초등학교 6학년 신현경)

 

 

"'오늘이 습지 탐방 마지막이라 많이 아쉽다'라고 오전에서 지금까지 내내 생각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이야기할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너무 심심해서 별로 재미가 없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한두 번 와보니 자연이랑 함께 하는 것이 엄청 재미있어졌다. 계속했으면 좋겠지만 다섯 번밖에 없어 엄청 아쉽다. 만약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으면 반드이 꼭 올 거다.!"(용남초등학교 5학년 김혜리)

 

돌아보면 언제나 가장 힘들고 가장 괴로웠던 때가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다섯 차례 기행 가운데 신불산습지 탐방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산을 타고 올라가 만났던 그 고산습지의 몽환적인 광경들이 아이들 마음에 많이 남은 것이겠지요.

 

"다섯 번의 기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신불산 습지다. 신불산을 오를 때는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신불산 습지는 고지에 있어서 습지 가는 길이 정글 그 자체였다. 길도 험해서 바지에 물이 다 묻을 정도이고 가다가 풀에 베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습지에 도착하고 나니 보람이 있었다."(김해구산중학교 2학년 이옥해)

 

"그동안 다녔던 곳 중에서 신불산 습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비가 오는데 산에 올라서 힘들고 짜증이 났다. 습지는 안개가 자욱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경험이 좋게 생각된다."(용호초등학교 6학년 김대운)

 

탐조 스코프에 자기 휴대전화를 밀착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이 습지 보전을 도와주는 기업 STX그룹과 경남은행·농협 경남지역본부에 대해 보답을 하려고 직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이번 탐방을 통해 아이들은 훌쩍 자랐음을 알게 됩니다. 자연을 대하는 자세에 조심스러움이 생겼고 자연생태의 소중함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생태계는 인간이 임금처럼 군림하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존재임을 몸으로 마음으로 깨우친 시간들이랍니다. 그런 생각들이 듬뿍 묻어나는 글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낙동강은 자주 보았지만 별 생각 없이 그냥 강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의 4대강 중에 하나로 먼 길을 가는 철새들의 쉼터로서 자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고 느꼈다.

 

습지 탐방을 다니면서 환경의 소중함 특히 습지를 우리가 반드시 보존해야 하며 자연을 보존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여러 부분에서 매우 의미있는 기행이었다."(대방중학교 2학년 박소열)

 

"다섯 차례의 일정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게 되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좋은 경험을 하였다. 경남에도 멋진 곳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는 좋은 시간들이었다."(대방중학교 1학년 박주완)

 

"세상 모든 것은 마지막이 더 뜻깊고 마지막이 더 아쉽다. 지난 것은 한 때는 슬프고 쪽팔렸어도 추억이 없는 것보다는 추억이 남아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난 최선을 다했고 추억을 남기고 돌아간다." 어느 친구가 쓴 이 글귀를 끌어와 마무리를 합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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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는 먹을거리 상권 연계 좋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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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지역 축제에 대해 한 번쯤 이런 얘기는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축제를 벌이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겠지만, 지역 물산을 널리 알리고 팔려는 목적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좀 더 잘해야 할까요?

 

11월 4일 MBC경남 <라디오광장>의 ‘세상읽기’에서 짚어봤습니다. 그 날 방송에 나가지 못한 부분은 살리고 다른 대목은 원래보다 분량을 크게 줄였습니다. 생방송, 특히 라디오 방송은 그런 때가 많은데요, 이 날도 제 앞에 하는 사람 얘기가 길어진 탓인지 준비한 내용이 잘리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기자 : 10월의 마지막 날과 11월 첫 주말이 함께했던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곳곳에서 이런저런 축제가 열렸는데요, 오늘은 이런 축제를 두고 얘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서수진 아나운서 : 지난 주말 아주 날씨가 좋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도 날씨가 선선했고요 한낮에는 오히려 더위를 느낄 정도로 푸근했습니다. 이런 좋은 날씨에 기대어 경남에서도 여러 시·군에서 축제가 치러졌다고 하지요.

 

주 : 지난 주 축제 가운데 으뜸은 마산항 제1부두에서 열흘 동안 치러진 창원시 '제13회 가고파 국화축제'가 되겠습니다. 3일 끝났지요. 이밖에 여러 축제가 열렸습니다. 대충 훑어봤는데도 창녕 우포누리 농특산물 축제, 밀양 얼음골 사과축제, 함양 지리산둘레길 걷기 축제가 있고요, 거제서 열리는 거제섬꽃축제는 2일 시작해 10일까지 이어지는군요.

 

국화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자치단체 주최는 아니지만 남해 해오름예술촌은 남해 보물섬 커피 축제를 치렀고요, 김해 진영단감제와 창원단감축제, 양산 배내골 사과축제, 하동 악양 대봉감축제가 지난 1일부터 3일 사이에 있었습니다.

 

진 : 지난주에는 경남 곳곳에서 축제가 줄을 이었습니다. 함양에서 지리산 둘레길 걷기 축제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남해에서도 걷기 축제가 있었네요. 제2회 남해 바래길 걷기 축제가 2일 토요일에 벌어졌습니다.

 

주 : 축제를 생산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보자면, 축제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이득이 생겨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체로 지역 또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 특산물을 상품화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진 : 그렇다면 축제가 열리는 동안 그런 농특산물이 얼마나 팔렸느냐가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평가해도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주 : 옳으신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축제 기간에 해당 지역 농특산물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는 제대로 산출되지 않거든요. 농협이나 공식 판매장 말고 개별 농가에서도 판매가 이뤄지는데, 이것들을 낱낱이 통계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다음에 또 찾아오고 싶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런 것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는 좀 미심쩍은 구석이 많습니다.

 

진 : 그렇지요. 지역 농특산물을 알리는 축제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사과냐 배냐, 단감이냐 홍시냐, 이런 품목만 다를 뿐이지 다른 행사는 거의 대부분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한 번 스쳐 지나가면 그뿐 기억에는 별로 남지 않는 것 같아요.

 

주 : 이번에도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로그램이 농산물 생산자들이 나와서 하는 이런저런 게임이나 경주, 비슷비슷한 상품 전시나 페이스페인팅 같은 체험, 상품 판매나 팔도 먹거리 장터 등등입니다. 어디 가도 마찬가집니다.

 

진 : 다른 축제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차별성이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그렇다 해도 이를테면 팔도 먹거리 장터라든지 지역 농산물로 만드는 음식점 같은 것이 이처럼 일반화되는 데는 나름 까닭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주 : 맞는 말씀입니다. 여행을 떠나면 볼거리가 절반이고 먹을거리가 나머지 절반이라 하잖아요? 그만큼 눈에 보이는 것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먹을거리를 똑같이 장만하더라도 그 안에서 충분히 차별화를 해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진 :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시지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등도요.

 

주 : 창원단감축제장에 갔는데 북면막걸리가 나왔습니다. 김해 진영단감제에는 가보지 못했는데요, 거기서도 봉하쌀막걸리가 나왔다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해당 지역에서 날 뿐 아니라 재료도 100% 국산 쌀이거든요. 경남의 막걸리 시장을 80%가 부산 생탁이 장악하고 있는데,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데다가 국산 쌀 사용도 80%인가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팔도 먹거리 장터에 입점하는 음식점을 선정할 때도, 국산 원료를 많이 쓴다든지, 아니면 발암 성분이 없는 숯을 쓴다든지 하는 기준을 정하면 다른 데서 벌어지는 일반 장터와는 확실하게 구별될 수 있거든요.

 

진 : 그렇겠습니다. 형식은 그대로 둔다 해도 내용을 바꾸면 되겠군요. 그렇게 되면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이미지까지 좋게 남길 수도 있고요.

 

주 : 그렇다는 얘기고요. 그런 식으로 생각을 넓혀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자꾸 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할수록 지역 축제가 조금이나마 알차지게 되고요.

 

진 : 마지막으로 창원 마산항 제1부두에서 치러진 가고파 국화 축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죠.

 

국화축제 현장 둘레에 들어선 노점들.

 

주 : 2000년 시작한 국화축제는 2010년 관람객 100만명 돌파를 했지요. 올해도 인원 동원에는 성공했습니다. 편의시설이 모자란다거나 먹거리 장터 질서가 없었다거나 시끄러웠다거나 하는 지적도 나왔지만 이는 앞으로 고치면 될 일이고요, 오히려 깊이 생각할 사안은 다른 상권과 연계입니다.

 

국화 자체의 아름다움을 좀더 다양하게 즐기도록 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전제로 깔고 드리는 얘기인데, 국화축제가 벌어지는 부두 근처만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나머지 마산 지역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창동·오동동이라든지 어시장이라든지 또는 댓거리나 합성동 같은 상권조차 국화축제가 있으나 없으나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필요하다면 행사장에 들어서는 먹거리 장터 야시장 규모 축소도 적극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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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또는 취업 앞둔 고3들에게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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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학생들, 진학이나 취업 앞둔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11월 18일 MBC경남 <라디오 광장>의 ‘세상 읽기’에서 이런 얘기를 풀어놓았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다는 현실에 바탕한 것입니다.

 

김훤주 기자 : 11월 7일 수능이 치러졌습니다. 이번 세상 읽기에서는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이 나름대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는지를 한 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서수진 아나운서 : 앞으로 수시 정시 같은 대학 입학 시험이 마무리되면 우리 학생들에게는 방학 같은 상황이 오래 계속될 텐데요, 이 때 무엇을 하면 좋겠는지 한 번 얘기해 보면 좋겠어요.

 

여태 살아온 고장을 알지 못한 채 떠나는 고3들

 

관동리 유적을 찾은 김해 지역 고3 학생들. 관동리 유적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솟대 세운 자취가 확인됐습니다.

 

주 : 저는 우리 지역 학생들 처지를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많은 학생들이 자기가 살아온 고장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었어요.

 

진 : 그렇지요. 농촌이나 어촌 같은 경우 더 심할 것 같아요. 창원이나 진주·김해 같은 데는 그래도 대학이 있지만, 대학이 없는 시·군도 많으니까요. 또 있다 해도 자기와 적성이 맞을 개연성은 별로 높지 않겠지요.

 

주 :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데요, 서울 또는 대도시 집중 현상은 청소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가능하면 서울, 그게 안 되면 부산 같은 데라도 나가 살고 싶어하는 동경 현상이 매우 심합니다.

 

율하리 유적을 찾은 김해 지역 고3 학생들. 율하리 유적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선사 시대 선착장입니다.

 

진 :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에 있는 현상이 아닐까요? 또 지금 세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고 저희가 고3일 때도 다들 그렇게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주 : 물론 저희 세대도 그랬습니다만, 그런 서울 바라기나 대도시 바라기가 나쁘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요, 단지 이렇게 자기가 태어나 20년 가까이 살아온 자기 고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떠나가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일 따름입니다.

 

지역은 학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진 : 지금 교육 현실에서는 당연한 것 같은데요. 학교나 학원에서 세계적이거나 전국적인 것은 가르쳐도 자기가 사는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일러주는 교과서나 문제집은 없으니까요.

 

거제관아를 찾은 거제 지역 고3 학생들. 대부분이 여기를 처음 온다고 했습니다.

 

주 : 그렇습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문제는 수능 시험에도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수험생들로서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현실입니다.

 

진 : 이렇게 고3 학생들이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자기 지역 소중함을 느낄 수 없었던 아이들 

 

주 : 이미 학생들은, 어쩌면 어른들조차도 대부분이 자기가 사는 지역은 보잘것없고 서울이나 수도권 아니면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가 훨씬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자기가 사는 지역도 살펴보면 나름 소중하고 가치롭고 아름다운 구석이 제법 된다는 사실을 손쉽게 알 수 있거든요.

 

가배량성에 오르는 거제 지역 고3 학생들. 가배량성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 때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자리랍니다.

 

진 :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설령 지금은 진학이나 취업 때문에 고장을 떠나지만 언젠가 돌아올 때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 테고, 타향살이를 하는 중에도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나름 가질 수 있겠네요.

 

주 : 그렇다고 자기 고장 역사나 문화에 대해 무슨 공부를 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설렁설렁 편안한 마음으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기 고장을 둘러보는 여행이나 나들이를 해보자는 얘기입니다.

 

진 : 괜찮겠는데요. 거리도 가깝고 또 바깥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경우도 드물 테니까 비용도 별로 많이 들 것 같지 않고요.

 

주 : 그렇게 떠나 둘러보는 것입니다. 또 널리 알려진 데는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을 테고요, 그렇지 않으면서도 나름 의미가 있고 아름답거나 그럴 듯한 장소를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고려동 유적지를 찾아 율간정 대청 마루에서 들판을 바라보는 함안 지역 고3들.

 

고3들 자기 지역에 대한 무지는 어느 정도일까

 

진 : 그런데 고3 학생들의 자기 지역에 대한 무지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주 : 이번에 양산 지역 고3 학생들을 상대로 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해 본 적이 있는데요, 양산 특산물이 매실과 고로쇠 사과 배 같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맞히는 학생이 드물었습니다.

 

진 : 20년 가까이 살아온 고장인데도 그렇군요. 혹시 양산에만 국한되는 그런 현상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만.

 

주 :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창원 지역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옛 창원서 나는 특산물 가운데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진 과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정답은 단감인데 그 가운데는 밀감이라는 대답도 있었습니다. 나름 학교마다 선발해서 온 학생인데도 말씀입니다.

 

반면, 이렇게 지역 역사 문화에 대해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을 하는 과정에서 창원 출신 유명 연예인은 누구일까 물었을 때는 그렇게 많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칠원향교에서 향교 총무로부터 그 역사를 듣고 있는 함안 지역 고3 학생들.

 

문제는 고3이 아니라 우리 교육과정이지만

 

진 : 우리 교육 과정이 지역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이군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요?

 

주 : 물론 지역 역사 중에서도 전국적으로 의미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창원 성산패총에서 고대 중국화폐가 나왔었거든요. 그 뜻하는 바가 가야세력의 국제 교류, 교역, 무역이라는 어려운 문제는 잘 풀면서도, 정작 창원향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무엇이냐는 문제는 어려워했습니다.

 

진 : 그래서 이처럼 수능을 마치고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자기가 사는 고장의 역사 문화를 둘러보는 여행은 이런 면에서 아주 의미가 있겠어요.

 

조그만 장춘사 멋진 절간 뒤쪽 언덕배기 감나무 아래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함안 지역 고3 학생들.

 

주 : 이런 면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까 나름 사연이 서린 공간들도 많습니다. 마산에서는 창동·오동동 근대사 알기 미션을 진행했는데요, 학생들 반응이 예외 없이 수많이 지나다닌 거리지만 이런 역사가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진 :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거리이고 역사 현장인데도 학교나 가정에서 아무도 일러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월광사지 동서삼층석탑을 찾은 합천 지역 고3 학생들.

주 : 그렇습니다. 뻔히 드러나 있는 장소조차 이렇게 살펴보면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많습니다. 보기를 또 하나 들자면, 합천군 삼가면에 가면 삼가장터 들머리에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이 있습니다.

 

1919년 양력 3월 18일과 23일에 있었던 일인데요, 조그만 시골임에도 규모를 축소한 일제 기록조차도 참가 인원이 1만200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관순 누나의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보다 규모가 컸습니다.

 

또 이런 거대한 운동의 배경에는 경남의 정신적 지주로 일컬어지는 남명 조식이 1500년대 여기서 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장년에 다시 돌아와 학문을 하고 제자를 길러낸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진 : 그런데요, 이런 얘기에 공감한다 해도요, 청소년 또는 학부모가 자기 사는 지역에 이렇게 둘러보면 좋을 그런 역사 문화 현장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지 않을까요?

 

주 : 그럴 수도 있겠네요. 먼저 부모가 나서서 알려주거나 부모한테 물어보면 될 것 같고요, 아무래도 그 지역에 오래 사셔서 알고 있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거든요. 그리고 더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게 연락하시고요.

 

경남도민일보 인터넷 신문 초기 화면 한가운데 즈음에 있는 분야별 취재기자 연락처를 누르시면 김훤주라는 제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그대로 나옵니다.(덧붙임: 여기에 댓글을 남기셔도 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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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남해를 두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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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대로 비디오고 듣는 대로 오디오네!” 말이 떨어지자마자 왁자하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른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체험은?” “아 그야 하는 대로 짜릿하지.”

 

‘2013 보물섬 남해 파워블로거 팸투어’가 10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진행됐는데, 여기 참가한 블로거들이 남해 여러 지역을 돌면서 체험·취재하는 도중에 나왔던 이야기랍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사람들을 비롯해 남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관광 명소에 대한 이런 찬탄은 김용택 선생님의 한 마디로 정리됐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멋진 데를 놔두고 해외여행을 왜 떠나는지 모르겠어요.”

 

평생을 욕심 없이 평교사로 지내다 정년퇴직한 김용택 선생님은 지난해 포털 다음으로부터 시사 부문 뷰(view) 블로거 대상을 받은 파워블로거랍니다. 2013 보물섬 남해 파워블로거 팸투어는 경남도로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은 저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했습니다.

 

이번 탐방에서 처음 본 부소암. 앞에 있는 안내판이 저토록 작아 보입니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보이는 상주해수욕장 일대.

강원·경기·충청·전라권과 경남·부산권 등 전국 곳곳에서 블로거 20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들 블로거는 전국 여러 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초청을 받아 한 해에도 여러 차례 팸투어에 나서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러 명승지를 많이 돌아봤을 텐데, 이런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찬탄이 쏟아지리라고는 저도 미처 생각지 못했답니다.

 

하기야, 남해가 품은 풍광과 자연 생태는 그야말로 ‘보물섬’이라는 말이 아니고는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임은 사실입니다. 이번 팸투어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후릿그물체험에서 줄을 당기는 블로거들. 하늬바람 사진.

 

첫날인 4일에는 먼저 갖은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는 전국 으뜸 갯마을 문항 마을을 찾아 후릿그물 체험을 했습니다. 썰물에 때맞춰 그물을 친 다음 양쪽에서 잡아당겨 갇힌 고기들을 거두는 체험입니다. 힘들었지만 어촌마을 공동체를 지탱했던 협동의 실체와 그 보람을 새삼 알게 해줬습니다.

 

 

이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돌아올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방조림이 빼어난 물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마련한 독일마을을 찾아서는 ‘제4회 맥주축제’를 통해 독일산 맥주를 색다른 분위기에서 누리며 하룻밤을 묵었고 아울러 바로 옆 독특한 원예예술촌도 찾았습니다.

 

이튿날은 이른 새벽 금산에서 봉수대가 있는 정상과 보리암 일대, 그리고 여태 개방되지 않고 있다가 9월에야 공식 탐방이 허용된 부소암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비단(錦)으로 둘렀다는 금산의 아름다움과 멋짐은 누구가 일찍부터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봉수대가 있는 금산 마루에서 아래 바다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블로거들.

 

하지만 엄청난 바위산이면서도 토질이 좋고 풍성해 수풀까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그것도 산줄기가 넌출넌출 뻗어내려가며 상주 앞바다 등지로 발을 담그는 푸근한 정경과 더불어 쏟아지는 아침 햇살 가운데 맞이하는 즐거움은 퍽이나 새로웠습니다.

 

게다가 블로거들과 동행한 정현태 군수는 들르는 곳곳마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면서 멋진 풍광이 가장 잘 보이는 이른바 뷰포인트(view point)까지 잡아줬습니다. 그리고 그에 얽힌 전설 같은 얘기까지 놓치지 않고 보태줬습니다.

 

금산 금산산장 야외탁자. 손수 담금 막걸리가 무척 좋습니다.

 

금산을 잘 알고 또 자랑스러워할 뿐 아니라 그밖에 남해의 여러 자연생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자치단체장이라는 느낌이 끼쳐왔습니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들을 설명해주는 정현태 군수(왼쪽에서 두 번째)

 

특히 부소암은 모든 블로거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은 명물이었답니다. 규모있는 아파트 한 채는 됨직한 크기에 각도를 달리 해서 쳐다보면 그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부소암을 두고 얘기를 나누는 블로거들. 바람이 거셌습니다.

 

게다가 바로 아래에 끼고 있는 조그만 암자인 부소암은 그 앙증맞음으로 말하자면 맛깔난 양념 같은 존재라고 할만 했습니다.

 

암자 부소암 바위에 새겨져 있는 부처님. 호랑이를 탔고 광배 대신 태극이 있습니다.

 

일행은 이어서 두모마을로 옮겨갔습니다. 카약 체험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조그마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참가한 블로거들이 모두 어른인데, 카약이라고는 하지만 조그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새로운 느낌을 주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여기는 블로거들이 적지 않았지만, 1인승 또는 2인승 카약을 타고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간 블로거들은 한결같이 멋지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바다에서 자기 힘으로 패들을 저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부소암에서 내려다본 두모마을.

 

다음 차례는 다랭이논으로 이름난 가천마을이었습니다. 다랭이논은 지족해협 죽방렴·금산과 함께 국가 명승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다른 고장은 하나도 어려운 국가 명승을 남해는 셋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요즘 들어 더욱 인기를 끄는 바람에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이번 팸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남해유배문학관이었습니다. 해설사가 나와 짧은 시간 알차면서도 멋지게 해설해 줬습니다. 그런 덕분도 있었지만, 문학관 자체가 아주 특색 있게 갖춰진 때문에 참가 블로거들은 인상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점선도남해라고 쓴 오른쪽 귀퉁이에 해설사가 있습니다.

 

유배객들이 남해보다 많았던 데는 제주를 비롯해 여러 군데지만, 이렇게 남해 자체의 유배문학뿐 아니라 우리나라 유배문학을 통째 아우르는 구색을 갖추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도 내용이 꽤나 그럴 듯했다는 얘기랍니다.

 

남해유배문학관 전경. 실비단안개 사진.

 

이렇게 남해 팸투어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놀라운 일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보통 자치단체에서 팸투어를 하면 참가한 블로거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보통은 많아야 60편 안팎입니다.

 

그런데 이번 팸투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열흘만에 84편이 생산됐고 스무 날이 지난 지금은 100편에 이르고 있습니다. 보통보다 40%는 많은 수치입니다. 그만큼 참가한 블로거들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얘기가 되고 그만큼 남해가 갖춘 자연·문화·역사 자원이 빼어나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빠뜨릴 수 없는 하나. 바로 먹을거리입니다. 첫날 점심은 문항마을에서 자연밥상으로 했고 저녁은 미조 마을 공주식당에서 멸치무침회·갈치무침회를 맛봤습니다.

 

이튿날은 아침을 금산 부소암 바로 옆 산꼭대기 바로 아래 있는 금산산장에서 된장찌개에 수제 막걸리를 곁들였고 점심은 가천마을 바로 옆 홍현마을의 남해자연맛집에서 전복죽·멍게비빔밥에다 전북찜을 더해 먹었습니다.

 

남해자연맛집 전복찜. 양식 아닌 자연산이었습니다.

 

먹을 때마다 블로거들이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답니다. 그만큼 재료가 싱싱하고 깨끗했으며 버무리는 솜씨도 아주 맛깔스러워 다른 데서는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음식들이었습니다.

 

문항마을에서 후릿그물로 잡은 새우를 찍고 있는 블로거들.

 

게다가 첫날밤 독일마을에서 묵을 때는 문항마을에서 블로거들이 후릿그물 체험으로 잡은 갖은 해물을 그 마을 사무장이 가져왔는데, 세상에 그보다 더 싱싱한 것은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김훤주

 

※ 남해군에서 발행하는 <사랑해요 보물섬> 2013년 겨울호에 실은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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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밝고 씩씩한 폐사지와 드넓은 억새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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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합천이라 하면 가야산과 해인사만 있는 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사람들은 합천 황매산이라 하면 봄철 평원에 펼쳐지는 철쭉꽃만 아름다운 줄 압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모산재 엄청난 바위산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은 폐사지 영암사지도 씩씩하면서 멋지고, 황매산 또한 봄 철쭉 못지않게 가을이면 평원을 가득 메우는 억새가 대단합니다.

 

지난 11월 6일 아침 일행과 함께 가을이 저물어가는 즈음 합천을 향해 나섰습니다. 모산재 아래에 있는 영암사지와 새로 내고 단장한 기적길이 있는 황매산을 찾아서였습니다.

 

원래는 40명으로 한정했지만 어쩌다 보니 버스 한 대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돼서 7인승 자동차를 서둘러 동원해야 할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폐사지 같지 않은 망한 절터, 영암사지

 

영암사지 들머리.

 

한 바탕 소동을 치른 끝에 오전 10시 즈음에 영암사지 들머리에 당도했습니다. 일행은 큰길에서 내려 모산재 영암사지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영암사지가 있었고 그 뒤로는 커다란 바위가 하얗게 빛나는 모산재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영암사지는 이를테면 망한 절터랍니다. 망한 절터는 대부분 느낌이 스산하거나 고즈넉합니다. 영암사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밝고 환한 편이며 주는 느낌 또한 씩씩한 쪽에 가깝습니다.

 

 

옛날 다듬은 석조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편이어서도 그렇고 뒤를 받치는 모산재가 매우 기운이 세어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절터와 모산재가 안겨주는 전체 느낌을 누리면서 삼층석탑을 지나 돌계단을 타고 가운데 금당으로 오릅니다. 통돌로 된 돌계단은 가파른 편이어서 인상이 날렵합니다.

 

 

 

천천히 걸어오르는데 처음 눈길이 마주치는 데는 돌축대에 조각된 험악한 얼굴입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본당으로 걸어오는 이들에게 스며 있기 마련인 삿된 기운을 내쫓기 위해서일 듯합니다.

 

이어서 바로 앞에 있는 쌍사자석등에서 사자 엉덩이도 한 번씩 쓰다듬습니다. 유홍준 선생이 새로 펴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에 이 사진이 쓰이고 나서 이 사자 엉덩이는 ‘국민 엉덩이’가 됐습니다. 그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과 손바닥 깊숙하게 녹아듭니다.

 

 

그러고는 금당 아래를 둘러싸고 있는 축대에 새겨진 조각들을 둘러봅니다. 연꽃무늬가 있고 동물 모양도 있습니다. 머리가 덥수룩한 모양새로 미뤄 사자로 보는 이가 많은데 어쨌거나 그 표정이 즐겁고 행동거지가 날래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낮은 소리로 감탄을 합니다.

 

 

왼쪽 금당터로 옮겨갑니다. 석등이 깨어진 아랫도리가 앞에 있고 양 옆으로 귀부가 있는 모양에 비춰볼 때 말하자면 개산조사(開山祖師)를 모시던 자리이지 싶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영암사에 대한 기록이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왼쪽 귀부의 거북은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있고 오른쪽 귀부 거북은 머리를 다소곳하게 숙인 채입니다. 사람들은 두 거북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서 그 조각의 섬세함과 뚜렷함에 한 번 더 놀랍니다.

 

등을 쓰다듬으면 등딱지 뚜렷한 구분이 느껴지고 목에서는 힘줄이 그대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꼬리 틀어올린 맵시를 보면서 그것이 탁 튕겨져 나올 것 같다는 착각도 해봅니다.

 

이밖에도 영암사지는 둘러볼 것이 많습니다. 당간지주도 있고 물을 담아 쓰던 석조(石槽)도 있습니다. 쓰다 남았는지 모를 부재로 곳곳에 널려 있고 기와 조각은 곳곳에서 마주친답니다.

 

한 바탕 둘러본 마지막은 왼쪽 아래 새로 지은 절간이 있는 쪽으로 나가는 걸음입니다. 이렇게 해서 빠져나간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흙길을 따라 휘감아 돌면서 이 망한 절터와 모산재를 한 번 크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터 아래쪽 모퉁이에서 올려다보는 영암사지와 모산재.

 

그러면 위쪽 삼층석탑이나 쌍사자석등이 있던 데서 하던 조망과 달리 절터가 갖춘 따뜻함과 씩씩함과 온전함을 새롭게 맛보게 됩니다. 이렇게 설핏 둘러보는 데만도 1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새겨본다면 2시간으로도 모자라는 데가 바로 여기 영암사지입니다.

 

들머리 600년도 더 된 느티나무를 지나 내려와 밥집 ‘철쭉꽃 필 무렵’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기뻐하고 놀라워했습니다. 밥과 반찬과 국이 심심하고 맛이 있고 좋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황매산에서 나는 나물을 썼다고 했습니다.

 

 

새로 낸 기적길 따라 하는 황매산 억새 탐방

 

밥을 먹고 나서 한숨 고른 다음 바로 옆 황매산군립공원으로 옮겨갑니다. 공원 들머리에서 내려 새로 낸 기적길을 걸었습니다. 합천군이 개발한 ‘나를 살리는 길-합천활로(活路)’ 여덟 가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황매산 기적길’이랍니다.

 

낙엽으로 덮인 황매산 기적길.

 

기적길은 개울과 나란히 나 있습니다. 걷는 내내 흐르는 물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산을 오르는 길이다 보니 땀도 났고 숨도 조금은 가빠졌지만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았습니다. 쉬지 않고 걸었더니 40분 남짓만에 위쪽 오토캠핑장에 가닿았습니다.

 

조릿대도 지나고.

 

여기서부터는 다들 자유 행동입니다. 황매산 꼭대기까지 갔다 와도 좋겠고 곳곳에 무리지어 있는 억새 덤불로 들어가 즐겨도 좋겠습니다. 물론 생태가 망가지지 않도록 자연에 대해 배려는 해야 마땅하겠지요.

 

 

억새는 꽃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바람에 많이 날아가 조금 바래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애가 되지는 않는답니다. 단발머리 소녀 물기 머금은 채로 빗은 머리 같은 어린 억새는 그것대로 멋있고, 한껏 피어오른 처녀 같은 다 큰 억새는 그것대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바람에 이삭을 날린 마른 억새는 세상 모든 어지러움과 욕심을 털어낸 듯 가벼워 보여서 그 또한 그럴 듯한 것입니다.

 

여기저기로 난 길을 따라 걷습니다. 바라보이는 데마다 억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살짝 넘어가는 오후 햇살을 이 억새들은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가 되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쏘여 돌아오는 햇살에 눈이 아립니다.

 

 

억새는 멀리 있는 산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원경(遠景)과 가까이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근경(近景)이 함께 눈에 담을만합니다.

 

경남에서는 밀양 재약산 옛날에는 사자평이라 일컫던 산들늪 억새와 창녕 화왕산 꼭대기 전설을 머금은 연못을 둘러싼 들판 억새가 이름을 내고 있지만 여기 합천 황매산 억새도 재약산이나 화왕산에 절대 밀리지 않을 듯한 태세인 것입니다.

 

 

일행들을 살펴보니 어떤 이들은 억새 덤불 한가운데 마련돼 있는 긴의자에 앉아 즐거운 수다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억새 무성한 드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 바위에 올라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습니다.

 

 

 

 

또 한 무리는 황매산 꼭대기를 향해 발걸음을 재게 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에 풀섶에 들어가 가져온 손전화를 꺼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라디오를 들고 왔는지 대중가요를 조그맣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발길을 옮기고 있습니다.

 

황매산 막걸리, 합천로컬푸드와 삼가 소고기

 

이렇게 둘러보다가 일행 몇몇을 불러모아서는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손수 담근 막걸리와 합천서 나는 콩으로 만든 손두부를 먹었습니다. 또 옆에서 할머니 한 분이 파는 홍시도 사서 넷이 나눠 먹었습니다.

 

이웃 고을을 찾아 떠나는 즐거움이 여기에 다 모여 있습니다. 눈길과 발길은 그것이 닿는대로 누리면서,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이렇게 가볍게 맛보는 것입니다.

 

 

3시 즈음에 발길을 산아래로 돌렸습니다. 3시30분 즈음에 군립공원 들머리 주차장에 이동 장터를 마련했기 때문이랍니다. 이번 마실에 앞서 합천로컬푸드영농조합법인(055-933-9696)과 섭외해 만든 자리랍니다. 합천로컬푸드는 공익과 사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몇몇은 천막도 치고 물건도 죄다 갖춘 그런 장터를 생각한 모양이지만 실제 이동 장터는 단출했습니다. 달랑 탑차 하나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싣고 왔던 것이고 실제로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실은 알찼습니다.

 

합천 명물인 밤묵을 빠뜨려서 아쉬웠지만 다들 제대로 된 로컬푸드를 가져온 것입니다. 가야산 사과, 고구마, 우리밀 새로 길러내는 시배지답게 우리밀 과자와 빵, 토마토, 버섯 그리고 들깨·수수·조 같은 잡곡….

 

사과도 금방 동이 났습니다. 고구마를 담은 궤짝도 금세 사라졌습니다. 대체로 과일과 우리밀과자는 잘 팔렸습니다. 잡곡이 덜 나갔는데, 아마도 자기 사는 집 근처 매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는데 일행 가운데 요청 겸 제안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가는 길목에 삼가면이 있고 삼가는 또 소고기가 좋기로 이름나 있으니 거기 한 번 들러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한테도 마다할 까닭은 없었습니다.

 

그래 합천 아는 이에게서 한 군데 추천받아 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해인축산식당(055-933-4194)이었는데요, 들르지 않았으면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합천로컬푸드보다 사람이 더 붐볐습니다. 고작 50명이 들어왔는데도 고기 사려는 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해인축산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상품만 취급합니다. 처음 가져올 때도 비계를 떼어낸 상태인데 여기서 손님들한테 줄 때 한 번 더 비계를 베어냅니다. 삼가에서는 여기뿐 아니라 모든 가게가 그렇게 한답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대로 내줘도 손님한테 불만이 없을 듯한데 굳이 비계를 베어내는 칼질을 한 번 더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 자기만 비계를 한 번 더 떼어낸다고 얘기해도 딴죽 걸거나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삼가 모두가 그리한다고 했습니다. 삼가 고기가 계속 유명한 까닭이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가에서 이렇게 30분 남짓 지체가 됐습니다. 덕분에 일행은 도착 예정 시각인 6시를 많이 넘겨야 했습니다. 그래도 불만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창원에 닿아 헤어질 때는 다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잘 머금은 듯이 개운한 표정이 얼굴에 나타났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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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부터 밀양에 관심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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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 회장을 뽑는 선거가 막 끝나고 나서, <기자협회보> 12월 18일치에 쓴 칼럼을 조금 뜯어고쳤습니다. 물론 저도 한국기자협회가 이런 정도 글로 움직일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국기자협회 회장 선거가 지리멸렬도 그런 지리멸렬이 없을 정도로 처참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후보로 셋이 나왔는데, 기자가 그리고 기자 조직이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 제 눈에는 없어보였습니다.

 

기자협회한테 밀양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는 얘기는, 고양이한테 생선을 잘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음을 잘 압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한 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그 구성원이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축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궁금증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한국기자협회와 그 구성원들이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는 바람에 많은 문제가 더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주민 몇몇 연행하는데 이렇게 경찰을 많이 동원한다는. 경남도민일보 사진.

 

밀양 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철탑이 현안이 된 지는 8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안에 대해 나름대로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지난 6년 세월 동안 대한민국 기자들과 보도매체는 밀양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기자들이 처음부터 제대로 보도했다면 밀양은 이런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보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나중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보도가 나온 다음에도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려내는 기사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밀양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기자들 탓이 큽니다. 기자들이 처음에는 밀양 문제에 철저하게 눈길을 두지 않았고 나중에 눈길을 두게 된 뒤에도 정신은 딴 데 팔고 있었습니다. 보도들은 대부분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작업 공정이 얼마나 진척됐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 철탑 공사를 마치고 다른 철탑 공사로 옮아갔다는 것 또한 아무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연합뉴스 사진.

 

이처럼 펑퍼짐하고 얼간이 같은 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혼이 없는 보도는, 다른 사안에서도 그렇듯이, 핵심과 본질을 가리는 구실을 합니다.

 

그런 보도를 하는 기자가 과연 누구입니까? 한국기자협회 구성원이 아닐까요? 이런 기자들한테는 한국기자협회가 길잡이가 돼 줄 필요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한국기자협회가, 이런저런 보도매체들의 기자들이 모여 이렇게 또는 저렇게 친목 도모나 하는, 그리고 세속적인 지위 유지나 출세를 하려고 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런 죽음에 기자들은, 기자협회는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연합뉴스 사진.

 

한국기자협회가 정식 회의를 하는 장소를 밀양으로 잡으면 어떨까요? 밀양을 찾아가 한국기자협회 구성원들이 밀양을 어떻게 다뤘는지 한 번 따져보고 만약 충분하지 못한 구석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메울는지 방안을 생각해 보고 대책을 마련해 보면 좋지 않을까요?

 

게다가 밀양은 무엇보다 더없이 멋지고 아름다운 고장이기도 합니다. 발길 닿는 데마다 명승이고 눈길 머무는 데마다 절경입니다. 가까운 경남 창녕에는 일상에 지친 몸 푸근하게 쉴 수 있는 부곡온천도 있습니다. 회의와 여행 또는 관광을 겸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기자라면 누구든지 바로 쳐다봐야 하는 현장이 있습니다. 모든 권리를 빼앗긴 지역 주민들의 피어린 몸부림과 외침이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과 인간으로서 인권을 서슴없이 짓밟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한국전력이라는 자본의 생생한 폭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보도매체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문제제기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와 자본이 내세우는 논리만 판치고 있습니다.

 

비수도권에 핵발전소가 몰려 있는 까닭이라든지, 그런 핵발전소들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초고압 송전선 전국 곳곳에 거미줄처럼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지역 차별은 거의 숨겨져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래서 대한민국 보도매체들의 밀양 관련 보도는 대부분 ‘밀양 지역 76만5000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를 기정사실화하는 구실을 합니다.

 

한국기자협회가 대한민국 기자들을 대표한다면, 그 집행부가 밀양을 찾고 지역 주민들이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우는 현장을 가야 하는 까닭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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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게 나누자는 차상(茶商), 석가명차 최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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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香山里)에 가면 석가명차(石佳茗茶)라는 차 가게가 있다. 갖은 차와 차도구를 주로 판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여기 모두 있다 해도 된다.

 

중국에서 수입한 차들이 많고 그 가운데서도 보이차가 많은데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차와 보이차를 많이 즐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중국 보이차라 하면 매우 비싼 줄 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1. 보이차 가격 거품을 빼다

 

장사를 한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고 팔까? 하고 생각하리라 짐작한다. 더욱이 중국차, 그 가운데서도 보이차를 주로 다룬다고 하면 그런 생각은 더욱 커진다.

 

한때 크게 유행하면서 중국 보이차는 매우 비싸게 팔렸다. 아마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쳐서, 원가와 견준다면 5~10배 장사는 한다고 여겨졌다.

 

석가명차를 운영하는 최해철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2년 전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원가에 10~20% 정도를 더 얹어서 값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은 석가명차가 얼마에 내느냐가 영향력을 갖게 됐습니다. 옛날 중국과 왕래가 잦지 않을 때는 가격에 거품이 많았습니다. 차 또한 정상적이지 아닌 것이 많았어요.

 

수입을 하면 물량을 많이 가져오기 때문에 이문을 조금 남겨도 됩니다. 10~20% 정도 이윤을 붙여 정상적으로 출시를 했는데, 사람들이 이랬어요.

 

‘보이차는 그렇게 파는 것이 아니다. 원래 비싸게 파는 품목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차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연은 소중하고 한 번 인연은 평생 인연이거든요. 또 비싸게 받으면 마음도 편하지 않고요. 도와주시는 분께 도리가 아니지요.

 

그래서 기존 업체한테 원망도 듣고 협박도 받고 했습니다. 또 ‘석가명차는 싸구려다’ 하는 헛소문도 많이 돌았습니다.

 

 

2001년 개업해서 12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이제는 저희 가게 출시 가격이 표준으로 삼아질 정도로 정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매장 면적도 가장 크고 무역 규모도 가장 큽니다. 중국에 보이차 생산업체가 2000군데 정도 되는데요, 우리나라에 직접 진출해 대리상을 모집하는 1위 업체를 빼면, 2~5등에 해당하는 업체는 모두 저희가 한국 총판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냐고요? 누구든 가게에 오면 도와주는 분입니다. 뭐라도 팔아주시면 도와주는 분입니다. 팔아주지 않아도 찾아주는 자체가 고마운 일입니다.

 

2층 계단 들머리 흰칠판에 적혀 있어요. ‘먼 데서 오신 손님 기름 닳카 가메 와 주신 것도 고마운데 물건 값까지 물어주시니 어찌 고맙지 않으리오.’ 우리 엄마 말씀입니다. 인연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그 인연들이 모여서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2. 돈 안 돼도 차 보관업을 하는 까닭

 

알려진대로 중국 보이차는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맛도 향도 좋아지고 값도 덩달아 오른다. 10%, 20% 이렇게 오르는 것이 아니라 2배, 3배 이렇게 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 보이차를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내다팔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챙기는 이윤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런데 석가명차 최해철 대표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지금은 손님이 산 차를 수수료만 받고 보관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자기 몫을 키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손님들에게 판 차를 보관해 줄까?

 

“본업은 무역업이고 보관업은 그에 딸린 일인 셈입니다. 보관 창고는 160평 정도 됩니다.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를 구분해 보관합니다. 제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보이차는 장기 보관하면 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집니다. ‘월진월향(越陳越香)’이라 합니다.

 

생차의 특징은 자연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 속에 조금씩 익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숙차는 공장에서 완전히 쾌속으로 익혀 숙성해 내놓습니다. 구분을 해야 서로 향이 다치지 않습니다. 또 생차는 습기가 있어야 좋고 숙차는 건조해야 도움이 됩니다.

 

생차보관창고에서. 창문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숙차는 쾌속발효했기 때문에 텁텁한 숙미(熟味), 익은 맛이 좀 빠져야 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맑아지는 셈이지요. 반면 생차는 익히지 않은 상태로 뭉쳐놓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익어갑니다. 그래서 조금 눅눅한 것이 좋지요.

 

차 보관업은 저희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느냐고요? 수익 창출보다는 고객 보답 차원입니다. 스님들 차 많이 좋아하는데 이동이 잦습니다. 선방에 거처하시면 더욱 그렇습니다. 석 달에 한 번꼴로 옮겨다닙니다.

 

미리 사 놓으면 좋겠는데 보관 장소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도록 해서 보관해주고 필요한 때 필요한 곳으로 보내드리면, 보관 걱정 없이 좋은 차를 좋은 가격에 구매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요구가 많아졌고 그래서 어렵지만 시작하게 됐습니다.”

 

숙차보관창고. 색깔 종이에 맡긴 이들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최해철 대표에게서는 불교 냄새가 난다. 인연을 강조하는 품도 그렇고 차 문화 자체가 불교와 관련돼 있다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석가명차에는 스님들 발길이 무척 잦은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불교와 인연이 깊지요. 젊은 시절 떠돌이 생활을 했어요. 7~8년? 이 산 저 산 돌다보니 절을 만나게 됐고 거기서 묵었지요. 불목하니 노릇도 하고 심부름꾼도 하고 노가다도 하고 하면서 스님들 잘 알게 됐고 또 맨 처음 차를 맛본 곳이 절입니다.

 

‘차 한 잔 하라’면서 스님이 내려준 찻물에 대한 기억이 각인돼 ‘나중에 찻집이라도 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게 실현이 됐습니다. 스님들 오시면, 특별하게 어려웠던 시절에 저를 살게 해 준 분들이기 때문에 좋은 가격에 좋은 차를 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여기 위치가 좋습니다. 통도사·석남사·불국사·내원사·표충사 등등이 모두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 안에 있습니다.”

 

 

최대표는 수입만 아니라 수출도 한다. 차를 수입하다 보니 중국에 이런저런 인연이 생겨서 한국 차와 한국 차도구 따위를 중국에 소개하고 팔 수 있게 됐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 차와 차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는 무엇이 있나?’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침 중국에 사무실이 필요해졌는데, 창고 삼아 중국 상품만 두기는 그렇고 해서 전시 목적으로 몇 가지 한국 것 갖다 놨는데요.

 

석가명차중국현지법인인석가차업유한공사앞에서직원들과함께.tif석가명차 중국 현지 법인 앞에서.

 

한류, 한국 드라마 이런 영향 덕분인지 다행히 찾는 사람이 있고 자기 물건 사주는 데 대한 보답 차원에서 사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겼어요. 다르지만 특별한 분위기를 즐기는 분들이지요.

 

이렇게 분위기가 이뤄지다가 도자기나 차 도구 만드는 이들이 요즘 어렵거든요? 그래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작가들을 모아 중국 차 관련 박람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국관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내걸고요.

 

처음에는 중국 정서에 맞는 제품을 주로 소개했는데, 오히려 한국에 고유한 정서가 곁들여 있는 작품이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이번에 대만 마주보는 하문에서 10월 10일부터 15일까지 박람회가 있었는데 한국 작가 20명 초청하고 부스 20개를 열었습니다.

 

중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최초’라고 또 얘기하려니 부끄러운데, 개인적으로 판매를 하신 분들은 있었겠지만, 조직적·체계적으로 진출한 것은 저희가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가게 중국 현지 법인 석가차업유한공사를 통해 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3. 순환과 흐름을 위해 차도구옥션도 열고

 

어지간한 일반 가정집에도 차도구가 일습씩은 있다. 차를 즐겨 마시지 않아도 보자기에 덮인 채로 한 쪽 구석에 놓여 있는 찻잔 등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시성으로 갖추거나 아니면 선물로 받은 물건이기 십상이다.

 

이런 중고 차도구를 손쉽게 사고팔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도 최 대표는 운영하고 있다. “차도구옥션(www.tauction.net)인데요, 참 이거 자랑 같아서 송구스럽습니다. 지금 도자기 시장이 차 관련해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전시 위주로 차도구를 사 모으기는 하는데, 쓰지를 않으니까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매·재구매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경제는 순환이고 흐름인데, 그게 이뤄지지 않고 쌓여 있습니다.

 

창고에서 직원들과 함께.

 

소장가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작품을 재판매할 루트를 열어주면 계속 순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부산대학교 이병인 교수랑 <아름다운 차도구> 박홍관 발행인이랑 뜻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하관차창 단체사진.

물건들이 새 주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제품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6월에 첫 경매 이뤄졌고요. 10월이면 5차가 되는데 9월 경매에서는 접속 인원이 폭증해서 사이트가 다운됐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경매 특성상 시작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사람은 싸게 살 수도 있어요. 다른 인터넷 경매 사이트와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도 전시합니다. 보통은 누구나 자기가 올리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찍어서 올리게 돼 있지만 차도구옥션은 아닙니다.

 

도자기·차 제품·서화 등 분야별로 검증·심사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데는 낙찰률이 10~20% 수준인데 여기는 90%가 넘습니다. 자랑 같아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여기서 나는 이윤으로는, 도자기 제작이나 차업 종사자들한테 일부 지원을 할까 하고 있습니다.

 

창고에서.

 

운영 경비는 받아야지만 수익금으로 치부를 하기보다는 한국 차도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하는 기업, 사람을 살리는 기업, 다 같이 사는 기업,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기업, 이런 이미지를 심고 싶습니다.”

 

최 대표는 이렇게 고루 나누자는 생각을 하게 된 근본을 자기 태생에서 찾았다. 원래 가난해서 그런 것 같다고, 부자로 태어났으면 가난을 몰랐을 테고 그러면 나누거나 고르게 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얘기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불어 잘 살자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차문화를 말했다.

 

4. 두루 좋은 차를 누구나 편히 마실 수 있도록

 

“한국 차문화 역사가 중국 못잖게 유구하답니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차 마시는 일은 밥 먹는 일과 같은 일상이었습니다. 고려시대는 다방도 있었어요. 누구나 서민들조차 편하게 끓여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이 되면서 차문화가 불교 척결과 함께 척결돼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이런 분들이 근근이 맥을 이어왔습니다. 현대에도 해방 이후 문화·사회적 혼란, 전쟁 이런 것들로 분위기조차 형성되지 못하고 80년대 초반까지는 차문화가 끊겼습니다.

 

그 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그나마 있던 하동·보성 차밭에서 생산이 됐습니다. 그런데 돈 있는 사람이 먼저 하게 되면서 괜히 폼을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차가 귀하고 비싼 것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그에 더해 차를 알리려다 보니 여러 사람 앞에서 보여줘야 했겠지요. 그래서 의식이 생기고 절차가 생기면서 꼭 사람이 무슨 벌을 서는 것 같은 그것을 하나의 문화라고 여기게 돼 버렸어요. 불편한, 비싼, 끼리끼리 문화로요.

 

하지만 이제 대중화돼 가면서, 간단하게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도 많아지고 찻집도 늘고 하면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싸게 공급하려 하지요.

 

경제의 기본 원리는 박리다매라고 봅니다. 오래된 보이차를 노차(老茶)라 하는데 아주 비싸거든요, 이를 판매해 보라는 유혹을 많이 받았습니다. 차맛은 다기나 물, 심지어는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중국업체 해만차업 앞에서.

그러다가 ‘이거 맛이 좀 이상한데?’ 이렇게 되면, 비록 정품을 팔았어도 구매한 사람 처지에서는 큰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금들이 서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노차는 아예 취급하지 않습니다.

 

저는 또 비싼 차를 먹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름 의미가 있고 그런 선택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시주 받아서 사는 스님들이 그렇게 먹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거 1000만원짜리야’ 하고 자랑하는 대신, 900만원은 좋은 데 쓰고 나머지 100만원은 일반 차를 많이 사서 나눠 갖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 여기는 것입니다.”

 

차를 마셔 입이 맑아지면 머리와 마음이 맑아지고 결국은 세상까지 맑아진다고 믿으며 이런 정신문화를 퍼뜨리고 건강에도 좋은 차업을 하니까 더 보람이 있다는 최해철 대표는 이렇게 울산에 가게를 내고 있으면서 가까운 양산 상북면 대석리 고향에 살고 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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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월급이 없는 신문사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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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업계는 갈수록 어렵다는데, 신문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역신문이 그렇다. 최근 몇 년 간 전국에 지역신문 관련 강의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 신문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흔히 광주․전남에 일간지가 많은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봤자 20개에 미치지 못한다. 가장 많은 곳은 35개의 일간지가 난립해있는 경기도다. 주간지와 인터넷신문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다. 경기도청 출입기자만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청만 그런 게 아니다. 얼마 전 만났던 경기도내 한 도시의 홍보담당 공무원은 “우리 시에 인터넷신문만 50여 개나 되는데, 대부분 하루 방문자는 100명도 안 된다”며 “그런 곳에서 광고를 달라고 하는데, 아주 미치겠다”고 고충을 털어왔다. 그냥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해코지를 할 지 몰라 그러기도 찜찜하다는 것이다.


작년에 가봤던 전남 여수시에도 출입기자가 100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여수는 인구 30만 명도 안 되는 도시다. 그나마 신문 환경이 좀 괜찮다는 경남지역도 일간지만 10여 개에 달한다. 아니, 내가 모르는 일간지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기자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는 신문사가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기자가 ‘무보수 명예직(?)’인 신문사들도 있다. 대신 기자가 따온 광고료의 30%, 많게는 50%를 수당으로 준다. 내가 아는 한 일간지는 편집국장도 월급이 없다. 그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사원은 경리직원 한 명뿐이라고 한다. 사장은 월급이 없는 대신 유일하게 법인카드를 쓰며 수익금을 챙겨간다.



월급을 주는 신문사 중에도 희한한 곳이 많다. 며칠 전 경남지역 모 일간지의 주재기자가 이력서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경남도민일보로 옮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정년의 나이도 지난 분이었다. 그는 현재 1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는데, 매달 회사에 납입해야 할 신문지대가 100만 원이라고 했다. 신문지대는 기자에게 계약으로 할당된 구독료 대금이다. 그래서 사실상 자신의 월급은 제로라고 했다. 게다가 몇 달 전부터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광고 수당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신을 받아주면 월 3000만 원씩 광고를 하겠노라 다짐도 했다. 안타까웠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이런 신문사는 언론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망할 염려가 없다. 인건비 지출 없이 기자가 광고를 따오고 신문구독료도 대납해주니 사주 입장에선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그러니 이런 ‘사이비신문’은 자꾸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사회적 해악이 심각하다. 광고를 받기 위한 협박성 취재나 악의적 기사가 난무한다. 하지만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이나 공갈․협박 혐의를 입증하여 형사처벌을 받게 하면 되지만, 사후 조치일 뿐인데다 그 과정도 결코 간단치 않다.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으로 기자만 희생되고 만다. 신문사 사장이 구속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발행인 명의만 바꿔 신문은 계속 발행된다. ‘사회적 공기’여야 할 신문이 ‘사회적 흉기’인 셈이다. 이런 신문에 들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도 막대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독버섯에 거름을 주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방법은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다.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신문사에는 지자체와 국․공립대학, 공기업, 출자․출연기관의 광고예산 집행을 할 수 없도록 하면 된다. 이것만 제대로 하면 사이비신문은 발붙일 곳이 없다. 하지만 사실 이건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안전행정부나 문화관광체육부의 ‘지침’ 한 장이면 해결될 수 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발행하는 '편집인협회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편집인협회보'는 마지막 문단을 다소 순화시켜 실었지만, 여기엔 제가 기고한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이후 연합뉴스 이희용 기자가 한국언론재단 미디어가온에 연재 중인 '주간 미디어 리뷰'에 이 글을 인용하면서 "정부가 국무총리 훈령에 의해 ABC 부수공사에 참여한 신문에만 정부 광고를 집행하도록 했듯이, 이를 원용해 김 국장의 제안을 온-오프라인 매체에 시행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더군요. 저는 원문에서 정부의 '지침'을 언급했지만, 총리 '훈령'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이희용 기자 블로그 글 보기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post/119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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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는 북카페 10년째 밀양 청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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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은 소도시 밀양에 생긴 지 9년째(2013년 현재) 접어드는 북카페가 있습니다. 갖은 커피가게가 생겨나 흥성하게 되기 전 일이랍니다.

 

밀양 내일동 청학서점에 딸려 있는 이 북카페는 지역사회에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한답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올해는 여러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주민들 눈길과 발길을 끌어당기기도 했습니다.

 

서점업계가 다 죽어가는 마당에 그것도 크지 않은 조그만 도시에서 북카페를 계속 운영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요?

 

 

청학서점 2대 주인 신찬섭씨

 

밀양에 가면 오래 된 책방이 몇몇 있습니다. 동아서점과 청학서점이 그런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아서점이 가장 오래 됐습니다. 1961년 개업했으니 올해로 53년째입니다. 그 다음이 청학서점인데 같은 동아서점 주인이 새로 낸 책방이라 합니다.

 

3층 북카페.

 

청학서점 지금 주인은 이제 막 마흔 줄에 접어든 1973년생 신찬섭씨입니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2대째 책방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리 책방이 인터넷 서점에 밀려 거의 다 죽은 지경이지만 한 때는 장사가 잘 될 때도 있었습니다. 신씨를 2013년 11월 9일 저녁 7시에 만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밀양을 두고 웅군(雄郡)이라 자주 말씀하셨어요. 밀양이 밀양시와 밀양군으로 분리됐다가 1995년 도농통합으로 다시 밀양시로 합쳐졌는데, 가장 많을 때는 인구가 28만 명까지 됐다고 해요. 그래서 고등학교도 많았고 아버지께서 서점을 4개까지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던 책방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랜 동아서점은 4촌형이 이어받았고 청학서점은 신찬섭씨한테 맡겨졌습니다. 옛날에는 두 서점이 차이가 없이 여러 가지 책들을 골고루 취급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4촌형이 하는 동아서점은 EBS 같은 문제지·학습지 위주이고 밀양 지역 학교에 교과서 납품도 한다고 합니다. 본인이 하는 청학서점은 여전히 다양하게 여러 가지 책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문제집 말고 단행본이 중심인 서점

 

“지금 서점을 보면 50평 기준으로 봤을 때 전체 매출의 80~90%가 문제집입니다. 나머지가 10~20%지요. 청학서점은 다릅니다. 문제집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의 55~50% 수준입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책들을 다룬다는 얘기입니다.”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동네 서점을 가보면 대부분이 매장 면적을 90% 넘게 문제집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학서점은 문제집은 10평 정도에 깔려 있고 나머지 40평 가량은 보통 단행본이나 컴퓨터나 피아노 관련 서적, 그리고 어린이 책이 진열돼 있습니다.

 

특히 그이는 컴퓨터·피아노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데 대해 조금 뿌듯해했습니다. 밀양 시내에 이런 책 살 수 있는 데가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대목에서 느껴졌습니다.

 

커피를 타는 신찬섭씨.

 

어쨌거나 책 유통을 두고 말하자면 이미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대부분 거래는 인터넷에서 이뤄집니다. 일부 약삭빠른 독자는 고르기는 거리 책방에서 하고 사기는 인터넷서점에서 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서점이 훨씬 싸기 때문이지요. 거리 서점 책값은 정가제로 묶어놓고 인터넷서점 책값은 할인해 줘도 되도록 제도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서점은 신간 단행본의 경우 최대 20% 가까이까지 깎아줄 수 있어요. 10% 공식 할인에 적립이 9%입니다. 저희 같은 서점은 정가대로 팔아라 합니다. 그러니 책방이 안 됩니다.

 

 

밀양에서도 지난 한 해 동안 서점 두 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는 네 군데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서점은 단행본과 문제집 진열 면적을 50대50로 하다가 한 달 전에 25대75로 바꿨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마산 학문당이나 창원 그랜드문고 같은 큰 책방을 하며 고군분투하시는 선배님들이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7~8년 홈플러스가 밀양에 들어왔는데 그 때 서점도 함께 끼고 왔습니다. 그 때 운영을 학문당이 맡았었는데, 한 번 가서 보고는 공포를 느꼈어요. 디자인이나 시설도 아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잘돼 있었고, 취급하는 책들도 아주 다양하게 잘 갖춰져 있었어요.”

 

책방 분야에서 앞서 있는 선배가 밀양에 들어와서 영업하다 보니, 그리고 홈플러스라는 존재 자체가 밀양 전체 유동인구를 쓸어담다시피 하다 보니, 이제는 책방을 접어야 하는가 보다 하고 신씨는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밀양 시장 규모가 작았던 때문인지, 신씨로서는 다행스럽게도 5년 전 학문당은 밀양에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죽기살기로 하지만 얼굴은 늘 웃는 모습

 

신씨는 그래도 늘 웃는 얼굴입니다. 원래 인상이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 지금 하고 있는 책방 일이 그이를 즐겁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이는 책방이 좋기는 한데, 실제 하기는 ‘죽기살기’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서점에 맞서려면 어쩔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10% off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사실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살아남기 위해, 박리다매를 하거든요. 1만원짜리 책 한 권 팔아봐야 1200원 정도밖에 남지 않습니다. 직원 인건비에 시설유지비와 운영비까지 더하면 거의 이익이 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서, 불법이지만, 책값을 정가보다 싸게 깎아줍니다. 10% 공식 할인에 3% 적립까지요. 하하. 그래도 인터넷서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서점에서 더 싸게 살 수 있지만 오늘은 바빠서 책방에 와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고 그래서 신씨는 서운하고 얄밉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에 더해 홈쇼핑도 문제라고 합니다. 신학기가 되면 어린이 동화 전집 따위를 홈쇼핑은 아예 절반 가격으로 팔기도 한답니다. 밀양 책방 주인 신씨는 그런 홈쇼핑을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제집에 올인하지 않은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저희 청학서점은 다품종으로 소량을 취급하는데 아직은 그래도 망하지 않았고, 문제집에 매장 면적을 대부분 내준 책방은 거의 망했어요.

 

 

이제는 인터넷서점이 ‘당일 배송’까지 해 주거든요.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에 일터나 학교에서 책을 받아볼 수 있어요. 인터파크는 부산권에 배송센터를 뒀고 예스24는 대구권에 배송센터를 뒀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문제집을 사기 위해 학교 앞 동네 책방을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밖에도 서점 운영에 어려운 점은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가격의 절반 정도만 줘도 먼저 책을 받아 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80% 안팎을 줘야 책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직원 교육이나 유지·관리도 어렵습니다. 책방 한 쪽 구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는 모습은 동화 속에나 나오지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책을 고르고 주문하고 나르고 진열하고 손님이 찾으면 바로 집어내 줘야 하는데 이 일이 실은 그다지 쉽지 않고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신씨는 어떻게 해서 하게 됐을까요?

 

개업 날짜 기억하라 하셨던 아버지

 

“밀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해서 1993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학년 마치고 군대 갔다왔는데, 그 이듬해인 97년에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더 이상 일을 하실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점을 맡게 됐어요. 다행히 다니던 대학이 창원에 있어서 통학이 가능했어요.”

 

 

결론 삼아 말하자면, 할 수밖에 없어서 가업(家業)을 이어받게 됐는데 하고 보니 일이 적성이 맞더라는 얘기입니다. 책과 더불어 지내면서 때로는 책을 읽고, 그런 가운데 음악을 틀어놓고 들려주고 듣고 하는 이 일이 먹고살기는 힘들어도 참 좋더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나와 밤 10시까지 일하는데, 친구들은 갑갑해서 어떻게 일하느냐 하지만 저는 저녁 9시 직원 퇴근시키고 서점에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책 읽을 때가 그렇게 좋아요. 또 아버지께서 서점을 소중하게 여기셨는데 가업을 이어받은 데는 그 영향도 있습니다.

 

제게 처음 책방 문을 연 날짜를 여러 차례 얘기하셨거든요. 1961년 8월 15일 광복절에 개업하려고 준비했는데, 진열할 나무가 썩는 바람에 이틀이 늦어져 8월 17일에 하게 됐다고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기억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세상에 없거든요.”

 

 

당시는 서점이 나쁘지 않은 때였습니다. 당시는 학교 앞에 있는 서점도 문제집뿐만 아니라 단행본까지 취급할 정도였습니다. 인터넷서점은 아직 본격 도입되지 않았고, 대형 매장도 들어서지 않아 길거리 유동인구를 빼앗아가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북카페는 2005년에 열었어요. 하다가 없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경남에는 북카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그 때도 3층에 있었습니다. 2003년인가 아버지 세상 떠나시고 나서 울적한 기분도 바꿀 겸해서 서점 인테리어를 새로 했습니다. 비가 샐 정도로 낡아 있었거든요.

 

책방 잘 되게 하려고 문을 연 북카페

 

북카페를 왜 열었느냐고요? 책방을 위해 만들었죠. 서점 잘 되게 하려고요. 그 때 커피 내리는 기계를 내렸는데 밀양 2호였습니다. 바리스타 교육도 제대로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대구 ‘커피명가’ 사장님한테서 받았는데, 바리스타 1회 시험 때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하필이면 실기시험 보는 날이 둘째가 태어난 날이었어요. 그래 망설이다가 아이 보러 가야겠다 했습니다. 만약 제가 북카페를 커피가게라고 여겼다면 시험 치러 갔겠지요. 하하.”

 

 

그이는 그 때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북카페를 열지 않았다면 그 뒤에는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쩌면 자기도 서점 운영을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뒤로 밀양 서점 업계 사정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랍니다. 이제는 투자해 놓은 몫이 커서라도 죽기살기로 서점을 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서점업계 선배들이 제게 이럽니다. ‘지금은 문제집도 안 나간다. 니도 (문 닫을) 준비해라.’ 하지만 저는 남는 게 별로 없어도, 책이 팔리기만 한다면 빵을 끼워주고 떡도 끼워주고 뭐든 끼워주고 해서라도 서점을 합니다.

 

사실 깨놓고 말하자면, 대학 2학년 때부터 이 일을 해 왔으니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정말 죽기살기로 합니다.”

 

성황을 이뤘다는 독서감상화 그리기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독서감상화 그리기 대회에 출품된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신씨가 청학서점 3층에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공간을 지역사회에 내놓는 까닭도 당연히 책방이 잘 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을 받아 시낭송회·음악회 등과 독서감상화 대회 등을 열었습니다. 독서모임도 만들어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작으나마 활기와 윤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역 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경남에서는 저희 서점만 선정이 됐습니다.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오늘도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단행본을 펴낸 조우성 변호사 초청 간담회가 낮에 있었는데요, 서른 명 정도 참가한 가운데 아주 밀도 있게 진행돼 모두가 만족하고 갔어요. 조 변호사가 밀양 출신이어서 만들어진 자리였지요.”

 

밀양 출신 조우성 변호사가 쓴 책이 앞쪽에 진열돼 있습니다.

 

열려 있는 북카페를 지향하는 책방 주인

 

어쨌든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옛날에는 출판사에서 책갈피를 공짜로 나눠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책갈피는커녕 책을 담을 봉지조차도 주지 않는답니다. 출판사도 사정이 나빠지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또 홈쇼핑에 나가는 책값과 거리 서점에 나오는 책값이 다르답니다. 이중가격이지요. 아예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래도 합니다. 봉사 같은 장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방 있는 자리가 좋다 보니 마실거리·먹을거리 하는 여러 기업에서 찾아와 업종 변경을 하거나 숍 인 숍(shop in shop) 개념으로 자리를 내어달라 권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유명한 업체 관계자가 왔다 갔는데요, ‘아직은 (책방을 할) 의욕이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올해 독서큽럽이 만들어졌어요. 도서관이나 이런 데서 하는 엄마들 독서모임을 보면 대부분 베스트셀러 위주인데 우리는 ‘고전을 읽어보자’ 이랬습니다. 4월 즈음에 첫 모임을 했는데 <노인과 바다>를 읽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원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책도 읽지 않고 오는 사람이 있는 등 문제가 있어서 10명 정도로 줄였습니다. 이번에는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얘기합니다.”

 

 

그이는 얼마 전에 있었던 한 일을 두고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우쿨렐레 동호인 모임에서 전화가 왔는데 청학서점 북카페에서 음악회를 해도 되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씨는 때마침 기분도 울적하고 해서 ‘북카페랑 성격이 맞지 않다’고 불쑥 거절하는 말을 해버렸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잘못을 깨닫고 백방으로 연락처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면서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사과하고 자리를 내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영어 원서 읽기 모임도 해 보고 싶고, 사회성 있는 책읽기 모임도 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북카페에서 음악회나 글쓴이 초청 간담회, 시 낭송회 등등도 하고 지역 여러 단체들 토론 장소로도 제공하려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책방을 살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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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잘 놀게 해 줄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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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1일 경남대학교 한마미래관 국제세미나실에서 ‘도심(창동·오동동) Healing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경남대 지방자치연구소 제5차 시민포럼이 열렸습니다. 김성열 경남대 대외부총장과 조영파 창원부시장, 송병주 지방자치연구소 소장 등등이 함께했습니다.

 

서익진 경남대 국제금융학과 교수가 ‘창원시 마산원도심을 중심으로’ 발제를 했고 우신구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정일근 경남대 교수·시인, 우무석 시인, 김진호 경남신문 정치부 부장대우, 김종대·정쌍학·조갑련 창원시의원, 그리고 제가 토론을 했습니다. 그 때 발표한 제 토론문을 여기 올립니다.

 

포럼이 갖는 성격으로도 그렇고, 제가 맡은 바 토론이라는 영역의 성격으로도 그렇고 한데,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어진 주제에 대한 문제 제기 성격이 더 세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1. 힐링=치유는 상처 또는 통증이 전제

 

 

- 힐링의 개념을 사회·역사·문화적으로 확장하면 도시(도심) 재생은 힐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제가 보기에 힐링은 아픔 또는 다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아프거나 다친 사람(또는 분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3.15와 10.18, 그리고 97년 IMF 사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문화적으로는 창동과 오동동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 문화를 누렸으나 지금은 누리지 못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일 것 같습니다.

 

- 이와 관련지어서, 서민으로 통틀어 일컬어지는 여러 계층들에게 창동·오동동이 옛날에는 무엇이었고 지금은 또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한 번 말씀드려 봅니다.

 

2. 힐링=치유가 가능한 재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상윤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런 힐링이 가능한 재생을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데에 자연스레 생각이 미칩니다.

 

- 먼저, 옛날 추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창동·오동동이 갖추고 있는 역사·사회적 요소를 활용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 요소는 손에 잡히는 것일 수도 있고 머리로 그리기만 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 지금 많은 사람들한테 당장 닥쳐 있는 고통을 다스리는 데에도 창동·오동동 재생이 작으나마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공중의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부터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작으나마 해 온 활동들을 돌이켜보면서, ‘잘 놀아야 잘 산다’가 정답이라고 여기게 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모두를 위한 놀이터가 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창동·오동동이 누구에게 가장 알맞은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를 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지역 주민, 특히 창동이나 오동동에 자기 삶이 개꼬리만큼이라도 묻혀 있는 사람들을 위한 놀이터로 상정해야 마땅하지 싶습니다.

 

김성열 경남대 대외부총장.

 

- 그런 사람들은 사회·역사적으로 어떤 층위인가도 함께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창동·오동동을 무대로 삼아 벌어졌던 개인의 경험으로 수렴되는 놀이터를 넘어서서, 당대에 일어났던 역사·사회적 사건으로 확장도 되는 놀이터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요?

 

3. 행정기관이 손 뗀 뒤에도 지속가능하려면?

 

- 창동예술촌 조성을 비롯해 지금 벌어지는 도심 재생 움직임은 행정기관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 이는 도심 재생이 아니라 도심 힐링이라 이름 붙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그렇다 해도 행정기관이 끝까지 뒤를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른바 ‘지속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상에서 지속가능성은 대부분 경우에서 일정한 이윤 발생의 지속가능성과 같은 말이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 그러므로 창동·오동동의 도심 힐링은 그런 역할을 맡은 개인이나 단체가 자기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 활동을 통해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행정기관이 손을 떼고 나서도 과연 가능할까요?

 

- 다르게 생각한다면, 한편으로는 창동·오동동을 찾는 이들에게 힐링 효과를 크든작든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이윤 발생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활동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4. 지역 주민은 왜 보이지 않을까?

 

- 힐링이든 재생이든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면 주민과 상인이 있고 찾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창동·오동동도 마찬가지겠지요. 찾는 사람은 차치하고라도, 주민과 상인은 지금 창동과 오동동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창원시 조영파 부시장.

- 적어도 신문·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창동·오동동에는 주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상인이 보이고 창동예술촌 입주 예술가들이 보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상인과 예술가들은 서로 무관하게 일하거나 서로 다툽니다.

 

- 창동·오동동에는 주민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창동·오동동에 사는 주민은 죄다 상인 또는 예술가들인 것일까요?

 

- 상인도 주체로 참여해야 하고 창동예술촌 입주 예술가들도 주체로 참여해야 하고 주민도 주체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론으로만 하는 공허한 말이 아닙니다. 창동·오동동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에서 나름 활동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사항입니다.

 

- 이들이 협의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고 공동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어쩌면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될 수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어떤 완벽한 또는 대체로 완성된 어떤 공동체를 머리로 그리면서 하는 얘기는 아니고요, 처음 출발이 그러해야 한다는 말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 경남도민일보·경남신문·MBC경남·창원KBS 같은 지역 언론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요? 그냥 보도만 제대로 하면 될까요? 아니면 다르게 더 역할을 맡을 여지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저는 있다고 봅니다. 스토리텔링이나 SNS 등을 통한 소통의 확산 같은 영역에서요.)

 

5. 잘 됐을 때 열매는 골고루 나눌 수 있나?

 

- 만약 도심 재생을 포함한 힐링이 성공했을 때, 토지·건물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어떤 보람이 있는가요? 토지·건물 주인들이 임대료를 올리는 바람에 도심 재생에 나름 역할을 한 이런저런 세입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일이 부산 남포동·광복동 일대에서 몇 해 전부터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마산 창동·오동동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할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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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는 없는 전남의 개방화장실 이용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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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 없는 것이 전남에 있다. '개방화장실'이 그것이다. 광주에도 있고 순천에도 있다. 


민간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공중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순천 연향동 현대자동차대리점에 개방화장실이 있었다. 이용해봤다. 


들어가 화장실 좀 쓰겠다고 했더니 대리점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화장실은 비데도 설치돼있는 최신식이었고 깨끗했다. 


나오면서 물어보니 순천시에서 따로 지원받는 건 없고 서비스 차원이라고 한다. 이미지 제고 효과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제도다. 경남에도 이런 서비스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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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런투어? 자원봉사(보람) + 여행(재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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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자원봉사센터·신협 두손모아봉사단·해딴에 '힐링 마을 만들기'. 볼런투어(Voluntour)는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개념이자 행동이랍니다. 자원봉사(Volunteer)와 여행(Tour)의 결합이지요. 자원 봉사를 하는 보람도 누리면서 여행하는 재미도 즐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볼런투어를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이사장 신문현)가 올해 들어 처음 시도했습니다. 경남자원봉사센터는 지난 2012년부터 '테마가 있는 자원봉사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사천 한센마을 공동목욕탕·함안 외암초교 복합문화공간 만들기에 이어 창원 대안학교 해밀북카페와 함양군 휴천면 임호마을 마을꾸미기가 있는데 이 가운데 임호마을에 볼런투어 개념을 적용했습니다.

 

 

'볼런투어로 만들어가는 힐링 오지 마을'이 주제인 함양 휴천면 임호마을 대상 마을 만들기는 경남자원봉사센터의 아이디어와 경남·울산신협 경남서부평의회 두손모아봉사단의 실행력·물리력, 그리고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의 기획력이 어우러진 산물이었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선물이 됐고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재미와 즐거움과 보람을 더 크게 안겼습니다. 경남자원봉사센터는 경남 지역 사회의 여러 자원을 활용해 건강한 자원봉사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자연 환경이 그럴 듯한 농촌 시골 마을을 꾸밈으로써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촉진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먼저 경남도민일보 자회사인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와 만나 함양 휴천면 임호 마을이 적당하다고 꼽았습니다.

 

 

8월에는 신협 경남서부평의회 실무책임자 간담회를 통해 임호 마을 꾸미기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마을 골목 벽화 그리기, 솟대길 만들기, 원두막 쉼터 만들기, 버스 정류장 꾸미기 네 가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볼런투어는 9월 28일과 10월 12일, 11월 23일 모두 세 차례 진행됐습니다. 첫째날은 함양·거창·합천·남강·가나·진주장학·도동중앙·새진주신협 등에서 조합원과 임직원 80명 남짓이 참가해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보통은 전문작가가 밑그림과 전체 형태를 만들어주고 자원봉사자들은 색칠만 하기 십상이지만, 이날 활동은 그런 데서 벗어나 자원봉사자들이 스텐실 작업과 붓질을 하면서 몸소 모양과 색깔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색달랐답니다.

 

 

 

 

 

둘째날은 마을 쉼터 원두막 만들기와 솟대길 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임호 마을 꾸미기에 자원봉사 개념으로 함께하게 된 작가 김진성·이성헌 씨는 임호마을에서 구한 목재 등을 바탕 삼아 미리 작업을 벌여 신협 두손모아봉사단이 손쉽게 작업할 수 있도록 원두막을 준비했습니다. 아울러 솟대 20개 남짓은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저마다 개성을 살려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셋째날은 버스 정류장 꾸미기를 주로 하면서 벽화를 손질하는 한편 원두막 짓기를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마을 들머리 버스 정류장은 어두운 몸통 색깔을 밝게 바꾸면서 다르게는 원색을 써서 눈길을 끌게 했습니다.

 

 

 

 

안쪽에는 마을 명물인 아래·위 모랭이길과 뒤를 받치고 있는 화장산의 해맞이 사진을 써서 마을 특징과 장점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원두막은 오래돼 보이면서도 장중한 느낌이 있도록 색칠을 새롭게 했으며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작업하는 바람에 세밀한 부분에서는 허술한 구석이 있었던 벽화에 대해서도 전문 작가와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어울려 보완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와 같은 볼런티어와 더불어 투어에 대한 시도도 함께 진행됐습니다. 첫째날에는 임호마을 마을회관 앞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돌확을 활용해 떡메치기와 인절미 만들어 먹기를 했습니다. 찹쌀을 쪄서 만든 재료를 돌확에다 넣어두고 두손모아 봉사단 남자단원들이 돌아가며 떡메를 쳤습지요.

 

 

여자들은 주로 구경을 했고 어린아이들은 어른들 따라 떡메를 휘두르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다른 한편으로 '떡치기'에 대한 농담까지 주고받는 또다른 즐거움까지 누렸습니다. 아울러 마을과 들판을 둘러보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둘째날은 윷놀이를 하려고 관련 물품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솟대 만드는 작업이 생각밖으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실제로 하지는 못했답니다. 마을 주민들이 마련해 준 마을 자연 밥상을 받아 먹고 마을 주민이 내어 준 고구마를 가마솥에 삶아 가져가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인 셋째날은 전체 준공식을 곁들였습니다. 막바지 들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마을 주민 스무 명 남짓이 함께했으며, 신협중앙회 부산경남지역본부 안용환 본부장, 경남지역협의회 손충길 회장, 경남울산지역 두손모아봉사단 유운하 단장, 경남서부평의회 김형규 회장과 함양신협 이성국 이사장·새진주신협 강계동 이사장 그리고 임창호 함양군수 등이 참여했습니다.

 

함양신협 이성국 이사장(가운데)와 임창호 함양군수(오른쪽).

 

이들은 준공을 기념해 시루떡을 잘라 나눠먹었으며 전체를 대표해 원두막에서 개시를 알리는 테이프 자르기를 했습니다. 이어서 마을회관과 원두막, 그리고 행사를 치는 자리에 마련한 탁자에서 미리 준비한 수육과 손두부와 막걸리를 함께 나눴습니다.

 

경남자원봉사센터 김해문 사무국장은 "신협과 함께하는 불런투어로 만들어가는 함양 임호 마을 사업이 넉 달만에 마무리됐습니다. 마을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임호마을이 더욱 발전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숨쉬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임호마을 만들기 볼런투어는 '투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좀더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한 달 또는 한 주일, 하다 못해 사나흘만 시간이 주어져도 볼런투어에서 자원봉사와 여행을 따로 떼어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지만, 하루만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 경우는 그렇게 따로 떼어내지 못하고 자원봉사와 여행을 일체화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마을 들머리 솟대 옆에 한 번 서 봤습니다.

말하자면 마을 만들기를 하는 과정 자체에서 자원봉사하는 보람과 더불어 여행하는 즐거움까지 누리게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마을이 가진 장점을 비롯해 여러 보물을 갈고 닦아 빛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을이 지닌 여러 사연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임호 마을 만들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인 셈이고, 볼런투어를 할 수 있는 대상 또한 아직 그만큼 많은 것이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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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임호 마을의 도농교류형 도랑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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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로 나뉩니다. 옛날에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 더 오지였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생태의 값어치가 높아지고 덩달아 오지 마을이 사람들 발길과 눈길을 더 많이 잡아 끌게 됐거든요.

 

대표로는 지리산을 업고 용유담이 앞에 있는 함양군 휴천면 송전마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용유담을 건널너려면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야 했고 산이 험해 다니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마을도 달라졌습니다.

 

산림청이 2008년 산촌생태 최우수 마을로 꼽은 데서 알 수 있듯, 이런 마을에 나랏돈이 지원되면서 개발이 많이 됐답니다.

 

 

제가 김성효 이장님과 협약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이 아닌 오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둘레길이 생겼어도 지리산 자락만 대부분 정부 지원을 받습니다. 살려고 들어오는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고요, 마을을 찾는 다른 사람들의 발길도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함양군 휴천면 임호 마을이 그랬습니다. 임호마을은 개울 너머로 지리산을 멀찌감치 앞에 두고 있습니다. 마을 앞 도랑은 곧장 서주천에 합쳐져 유림에서 엄천강에 들어갑니다.

 

뒤로 화장산(586m)이 있는데 그 위로 다른 마을은 없습니다. 휴천면사무소와 직선 거리로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그렇습니다. 가구는 서른이 넘지 않고 사람은 마흔이 채 안 됩니다. 하지만 마을은 남동향이라 볕이 바릅니다.

 

임호 마을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에서 앞서가고 있는 통영 연대도 견학.

 

연대도 에너지 체험 놀이시설을 타보는 임호마을 주민들.

 

이런 마을에서 2013년 도랑 살리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창원에 있는 봉사단체 '꽃들에게 희망을'(대표 김미원)이 앞서고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예비 사회적 기업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함께했습니다.

 

창원 북면 신음마을 도랑 살리기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 외치는 임호 마을 주민들.

 

한국생태환경연구소(이사장 양운진)와 수질환경센터(센터장 이상용)가 거들었으며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이사장 신문현)도 힘을 보탰습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과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의 '민간단체 수질 보전·감시 활동 지원 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지요.

 

처음에는 마을 앞 도랑이 상류에 있는 소·돼지·오리 축사 때문에 더럽혀지는 줄로 짐작됐지만 이상용 수질환경센터 센터장은 현장 답사에서 마을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더 문제라고 짚었습니다.

 

임호 마을 생활하수가 흘러드는 지점의 도랑 모습.

 

 

도랑에 바로 흘러든다는 점에서도 문제고요, 다른 원인을 탓하기 앞서 스스로에게 있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라는 얘기였습니다.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진행됐습니다. 생활 하수 수질 개선과 물길 내기(물놀이장 만들기 포함), 마을과 도랑 쓰레기 치우기, 그리고 마을 전체를 새롭게 가꾸기(마을 만들기).

 

생활 하수 수질 개선은 흙사랑영농조합법인 EM활성액을 공급받아 쓰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EM활성액에는 미생물이 들어 있고 미생물의 활동과 번식을 왕성하게 하는 물질도 들어 있습니다. 미생물은 더러운 물이나 쓰레기에 들어가 오염물질을 분해합니다.(이런 활동이 자기네 미생물들로서는 먹이를 먹는 일이 해당되겠습니다.)

 

꽃창포 심는 모습.

 

그렇게 오염원 자체도 없애고 좋지 않은 냄새도 잡아줍니다. 이렇게 좋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 처음부터 즐겨 쓰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낯설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교육이 거듭되는 한편 조금이나마 써 보는 과정에서 효과가 크게 났기에 사용량이 늘어났습니다.

 

택호가 고태댁인 어르신은 "손주가 아토피가 심했었는데, EM활성액으로 씻고부터는 없어졌어. 지금 집안 곳곳에 쓰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EM활성액은 몸을 씻을 때나 설거지할 때 써도 좋습니다. 하수 통로나 논밭에도 뿌려지고 거름을 만드는 데 뿌려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EM활성액 관련 교육은 10월을 마지막으로 멈췄답니다.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뿌리를 내린 꽃창포. 5월 31일 모습. 꽃까지 피었네요.

 

 

생활 하수가 드는 도랑 들머리에는 4월 꽃창포를 심었습니다. 꽃창포도 수질 정화에 한 몫 하기 때문이지요.

 

쓰레기 치우기는 창원 사파고교 학생들이 거들었습니다. 3월과 6월 두 차례 마을을 찾아 버려진 비닐과 농약병과 생활쓰레기들을 걷어냈습니다. 대부분이 일흔을 넘긴 마을 주민들은 점심을 자연 밥상으로 차려 이들을 반겼답니다.

 

 

임호마을 주민들이 마련해 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파고 학생들.

 

동네 쓰레기를 치우러 학생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실거리를 사들고 찾아온 박동서 휴천면장.

 

임호 마을은 아직 쓰레기를 태운 자취도 남아 있고 들머리에는 비닐이 잔뜩 쌓여 있지만 전보다 많이 깨끗하다는 느낌이 납니다. 옛날에는 대밭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심하는 기색이 뚜렷합니다.

 

있는 쓰레기를 치운 한편으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줄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직 재활용품 분리수거가 안 되는데 행정기관과 함께 풀어야 하지 싶습니다.

 

꽃창포 심기 전에 도랑에서 걷어낸 쓰레기들.

도랑 물길 내기와 물놀이장 만들기도 했습니다. 굴착기를 불러 토목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만든 뒤 돌보는 일은, 마을 주민들이 나섰어야 하는데, 장마철 상류에서 내려온 모래가 가득 쌓이는 바람에 그래도 물길은 남았지만 물놀이장은 많이 덮이고 말았습니다. 내년 다시 할 때 새로 검토하고 보완해야 마땅한 대목이 되겠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시골 한 마을과 도시에서 오는 팀이 함께하는 사업은 서로가 겉돌기 쉽습니다. 하지만 임호 마을 주민들과 도랑 살리기 주관 단체들은 겉돌지 않습니다. 서로 믿기 때문이지요.

 

도랑 살리기 운동을 '꽃들에게 희망을'과 함께하는 '해딴에'가, 2012년 '버스 타고 함양 속으로'를 하면서부터 자주 만나온 덕분입니다.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초록문명 지역아카데미 시범 사업' 가운데 하나로 3년 계획이었습니다.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경남도지사가 바뀌며 문화정책도 바뀌어 '뜬금없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믿음과 인정은 보이지 않는 성과로 남았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처음 도랑 살리기를 기획할 때 마을 만들기까지 이어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원을 신청할 때 마을 역사와 문물을 모아 마을 박물관을 만들고 원두막을 세울 계획을 적어넣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가 해딴에에 볼룬투어(자원봉사Volunteer+여행Tour)를 해 보자고 제안했고요 해딴에는 임호 마을을 두고 계획을 짰습니다. 이런 일은 임호마을 도랑 살리기 운동이 있지 않았고, 이를 통해 마을 주민들과 어우러져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겠지요.

 

윗모랭이길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주민들이 반기는 가운데 자원봉사 보람과 여행 재미를 함께 누리는 일이 임호 마을에서 9월부터 11월까지 벌어졌습니다. 함양신협과 신협경남서부평의회 두손모아 봉사단이 몸과 마음과 물건을 보탰는데, 지역사회에서 크게 관심을 보여 임창호 함양군수도 두 차례나 찾아왔답니다.

 

요즘은 마을마다 정자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임호 마을은 없었습니다. 지을 터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마음을 내고 찾아보니 마을회관 앞 샘이 있는 옆자리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아름답게 휘어지는 아랫모랭이길.

 

솟대나 벽화도 요즘은 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임호 마을은 없었습니다. 도랑 살리기를 통해 사람들 눈길과 발길이 쏠리다 보니 생겨났습니다. 여기 벽화와 솟대는 아무 데나 있는 판박이가 아니고 다른 데는 없는 색다른 작품들이지요.

 

마을 앞 버스 정류장 꾸미기는, 다른 데서는 여태 거의 시도되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어두운 색깔을 덜어내고 도드라지게 할 뿐 아니라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마을 특징·장점을 담은 사진까지 붙였습니다.

 

 

임호마을에는 여러 장점과 특징이 있습니다. 앞 들판 구송은 의젓한 천연기념물입니다. 마을 들머리는 굽어지는 모랭이가 멋지답니다. 집들과 사람과 연장도 모두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뒤편 화장산은 함양에서 가장 먼저 해가 솟는답니다. 산마루에 오르면 사방으로 모든 산악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해을 맞이하러 가는 임호 마을 들판 길은 푸근합니다.

 

 

마을 주민들도 마음이 넉넉해서 눈 앞 작은 이문에 매이지는 않는답니다. 또 정월대보름날 하루종일 펼쳐지는 풍물 길놀이 같은 민속이 여태껏 살아 있는데요, 보통 다른 마을은 다른 사람이 오면 부정 탄다고 꺼리지만 여기는 인심이 푸짐해서 마을 주민 아닌 사람도 함께 어울리게 해 줄 정도랍니다.

 

 

이처럼 지금 임호마을에서 벌어지는 도농교류형 도랑 살리기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마을 만들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사람들도 많이 찾고 더 나아가 농산물 도농 직거래도 이뤄질 수 있겠습니다. 임호 마을에는 깨끗한 쌀과 고구마, 콩과 팥, 그리고 삼채 따위 채소가 난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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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등학교의 참 희한한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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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이 졸업생들에게 "성공하라"는 축사 대신 "나중에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더라도 부디 사람을 짓밟고 무시하지 마라"고 당부하는 졸업식.


지옥같은 학교를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웃고 떠들며 밀가루를 뿌리고 교복을 찢는 대신 선생님과 졸업생, 그리고 학부모까지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우는 졸업식.


요즘 세상에서 참 보기 드문 졸업식 광경을 보고 왔다.


마산에 있는 공립대안학교 태봉고등학교의 1월 9일 졸업식이었다. 다른 학교들은 대개 2월에 졸업식을 하지만, 태봉고는 1월 초에 졸업식을 한다. 얼마 전 한겨레 인터뷰에 소개되었던 채현국(79) 이사장이 있는 양산 효암고등학교도 같은 날 졸업식을 했다. 일찍 나가서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하라는 의미다.


알고보니 채현국 이사장과 여태전 교장의 인연도 각별했다. 여태전 교장이 1988년 효암고에서 '서무실 아저씨'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고, 거기서 11년이나 재직했던 것이다. 그 때 채현국 이사장의 교육철학을 배웠다고 했다.


내 아들녀석도 이날 졸업을 했다. 제2회 졸업생이다.


여태전 교장선생님의 회고사가 특이했다. 그는 이번 학년을 마지막으로 태봉고를 떠난다. 4년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 회고사'라는 이름으로 졸업생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말을 남겼다. 영상으로 보시기 바란다.



"오늘 태봉을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상기시켜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 두 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말과 "당신 삶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와 철학보다도 '사람이 먼저'라는 이 가치를 가슴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태봉을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나누고 살다보면, 앞으로 돈 많은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권력과 명예를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여러분들은 그 돈과 권력과 명예로써 사람을 짓밟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그 어떤 부와 권력과 명예도 다 거짓이며 허구입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느니, 차라리 '위대한 평민'으로서 사는 게 백번 낳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실천한다면, 여러분은 진정 태봉이 낳은 자랑스러운 딸이요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은 진정한 성공을 이룬 것이면,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접하고 모시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다 함께 손을 잡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기도이자 축원입니다."


여태전 교장이 임기를 마치자 경남도교육청은 현 교장이 후임교장 공모에 응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항의하기 시작했고, 교육청은 교장 공모 자격을 다소 완화했지만, 여태전 교장은 여전히 응할 수 없게 됐다.


여태전 교장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아래와 같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



졸업식이 끝나자 교사와 재학생들이 강당 입구에 도열했다.


졸업생이 한 명 한 명 나가자 모두 끌어안고 운다.


우는 사진 몇 장을 올려둔다. (혹시라도 초상권에 문제가 있다면 곧바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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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동영상 등 프로그램 개발 실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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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자치단체가 (예비) 사회적 기업을 지원·육성하는 정책 가운데 '사업개발비 지원'이 있습니다. 시설·장비 구입이나 인건비로 말고, 앞으로 사업을 벌이는 데 필요한 아이템이나 홍보 수단을 개발하라는 취지입니다.

 

물론 아무렇게나 주어지지는 않고, 나름 심사를 거쳐 선정합니다. 일정한 금액을 먼저 주고 중간중간에 그리고 끄트머리에 관리를 하는데요, 자부담도 지원금 10%정도를 부담하게 됩니다. 나아가 부가가치세는 전액 (예비) 사회적 기업 부담입니다.

 

저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도 2013년 사업개발비 지원을 두 차례 받았습니다. 창원시를 통해 받았는데, 대한민국과 경남도의 예산도 들어 있습니다. 상반기는 지원금 738만원에 자부담과 부가가치세 제각각 82만원씩 해서 902만원, 하반기에는 지원금 372만6000원에 자부담과 부가가치세 41만4000원씩 해서 455만4000원이 됐습니다.

 

강주마을 들머리에서 놀이를 즐기는 진해샘바위공부방 아이들.

 

해딴에는 상반기 지원금으로 홍보물 두 가지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하반기 지원금도 긴요하게 써서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있는 '해딴에 어린이 캠프' 콘텐츠를 두 가지 구성하고 그밖에 필요한 자료들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상반기에 제작한 홍보물은 해딴에 여행·체험 프로그램을 주로 알리는 일반인용과, 스토리텔링콘텐츠 개발·제작이나 파워블로거 팸투어 또는 마을 만들기 같은 프로젝트를 알리는 자치단체·기관용 두 가지입니다.

 

2013년이 지나가면 별로 쓸모가 없어지는 일반인용은 이미 다 썼고요, 지난해는 물론 올해도 쓸 수 있는 자치단체·기관용은 두고두고 사용하고 있답니다.

 

 

하반기 지원금은 다 쓰지 못했습니다. 70만원 안팎이 남았는데요, 이런 나랏돈을 쓸 때는 조건을 두루 갖춰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나름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내어야 하는데, 지원금이 늦게 나온 탓도 있지만 주되게는 10월 들어서면서부터 해딴에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바람에 다 쓰지 못한 측면이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반기에 나랏돈으로 시범운영까지 마친 프로그램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휴대전화를 활용한 동영상 찍기고요 다른 하나는 시골 마을 찾아 벽화 그리기(볼런투어: 자원봉사Volunteer+여행Tour)였습니다.

 

아이들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듯이, 공부하기나 의무를 앞세우는 대신, 놀기와 권리를 앞세워서 진행을 했답니다.

 

먼저 휴대전화 활용 동영상 찍기입니다. 이제 휴대전화는 어지간하면 다들 하나씩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활용을 다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전화·문자, 아이들은 게임에 주로 씁니다. 물론 일부러 모든 기능을 활용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휴대전화로 자기와 공동체의 일상과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나름 재미도 있고 뜻도 깊다고 봅니다.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아이들과 유덕재 선생님.

 

즐겁게 나가 놀거나 이런저런 행사를 할 때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할 수 있도록 하면 나름 보람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해딴에는 함안 강주에 사는 사진작가 유덕재 선생님을 모시고 진해 샘바위공부방과 연결을 지어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유덕재 선생님은 11월 28일과 12월 5일 두 차례 진해를 찾아 공부방 아이들에게 동영상 촬영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구도 잡는 방법, 촬영하는 대상(행사, 나들이, 일상, 인터뷰 등등)에 따른 기법을 일러줬습니다.

 

 

 

12월 8일에는 유덕재 선생님이 주축이 돼서 마을을 새롭게 만들고 공동체까지 꾸리기 위해 애쓰는 함안 강주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아침 나절에는 마을회관에서 동영상 찍기를 실습했으며, 마을에서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받고 난 오후에는 마을을 한 바퀴 두른 다음 가까이 대송늪과 둑방을 찾아 동영상 촬영을 했습니다.

 

 

바깥에서 진행한 동영상 촬영은 실상이 어땠을까요? 어떤 대상 하나를 두고 줄 지어 서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유덕재 선생님 지도를 받으며 휴대전화로 촬영을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원래 취지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덕재 선생님은 핵심이나 관점을 잡아줄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찍으면 들판이랑 습지가 함께 어울려 물에 비친 풍경이 아름답단다, 철새들 작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철새 전체도 구도에 넣으면 부분과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고 그 관계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등등등…….

 

대송늪에서.

 

아이들은 선생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즈막하게 감탄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탁 트인 자연에서 거칠 것 없이 노니는 즐거움이 더욱 좋았습니다.

 

오른쪽 물 위에 철새들이 있습니다.

 

그냥 웃고 뛰고 하며 노닐었고 그러는 사이 마음에 들거나 새로워 보이거나 예뻐 보이거나 신기해 보이는 것들에 휴대전화를 들이대고 찍기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저희 해딴에는 노렸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이렇게 한 차례 교육을 받는다고 촬영 기술이 엄청 늘지는 않습니다. 다만 즐겁고 좋은 추억을 바탕삼고, 휴대전화 동영상 찍기의 기본 정도는 익혀서, 나중에 일상 생활에 한 번 적용해 보고 또 즐거운 기억으로 남겨 이런 기록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고 좋아하게 되면 그만입니다.

 

이런 어릴 적 기억 또는 추억이 아이들 일생에 끼치는 바 영향이 그야말로 작지 않거든요. 당장 잘하거나 못하거나가 목표가 아니라, 이렇게 평생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하나를 마련해 준다는 데에 이런 프로그램의 취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즐거움 보람은 둑방에 가서 더욱 커졌습니다. 아이들은 겨울철 이런 강물과 들판과 갈대 같은 풀들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단순한 강물과 들판과 수풀이 아니라 서로 잘 어우러지고 그래서 더욱 풍성해져 있는 자연입니다.

 

 

 

아이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갈대를 꺾어 놀이를 하고, 강아지풀을 갖고 상대방을 간질이고, 밭두렁을 건너뛰어 넘어가 보기도 하고, 강물 가까이 우거진 물버들 낮은 키 사이로 살살 기어다니기도 하고, 풀밭이 나오면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강물이 나오면 거기 비친 바위랑 산이랑 정자랑을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그맣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잘못해서 아직 덜 마른 뻘흙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는 울기도 하고, 그러다 자기를 달래주는 동무 손을 잡고 걸어나오다 금세 다시 웃음 짓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쩌다 생각이 난듯, 휴대전화를 꺼내들고는 동영상을 찍어보기도 하고. 서로 휴대전화 들여다보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또 놀리기도 하고, 그런 놀리는 친구를 뒤쫓아서 뛰어가기도 하고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지내다가, 공부방 아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너무 늦어지면 오히려 즐거운 기운이 덜해질 수 있으니까, 3시 조금 넘은 시점에 마치게 됐습니다. 하하. 마지막에는 대표 불량식품인 컵라면을 먹었는데요, 놀다가 늦게 온 친구들은 컵라면만 받아들고 집으로 가야만 했답니다.

 

다음은 시골 마을 찾아가 벽화 그리기. 12월 15일 찾은 함양 휴천면 임호 마을에는 이미 벽화 그리기가 돼 있었답니다. 해딴에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이 어울려 여기서 볼런투어를 하면서 벽화도 그리고 원두막도 만들고 솟대도 세워놓았더랬습니다. 이번 볼런투어는, 볼런투어의 대중화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볼런투어는, 볼런투어를 통해 이득을 보는 마을이 일정 부분을 내어놓고,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집단(그러니까 여기서는 해딴에)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으며, 참여하는 사람들은 최소 경비를 자기가 부담하는 대신 봉사를 하는 보람과 재미 그리고 그 마을에 독특하고도 고유한 맛과 멋을 체득하는 즐거움을 누리면 알맞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번 어린이 볼런투어는, 정부 지원금을 경비로 삼고 해딴에가 부분적으로 보탰습니다. 그리고 재료비나 디자인비 그리고 현장 지도비 따위도 모두 나랏돈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이런 경비 지출이 없었기 때문에 참가비 책정을 어떻게 해야 알맞을는지 등은 앞으로 좀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마련해 나가야 하리라고 봅니다.

 

다만 프로그램 내용 구성과 마을 주민들의 호응도 등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가한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나고 즐거워했는지와, 어떤 대목에서 좀더 즐거워하고 어떤 대목에서 좀더 흥미를 느끼는지 등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가 최고였습니다. 어디서든지 말씀입니다. 우물 하나만 갖고도 잘 놀았고 잔디밭 하나만으로도 즐거워했습니다. 어떤 시간과 공간 안에 알맞은 놀거리만 있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옛날 아이들이 놀던 거리를 가져와도 좋겠고,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놀 수 있는 거리를 새로 장만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마을 한 바퀴 둘러보기도 괜찮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놀이개였습니다.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모두 재미있고 신기한 대상이었습니다. 우물이나 개울물이 아이들 놀이개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러 시도하지는 않았는데도, 아이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얘기를 주고받고 먹을거리 간식거리를 만들어먹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 또한 썩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조금 짜임새 있게 미리 챙겨 진행한다면, 찾아온 아이나 동네 어르신 모두에게 재미있는 일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더불어, 이번에는 간단하게 고구마 구워먹기밖에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자기 손발을 놀려 만들어낸 먹을거리라면 무엇이든 맛있어 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바로 싸움구경이랑 불구경이라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커다란 깡통에 불을 붙여 놓고 갖은 땔감을 모아 태우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메인 이벤트인 벽화 그리기는 어땠을까요? 김진성 작가께서 이끌었는데요, 해딴에가 아이들 상대로는 처음 하는 볼런투어다 보니 허점이 두엇 있었습니다.

 

물에 빠져 거비발싸개를 한 아이 셋.

 

어른들처럼 알아서 서로 역할을 나눠 하기 어렵다는 점과 아이들이라 옷에 물감을 묻히기 십상이라는 점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옷에 묻은 물감을 씻어내고 닦아내느라 저는 좀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에 한다면 팔토시를 충분하게 준비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실제 그리기에서는, 물론 미리 밑그림을 그려놓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이 담벼락에 마음대로 다가가서 그리도록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효율도 떨어지고 밑그림대로 그려지지도 않는 잘못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리는 기회가 제대로 나눠지지 않은 측면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 얘기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효율도 높아지고 그림도 좋아지고 질서도 잡히고 그림 그리는 기회도 고르게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또 자기 그림이 동네를 밝고 환하게 해준다는 사실, 동네 어르신들이 자기네를 반기고 좋게 여긴다는 사실에 가슴뿌듯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리는 자체에서 느끼고 누리는 즐거움과 재미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춥다, 좀 쉬었다 하라, 그랬는데도, 해가 기울어 그림자가 자기 키보다 훌쩍 더 크게 자라도록 붓을 놓지 않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벽화 그리기에서는 김진성 작가님 고생이 가장 컸습니다. 볼런투어 전날에는 바탕 색칠도 하고 밑그림까지 그려야 했고, 당일에는 아이들 오후 4시 안돼 돌아간 다음 마무리를 했으며 이튿날도 다시 가서 더하고 고치고 메우고를 되풀이하셨습니다.

 

해딴에는 이번에 시험해 본 두 프로그램을 모두 현실에 적용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활용 동영상 찍기는 당장 올 3월부터 실행 프로그램에 집어넣을 계획이고요, 볼런투어는 아무래도 기본 들어가는 경비가 있기 때문에, 그 대책을 먼저 세운 다음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시기가 그렇게 많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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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여쭙습니다. 홍준표 도지사의 2013년 도정이 어떠셨는지요? 제게는 '폭정', 그러니까 폭력적인 도정으로 비쳤습니다. 아마 저뿐 아니라 홍 지사 맞은편 사람들 처지에서는 대체로 그렇겠지 싶습니다.

 

지난 한 해를 죽 돌아보니까, 제가 보기에 잘 한 일은 하나 정도, 경남도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보기에 잘못한 일은 무척 많습니다. 진주의료원 폐업, 문화예술 관련 기관 통폐합, 학교 무상급식 예산 축소, 기존 기관장 찍어내고 자기 편 심기, 밀양 초고압 송전탑 설치에 대한 태도 표변(한전의 안전 우선 담보→정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회유…….

 

2013년 초에 밀양을 찾은 홍준표 선수. 여기서 홍 지사는 한전에 안전 우선을 요구했었었었지요.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런데 제가 폭정이라 여기는 까닭이 이런 정책 자체에는 있지 않답니다. 정책은 사람에 따라 처지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거든요.

 

제가 보기에 홍 지사는 맞은편 사람들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고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이었습니다. 무시하고 밀어붙이기만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만평. 권범철 기자.

 

진주의료원 폐업 도의회 표결 과정이 대표적이겠는데요. 당시 홍 지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던 공무원들은 연말 인사에서 승진을 시켰습니다.

 

자막 바로 위에 윤성혜 선수가 보입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홍준표와 윤성혜. 경남도민일보 사진.

 

또 맞은편 사람들은 도청 출입조차 못하게 막았지요. 지금도 도청 문들은 많은 경우 쇠사슬로 감겨 있고 일반 사람이 자기 힘으로 열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없습니다. 지키는 사람이 하루 종일 있으면서 무슨 단추 따위를 눌러 대신 문을 열어줍니다.

 

지금은 이보다 더합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그러다 여론에서 밀린다 싶으면 우리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저주 받은 낱말들도 입에 올렸습니다. 이를테면 귀족노조, 좌파 정책, 외부 세력 같은 것들입니다.

 

더불어 거짓말도 꽤 했는데, 그게 적지 않아 하나하나 모두 들기는 어렵겠더군요. 대표로 진주의료원 관련해 꼽자면 노조원의 원장 폭행과 노조원 가족의 정규직 채용 두 개가 되겠습니다.

 

진주의료원에서 쫓겨나기 직전 환자들. 종이상자는 갖고 나갈 물품을 담으려고 준비한 것일 테지요. 경남도민일보 사진.

 

더욱이 홍 지사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서도 사과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시했습니다.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분명 거기 사람이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이처럼 대화·토론 같은 평화적·일상적인 과정 없이 폭력적으로 해치웠습니다.

 

그런데 홍 지사의 이런 폭정은 우리 경남의 유권자가 스스로 불러들인 측면이 크지 않은가요? 홍준표 도지사가 지난해 12월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었어도 당선이 가능했겠느냐를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경남도민일보 사진.

 

도지사 후보가 어떤 인물이든 새누리당이 공천만 하면 그냥 당선됩니다. 지금 경남 사정이 이러니 누가 도지사가 되든 유권자를 살피고 보듬기보다는 새누리당 당심의 흐름을 가늠하고 좇기 바쁘지요.

 

만약 홍 지사의 폭정이 올해로 끝날까 여부를 가늠해 본다면 그 잣대는 하나뿐입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공천하지 않으면 끝나고, 공천하면 끝나지 않겠지요.

 

경남도민일보 만평. 권범철 기자.

 

그런데, 홍준표 폭정이 끝난다 한들 무슨 보람이 있나요? 새누리당이 공천하는 다른 사람이 무조건 당선될 텐데요…. 딱 하나, 새누리당이 선량한 사람을 공천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유권자가 제 구실을 못하면 정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설령 바뀐다 해도 물로써가 아니라 피로써 피를 씻는 꼴이 날 개연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진주의료원 환자들의 홍준표 선수 면담 요구가 이른바 방호 인력에 막혔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사람들은 보도매체를 감시견(watchdog)에 견주곤 합니다. 보도매체 종사자인 제가 개가 돼서 한 번 짖어봤습니다.

 

홍 지사는 지난 연말 개가 기차를 향해 기차를 위해 짖는 것처럼 트위터에 올렸는데, 개가 기차를 향해 짖기는 해도 기차를 위해 짖는 것은 아니랍니다. 개 주인은 따로 있거든요. 기차야 멈추든 말든 자기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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